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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1210
한자 朴弘南
영어공식명칭 Park Hongnam
이칭/별칭 만오(晩悟)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민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0년 11월 17일연표보기 - 박홍남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7년 - 박홍남 전옥수에게 단가, 판소리, 「춘향가」와 「심청가」 등을 사사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박홍남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로 이주
활동 시기/일시 1962년 - 박홍남 부여 정착
활동 시기/일시 1966년 - 박홍남 부여국악원 원장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77년 - 박홍남 ‘태안붕기풍어놀이’ 대통령상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81년 - 박홍남 ‘저산 길쌈놀이’ 국무총리상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89년 - 박홍남 ‘청양 동화제’ 문화관광부 장관상 수상
몰년 시기/일시 2006년 2월 4일연표보기 - 박홍남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8년 11월 25일 - 박홍남 공적비 건립
출생지 부안 - 전라북도 부안군
거주|이주지 덕산리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
활동지 부여 - 충청남도 부여군
묘소 부여중앙성결교회 공원 묘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상금리 지도보기
성격 국악인|무형문화재
성별 남성
본관 밀양(密陽)
대표 경력 산유화가 전수|부여국악원장

[정의]

충청남도 부여에서 활동한 국악인.

[개설]

박홍남(朴弘南)[1920~2006]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만오(晩悟)이다. 박홍남은 충청남도 무형유산인 산유화가(山有花歌)를 발굴하여 전수한 국악인이다. 산유화가는 백제의 고도 부여를 중심으로 유포·전승되어 오는 농요(農謠)이다. 나라를 잃은 백제 유민들이 산유화가를 부르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고 전한다. 박홍남은 『증보동국문헌비고』에 기록만 전할 뿐 사라진 백제 민요로 알려져 있던 산유화가를 발굴하여 전수하였다.

[활동 사항]

박홍남은 1920년 11월 17일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국악에 재능을 보여 마을 서당 훈장에게 가야금 풍류와 시조를 배웠다. 1937년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로 이주한 뒤 고창에서 부안 사람 전옥수에게 단가, 판소리, 「춘향가」와 「심청가」 등을 사사하였다. 창극과 판소리에 심취하였던 박홍남은 이후 편재준, 신갑진 등에게 「심청가」와 「적벽가」 등을 사사하였다.

1962년 부여에 정착한 박홍남은 1963년 부여국악원 설립에 기여하였으며, 초대 강사로 초빙되어 부여 지역 국악인을 양성하였다. 부여국악원 초대 원장이었던 박중하가 세상을 떠나자 1966년 박홍남이 뒤를 이어 부여국악원 원장에 취임하여 부여 국악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박홍남백제제례악단과 부여풍물단을 창단하여 부여 국악계의 저변을 확대하였다.

또한 연출가로도 활동하며 1977년에는 ‘태안붕기풍어놀이’로 대통령상, 1981년에는 서천군 한산의 ‘저산길쌈놀이’로 국무총리상, 1989년에는 ‘청양동화제’ 로 문화관광부 장관상 등을 수상하였다. 한국국악협회 충청남도 부지회장, 한국국악협회 부여군지부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여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6년 2월 4일 사망하였다.

[묘소]

박홍남의 묘소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상금리 부여중앙성결교회 공원 묘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2008년 11월 25일 박홍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박홍남의 제자들이 부여국악원 내에 공적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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