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689
한자 扶餘 窺岩里 金銅觀音菩薩立像
영어공식명칭 Gilt-bronze Standing Avalokitesvara Bodhisattva from Gyuam-ri, Buye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불상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동남리 산16-1]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소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7세기 -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제작
출토|발굴 시기/일시 1907년 -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절터에서 발견
문화재 지정 일시 1997년 1월 1일연표보기 -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국보 제293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국보로 변경 지정
현 소장처 국립부여박물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동남리 산16-1]지도보기
성격 불상
재질 금속
크기(높이) 21.1㎝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국립부여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국보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에서 발견된 백제 시대 금동 관음보살 입상.

[개설]

1907년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의 절터에 묻혀 있던 무쇠솥에서 다른 한 구의 금동 보살 입상[현재 일본 개인 소장]과 함께 발견되었다. 오른손으로 쥔 보주(寶珠), 머리에 쓴 관(冠)의 정면에 묘사된 작은 불상인 화불(化佛) 등을 근거로 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97년 1월 1일 국보 제29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국보로 변경되었다.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높이는 21.1㎝이며, 신체는 가늘고 유려하나, 얼굴은 통통하다. 머리에는 상투를 높이 틀고 나머지는 두 갈래로 내려뜨렸다. 일부 파손되었지만, 삼면(三面)에 장식이 있는 화려한 관을 썼다. 관의 정면에는 화불이 묘사되어 있다. 머리 뒤 중앙에는 원형 혹은 보주 형태의 두광(頭光)을 꽂았었을 촉이 돌출되어 있다. 배는 살짝 내밀었으며, 왼발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약간 들어 올려 부드러운 움직임을 주었다.

오른손은 들어 올려 구슬을 잡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옷자락을 살짝 잡았다. 어깨 위 원형 장식 위에서 앞뒤로 내려온 구슬인 영락(瓔珞)은 배와 허리 부분의 연꽃 장식에서 X자형으로 교차한 후, 다시 무릎 아래로 늘어지고 있다. 목과 팔뚝, 팔목에 찬 장신구는 간단하게 두 줄로만 표현하였다. 치마는 허리 밖으로 내어 접어 입었으며, 가슴에 새긴 두 줄의 사선으로 미루어 상의는 대각선으로 걸쳤다. 양 어깨 위에 걸린 옷자락은 신체 윤곽선을 따라 연화 대좌까지 유려하게 내려온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움과 유려함이 두드러진, 백제 조각의 원숙미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특징]

고대 중소형 금동불 제작에 많이 사용하는 밀납법을 채택하여 상과 대좌를 한 번에 주조하는 일주식으로 제작하였다. 6세기 보살상과 달리 부드러운 신체 윤곽선을 드러내고 팔을 몸통과 분리시켜 입체감을 주는 등, 백제 조각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였음을 알려 준다. 이런 특징과 함께 양감(量感)이 표현된 얼굴, 앞으로 내민 배 등은 7세기 전반 조각의 특징이다. 뒤까지 조각이 잘 되어 있고, 대좌도 완전한 원형이어서 삼존상의 협시상이 아니라 단독상일 가능성이 크다.

[의의와 평가]

중국 수나라 보살상의 영향을 받았지만, 장신구가 번잡하지 않고 간략해진 점, 부드럽고 통통한 얼굴과 미소는 백제적인 특징이다. 함께 출토되어 일본으로 반출되었던 금동 관음보살 입상 역시 관에 화불이 있다. 5세기에 번역된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관음보살의 관에 화불이 있다고 기록하여, 당시 경전의 전래와 함께 관음 신앙이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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