-
1919년 서울에서 시작한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3~4월 동안 충청남도 아산 각지에서 만세 시위, 횃불 시위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 독립운동. 아산의 3·1운동은 3월 11일 온양공립보통학교[지금의 온양초등학교] 학생들의 만세 시위로부터 시작하여 4월 4일 선장면 군덕리 시장에서 지역민들의 만세 시위를 끝으로 약 25일에 걸쳐 전개되었다. 충청남도 아산...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침공으로 충청남도 아산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 후 북한 인민군은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7일 아산에 진입하여 9월 말까지 전 지역을 점령하였다. 9월 29일 국군과 유엔군이 아산 지역을 수복하였고, 이후로는 북한 인민군의 침입을 더 이상 받지 않았다. 전쟁 기간 동안 아산 지...
-
1907년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나라 빚을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고자 일어난 국권수호운동. 아산 지역의 국채보상운동 지회 건설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아산 지역의 국채보상운동은 지역민이 자발적으로 국채보상금을 의연(義捐)[사회적 공익이나 자선을 위하여 돈이나 물품을 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여성들에 의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
-
조선시대 세조 때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도고산에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들을 해치자 세조가 명을 내려 호랑이를 잡은 사건. 세조가 충청남도 아산 지역으로 온행(溫幸)을 왔을 때 도고산에 맹호(猛虎)가 있어 사람들을 많이 해친다는 민원을 듣고 명을 내려 호랑이를 잡게 하였다. 1468년(세조 14) 1월 세조가 온양행궁(溫陽行宮)에 온행을 왔다. 세조의 온행은 질병 치료가...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일제의 식민 지배 체제에 저항하면서 민족의 독립을 추구하기 위해 벌인 운동. 청일전쟁에서 시작된 아산 지역의 항일 기운은 을미사변과 을사조약을 거치면서 항일 의병 활동으로 발전하였고, 1905년 이후에는 교육구국운동이 전개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1910년대 대한광복회에 의한 친일 도고면장 처단 의거가 일어났으며, 1919년에는...
-
청일전쟁 시기 충청남도 온양, 신창, 아산 지역의 동학도와 주민들이 일제 침략에 저항하면서 양반 중심의 신분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무장투쟁을 전개한 운동. 안교선(安敎善)이 이끄는 아산의 동학도들은 1893년(고종 30) 동학교단의 보은 집회에 참여하여 외세 침략에 저항하였다. 이어 청일전쟁으로 항일의식을 고조시킨 아산 지역민들은 동학에 입도하여 항전 의지를...
-
1951년 1월 18일 충청남도 아산군 둔포면 둔포리[현 아산시 둔포면 둔포리]에 머무르던 피난민들이 미군기의 무차별 폭격에 희생당한 사건. 1950년 11월 말, 중공군이 6·25전쟁에 참전하게 되면서 대한민국 국군과 미군을 비롯한 UN군 병력은 남쪽으로 후퇴를 시작하였다. 12월 24일 흥남부두에서 마지막 철수 선박이 병력과 피난민을 태우고 떠났으며, 이듬해인 1951년 1월...
-
고려시대 문종이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온천욕을 하기 위해 행차한 일. 1082년(문종 36) 9월에 고려 제11대 왕 문종(文宗)[재위 1046~1083]이 온수군(溫水郡)[현재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온천을 이용하고자 행차하였다. 문종은 고려의 제도와 문물을 집대성한 국왕이었지만 말년에 몸이 안 좋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081년(문종 35) 10월에 문종은 평주(...
-
1918년 독립운동 단체 대한광복회의 회원들이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장인 친일파 박용하를 처단한 의열 투쟁.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장 박용하(朴容夏)는 친일에 철저했고 악질로 악명이 높았다고 전해져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가 지목하여 사살하였다. 대한광복회는 1915년 조직된 비밀결사 단체로 국내의 부호들로부터 의연금 모집, 일본인이 징수한 세금을 압수하여 군자...
-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을 포함한 조선 각지에서 청의 침입으로 피해를 받은 전쟁.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살았던 백성들은 근왕군(勤王軍)과 의병으로 병자호란(丙子胡亂)에 참여하여 전투를 수행하기도 하였지만, 청나라 군사들에 의해 많은 피해를 받았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숭명배금(崇明排金) 정책을 표...
-
고려시대 대몽 항쟁기에 천안부 백성들이 충청남도 아산 지역 선장도로 난리를 피하여 옮겨 간 사건. 1256년(고종 43) 몽골군이 천안부(天安府)[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에 침입해오자 천안부 백성들이 화를 피하기 위해 선장도(仙藏島)[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일대]로 들어갔다가 1270년(원종 11) 고려와 몽골이 강화를 체결한 이후 다시 천안부로 돌아갔다. 1231년(고종...
-
임진왜란 기간에 송유진 등이 충청남도 아산시와 경기도 평택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된 사건. 송유진(宋儒眞)의 난은 1593년(선조 26) 12월에서 1594년(선조 27) 1월 사이 호서 지역의 아산과 평택 일대에서 송유진을 중심으로 한 사회 불만 세력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사건이다. 송유진은 서울 건천동(乾川洞)에 사는 역...
-
1950년 7월 10일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하여 충청남도 아산군 신창면[현 아산시 신창면] 한티고개에서 벌어진 경찰과 북한 인민군 간의 전투.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 후 북한 인민군은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였고, 7월 6일 충청남도 천안까지 내려왔다. 북한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참전한 미군은 7월 8일까지 이틀간 천안에서 북한 인민군과...
-
6·25전쟁 시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 6·25전쟁 기간 동안 충청남도 아산에서도 민간인을 대상으로 여러 건의 학살사건이 자행되었다. 민간인 학살사건은 크게 북한 인민군이나 좌익 세력에 의해 일어나거나, 북한 인민군 퇴각 이후 부역자 처단을 명목으로 반공 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자행하였다. 한편으로는 미군의 오인에 의한 학살사건도 있었다...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문장으로 이름난 8명의 인물. 1819년(순조 19) 이호빈(李浩彬)이 편찬한 충청도 아산현의 지리지인 『신정아주지(新定牙州誌)』의 문장조(文章條)에는 윤지복(尹之復), 민사성(閔師聖), 공희성(孔希聖), 차천로(車天輅), 정두경(鄭斗卿), 이진행(李震行), 정운붕(鄭雲鵬), 강취무(姜就武) 등 8명의 문장가를 소개하고 있다. 윤지복, 민사성, 공...
-
1256년(고려 고종 43)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몽골군과 싸워서 크게 이긴 승리. 1231년(고종 18)부터 몽골이 고려에 침입하기 시작하여 수십 년간 전쟁이 지속되었는데 아산 일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1256년 6월에 온수현(溫水縣)[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장군 이천(李阡)이 지휘한 고려군이 몽골군을 크게 격퇴시킨 대첩이 온수대첩이다. 13세기 칭기즈칸(Chingiz K...
-
1236년(고려 고종 23)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몽골군을 물리친 전투. 1231년부터 몽골이 고려에 침입하기 시작하여 고려와 몽골의 전쟁은 수십 년간 지속되었는데 아산 일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1236년 9월에 온수군에서 고려와 몽골의 전투가 벌어져 현려(玄呂) 등이 중심이 되어 몽골군을 격퇴시킨 전투가 온수전투이다. 본래 몽골고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였으나 13세기 초에 아시아...
-
일제강점기 충남선 개통과 온양온천의 개발에 따른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1~6동]의 근대적 신시가지로의 환경 변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군에 존재했던 온양면(溫陽面)은 지금의 아산시 온양1~6동 일원이다. 1914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아산, 온양, 신창 3개 군(郡)이 아산군으로 통합되었고, 온양면에 아산군청·온양경찰서·공주지방법원 온양출장소 등이...
-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일본이 충청남도 아산 지역을 포함한 조선을 침략한 전쟁.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셋째 아들 이면(李葂)은 1597년(선조 30) 9월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북상한 왜군(倭軍)이 이순신의 본가를 습격하자 이에 맞서 싸워 왜군 3명을 베고 순절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순신은 일가를 전라좌수영(...
-
1930년대 천도교 구파 중심으로 충청남도 아산 지역 교인들이 민족 독립을 기원하며 전개한 기도문 암송 운동. 천도교멸왜기도운동(天道敎滅倭祈禱運動)은 천도교에서 1936년부터 일제의 패망과 조국의 광복을 기원하는 기도문을 매일 아침, 저녁 식고(食告)[천도교에서 식사 때마다 한울님에게 고함] 때 외도록 하고 유사시에 대비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였던 운동이다. 아산 지역...
-
청일전쟁 시기 청국 군대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주둔하면서 일본군에게 패배할 때까지 지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사건. 청국 군대는 1894년(고종 31) 6월 8일부터 25일까지 순차적으로 2,800명을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상륙시켜 주둔하였고, 7월에는 2,300명을 증파하여 모두 5,100명이 주둔하게 되었다. 아산과 인근 지역에서는 청국 군대의 주둔...
-
한말 을미사변 이후 1909년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일어난 의병들의 활동. 한말 의병은 국가와 민족을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보전시키고자 자발적으로 무장 항쟁한 군사 집단이다. 주자학적 의리론과 존화양이론(尊華攘夷論)[중화를 받들고 이적을 물리침]을 기본으로 하는 국수보복론(國讐報復論)[국모의 원수를 갚아야 함]과 안민론(安民論) 등의 이념적 성격을 띠었다....
-
1931년 충무공 이순신의 묘소와 위토가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상황에서 전개된 거족적 모금운동. 1931년 충무공 이순신의 묘소가 경매로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동아일보에서는 관련 기사를 작성하여 실었으며 송진우(宋鎭禹)·정인보(鄭寅普) 등은 이충무공유적보존회를 조직하여 동아일보사의 협력으로 성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후 전국적으로 자발적인 성금이 답지하여...
-
1920~1930년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형평사 아산분사를 통해 벌인 신분차별 철폐운동 및 사회운동. 형평사(衡平社) 운동은 일제강점기에 백정(白丁)들이 갑오개혁에 의해 법률상으로 천인(賤人) 신분에서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에서는 신분이 존속되어 차별받던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 운동이다. 아산 지역에도 형평사 아산분사(牙山分社)가 설치되어 활동을 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