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423
한자 尼城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엄기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414년연표보기 - 이성현 개설
폐지 시기/일시 1416년연표보기 - 이성현 폐지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 전기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석성현은 현재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일대에 위치한 행정 구역이었고, 이산현은 현재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위치한 군현이었다. 두 군현은 백제 때부터 다른 영역으로 설정되어 각기 다른 행정 영역을 이루고 있었는데, 1414년(태종 14) 전국 지방 군현의 통폐합 과정에서 통합 대상이 되어 이산현의 이(尼) 자와 석성현의 성(城) 자가 합쳐져서 이성현(尼城縣)이 되었다.

석성현은 본래 백제 때 진악산현(珍惡山縣)으로, 통일 신라 이후에는 석산(石山)이라고 불렸다. 고려 때에는 석성(石城)이라는 지명이었다. 인접한 이산현(尼山縣)은 백제의 열야산현으로 신라 경덕왕 때 이산현이 되었다. 두 군현은 1414년 조선의 지방제도 개편 당시 통합되어 ‘이성(尼城)’으로 불렸는데, 2년 후인 1416년 다시 석성현과 이산현으로 각기 분리되었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世宗實錄)』 149권, 지리지 충청도 공주목 이산현에는 “본조 태종 14년(1414) 갑오에 석성(石城)에 합쳐 이성현(尼城縣)이라 하였다가, 병신년에 다시 갈라서 이산현감(尼山縣監)을 두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8권 충청도에는 “본래 백제의 열야산현(熱也山縣)이었는데, 신라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웅주(熊州)의 속현으로 삼았고, 고려 현종 9년(1018)에 공주(公州)에 예속시켰으며,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본조 태종 14년에 석성과 합쳐서 이성현이라 일컬었다가, 태종 16년에 다시 쪼개어 현감을 두었다”라고 전한다.

[변천]

이성현 설치 이듬해인 1415년 석성현금강에 위치한 임천군(林川郡)고다진(古多津)으로 통하는 요충지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복설이 제기되었고, 결국 1416년(태종 16)에 석성현과 이산현은 다시 분리되었다.

이후 ‘이성’이라는 명칭은 열야산(熱也山)·노산(魯山)과 함께 이산현을 부르는 다른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실제 조선 후기 실록 기사에서 해당 지역을 ‘이성’으로 부르는 사례가 확인된다. 1776년(정조 즉위년)에는 ‘이산’이 어명(御名)과 같다고 하여 공식적인 군현의 명칭이 ‘이성현’으로 바뀌었다. 이성현은 1800년(순조 즉위)에 다시 ‘이성’이 정조의 어휘(御諱)와 비슷하다고 하여 ‘노성(魯城)’으로 바뀌었고 이후 지역명으로 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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