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의병. 강태건(姜泰健)[1878~1952]은 의병장 곽한일(郭漢一)과 함께 홍주의진(洪州義陣)에 참여하였고, 독립의군부에서도 활동하였다. 강태건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 출신이다. 아버지는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강호선(姜浩善)이다. 강태건은 슬하에 4남 4녀를 두었으며, 장남인 강인식(姜仁植)은 독립...
-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정치인. 강필선(姜弼善)[1918~1990]은 초대 온양문화원장을 역임하고, 제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강필선은 1918년 1월 26일 충청남도 아산군 배방읍 신흥리[현재 아산시 배방읍 신흥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의당(義堂)이다. 1930년대에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하였다. 1937년 만주 중앙경찰학교를...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 곽한일(郭漢一)[1869~1936]은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출신으로 1906년(고종 43) 홍주의진(洪州義陣)에 참여하여 돌격장, 소모장(召募將)으로 활약하였다. 종신 유배형을 받고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智島)로 유배되었으나 1912년에 풀려났다. 1913년 독립의군부에서 총무총장(總務總長)으로 활동하다가 1914년...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염치읍 백암리 횃불 만세 시위 주도자. 1919년 3월 31일 밤 한연순(韓連順)과 함께 염치면[현재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芳華山) 위에 횃불을 올리고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김복희(金福姬)[1901~1986]의 아버지는 김윤필(金允弼), 어머니는 박씨이다. 6남매의 자녀를 두었으며,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김복희...
-
조선 후기 개화파의 지도자로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묘와 제실이 있는 정치인. 갑신정변의 주역이며 반역범으로 암살당했으나 복권되어 충달(忠達)이란 시호(諡號)를 받았다. 김옥균(金玉均)[1851~1894]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백온(伯溫), 호는 고균(古筠)·고우(古愚)이다. 1851년(철종 2) 1월 23일 충청도 공주 정안면[현재 공주시 정안면]에서 태어났다...
-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정치인. 김용래(金庸來)[1934~2009]의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현 아산시 배방읍]에서 태어나 대통령 정무제2수석, 경기도지사, 서울특별시장, 총무처 장관 등을 지냈다. 김용래는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휴대리[현 배방읍 휴대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재학 중 1955년 제7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선장면 4·4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천봉(金千鳳)[1894~1970]은 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현 아산시 선장면] 장터에서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군중을 이끌고 선장면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투석을 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천봉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도흥...
-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동학사상과 항일민족정신을 이어가는 사람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많은 사람이 기포(起包)[동학농민운동 때 농민 등이 동학의 조직인 포(包)를 중심으로 하여 봉기(蜂起)하던 일]에 참여하였던 곳이며, 천도교로 개칭한 이후 후손들은 3·1운동 등 민족운동을 주도하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동학과 천도교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
-
충청남도 아산군 송악면[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봉곡사에서 수행하였으며, 공주 마곡사 주지를 지냈던 승려. 승려 만공(滿空)[1871~1946]의 승려가 되기 전의 이름은 송도암(宋道巖)이다. 본관은 여산(礪山), 법명은 월면(月面), 법호는 만공(滿空)이다. 1871년 3월 7일 전라북도 태인군 군내면 상일리[현재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에서 태어나 일제의...
-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명문가인 충무공 이순신의 후손 다섯 명을 독립운동가로 키운 여성 지사. 박안라(朴-)[1853~1922]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생원 박준호의 장녀이다. 남편은 충무공 이순신의 9세손 이도희(李道熙)이며, 자식으로는 이규풍(李奎豊)과 이규갑(李奎甲)이 있다. 박안라는 1853년 10월 16일 박준호의 장녀로 황해도 배천에서 태...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공주 지역에서 3·1운동을 불러일으킨 독립운동가. 박장래(朴璋來)[1899~1940]는 1919년 3월 10일 공주 지역으로 가서 영명학교(永明學校), 농업학교, 보통학교 학생들을 규합하여 「독립가(獨立歌)」를 가르치는 등 비밀리에 시위 계획을 추진하던 중 사전에 일경에게 발각되어 피체되었다. 박장래는 아산군 송악면 거산리 4...
-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방창근은 1885년 11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 신인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온양장에서 대한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태형을 받았으며 결의단(決意團)을 조직하고 비서장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1963년 6월 6일 사망하였다. 방창근은 1919년 3월 14일 온양장에서 벌어진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태형...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선장면 4·4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서몽조(徐夢祚)[1881~?]는 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현 아산시 선장면] 장터에서 정수길(丁壽吉)[정규희(丁奎凞)], 김천봉(金千鳳), 임천근(林千根), 오상근(吳相根)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서몽조는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둔포리 198에서 태어...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서병림(徐丙林)은 충청남도 온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고, 1907년(고종 44) 10월 운강(雲岡) 이강년(李康秊) 의진(義陣)에 합류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서병림의 본관은 이천(利川)이고, 의병 운동 당시 거주지는 온양이었다. 1907년 7월 헤이그(Hague) 밀사 사건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를...
-
충청남도 아산군 탕정면 출생의 제헌국회 국회의원. 서용길(徐容吉)[1912~1992]은 1912년 충청남도 아산군 탕정면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일창(一滄)이다. 충청남도 아산 출신 제헌국회 국회의원이다. 서용길은 1912년 8월 6일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에서 태어났다. 온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서울]에 있는 사립 배재중학교를 졸업하였다. 배...
-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제5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 성기선(成耆善)[1919~2002]은 성균관박사를 지낸 성낙현(成樂賢)의 손자이다. 성기선은 충청남도 아산군 신창면 행목리[현재 아산시 신창면 행목리]에서 태어나 신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광복 이후 여러 청년 단체가 결성되었는데 성기선은 청년 정치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대한청년단[1948년...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홍성군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성낙붕(成樂朋)[1881~1919]은 1919년 4월 4일 홍성군 내의 횃불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성낙붕은 1881년(고종 18) 11월 19일 아산군 도고면 석당리 295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석당리 295번지는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참가한 뒤 군자금 모집 활동과 도고면장 박용하(...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의병. 성재한(成載翰)[1860~1906]은 홍주의진(洪州義陣)에 참여하여 운량관(運糧官)으로 활동하였으며, 1906년(고종 43) 5월 31일 홍주성(洪州城) 전투에서 분전하였으나 전사하였다. 성재한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운거(雲擧), 일명 성재평(成載平)이다. 1860년(철종 11) 2월 17일 신창현(新昌縣) 원당(元堂...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신창면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손천일(孫千日)[1882~?]은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현재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학성산(鶴城山)에서 횃불 만세 시위를 벌였고 신창공립보통학교에 투석하는 등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손천일은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191...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송악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신치공(申致公)[1878~1932]은 1919년 3월 31일 아산군 송악면 궁평리 안산 봉우리에서 일어난 횃불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신치공은 1878년(고종 15) 아산군 송악면 동화리 44번지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1919년 3월 31일 밤 충청남도 아산군...
-
충청남도 아산시 공세리 성당 주임신부로 재직한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천주교 사제. 에밀 피에르 드비즈(Emile Pierre Devise)[1871~1933, 세례명 에밀리오, 한국명 성일론] 신부는 1871년 7월 14일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Ardèche) 투르농(Tournon)의 랑프스(Lemps)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1882년에 롱...
-
충청남도 아산 출신 독립운동가인 남편 이규풍을 헌신적으로 도운 여성 애국지사. 오세라(吳-)[1875~1939]는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남편 이규풍(李奎豊)을 도와 항일 운동을 했다. 오세라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부사 오태근의 장녀이다. 남편은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이규풍이다. 자식으로는 아들 이민호(李敏浩)가 있다....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항일운동가 이남규가 살해되자 시신을 지켜준 마을 주민. 유진원(兪鎭元)은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가 1906년(고종 43) 홍주의진(洪州義陣)과 연관되었다는 혐의로 일본군에 의해 연행되던 중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에서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시신을 잘 지켜주었다. 유진원은 충청남도 온양군 군내면 장존리[현재 아산시...
-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지식인이자 관료.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의 무신이자 일제강점기의 관료이다. 구한말 개화파의 일원으로 갑신정변과 을미사변에 참여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中樞院參議) 등 고위 관료, 대지주, 기업가로 활동하여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려져 있다. 유혁로(柳赫魯)[1852~1940]의 본관은 진주(晋州),...
-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윤보선(尹潽善)[1897~1990]의 본관은 해평(海平)이며, 호는 해위(海葦)이다. 대한제국 중추원 의관이자 1920~1930년대 민족 운동에 참여했던 윤치소(尹致昭)와 중추원 의관이었던 이재룡의 장녀 이범숙(李範淑)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안성, 남포군수, 강계부사, 대한제국 육군 참모장 등을 역임...
-
구한말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군인이자 정치인. 1878년(고종 15) 무과에 급제한 이후 대한제국 시기 육군참장(陸軍參將)과 여러 군에서 군수를 지냈다. 윤영렬(尹英烈)[1854~1939]의 본관은 해평(海平)이며, 자는 백웅(白熊), 호는 연구(蓮龜) 또는 경재(敬齎)이다. 1854년(철종 5) 음력 4월 15일에 윤취동(尹聚東)과 윤취동의 두 번째 부인 안동김씨(安東...
-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 시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무신이자 관료. 한말의 정치가 윤치호(尹致昊)의 아버지이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후 조선 합병에 공을 세운 친일 인물들을 포상할 때 남작(男爵) 작위를 받았다. 윤웅렬(尹雄烈)[1840~1911]의 본관은 해평(海平)이고, 자는 영중(英仲), 호는 반계(磻溪)이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입향조 윤득실(尹得實)의...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의병 지원 활동을 한 지방 관료. 이규남(李圭南)[1862~1907]은 아산군아(牙山郡衙) 수서기(首書記)로서 1907년(고종 44) 11월 16일 의병이 아산분파소(牙山分派所)를 습격할 때 의병과 연계하여 길 안내를 하는 등 의병 지원 활동을 하다가 일본군에 체포되어 압송되던 중 동생 이규찬(李圭瓚)과 함께 피살되었다. 공훈전자사료관 독립...
-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프로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호는 민촌(民村)이며, 충무공 이순신의 12대손이다. 집안이 이사를 하면서 충청남도 천안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소설가이다. 이기영(李箕永)[1895~1984]은 1895년 5월 29일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회룡리[현 배방읍 회룡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사립 영진학교(寧進學校)에 입...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경기도 양주군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이달용(李達鎔)[1889~1919]은 1919년 3월 18일 밤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모루[磨石隅]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달용은 1889년(고종 26) 2월 3일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현재 염치읍] 강청리 321번지에서 출생...
-
일제강점기 이후 현대 시기에 활동한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서양화가. 이마동의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청구(靑驅)이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업학교에 다니다가 1915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였으며, 고희동(高羲東)[1886~1965]과 이한복(李漢福)[1897~1940]의 지도를 받아 미술계로 들어선 서양화가이다. 이마동(李馬銅)[1906~1981]은 1...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월랑리 출신의 정치인. 이민우(李敏祐)[1905~1982]는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에서 태어나 정계에 입문해 자유당 중앙위원이 되고 1958년 제4대 민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967년에는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제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민우는 1905년 10월 2일 충청남도 아산군 대동면 월랑리[지금의 아산시...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러시아 연해주, 중국 만주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민호(李敏浩)[1895~1944]는 1919년 3·1운동 당시 황해도 일부 및 전라도, 충청도를 돌아다니며 청년들을 모아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22년 가족을 동반하고 러시아 연해주(沿海州)로 망명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다시 중국 만주(滿洲)로 들어가 신민부(新民府...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활동한 대중운동가. 1930년대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적색농민조합운동(赤色農民組合運動)에 동참하는 등 사회주의적 경향의 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이선준(李銑濬)[1911~?]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본적은 충청남도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현재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109번지이다. 1935년 당시에는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 향산리[현재...
-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현대 시기에 활동한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석공예가. 본명은 이평래(李平來)이며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하라(賀羅)이다.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나고 자랐으며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이순석(李順石)[1905~1986]은 1905년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공세리성당의 프랑스인 신부 에밀 드비즈(Emile Pierre De...
-
조선 후기 동학농민군과 홍주의병 진압에 큰 공을 세운 문신.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 당시 홍주목사(洪州牧使)로 있으면서 초토사(招討使)에 임명되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승우(李勝宇)[1841~1914]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치경(穉敬)이다. 1841년(헌종 7) 태어났으며 효령대군 15세손으로 종친부직장(宗親府直長)으로 일하였다...
-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현대 시기에 활동한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서양화가이며 당림미술관 설립자. 이종무(李種武)[1916~2003]는 1916년 9월 10일 충청남도 온양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호는 당림(棠林)이다. 1935년 서양화가 고희동(高羲東)으로부터, 1936년부터 일본 도쿄에 있는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畵學校]에서 공부하면서 후지시마 다케지[藤島...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대한제국군 해산에 맞서 싸운 군인. 이준영(李峻永)[1879~1907]은 1907년(고종 44) 4월 30일 대한제국군 시위보병(侍衛步兵) 제2연대 1대대에서 복무하던 중 군대 해산에 격분하여 일본군과 용감하게 싸우다 사망하였다. 이준영의 본관은 덕수(德水), 호는 운계(雲桂)이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형인 이요신(...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무신으로 동학농민혁명 때 토벌을 위한 관군으로 출동하여 전라도 장성 황룡촌전투에서 전사한 인물.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라도 장성 월평전역(月坪戰役)[황룡촌(黃龍村) 전투]에서 동학농민군과 싸우다 패하고 전사하였다. 이학승(李學承)[1852~1894]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습(景習)이다.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한...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형평사에서 활동하며 사회운동을 전개한 인권운동가. 1929년 4월 형평사(衡平社) 본부 중앙집행위원, 지방순회위원에 선임되면서 형평사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1932년 11월부터 조선중앙일보 아산지국장으로도 활동하였다. 이한용(李漢容)[1904~?]은 백정(白丁) 출신으로 중류 상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충청남도 온양면 읍내리[현재...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행정관료이며, 현대 시기의 교육가이자 법학자. 이항녕(李恒寧)[1915~2004]의 호는 소고(小皐)이며, 1915년 충청남도 아산 둔포면 둔포리[현 아산시 둔포면 둔포리]에서 태어났다. 한학에 조예가 깊은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다가, 둔포공립보통학교[둔포초등학교 전신] 교원으로 재직하던 부친의 뜻에 따라 같은 학교에 입학하였다. 6학년...
-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교육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문인이자 교육자. 임경재(任璟宰)[1876~1955]는 본관이 풍천(豊川)이며, 호는 원인(圓人)이다. 1876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으며, 휘문고등보통학교장을 역임하였고 조선어연구회 창립 멤버였다. 충청남도 아산의 문인이자 교육자이다. 임경재(任璟宰)[1876~1955]는 1876년 경기도 포...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으로 선장면 4·4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정규희(丁奎熙)[1895~1979]는 충청남도 아산 지역 동학 지도자로서 1919년 4월 4일 아산군 선장면 군덕리 장터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정규희의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수길(壽吉), 호는 규암(奎菴)이다.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에서 태어났으며, 1902년경...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동학 지도자.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아산 일대의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하였다. 정태영(丁泰榮)[1859~1922]의 본관은 나주(羅州), 본명은 정건섭(丁建燮)이다. 본적은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 대정리[현 아산시 선장면 대정리]이다. 1895년(고종 35) 부인 김태화와의 사이에서 장남 정규희(丁奎熙)[정수길(丁壽...
-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활동한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시인이자 대중가요 작사가.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본적은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이다. 본명은 조영출(趙靈出)로,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서 태어나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전해진다. 필명으로 김다인(金茶人), 김운탄(金雲灘), 김호(金湖), 남녀성(南麗星), 부평초(浮萍草), 산호암(珊瑚岩), 양훈(楊薰), 이가실(李嘉實), 함경진(咸璟...
-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근현대 인물 111명의 생애를 평론한 도서. 『한국 근현대 아산 사람들』은 근현대 시기에 사망한 아산 지역과 관련된 인물 111명의 생애를 정리 및 평가하여 서술한 도서이다.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에서 기획하여 편찬하였다. 『한국 근현대 아산 사람들』은 아산 지역 관련 인물들에 대해 인터넷 정보, 관련 사료 등을 엮어 보자는...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송악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한양수(韓良秀)[1876~1950]는 1919년 3월 31일 아산군 송악면 궁평리 안산 봉우리에서 일어난 횃불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한양수는 1876년(고종 13) 아산군 송악면 거산리[현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1919년 3월 31일...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으로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일어난 염치읍 백암리 횃불 만세 시위 주도자. 한연순(韓連順)[1896~?]은 1919년 3월 31일 밤 김복희(金福姬)와 함께 염치면 백암리 방화산(芳華山) 위에 횃불을 올리고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한연순은 경상북도 대구부 남산정(南山町) 54번지[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
광복 이후 시기에 주로 활동한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언론인이자 정치인. 한창우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공세리성당을 다니는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다. 부친 한규동(韓奎東)은 1923년 민립대학기성회(民立大學期成會) 아산지방부(牙山地方部)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한창우(韓昌愚)[1910~1978]는 1910년 충청남도 아산시 아산호로20번길 33[인주면...
-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연고를 두고 1930년대에 의열단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홍가륵(洪加勒)[1913~1950]은 1913년 10월 19일 출생하였다. 본적은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 온천리 97이다. 태어난 곳은 경기도 수원군 음덕면 남양리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기독교 감리교 목사였던 홍승하(洪承河)이며, 홍형준(洪亨俊)이 아버지이다. 홍가륵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