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810
한자 鄭得說
영어공식명칭 Jeong Deukyeol
이칭/별칭 군석(君錫),충장(忠壯)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5년연표보기 - 정득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88년 - 정득열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정득열 사천현감 역임
몰년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정득열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07년 - 정득열 병조판서 추증
추모 시기/일시 1812년 - 정득열 충장(忠壯) 시호를 받음
출생지 부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임|활동지 사천 - 경상남도 사천시
부임|활동지 진주 - 경상남도 진주시
묘소|단소 부여 정득열 묘 및 비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안로7번길 20[능산리 산30-1]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남성
본관 하동(河東)
대표 관직 사천현감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무신.

[가계]

정득열(鄭得說)[1565~1592]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자는 군석(君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승염(鄭承廉)이고, 할아버지는 정인국(鄭仁國)이다. 아버지는 정희영(鄭希永)이고, 어머니는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부인은 강종경(姜宗慶)의 딸 진주 강씨(晉州 姜氏)이고, 아들은 정택뢰(鄭澤雷)이다.

[활동 사항]

정득열은 1565년(명종 20) 부여에서 태어났다.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였고, 1589년 비변사에서 무신(武臣)을 불차탁용(不次擢用)[계급의 차례를 밟지 않고 특별히 벼슬에 등용함]할 때 판서 강섬(姜暹)의 추천을 받았다. 1592년 용맹한 재주가 있다고 하여 사천현감에 제수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일본군이 동래를 유린하고 진주로 향하자,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유숭인(柳崇仁)의 선봉장이 되어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진주성 밖에서 전투를 하던 유숭인을 지원하기 위하여 출정하였다가 교전 중 전사하였다.

[묘소]

정득열의 묘소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안로7번길 20[능산리 산30-1]에 있다. 2001년 1월 3일 부여 정득열 묘 및 비라는 명칭으로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48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정득열은 1807년(순조 7)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1812년에는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 현 부여읍 관북리정득열을 비롯하여 아들 정택뢰, 며느리 동래 정씨, 손자 정천세 등 네 명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한 정려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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