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397
한자 加林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지도보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김기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가림군(加林郡)에서 가림군(嘉林郡)으로 개칭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일대에 있었던 백제 시대 행정 구역.

[개설]

가림군(加林郡)은 백제가 6~7세기에 설치·운영한 37군(郡)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가림성(加林城)[옛 이름 성흥산성(聖興山城)]이 가림군 중심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 757년(경덕왕 16) 통일 신라의 경덕왕(景德王)이 ‘가림군(嘉林郡)’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紀異) ‘남부여(南扶餘) 전백제(前百濟) 북부여(北扶餘)' 조에는 ‘가림군(佳林郡)’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지리지3에 “가림군(嘉林郡)은 본래 백제의 가림군(加林郡)인데 경덕왕이 가(加)를 가(嘉)로 바꾸어 지금[고려 시대]의 이름이 되었으며, 2개의 현(縣)을 거느린다”라는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 지리지4에 웅천주(熊川州) 소속으로서 ‘가림군(加林郡)’ 이름이 적혀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 권5 임천(林川) 성지(城池) 조에는 “성흥산고성(聖興山古城)은 옛날 가림성(加林城)으로 주위가 2,705척이고, 우물이 셋이며, 오래된 창고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삼국사기』 권28 백제본기에는 660년(의자왕 20)에 백제가 멸망한 뒤 가림성이 부흥군의 요충지가 되었다는 내용과 『삼국사기』 권6 신라본기에는 671년(문무왕 11)과 672년(문무왕 12)에 가림성 일대에서 신라군과 당나라군이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권26 백제본기 동성왕 23년(501) 조에는 “8월에 가림성을 쌓고 위사좌평(衛士佐平) 백가에게 지키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내용]

백제 때 가림군의 규모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으나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 37군(郡) 200성(城)이었다고 하므로 가림군에 약 5~6개의 성이 속하였을 것이고 지금의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가림성이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가림성은 조선 시대부터 성흥산고성 또는 성흥산성으로 불리었으나 2011년 7월 28일 문화재청에서 부여 가림성으로 사적의 명칭을 바꾸어 지정하였다.

[변천]

가림군(加林郡)은 백제 시대인 6~7세기에 설치되어 백제가 멸망한 이후 757년 가림군(嘉林郡)으로 개정되었다. 통일 신라 및 고려 시대에 가림군이 거느린 현은 마산현(馬山縣)과 한산현(翰山縣)이었는데, 마산현은 지금의 서천군 한산면, 한산현은 지금의 부여군 홍산면에 해당한다. 가림군은 1018년에 가림현(嘉林縣)으로 행정 지위가 낮아졌다가 고려 말~조선 초에 잠시 부(府)로 격상되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대개 임천군(林川郡)으로 불리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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