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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922
한자 朴性堯
영어공식명칭 Pak Seongyo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3년 3월 15일연표보기 - 박성요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 박성요 부여군 임천면에서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4일 - 박성요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32년 1월 30일연표보기 - 박성요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박성요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출생지 팔충리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 지도보기
활동지 임천 3·1 운동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성요(朴性堯)[1893~1932]는 1893년 3월 15일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에서 태어났다. 부여군에는 1919년 3월 2일 천도교 조직을 통하여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박성요는 김종석(金鍾錫)을 통하여 전달받은 「독립선언서」 5매를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인근의 도로에 배포하였고, 나머지는 부여군 임천면 비정리에 살고 있던 박노휘(朴魯輝)에게 전달하였다.

1919년 3월 6일 부여군 임천면에서 벌어진 3·1 운동충화면 출신 박용화(朴容和)의 집에서 천도교도인 박성요, 황우경(黃宇京)·황금채(黃金彩)·문재동(文載東)·박삼표(朴參杓) 등과 함께 계획을 세워 추진하였다. 대부분 부여군 내 전현직 천도교 간부였다. 박성요 등은 3월 6일 새벽 팔충리에서 산길을 이용하여 임천면에 도착하였다. 오전 7시경부터 임천면 내 군중과 면사무소 및 보통학교 앞으로 시위행진하면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박성요는 임천읍 내 여러 곳에 「독립선언서」를 벽에 붙이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헌병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인정할 것을 주장하다가 8명이 체포되어 부여헌병분대로 압송되었다. 박성요는 1919년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2년 1월 3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박성요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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