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에 무신란이 일어나자 이인좌(李麟佐)를 중심으로 한 반란군은 3월 15일 청주성을 점령한다. 청주성 점령 후 이인좌는 자신을 대원수(大元帥)라고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주어 반군을 편성했는데, 이때 곽장을 목천현감으로 삼았다. 곽장은 이인좌 군과 함께 천안 목천, 증평 청안, 진천을 함락하고, 안성과 죽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반란진압을...
-
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의 가담인물로 양성 출신이다. 양성에서 300여 명의 군사를 모은 뒤, 청주의 이인좌(李麟佐) 군과 합치기로 하고 청주 경내로 들어와 거짓으로 장례를 지낸다고 하면서 상여에다 병기(兵器)를 실어 청주성 앞 숲속에다 숨겨 놓았다. 그리고 1728년 3월 15일에 이인좌 군과 더불어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 영장 남연년...
-
조선시대 청주의 열녀. 열녀 전씨(全氏)는 선비 김당(金唐)의 부인이다. 열행이 뚜렷하였기에 장계를 올려 정려 되었다....
-
조선시대 청주목사. 김의순은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가 청주목사를 지냈다. 읍인(邑人)이 사우를 세우고 초상을 봉안했다고 『청주읍지(淸州邑誌)』(헌종대 편찬)에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사우는 남아있지 않다....
-
조선시대의 문신.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가 청주목사에 이르렀다. 적가청(籍賈廳)을 신설하여 민폐를 덜어주었다. 이러한 선정으로 인하여 비를 세웠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
고려시대의 문신, 청주목의 부사(副使).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강원도 명주(溟州) 출신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영광군수(靈光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우보궐(右補闕)을 거쳐 청주목의 부사(副使)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 비서소감(祕書少監)이 되었다가 1111년(예종 6)에 전중감(殿中監)으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이듬해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다시 요나라에...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이다. 음서(蔭敍)로 부성위(富城尉)가 되었다. 1264년(원종 5)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그 뒤 해양부녹사(海陽府錄事)에 임명되고, 1275년(충렬왕 1) 대부경 좌사의대부(大府卿左司議大夫)에 임명되었다. 1278년 충렬왕(忠烈王)이 원나라에 갈 때 우부승지로서 수행하여 다루가치(達魯花赤)와 둔전군의 뒷받침이 번거로워 백성들의 고통이 심한 것과, 또...
-
고려 전기의 문신, 청주목의 부사(副使).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명주(溟州) 출신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영광군수(靈光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우보궐(右補闕)을 거쳐 청주목의 부사(副使)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 비서소감(祕書少監)이 되었다가 1111년(예종 6)에 전중감(殿中監)으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이듬해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다시 요나라에 가서...
-
조선시대의 청주 목사. 남행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청주목사 재임시에 보역청(補役廳)과 해원청(解寃廳)을 신설하여 군민(軍民)·승도(僧徒)의 폐를 제거하였다. 현재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구암리 가대울에 영세불망비가 있다....
-
조선 후기 청주 출신의 무관. 1725년(영조 1)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728년 무신란에 역적을 토벌하여, 그 공으로 분무원종공신(奮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벼슬이 병사(兵使)에 이르렀다....
-
조선 후기의 무관. 본관은 사천(泗川)으로 경기도 양성 출신이다. 무신란에 이인좌(李麟佐) 군의 진용도위(進勇都尉)로 3월 15일에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 영장 남연년(南延年), 군관 홍림(洪霖)[1685~1728]을 살해하고 청주성을 장악하는데 가담하였다. 청주성 장악 후 이인좌는 대원수를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주고 반군을 편성한다. 이때 목함경...
-
1728년(영조 4)에 소론(少論) 과격파들과 남인(南人)이 영조(英祖)와 노론을 제거하고 밀풍군(密豊君)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은 노론(老論)이 지지하는 영조의 즉위로 위협을 느낀 소론의 과격파들과 남인이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고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증손(曾孫)인 밀풍군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이다. 충...
-
조선 후기의 무관. 청주 우후(虞侯)로 있던 박종원(朴宗元)은 무신란으로 청주성이 함락되자 적에게 투항하여 반란군의 영장(營將)이 되었다. 박종원은 이인좌(李麟佐) 군과 함께 천안 목천, 증평 청안, 진천으로 진격하여 함락하고, 4, 5초(哨)의 병력을 거느리고 안성 청룡산 가지곡(加之谷) 대촌(大村)에서 죽산의 반란군이 오기를 기다리다 관군에게 발각되어 전투 끝에 현지에서 목이...
-
조선 후기의 무과 합격자,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백희(伯喜)이다. 대사헌 와촌(瓦村) 박문고(朴文古)의 5대손이며, 교관(敎官)에 증직된 박재근(朴在謹)의 아들로 청주 출신이다. 1816년(순조 16)에 무과에 등과하여 여러 번 선전관의 명망에 들어갔다. 어머니의 병으로 손가락을 잘라 효를 행했고 이러한 사실이 알려졌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행정(杏亭...
-
조선 전기의 청주 출신의 선비.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서백(恕伯)이며, 호는 선재(扇齋)이다. 아버지는 박몽신(朴夢信)이고, 동생 박효열(朴孝悅), 박신열(朴信悅)이 있다. 청주에서 거주했는데, 1568년(선조 1)에 증광 진사에 합격하였다. 학행(學行)이 널리 드러났고, 신항서원(莘巷書院)의 원장을 지냈다. 흥덕구 강서동의 송곡평(松谷坪) 선영 아래...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자는 중관(仲觀)이며, 휘숙(輝叔)이다. 아버지는 박천구(朴天龜)로 제릉(齊陵) 참봉(參奉)을 지냈으며, 형 박태헌(朴泰獻)과 동생은 박태영(朴泰榮), 박태업(朴泰業)이 있다. 1666년(현종 7) 식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청주읍지(淸州邑誌)』에 의하면 박태장(朴泰章)의 묘는 서강외이면 신원(薪院)에 있다고 한다. 현재 충...
-
조선시대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청주 출신으로 충렬공(忠烈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손자(孫子)이며, 청주지역 여산송씨(礪山宋氏) 입향조인 송인급(宋仁及)의 아들이다. 문음(門蔭)으로 벼슬에 나아가 찰방(察訪)에 이르렀다....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본명은 신복영(申復永)으로 청주 출신이다. 청주지역 고령신씨(高靈申氏) 입향조인 신식(申湜)의 5대손이자, 경종대에 남인으로 활약하던 신경제(申慶濟)의 손자이다. 청주지역 고령신씨는 연산군 대에 낭성과 가덕에 낙향하여 상당산(上黨山)[419m] 동쪽에 살았으므로 산동신씨라고 지칭되어 왔으며, 낭성에서 대과급제 24명, 진사 8...
-
조선 후기의 무관. 조선 철종 대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의 병마우후를 지낸 무관이다. 신태희(申泰羲)의 선정을 기려 1859년(철종 10)에 세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현재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9번지에 있다....
-
조선 후기의 무관. 1728년 무신란(戊申亂) 당시 청주읍성의 비장(裨將)이었는데, 3월 15일 반군이 청주성에 침입하자 문을 열어 준 인물이다. 양덕부(梁德傅)는 이보다 앞선 1720년에 상당산성 앞문 축조 책임자로 있었다....
-
조선시대의 열녀. 열녀 김씨(金氏)는 여이현의 부인으로 열행이 있어, 조정에 알려져 정려되었다. 현재 정려는 남아있지 않다....
-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에 청주 상당산성에서 반란군을 토벌한 의병장. 본관은 곡산(谷山)이며, 자는 문거(文擧)이다. 아버지는 1693년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을 상소하여, 심한 국문을 받아 옥사한 감찰 연최적(延最績)이다. 1728년(영조 4)에 영조(英祖) 무신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하여 조지성(趙持誠), 조완담(趙完澹)의 부자를 시켜 의병 40여 인을 모아 청주...
-
조선 세조 때 청주의 선비. 본관은 서산(瑞山)으로 대제학 저정(樗亭) 유백유(柳伯濡)의 아들이다. 부인은 보령현감의 딸 현풍곽씨(玄風郭氏)이다. 생원시에 합격한 뒤 단종이 폐위되자 세상일을 버리고 청주 무동에 은거하여 도학연마에 진력하였다. 세조(世祖)가 여러 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광해군(光海君) 때에 관원을 보내어 그가 살던 청주의 무동에 찾았다. 그곳에 무과나무가 매...
-
조선 후기의 무관.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무신란을 주도하여 청주성을 장악한 이인좌(李麟佐)의 동생이다. 무신란이 일어나 반군이 청주를 장악 할 때 가담한 인물이다. 반군은 청주성 장악 이후 신천영(申天永)과 이기좌(李麒佐)에게 청주를 지키게 하고 증평 청안, 천안 목천, 진천을 지나 안성과 죽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반군은 안성, 죽산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궤멸되었고, 이 소식을...
-
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경기도 양성 출신이며, 본명은 이호이다. 무신란이 일어나자 양성에서 군사 2초(哨)를 모아 3월 15일 청주성 점령에 가담했다. 반군은 안성과 죽산 전투에서 관군에게 패하고 관련인물은 모두 처형되었는데, 이만은 경상북도 칠곡의 처가에서 체포되었다....
-
조선 후기의 무관.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양성에서 모집된 인물로 무신란이 일어나 청주성을 점령할 때 이인좌(李麟佐) 군의 중군(中軍)으로 선봉(先鋒)이 되어 병영에 들어갔다. 병영에 들어간 후 이인좌의 명으로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을 죽였다. 반군이 서울을 향하여 증평 청안, 천안 목천, 진천을 거쳐 북상하던 중...
-
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무신란 때 청주 점령의 가담인물로, 양성에서 모여 청주로 와 이인좌(李麟佐) 군의 분용도위(奮勇都尉)를 맡았다....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본명은 이현좌(李玄佐)이다. 청주 송면 출신으로 전라감사 이운징(李雲徵)의 손자이며, 윤휴(尹鑴)의 손서(孫壻)이다. 동생은 이기좌(李麒佐)이다. 당색이 과격한 소론이었던 그는 영조(英祖)의 즉위로 소론이 정계에서 배제되자 정희량(鄭希亮), 이유익(李有翼), 심유현(沈維賢), 박필현(朴弼顯), 한세홍(韓世弘) 등 소론 과격파와 갑술환국...
-
조선 후기의 무신. 청주에서 거주하던 인물로 무신란이 일어나 이인좌(李麟佐)를 중심으로 한 반군이 3월 15일 청주성을 점령할 때 가담하였다. 점령 이후 이인좌는 자신을 대원수(大元帥)라고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주어 반군을 편성했는데, 이때 이지경(李之璟)은 진천수령이 되었다. 이지경은 청주성 점령 이후 이인좌 등과 함께 반군을 이끌고 안성·죽산으로...
-
조선시대의 효부.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선비 이지동(李之董)의 부인이자, 효행으로 복호된 김정삼(金鼎三)의 손녀이다. 효부 안동김씨는 남편이 일찍 죽자 함께 죽을 것을 맹세하였다. 그러나 두 눈이 먼 시어머니가 병으로 누워 있어 차마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하고 6년동안 간호하였다. 안동김씨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시어머니와 나란히 누워 머리의 이가 자기 머리로 옮겨오게 하고, 약...
-
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효행으로 정려를 받은 나운걸(羅云傑)의 딸이자, 진사(進士)를 지낸 경주이씨(慶州李氏) 이혼(李渾)의 부인이다. 나씨는 어렸을때부터 성품이 정숙하였는데, 나이 22세가 되자 경주이씨 문중의 이혼과 혼인하였다. 효성으로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을 따랐는데, 남편의 등에 등창이 나서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 이에 나씨가 칼로 그 왼...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세조(世祖)대 영의정까지 오른 명신 정인지(鄭麟趾)의 후손이다. 정행민(鄭行旼)이라고도 한다. 동생 정계윤(鄭季胤) 또한 무신란에 가담하여 참형되었다. 양성현에 거주하던 양반으로 무신란의 청주성 장악에 가담한 인물이다. 정세윤은 청주성 장악을 위하여 박필현(朴弼顯), 안엽(安燁)과 함께 사람을 모았으며, 3월 15일 청주성 장...
-
조선 전기 선조대의 열녀. 열녀 이씨는 정지신(鄭之信)의 부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을 만나자 자결하여 정려가 내려졌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호서읍지(湖西邑誌)』,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이씨의 열행이 기록되어 있다. 남편 정지신도 이름난 효자로 청주목 남이면 노천동리에 효자 정려를 건립했다. 현재 정려는 모두 남아있지 않다....
-
조선 후기의 무신. 양성현의 가천(加川)에 거주하던 양반으로 무신란의 청주성 장악에 가담한 인물이다. 최경우는 청주성 장악을 위하여 양성에서 반군과 말을 모집하였으며, 3월 15일 청주성을 장악에도 적극 가담하였다. 청주성 장악 후 이인좌(李麟佐)는 자신을 대원수(大元帥)라고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주어 반군을 편성했는데, 이때 최경우는 좌장군이 되었다...
-
조선 전기의 열녀. 본관은 함흥(咸興)이며, 임진왜란 때 순절한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첩으로, 함흥한씨(咸興韓氏) 통천군수 한언성(韓彦聖)의 서녀(庶女)이다. 한금섬(韓金蟾)은 송상현의 첩으로 재주와 미모가 뛰어났는데, 13세가 되던 1591년(선조 24)에 송상현이 동래부사(東萊府使)로 부임되자 그를 따라 동래에 갔다. 1592년에 임진왜란...
-
조선 후기의 문신. 조선 영조(英祖)~정조대의 문신으로 청주목사를 지냈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예지(禮之), 호는 광암(廣庵)이다. 아버지는 영의정으로 증직된 한후유(韓後裕)이고,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익수(閔翼洙)의 딸이다. 부인은 김치만(金致萬)의 딸인 정부인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한상이(韓象履)이고, 2남은 한경이(...
-
조선시대 청주목사.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가 청주목사를 역임했다. 재임당시 청주목의 산동 세 개의 면을 사재(私財)로 진휼하였다. 그 행적을 기려 비를 세웠으나 조정의 명령으로 묻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