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8년에 청송도호부사가 경상감사에게 올린 서목. 1838년(헌종 4) 10월 20일 청송도호부사 김진화(金鎭華)는 당시 경상감사인 권돈인(權敦仁)에게 2건의 서목(書目)을 올렸다. 이 서목은 「1838년 청송도호부사 첩정」에서 보고한 내용을 간략하게 적은 것으로서, 당시 청송도호부에서 만연한 향리들의 군정과 조세 문란에 대한 처벌과 조치 사항에 대한 보고이다. 1838년 10월...
-
1838년 8월 청송도호부사 김진화가 이방과 서원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과 조사 과정을 경상도관찰사 권돈인에게 보고한 서목. 1838년(헌종 4) 8월 1일 청송도호부사 김진화(金鎭華)는 당시 경상도관찰사 겸 순찰사인 권돈인(權敦仁)에게 1건의 서목(書目)과 점련(粘連)된 1건의 첩보(牒報)를 올렸다. 그것은 당시 청송부에서 만연한 조세 문란과 관련하여 당사자들에 대한 1차례 형...
-
1838년에 청송도호부사가 경상도관찰사 겸 도순찰사에게 올린 첩정. 1838년(헌종 4) 10월 20일 청송도호부사 김진화(金鎭華)가 경상감사인 권돈인(權敦仁)에게 올린 2건의 첩정(牒呈)이다. 두 첩정은 군정의 문란과 향리들의 세금을 빼내어 누락한 것에 대한 보고 및 그들에 대한 처벌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19세기 초반 청송도호부에서 있었던 삼정(三政) 문란의 구체적 실상과 이를...
-
1841년 5월 20일에 교체된 전임 청송도호부사 김진화의 해유문서. 1841년(헌종 7) 8월부터 1842년 4월까지 전임 청송도호부사 김진화에 대한 해유(解由) 과정을 알려주는 문서이다. 이를 보면 신임 청송도호부사 이병두는 부임 후 전임 청송도호부사의 치적과 근무 일수, 부내 각처의 물건 수량 등을 조사하였다. 그것을 1841년 8월 경상도관찰사 겸 순찰사인 홍재철(洪在喆)에...
-
1843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에 거주하던 조낙섭 등이 발급한 통문. 1843년(헌종 9) 1월에 함안조씨(咸安趙氏) 가문에서 송학서원(松鶴書院)의 기강을 어지럽히고, 돈을 마음대로 거둔 재임 신홍벽(申弘璧)과 남의 이름을 도용하여 송학서원을 무고한 김대진(金岱鎭)을 논죄하기 위하여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 도회소(道會所)에 보낸 통문이다. 비리를 저지른 송학서원 재임 신홍벽과...
-
1838년 10월 20일 청송도호부사가 장차에게 군납전을 훔친 안동의 배씨를 잡아오라고 내린 차사첩. 1838년(헌종 4) 10월 청송도호부사 김진화(金鎭華)는 금위영과 어영청에 상납하는 일을 마치지 못한 것이 배가(裵哥)가 그것을 훔쳤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에 장차(將差)를 급히 보내어 잡아오도록 명령하였는데 이 차사첩이 그것이다. 청송도호부에서 금위영과 어영청으로...
-
1872년에 편찬된 『1872년 지방지도』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지도. 『1872년 지방지도』는 흥선대원군이 개혁을 추진함과 동시에 외세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여 1872년(고종 9) 3월부터 6월까지 전국 각지의 지도를 제작해 올리게 하여 제작한 것이다. 이 지도는 관찬 사업으로 진행된 전국 차원의 군현지도로서 총 459장의 방대한 분량이다...
-
18세기 중엽 청송도호부에서 편찬한 읍지. 효자를 소개해 놓은 항목에 영조 연간의 인물인 권택만(權澤萬)이 수록되어 있고, 그 아래 ‘금상(今上)’이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에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것으로 보여진다. 필사본으로 불분권 1책[7장]으로 엮어져 있다. 장정은 오침선장, 사주단변의 판식과 계선이 있으며, 어미와 판심제는 없다. 크기는 세로 42.5cm, 가로 29.3cm,...
-
18세기 후반에 제작된『광여도』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지도. 『광여도(廣與圖)』는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지도이다. 충청도 도지도인『호서지(湖西圖)』에는 노성(魯城)이라는 군현명이 보이는데 원래는 니산(尼山)으로 불렸었다. 그러다가 1776년(정조 즉위)에 니성(尼城)으로 이름이 개칭되었다가 1800년(순조 즉위)에 노성으로 다시 한번 바뀌었다. 따라서 이 지명...
-
19세기 철종 연간에 제작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이 수록된 전국지도. 『동여도(東輿圖)』는 총 23첩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국지도이다. 지도에는 설명과 함께 약 18,000여 개에 달하는 지명이 실려 있는데, 이 숫자는 현존하고 있는 전도(全圖)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다. 또 지도에는 조선 후기의 상황을 보여 주는 기본적인 인문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은...
-
1850년경에 간행된 청송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서활의 시문집과 책판. 청송 출신의 학자 서활(徐活)[1761~1838]의 시문집으로 1850년경에 간행되었다. 목판본으로 제작되었으며, 책판은 달성서씨(達城徐氏) 석간정 종택에 소장되어 있다. 서활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청여(淸如), 호는 매야(邁埜)이다. 권렴(權濂)을 따라 배웠고, 권렴이 죽자 그...
-
1813년에 간행된 청송 출신 권렴의 저서와 책판. 『명성집람(明誠集覽)』은 조선 후기의 학자 권렴(權濂)[1701~1781]이 지은 심성 수양에 관한 이론서이다. 경상도 청송의 마평서당에서 1813년에 간행하였다. 권렴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희원(希元), 호는 후암(厚庵)이다. 권후준(權后準)의 아들이며 청송 사람이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김성탁(...
-
1845년 간행된 조선 중기 청송 출신의 학자 조준도의 시문집과 책판. 조선 후기 학자 조준도(趙遵道)[1576~1665]의 문집으로 1845년 간행되었다. 목판으로 제작되었으며, 책판은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의 방호정(方壺亭)에 소장되어 있다. 조준도의 본관은 함안, 자 경행(景行), 호 방호(方壺)로 청송 출신이다. 김언기(金彦璣)의 문인이다. 임진왜란 때 중형, 종형...
-
18세기에 제작된 『비변사인방안지도』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지도. 비변사에서 제작한 『비변사인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는 정확한 제작 연대를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지도에 표시된 내용을 통해 그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지도에 표시된 내용의 연도 중 중요한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5책의 하동 지도에 표시된 읍치가 1745년(영조 21)에 옮겨진 곳...
-
1678년에 간행된 조선시대 청송 출신 윤충우의 행적을 기록한 저서와 책판. 『쌍령순절록』은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적을 무찌르다 순절한 윤충우 장군의 행적과 윤충우를 추모하는 제반 저술들을 모은 책이다. 윤충우(尹忠祐)[1587~1637]의 본관은 파평, 호는 쌍령(雙嶺)으로 청송 금연리 국계마을 출신이다. 1621년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에 올랐으...
-
18세기 후반에 제작된『안동도회 좌통지도』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지도. 『안동도회 좌통지도(安東都會左通地圖)』는 정확한 작성 시기를 알 수 없다. 다만 안동은 1785년(정조 9)에 대도호부로 복구되었고, 순흥이 있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말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경주도회(慶州都會)』와 『상주도회(尙州都會)』, 『진주도회(晉州都會)』의 지도와 같은...
-
18세기에 제작된『영남지도』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지도. 『영남지도(嶺南地圖)』는 경상도의 71개 고을의 지도가 모두 수록되어 있는 채색 필사본 군현 지도집으로 총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대와 작자는 알 수 없다. 1리[약 0.4㎞] 방안 위에 그려진 방안지도로써 가장 축척이 큰 도별 군현 지도집이다. 『영남지도』는 현재 실존하는 다른 도의 군현 지도집과...
-
1855년에 간행된 평산신씨(平山申氏) 가문의 계보와 사적을 편찬한 문집과 책판. 『예주세록(禮州世錄)』은 1855년 평산신씨 가문의 계보와 사적을 엮어서 만든 문집이다. 목판본으로 제작하였으며, 책판은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다. 원 소장처는 청송군 파천면에 세거하는 평산신씨 판사공파이다. 『예주세록』의 저자는 신현(申賢), 신용희(申用羲) 등이다. 이들...
-
1843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청송 출신 서활의 저서와 책판. 청송 출신의 학자 서활(徐活)[1761~1838]이 경전에 격훈을 붙인 저서와 책판으로, 1843년에 아들 서원모가 간행하였다. 서활의 본관은 달성, 자는 청여(淸如), 호는 매야(邁埜)이다. 권렴(權濂)의 문인으로 성장하여 김종덕(金宗德)에게 수학하였다. 관직에는 뜻이 없어 오로지 위기지학의 학문...
-
1767년에서 1768년 사이에 제작된 『조선지도』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지도. 『조선지도(朝鮮地圖)』는 1767년(영조 43)에서1768년(영조 44) 사이에 만들어진 지도로 추정된다. 전라도를 제외한 7개도의 군현을 그린 것으로 모두 7책으로 되어 있다. 다른 군현지도와는 다르게 주기는 기재되어 있지 않으며, 위치·거리·방향 등의 정보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
-
조선 후기 서원모가 주왕산에 관련된 문헌 기록을 수집하여 편찬한 도서. 『주왕산지(周王山志)』는 청송 출신의 학자인 서원모(徐元模)[1787~1858]가 주왕산의 기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책의 항목은 주왕 설화와 기행문, 시, 읍지로 편성되어 있는데, 설화는 서원모의 아버지인 서활(徐活)이 기록하였다. 기행문은 신집(申楫) 등 청송 출신 인사와 김성일(金誠一) 등 안...
-
조선 후기 전국의 군현을 그린 『지승』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지도. 『지승(地乘)』은 군사적인 요충지인 관방처와 전국의 군현을 그린 지도로 총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지도는『경주도회 좌통지도(慶州都會左通地圖)』, 『안동도회 좌통지도(安東都會左通地圖)』, 『호서지도(湖西地圖)』의 일부로 되어 있고,『해동지도(海東地圖)』, 『광여도(廣輿圖)』, 『여지도(與地圖...
-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경상도 진보현의 읍지. 『진보현읍지(眞寶縣邑誌)』의 간행 경위는 알 수 없으나, 편찬 시기는 다음과 같이 두 시기로 추정하고 있다. 첫 번째로 환적조(宦蹟條)에 보이는 이수(李琇)의 체직 연도이다. 이수는 1783년(정조 7) 영남어사의 서계(書啓)로 인해 진보현감으로 임명되는 기록이 『정조실록(正祖實錄)』에 나온다. 그러므로 1783년 이후 읍지...
-
19세기 김정호가 제작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이 실려 있는 조선 전도. 『청구도(靑邱圖)』는 김정호(金正浩)[?~1866]가 만든 대지도로 채색 필사본과 흑색 필사본으로 제작되었으며, 건(乾)과 곤(坤) 두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구도』는 『해동여지도(海東輿地圖)』를 저본으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최초 제작 연대는 최한기(崔漢綺)의 「청구도제(靑邱圖題)」를 볼 때...
-
19세기에 김정호가 제작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이 실려 있는 조선 전도.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청구도』의 이본은 현재 9개가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며, 내용적으로는 3개의 유형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중에 『청구요람(靑邱要覽)』은 건(乾)·곤(坤) 2권으로 되어 있고, 남북으로 총 29층, 동서로는 22판으로 구분되어 있다. 『청구요람』에는 김정...
-
18세기 후반 청송도호부에서 편찬한 청송부 읍지. 『청송부읍지(靑松府邑誌)』의 간행 경위는 명확하지 않다. 영조 연간 『여지도서(輿地圖書)』가 편찬된 후,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청송도호부가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편찬 시기는 1787~1790년 사이로 추정된다. 환적조(宦蹟條) 마지막에 기재된 청송도호부사 정계순(鄭啓淳)의 재임 기간이 1787년(정조 11) 12월까지...
-
조선 후기에 제작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이 그려진 조선 팔도 지도. 『팔도지도(八道地圖)』는 1778년(정조 2) 또는 1838년(헌종 4)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채색 필사본으로 제작된 지도이다. 지도 안에는 조선전도와 각 도별로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리척(里尺)을 사용한 점과 1776년(정조 즉위년)에 개명된 평안도 초산(楚山)과 충청도...
-
18세기에 제작된 『해동지도』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군현지도. 『해동지도(海東地圖)』는 18세기 영조 연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로 제작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해동지도』는 채색 회화식 지도로, 「조선전도(朝鮮全圖)」와 「서북피아양계전도(西北彼我兩界全圖)」를 덧붙여 하나의 지도책으로 완성하고 있다. 모두 8책으로 제1책은 경기도, 제2책은 해서전도·관서...
-
1863년에 간행된 청송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조기영의 시문집과 책판.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조기영(趙基永)[1764~1841]의 문집으로 1863년에 간행되었다. 목판본으로 제작되었으며, 책판은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의 방호정(方壺亭)에 소장되어 있다. 조기영의 본관은 함안, 자는 천휴(天休), 호는 현은(玄隱)으로 청송 출신의 학자이다. 어려서 영남 유림의 거...
-
조선시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각산리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조선시대 경상도 안동의 안기역(安奇驛)을 중심으로 설치되었던 안기도(安奇道)는 안동을 중심으로 ‘의성-의흥-신령’ 방면, ‘안동-청송-흥해’ 방면, ‘안동-진보-영해’ 방면으로 이어지는 역로(驛路)였다. 소속역은 주로 소로(小路) 또는 소역(小驛)에 속하는 역이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각산리에 있던 각산...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당. 월매리에 있는 겸와재(謙窩齋)는 남수(南邃)가 기거하던 곳에 건립한 서당이다. 겸와재는 1700년 전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수의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겸와(謙窩)로 영양남씨 청송 입향조인 남계조(南繼曺)[1541~1621]의 둘째 아들이다. 겸와재는 월매리 월매마을 입구 서북쪽 산...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고와리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김몽화의 갑옷과 투구를 묻었던 곳.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군과 맞서 싸우다 순절한 청송 출신의 무신 김몽화(金夢和)[1567~1636]의 갑옷과 투구를 묻었던 곳이다. 김몽화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포(良浦), 호는 대양(大洋)이다. 김몽화는 1602년(선조 35) 무과에 급제하였고, 이괄의...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재실. 교재재(喬梓齋)는 영양남씨(英陽南氏) 무안재(無安齋) 남근(南瑾)과 백원재(百源齋) 남도요(南道堯) 부자(父子)를 추모하는 재실이다. 남근은 품성이 따뜻하고 순수하며, 마음가짐이 중후하여 스스로 편안함을 편하게 여기지 않고 무안(無安)을 중시하였다. 아들 남도요는 천성이 어질고 효행을 실천하였으며, 행실...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권렴(權濂)[1701~1781]은 학문에 힘썼지만 관직을 위한 학문은 지양하였으며 훈수(塤叟) 정만양(鄭萬陽), 지수(篪叟) 정규양(鄭葵陽) 등의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희원(希元), 호는 후암(厚庵). 증조할아버지는 권중경(權重經)의 양자인 권륙(權稑)이다. 할아버지는 권성시(權聖時)이며, 아버지는 권후준(權后準)...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주서(周瑞), 호는 외암(畏菴). 증조할아버지는 권재의(權載義)이고, 할아버지는 권수(權燧)이다. 아버지는 권해도(權海度)이며, 어머니는 광산김씨(光山金氏) 김서구(金敘九)의 딸이다. 부인은 야성정씨(野城鄭氏) 정상유(鄭象儒)이고, 계배(繼配)는 의성김씨(義城金氏) 김기도(金基道)의 딸이다. 권석장(權錫璋)[181...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권석회(權錫晦)[1789~1851]는 성리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쓴 유학자로 유약문(柳約文)에게 사사하였다. 후손이 간행한 문집으로 『역파집(櫟坡集)』이 있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치근(穉根), 호는 역파(櫟坡). 증조부는 권재의(權載義)이고, 할아버지는 권수(權燧)이다. 아버지는 권지도(權之度)이며, 어머니는 전주유씨(全州柳氏)...
-
조선 후기 진보 지역에 정착한 무신. 권성전(權聖銓)[1701~1756]의 윗대는 안동부(安東府)의 호장(戶長)을 세습해 온 향리 가문으로 안동의 대표적 토성인 안동장씨(安東張氏), 안동김씨(安東金氏), 안동권씨(安東權氏) 가문과의 혼인을 맺어 왔다. 그러나 권성전의 아버지 권도형(權道亨)은 3남으로서 호장직을 역임하지 못하였고, 권창전(權昌銓), 권성전 형제도 역시 호...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권소(權昭)[1542~?]는 정유재란 당시 곽재우 의병진을 도와서 공을 세웠던 청송 출신의 의병장이다. 권소의 가문은 아버지 참봉 권덕순 대에 안동에서 진보로 이주해 왔다. 본관은 안동(安東). 할아버지는 한송(寒松) 권응희(權應禧)[1485~1573]로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할머니는 부위(副尉) 백원형(白元亨)의 딸 숙부인(淑夫人)...
-
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의병. 『안동권씨대동보』에는 권환(權晥)으로 전한다. 권원(權晼)은 1564년(명종 19) 참봉 권덕순(權德純)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큰형 권소(權昭)와 함께 정유재란 당시 곽재우 의병진으로 창녕 화왕산성 전투에 참여하였다. 학행으로 영덕훈도에 제수될 만큼 학문적 성취도 뛰어났다. 본관은 안동. 자는 언명(彦明), 호는 한촌(閑村). 할아버지는...
-
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의병. 권의립(權義立)[?~?]은 봉사(奉事) 권소(權昭)의 아들로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한촌(閑村) 권원(權晼)을 따라 곽재우 의병진에 합류하여 창녕 화왕산전투에 참여하였다. 본관은 안동. 자는 여직(汝直). 복야공(僕射公) 권수홍(權守洪)의 13세손이다. 참봉 권소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한송(寒松) 권응...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권이복(權以復)[1740~1819)은 거업(擧業)에 매진하지 않았으며, 생원시(生員試)에 입격(入格)하였으나 낙항하였다. 후학들에게 수양을 통한 각성을 강조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무회(無悔), 호는 만주(晩洲). 증조할아버지는 권성시(權聖時)이고, 할아버지는 권후준(權后準)이다. 아버지는 권렴(權濂)이며, 어머니는 무안박씨(務安...
-
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인(景寅), 호는 송만(松巒). 할아버지는 한송(寒松) 권응희(權應禧)[1485~1573]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할머니는 부위(副尉) 백원형(白元亨)의 딸 숙부인(淑夫人) 진안백씨(眞安白氏)이다. 아버지는 귀암(龜巖) 권덕조(權德操)[1507~1594]로 충정공(忠定公) 권벌(權橃)에게 수학하였으며 학...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덕언(德彦), 호는 조모현(朝暮見). 아버지는 호군(護軍)을 지낸 권두경(權斗經), 할아버지는 권문계(權文桂), 증조할아버지는 권종무(權宗茂)이다. 권택만(權澤萬)[?~?]은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부친을 따라 외출에서 돌아오니 화재로 집이 송두리째 타버리고 모친도 불에 타 죽었...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에 있는 귀암정(歸巖亭)은 권덕조(權德操)[1507~1594]를 기리기 위하여 그가 머물던 장소에 1650년경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이다. 권덕조의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귀암(歸巖)으로 중앙에서 관료 생활을 마친 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로 이거한 안동권씨 청송 입향조이다....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귀암정의 주사. 광덕리에 위치한 귀암정 주사(歸巖亭廚舍)는 권덕조(權德操)[1507~1594]를 기리기 위하여 조선 후기에 후손들이 건립한 주사(廚舍)[관리인이 살던 건물]이다. 권덕조의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귀암(歸巖)으로 안동권씨 청송 입향조이다. 진보면사무소에서 광덕교를 통해 반변천...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명당리에 있는 극복정(克復亭)은 민성대(閔成大)[1707~1755]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797년(정조 21)에 건립되었다. 민성대의 본관은 여흥(驪興), 호는 극복정(克復亭)으로 민추(閔樞)의 6대손이다. 이재(李栽)의 문인으로 관직은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에 올랐다. 극복정은 청송군 안...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재실. 금대정사(金臺精舍)는 조수도(趙守道)와 아들 조함수(趙咸遂), 조수도의 동생인 조동도(趙東道)와 그의 아들 조함신(趙咸新)을 기리는 재실이다. 조수도는 함안조씨 16대손이자 안덕의 입향조인 망운정(望雲亭) 조지(趙地)의 장자로,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璣)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조수도는 일기 형식의...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기곡재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전적. 기곡재사(崎谷齋舍)는 진보이씨 시조이며 이황(李滉)의 6대조인 이석(李碩)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당초 재암(齋庵)으로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740년(영조 16) 중건하였다. 1787년(정조 11)에 화재로 또 소실되었고, 1849년(헌종 15)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성(義城). 양인(良人) 신분으로 가계는 전하지 않는다. 김금죽(金今竹)[?~?])은 평소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하루는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으르렁거리며 어머니를 아가리에 물고 내빼려 하였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김금죽은 두려움에 질려 오금이 죄어 섰던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하지만...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김몽기(金夢麒)[1565~1633]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영천성(永川城) 수복전투와 경주성(慶州城)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전공으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에 임명되었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중상(仲祥), 호는 월계(月溪). 고조할아버지는 도곡(道谷) 김한경(金漢卿)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지양(芝陽) 김심(金深)...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김몽룡(金夢龍)[1556~?]은 임진왜란 때 김성달(金成達)과 정의번(鄭宜藩), 최인제(崔仁濟) 등과 함께 의병을 이끌고 경주와 양산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경상(景祥), 호는 두헌(斗軒). 도곡(道谷) 김한경(金漢卿)의 현손이며, 둔재(遯齋) 김응인(金應仁)의 아들로, 6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조할아버...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무신. 김몽추(金夢鳅)[1578~1634]는 김한경(金漢卿)의 현손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이괄(李适)의 난 때 계림군(鷄林君) 이수일(李守一)을 따라 적도를 토벌하여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올랐으며 정묘호란(丁卯胡亂)에 옥포장(玉浦將)으로 전공을 세우니 임금이 거울을 하사했다. 청(淸)과의 화의(和議) 때 극간하다 삭탈관직되었으며 청이 물러간...
-
조선 후기 청송 지역에 정착한 무신. 김몽화(金夢和)[1567~1636]는 1602년(선조 35) 무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을 지냈으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 평양성(平壤城) 진중에서 순절하였다. 김몽화의 아들 송탄(松灘) 김한룡(金漢龍)[1602~1669]이 인조 대에 안덕면 고와리로 들어와 정착한 이래로 김몽화를 입향조(入鄕祖)로 하고, 그의 아버지인 김세적(金世勣...
-
조선 후기 청송에 정착한 문신이자 의병장. 김사형(金士亨)[1541~?]은 형 김사원(金士元)[1539~1601]과 동생 김사정(金士貞)[1552~1620]과 함께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서 기반을 마련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 동생 김사정과 아들 김한(金澣)과 함께 창녕 화왕산성(火旺山城)의 곽재우 의병진에 참여하였다. 그 이후 가족들을 이끌고 진보현으...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김성진(金聲振)[1558~1634]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노모를 피난시키기 위하여 부득이 두 동생들만 권응수(權應銖) 의병진에 참전하도록 보내었다. 전란 이후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에 침류정(枕流亭)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당시 문인들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향나무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자는 대명(大鳴), 호는 두와(杜窩)....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김순룡(金舜龍)[1553~?]은 안동과 진보 일대의 문인들과 교유하며,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던 학자이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 창녕(昌寧) 화왕산성(火旺山城)의 곽재우(郭再祐) 의병진에 참전하였으며, 전란 이후 진보의 문풍을 쇄신하기 위하여 봉람서원(鳳覽書院)을 건립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윤(汝允), 호는 어천(漁川). 의...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세영(世榮), 호는 암은(岩隱). 정5품 이조정랑(吏曹正郞)을 역임한 지지당(止止堂) 김맹성(金孟性)[1437~1487]의 17대손이다. 김치욱(金致郁)[?~?]은 성품이 본래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려서부터 남다른 효심을 보였다. 김치욱이 다섯 살 때 젖을 먹는데 어머니의 왼쪽 유방에 부종(浮腫)이 생겼다. 그러자...
-
조선 후기 청송에 정착한 영양남씨 입향조. 남계조(南繼曺)[1541~1621]는 경상북도 청송군에 정착한 영양남씨(英陽南氏) 입향조이다.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선술(善述), 호는 운강(雲岡). 고조할아버지인 송정(松亭) 남수(南須)[1395~1477]는 고려 말에 울진으로 낙향하여 은둔(隱遁)한 중랑장(中郞將)...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남병인(南秉仁)[1817~1874]은 퇴계학파를 계승하였으며 청송사림 학풍의 핵심인물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 『노산문집』이 전한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이언(彜彦), 호는 노산(老山). 고조할아버지는 남재흥(南再興), 증조할아버지는 남창빈(南昌彬), 할아버지는 남시우(南時遇), 아버지는 남계운(南繼運), 어머니는 최광수(崔光洙)의 딸...
-
조선 후기 청송으로 이주해 온 의병장. 남윤조(南胤曺)[?~1597]는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의병진에 참여하여 화왕산성에서 전사하였다. 동생 남계조(南繼曺)가 노모와 형 남윤조의 가족들을 데리고 청송으로 이주한 이래로 그의 후손들이 청송에 살게 되었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언술(彦述). 고조할아버지 송정(松亭) 남수(南須)[1395~1477]...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중헌(仲憲). 아버지는 남대한(南大漢), 어머니는 민정윤(閔廷尹)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 할아버지는 남도성(南道聖), 증조할아버지는 남후(南垕)이며, 부인은 강정락(姜正洛)의 딸 진주강씨(晉州姜氏)이다. 남태박(南泰朴)[1819~1859]은 원래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그 효심이 인근에 자자하였다. 다섯 달...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남포정(南浦亭)은 남포(南浦) 조순도(趙純道)[1573~1653]가 부모님을 봉양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조순도는 임진왜란으로 둘째형 동계(東溪) 조형도(趙亨道)가 의병을 이끌고 출전하자 함께 의병으로 나아가려 했으나 부모님 봉양을 위해 포기하였다. 하지만 국난의 상황에 힘을 보태기 위...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세장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청송군 진보면 세장리에 위치한 농연정(聾淵亭)은 역파(櫟坡) 권석회(權錫晦)[1789~1851]의 문하생들이 스승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1863년에 지은 정자이다. 권석회의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안행정(安行正)과 유약문(柳約文)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권석회는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한평생 청송지역에서...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의 대전사 명부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대전사 명부전 지장탱화는 ‘가경십일년병인사월육일청송대둔산대전사명부전후불정화조성(嘉慶十一年丙寅四月六日靑松大遯山大典寺冥府殿後佛幀畵造成)’이라는 화기가 있어 1806년(순조 6)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4년 10월 14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8호로 지정되었다. 대전...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 대전사 보광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상. 대전사 보광전 석조여래삼존상(大典寺普光殿石造如來三尊像)은 조선 후기인 1685년(숙종 11)에 제작되었으며, 200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6호로 지정되었다. 대전사 주불전인 보광전에 모셔져 있는 대전사 보광전 석조여래삼존상 중 가운데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은 결가부좌를 하고...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의 대전사 보광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대전사 보광전 탱화(大典寺普光殿幀畫)는 대전사의 주 불전인 보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있는 3축으로 구성된 불화이며, 조선 후기인 1806년(순조 6)에 제작되었다. 대전사 보광전 탱화는 후불탱화(後佛幁畵)로 영산회상탱화(靈山會上幁畵), 좌우에 신중탱화(神衆幁畵)와 지장시왕탱화(...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 대전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종형 부도군. 대전사 부도군(大典寺浮屠群)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총 4기의 부도이다. 부도군의 왼쪽부터 청심당태옥대사탑, 채진당일명승탑, 경월대화상사리탑, 낙진당혜웅대사탑이다. 부도는 고승들이 입적 후 다비[화장]를 한 후 나온 사리를 모셔놓은 작은 탑으로, 승탑이라고도 한다. 대전사 부도군에 있는 4...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 대전사 주왕암 나한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대전사 주왕암 나한전 후불탱화는 삼베에 그려진 불화이다. ‘가경오년경신오월십구일기시육월초길일필공봉안우대둔산주왕암(嘉慶伍年庚申五月十九日起始六月初吉日畢功奉安于大遯山周王庵)’이라는 화기의 내용으로 보아 1800년(정조 24)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4년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덕성리에 있던 사당. 덕봉사(德峯祠)는 조려(趙旅)[1420~1489], 조형도(趙亨道)[1567~1637], 조함세(趙咸世)[1607~1690]를 배향한 사당이다. 조려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漁溪), 시호는 정절(貞節)이며, 조형도의 본관은 함안, 자는 대이(大而)·경달(景達), 호는 동계(東溪)이다....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각. 덕천리 정효각(德川里旌孝閣)은 권택만(權澤萬)[?~?]의 효행을 기리고자 1737년(영조 13)에 세운 효자각이다. 권택만의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조모현(朝暮見)으로 아버지가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을 지낸 권두경(權斗經)[1654~1725]이다. 권택만은 아버지 권두경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도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사당. 도동사(道洞社)는 1831년(순조 31) 건립된 사당이다. 김로(金路)와 김한경(金漢卿)[1456년~1552]을 배향하였다. 김로의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석포(石圃)이다.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농경(司農卿)을 지냈으며, 조선 태조의 잠저고인(潛邸故人)으로 혁명 후 이조참의가 되었다. 사후에는...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도리에 있는 조선시대 재실. 도리 추원당(道里追遠堂)은 의성김씨 청송 입향조인 도곡(道谷) 김한경(金漢卿)을 기리기 위해 김한경의 묘 밑에 세운 재실이다. 김한경은 1456년(세조 2)에 경기도 풍덕군에서 출생하여 1506년(중종 원년)에 정국원종공신으로 책록되었다가 사화를 피해 청송으로 입향하였다. 후학을 기르는 데 전념하였다가 155...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덕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덕성리에 있는 동계정(東溪亭)은 17세기 초반 잠시 관직에서 물러난 조형도(趙亨道)[1567~1637]가 교유 장소로 활용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조형도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대이(大而), 호는 동계(東溪)·청계도사(淸溪道士)로 정구(鄭逑)에게 학문을 배웠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15...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당. 청운리에 있는 만취서당(晩翠書堂)은 황학(黃㶅)[1758~1804]을 기리기 위하여, 1830년(순조 30) 후손들이 건립한 서당이다. 황학의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학중(學中), 호는 만취동(晩翠洞)으로 권렴(權濂)과 김종덕(金鍾德)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황학은 한평생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월매리에 있는 매계정(梅溪亭)은 남지훈(南之薰)[1678~1768]이 1743년(영조 19)에 건립한 정자이다. 남지훈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태화(太和), 호는 매계(梅溪)로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관직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에 올...
-
1728년 3월 일어난 무신란(戊申亂) 진압을 돕기 위해 경상도 청송과 진보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일. 무신창의(戊申倡義)는 1728년(영조 4) 3월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少論)과 남인(南人)의 과격파가 연합해 무력으로 정권 탈취를 기도한 사건으로, 무신년(戊申年)에 일어났기 때문에 무신란 또는 주동자의 이름을 따서 이인좌의 난(李麟佐-亂)이라고 한다. 이에 경상도...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민근효(閔根孝)[1550~1630]는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이다.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품계는 통정대부에 올랐다. 진사시에 합격한 후 임진왜란 이후 향교를 중건하는 데 앞장서고, 훈도와 향수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학행으로 이름이 높아서 당대의 명유들과 함께 어울렸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순원(順源), 호는 구...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열녀. 의성김씨(義城金氏)는 김기환(金基煥)의 딸이다. 남편 민언식(閔彦植)의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명지재(明智齋) 민추(閔樞)의 후손이다. 의성김씨는 명지재 민추의 후손인 민언식(閔彦植)에게 시집왔다. 혼례를 치른 지 며칠 되지 않아서 남편이 죽어 신혼의 단꿈이 깨어졌다. 남편과 사별한 것만으로도 서럽고 원통하기 그지없는데 후사조차...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조언(祖彦), 호는 죽소(竹巢). 증조할아버지는 민우(閔佑)이고, 할아버지는 민성옥(閔成玉)이다. 아버지는 민복현(閔復賢)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 김경석(金慶錫)의 딸이다. 부인은 전주유씨(全州柳氏) 유제휴(柳濟休)의 딸이다. 민종혁(閔宗爀)[1762~1838]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독서를 열심히 하였...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민치긍(閔致兢)[1810~1885]은 청송 출신의 유학자이며, 후대가 편찬한 문집으로 『현암문집(玄嵒文集)』이 있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근지(謹持), 호는 현암(玄嵒). 증조부는 민성옥(閔成玉)이고, 할아버지는 민복현(閔復賢)이다. 아버지는 민종혁(閔宗赫)이며, 어머니는 전주유씨(全州柳氏) 유제휴(柳濟休)의 딸이다. 부인은 여강이씨...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어천리 밀양박씨 돈와공파 종중에서 소장하여 보관하고 있는 고문서. 밀양박씨 돈와공파는 1623년(광해군 15) 돈와(遯窩) 박유도(朴維度)[1600~?]가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감곡리]에 일시 거주하다가 어천리(魚川里)로 옮겨 정착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박유도의 이주는 당시 인조반정과 관련이 깊다. 박유도의 아버지 박자흥(朴自興...
-
조선 후기 청송에 정착한 문신. 박성(朴惺)[1549~1606]은 조선 후기 경상도 현풍현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주왕산성 대장을 지냈고, 만년에 청송으로 이주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응(德凝), 호는 대암(大庵). 증조할아버지는 서부주부(西部主簿) 박성림(朴成林),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박순(朴純), 아버지는 생원(...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신성리에 있는 방호정(方壺亭)은 조준도(趙遵道)[1576~1665]가 17세기 전반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온 후 어머니 안동권씨 묘소 인근에 풍수당(風樹堂)을 지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조준도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행(景行), 호는 방호(方壺)로 정묘호란 때 창의사(倡義使)로 활동하였으며,...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에 있는 조선시대 천주교 순교지. 백자리 순교지는 신유박해 때 다른 지역 신자들이 피난해 와서 정착하여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던 초기 천주교 신자의 순교 유적지 중 하나이다. 모래실 순교지라고도 한다. 백자리 순교지가 있는 모래실은 원래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서울과 충청도에서 많은 신자가 피난을 와서 신자들끼리...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거 건축. 백자리 파평윤씨 종택은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운사(雲沙) 윤정벽(尹鼎壁) 후손의 종택으로, 지금으로부터 대략 200년 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현서면사무소에서 국도31호선을 타고 남쪽으로 2.2㎞ 향하다가, 다시 천천리 방향으로 갈라지는 도로를 타고 동남쪽으로 4.3㎞로 향하면 백...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세장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당. 진보면 세장리에 위치한 백호서당(栢湖書堂)은 이휘일(李徽逸)[1619~1672]의 유업(遺業)을 기리기 위하여, 1757년(영조 33)에 건립된 서당이다. 이휘일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문(翼文), 호는 존재(存齋)이다. 외할아버지 장흥효(張興孝)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퇴계학파의 적통을 계승하였다...
-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구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설 교육기관. 병암서원(屛巖書院)은 1702년(숙종 28)에 건립되었다. 이이(李珥)[1536~1584]와 김장생(金長生)[1548~1631]을 배향하고 있다. 이이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희원(希元)의 본관은 광산(光山...
-
1636년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병자호란은임진왜란(壬辰倭亂)과 함께 양란(兩亂)이라 불리며, 나라와 백성들에게 미증유의 피해를 입혀 큰 충격을 주었던 전쟁이다. 또한 조선 국왕이 이전까지 오랑캐라 부르며 천대했던 여진(女眞)의 청(淸)나라 황제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표하며 항복했던 치욕적인 전쟁이다...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덕리 보광사 극락전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화. 보광사 탱화(普光寺幀畵)는 조선 후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송 보광사 극락전 내의 본존불 뒤쪽의 후불탱화(後佛幁畵), 좌우의 지장탱화(地藏幁畵)와 산신탱화(山神幁畵)로 구성되어 있다. 보광사 탱화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인 청송 보광사 극락전에 있다. 본...
-
1602년 경상도 진보현에 건립되었던 사설 교육기관. 봉람서원(鳳覽書院)은 이황(李滉)[1501~1570]을 배향하기 위하여 1602년 경상도 진보현(眞寶縣) 옥동(玉洞)[지금의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병옥리]에 건립되었다. 봉람서원은 창건 당시 경상도 진보현의 관내에 있었다. 1602년(선조 35) 정탁(鄭琢)[1526~1605]이 쓴 「옥동서원기(玉洞書院記...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설 교육기관. 부강서당(鳧江書堂)은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 유치명 유치명(柳致明)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병신창의(丙申倡義) 청송 의병의 선열을 추모하는 공간으로도 활용되었다. 부강서당을 가려면 주왕산면사무소에서 이전교를 건너 상평사거리까지 약 9.35㎞...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거 건축. 중평리에 있는 사남 고택(沙南古宅)은 신치학(申致鶴)[1800~1885]이 건립한 가옥이다. 신치학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익문(翼文)으로 신숭렬(申崇烈)[1754~1825]의 여섯째 아들인데, 신치학의 큰형이 서벽 고택(棲碧告宅)의 주인인 신치구(申致龜)[1777~1851]이다....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곡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사당. 상렬사(尙烈祠)는 병자호란 때 순절한 윤충우(尹忠祐)[1587~1637]를 봉향하기 위해 1808년(순조 8)에 건립되었다. 윤충우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1621년(광해군 13) 무과에 급제하여 부사과(副司果)를 거쳐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관직을 그만둔 후에 고향인 청송으로 돌아왔...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경월대화상의 탑비. 상의리 경월당선사비(上宜里慶月堂禪師碑)는 경월대화상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塔碑)로 대전사 입구에 세워져 있다. 상의리 경월당선사비에는 고승 경월당선사(慶月堂禪師碑)는 1768년 백련암(白蓮庵)으로 출가하여 1845년 입적하였으며, 그로부터 1년 뒤에 부도와 탑비가 세워졌음이 새겨져 있다. 한...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열녀. 여흥민씨(驪興閔氏)는 조선 전기 문신이자 태종(太宗)의 장인인 어은(漁隱) 민제(閔霽)[1339~1408]의 후손인 민시혁(閔始爀)의 딸이다. 남편 서경로(徐景潞)의 본관은 달성(達城)으로 구계(龜溪) 서침(徐伔)의 후손이다. 여흥민씨는 타고난 품성이 영명하며 어버이에게 효도를 다하고 아랫사람에게 자애를 베풀었다. 민씨가 예닐곱...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거 건축. 서벽 고택(棲碧古宅)은 신한창(申漢昌)[1669~1749]이 평산신씨(平山申氏) 판사공파(判事公派) 종택에서 분가하면서 건립한 고택이다. 신한창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여필(汝弼)로 종손 신중기(申重基)[1634~1711]의 셋째 아들이다. 파천면사무소에서 남쪽으로 국도31호선을 타...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서봉(徐琫)[1598~1669]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외가에서 자랐으며 스승에 대한 숭배심이 강했다. 오랫동안 대리경작을 주었던 전답을 주민에게 양보할 정도로 이웃 사랑 정신이 투철하였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字)는 덕윤(德潤), 호(號)는 매헌(梅軒).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 서극명(徐克明), 어머니는 병절교위(秉節校尉) 남이관(南...
-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립되었던 조선시대 사설 교육 기관. 서원(書院)은 조선 중기 이후 사족(士族)의 교육·교화 기구인 동시에 대표적인 향촌 자치 기구의 하나이다. 고려 말 조선 초 이래 선현에 대한 봉사의 기능을 수행하던 사묘(祠廟)나 유생에 대한 교육을 담당한 사학(私學)은 발달되어 왔다. 하지만 두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것은 1543년(중종 38) 백운동서원(白雲...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서원모(徐元模)[1787~1858]는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유학자이다. 권이복(權以復)과 유범휴(柳範休)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주왕산지』를 저술하였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字)는 선응(善膺), 호는 주남(周南). 아버지는 서활(徐活), 어머니는 김용학(金龍㶅)의 딸 의성김씨(義城金氏), 할아버지는 서이양(徐爾亮), 증조할아버지는 서...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字)는 청여(淸如), 호(號)는 매야(邁埜). 아버지는 서이양(徐爾亮), 어머니는 조경원(趙景源)의 딸 함안조씨(咸安趙氏)와 박성신(朴聖藎)의 딸 함양박씨(咸陽朴氏), 할아버지는 서치중(徐致中), 증조할아버지는 서한정(徐漢挺)이며, 부인은 이의중(李宜中)의 딸 영천이씨(永川李氏)이다. 서활(徐活)[1761~1838]...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설 교육기관. 송학서원(松鶴書院)은 숙종 연간[1674~1720]에 건립되었다. 이황(李滉)[1501~1570], 김성일(金誠一)[538~1593], 장현광(張顯光)[1554~1637]을 배향하고 있다. 이황의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陶叟), 시호는 문순(...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 수정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에 위치한 고려 후기 사찰 수정사(水晶寺)의 불전이다. 수정사 대웅전은 1715년(숙종 41)에 건립되었다. 청송읍에서 진보 방면 국도31호선을 따라 가다가 ‘수정사 대웅전’과 ‘왕평 묘소’ 팻말이 있는 묵계솔밭 입구에서 우측으로 1.8㎞ 정도 가면 ‘남각산 수정사(...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字)는 이화(而華). 아버지는 주부(主簿)를 지낸 신경남(申慶男), 어머니는 참봉(參奉)을 지낸 권제세(權濟世)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 할아버지는 습독(習讀)을 지낸 신연(申演), 증조할아버지는 호군(護軍)을 지낸 신종위(申從渭)이며, 맏형이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낸 신즙(申楫)이다. 신수의 선대는 진보현(眞寶縣) 지역에...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여섭(汝涉), 호는 하음(河陰). 아버지는 주부(主簿)를 지낸 신경남(申慶男), 어머니는 참봉을 지낸 권제세(權濟世)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 할아버지는 습독(習讀)을 지낸 신연(申演), 증조할아버지는 호군(護軍)을 지낸 신종위(申從渭), 부인은 사정(司正)을 지낸 홍덕록(洪德祿)의 부계홍씨(缶溪洪氏)와 생원 김계(金繼)의...
-
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명원(明遠), 호는 서봉(西峰). 아버지는 상주목사(尙州牧使)를 지낸 신언(申漹), 어머니는 별제(別提)를 지낸 김제(金濟)의 딸 안동김씨(安東金氏)와 참봉(參奉)을 지낸 안택(安宅)의 딸 죽산안씨(竹山安氏), 할아버지는 호군(護軍)을 지낸 신종위(申從渭), 증조할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신권(申眷), 부인은 안인로(...
-
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산(平山). 아버지는 사용(司勇)을 지낸 신광위(申光渭),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 할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신권(申眷), 증조할아버지는 벽동군수(碧潼郡守)를 지낸 신명창(申命昌)이다. 신척(申滌)[?~1637]은 인조(仁祖) 재위 연간[1623~1649]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
-
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학자. 본관은 평산(平山). 자(字)는 백한(伯翰), 호(號)는 천재(泉齋). 아버지는 신치혁(申致赫), 어머니는 조석일(趙錫一)의 딸 한양조씨(漢陽趙氏), 할아버지는 신택렬(申宅烈), 증조할아버지는 신준성(申峻成)이며, 부인은 조우각(趙友慤)의 딸 한양조씨와 이상문(李相文)의 딸 월성이씨(月城李氏)이다. 신필흠(申弼欽)[1806~1866]은 18...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의병. 본관은 청송(靑松). 자(字)는 빈중(彬中).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심정(沈汀), 어머니는 장수륜(蔣秀倫)의 딸 아산장씨(牙山蔣氏), 할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심등(沈登), 증조할아버지는 통정대부 심수문(沈守文), 부인은 정구서(鄭龜瑞)의 딸 야성정씨(野城鄭氏)이다. 심예달(沈禮達)[1590~1661]은 1636년(인조 14)...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천일(千一), 호는 구송정(九松亭), 사호(賜號)는 벽절(碧節). 아버지는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를 지낸 심학령(沈鶴齡), 어머니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이상지(李祥之)의 딸 진보이씨, 할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심필윤(沈弼允), 증조할아버지는 현릉참봉(顯陵參奉)을 지낸 심손(沈遜), 부인은 어모장군(禦侮將軍) 송억령(...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군필(君弼). 아버지는 심석(沈晳), 어머니는 남두혁(南斗赫)의 딸 영양남씨(英陽南氏), 할아버지는 심종한(沈宗漢), 증조할아버지는 심충달(沈忠達), 부인은 조관(趙寬)의 딸 한양조씨(漢陽趙氏)이다. 심필량(沈弼良)[1676~?]은 천성이 효성스러워 부모를 섬김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였다. 이에 부모가 연로하여 병상...
-
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의병.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사반(士胖)·덕응(德應), 호는 둔와(遯窩). 아버지는 제용감판관(濟用監判官)을 지낸 안택(安宅), 어머니는 의인(宜人) 야성정씨(野城鄭氏), 할아버지는 숙릉참봉(淑陵參奉)을 지낸 안사원(安嗣源), 증조할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안종인(安從仁), 부인은 이지영(李之英)의 딸 정부인(貞夫人) 영천이씨(永川李氏)이다....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 영모재(永慕齋)는 윤괄(尹适)을 기리는 재실로 1823년에 건립되었다. 위치는 금곡2리 초막골 마을의 남쪽 끝에 있다. 초막골은 조선 명종 연간 윤씨(尹氏) 효자가 초막을 짓고 시묘를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의 영모재는 1821년(순조 21)에 후손들이 재실 창건을 논의하여 1823년(순조 23...
-
조선의 시인과 묵객은 전국의 명산을 유람하며 지은 유산록(遊山錄)을 통해 절경을 노래하기도 하고 구절구절 이야기를 펼쳐 놓기도 했다. 『주왕산유산록』 또한 조선의 이름있는 유자(遊者)들이 주왕산 구석구석을 누비며 그 아름다운 절경을 묘사하고 그에 따른 감흥을 읊조렸다. 특히, 『주왕산유산록』에는 주왕산에 산재한 사찰, 암자, 봉우리, 누대, 굴, 폭포 등을 중심으로 유산...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당. 월정리에 있는 오월헌(梧月軒)은 의성김씨 문중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당이다. 오월헌의 이력은 명확하지 않은데, 의성김씨의 현서면 정착 시기를 고려해 보면, 16세기 중반 이후 오월헌이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현서면사무소에서 남쪽 영천 방향으로 약 8㎞ 가면, 왼쪽 산 아래에 가지...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덕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덕성리에 있는 오의헌(五宜軒)은 1696년(숙종 22) 조함세(趙咸世)[1607~1690]가 노닐던 곳에 세워진 정자이다. 조함세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현보(顯甫)이고, 호는 오의헌(五宜軒)이다. 장현광(張顯光)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1652년(효종 3) 생원시에 급제하였다. 천거로 참봉(參...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소헌공원에 있는 조선 후기 및 개항기 비석군. 월막리 비석군은 청송읍 월막리 소헌공원(昭憲公園) 내 운봉관(雲鳳館) 옆에 있다. 원래 청송향교 서쪽 담장 밖에 있었는데, 2011년 소헌공원이 조성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봉안된 비는 모두 10기(基)이다. 조선 후기 지방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월정리 침류정(枕流亭)은 조선 후기의 학자 김성진(金聲振)[1558~1634]이 건립한 정자이다. 김성진의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대명(大鳴), 호는 두와(杜窩)이다. 의성김씨 청송 입향조인 김한경(金漢卿)[1456~1552]의 증손으로 학식이 높고 효행이 지극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들을...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유치구(柳致球)[1793~1854]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배웠으며, 성장한 후에는 유건휴(柳建休)에게 퇴계학통의 학문을 배웠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내봉(來鳳), 호는 소은(小隱). 아버지는 유상문(柳相文), 어머니는 조명복(趙命復)의 딸 한양조씨(漢陽趙氏)인데, 유두문(柳斗文)과 생원(生員) 이천섭(李天燮)의 딸 여주이씨(驪州李氏)에...
-
조선 후기 청송 지역에 학문적 영향을 끼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백(誠伯), 호는 정재(定齋). 아버지는 진사(進士) 유회문(柳晦文), 어머니는 교리(校理)를 지낸 이완(李埦)의 딸 한산이씨(韓山李氏), 할아버지는 생원(生員) 유성휴(柳星休), 증조할아버지는 유통원(柳通源)이며, 부인은 김복구(金復久)의 딸 선산김씨(善山金氏)와 신노악(申魯岳)의 딸 평산신씨...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열녀. 윤비룡(尹飛龍) 처 김씨(金氏)는 본관이 파평(坡平)인 윤비룡의 아내이다. 김씨는 스무세 살에 윤비룡에게 시집왔다. 윤비룡은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물셋의 젊은 나이로 김씨는 청상과부가 되었다. 김씨는 남편의 상을 당하여 곡을 하고 장례를 지낸 뒤, 평소처럼 식사를 하고 말하며 웃는 것도 늘 가...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의병.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서삼(瑞三), 일명 윤이징(尹以徵). 아버지는 진장(鎭將)을 지낸 윤정린(尹廷璘), 어머니는 김찬숭(金贊崇)의 딸 안동김씨(安東金氏)와 검상(檢詳)을 지낸 박경철(朴擎哲)의 딸 의흥박씨(義興朴氏), 할아버지는 중추(中樞)를 지낸 윤태보(尹台輔), 증조할아버지는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윤만영(尹萬英), 부인은 직장(直長)...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무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문옥(文玉), 호는 여와(藜窩). 아버지는 중추(中樞)를 지낸 윤태보(尹台輔), 어머니는 권신중(權信中)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 할아버지는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윤만영(尹萬英), 증조할아버지는 판결사(判決事)를 지낸 윤항(尹恒), 부인은 김찬숭(金贊崇)의 딸 안동김씨(安東金氏)와 검상(檢詳)을 지낸 박경철(朴擎哲)...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의병.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덕희(德希), 호는 낙와(樂窩). 아버지는 윤태신(尹台臣), 어머니는 권익방(權翼邦)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와 호군(護軍)을 지낸 윤추업(尹追業)의 딸 무송윤씨(茂松尹氏), 할아버지는 호군을 지낸 윤만웅(尹萬雄), 증조할아버지는 판결사(判決事) 윤항(尹恒), 부인은 절충장군(折衝將軍) 권의방(權義邦)의 딸 안동권씨이다....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무신.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를 지낸 윤귀림(尹貴琳), 어머니는 권막형(權邈亨)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 할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郎) 윤계형(尹繼亨), 증조할아버지는 장사랑 윤일(尹逸), 부인은 염개산(廉凱山)의 딸 파주염씨(坡州廉氏)이다. 윤충우(尹忠祐)[1587~1637]는 1587년(선조 20) 청송도호부(靑松都...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합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율간정(栗澗亭)은 오학문(吳學文)의 ‘유상지소(遊賞之所)’에 세운 정자이다. 오학문은 진보현감을 지낸 오강(吳江)의 8세손으로 자는 도빈(道彬), 호는 척암(惕庵)이다. 율간정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합강리 율리마을에서 서북쪽으로 100m 떨어진 덤방골에 있다. 율간정 앞으로는 임하호가 있다...
-
조선 후기 진보에 정착한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사각(士恪), 호는 선암(仙巖). 아버지는 이지번(李之蕃), 어머니는 흥해배씨(興海裵氏), 할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이인필(李仁弼), 증조할아버지는 훈도(訓導)를 지낸 이은동(李銀仝), 부인은 선교랑(宣敎郞) 박세필(朴世弼)의 딸 의인(宜人) 춘천박씨(春川朴氏)이다. 이엄(李儼)[1568~?]은 1568년(...
-
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의백(宜伯), 호는 계변(溪邊). 아버지는 강예습독관(講隷習讀官)을 지낸 이영무(李英茂)이다. 형 이응인(李應仁)이 무과 급제 후 판관(判官)을 지냈다. 이응의(李應義)[1569~?]는 경상도 진보현 상리(上里)[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 거주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에 가담하...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이전평역(梨田坪驛)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다른 역과 달리 조선 후기인 1711년(숙종 37)에 설치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에 있었던 역의 하나로서 안기도(安奇道)의 안동-청송-흥해 방면으로 이어지는 역로(驛路)에 있었다. 조선시대 경상도 안동의 안기역(安奇驛)을 중심으로 설...
-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대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익야정(翼也亭)은 통정대부 공조참의 심순(沈淳)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익야정이 위치한 나실 마을은 심순이 은거했던 곳이며 심순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익야정은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대전리 나실마을에 있다. 흥원리에서 국가지원지방도68호선을 따라 부남면사무소로 올라가면 용전천의 좌측에...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예천(禮泉). 자는 인지(仁之). 양양군(襄陽君) 임자번(林子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임일봉(林日奉),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 할아버지는 임막소(林鏌韶), 증조할아버지는 무과(武科) 출신의 임우영(林宇榮)이며, 부인은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큰아들은 임해봉(林海鳳)[1695~1755], 큰손자이자 임해봉의 장남 임세걸(林世杰)[171...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2차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1597년의 제2차 침략 전쟁을 따로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고도 한다. 처음 조선과 일본 간의 전쟁으로 시작되었으나 명군(明軍)이 원군으로 참...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신성리에 위치한 자하정(紫霞亭)은 1868년(고종 5)에 의성김씨 문중에서 김엽(金燁)[1586~1637]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이다. 김엽은 의성 출신의 무신으로 1620년(광해군 12)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가, 1637년 1월에 펼쳐진 쌍...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에 있는 조선시대 창고의 터. 장전리 현창지는 조선시대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 지역에 설치되었던 창고 가운데 하나로,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에 있다. 조선시대 각 고을에는 군량미나 나라에 바치는 세곡을 저장하던 창고가 설치되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청송도호부에는 치소에 군기고(軍器庫)...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초(景初).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정처의(鄭處義), 어머니는 남좌(南佐)의 딸 영양남씨(英陽南氏), 할아버지는 통정대부 정희직(鄭希稷), 증조할아버지는 통정대부 정연명(鄭淵明), 부인은 박인갑(朴仁甲)의 딸 의흥박씨(義興朴氏)이다. 정덕조(鄭德祚)[?~?]는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 청송도호부 지역에서...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현감(縣監)을 지낸 정길(鄭佶)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정대오(鄭大吾), 할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정기수(鄭麒壽), 증조할아버지는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지낸 정윤(鄭胤)이다. 정운(鄭雲)[1574~1595]은 19세 때 무과에 급제하였고, 21세 때 찰방(察訪)에 임명되었다. 당시는 임진왜란 때 순절했다는 『경주정...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字)는 천휴(天休), 호(號)는 현은(玄隱).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조우섭(趙友燮), 어머니는 조사연(趙思淵)의 딸 밀양박씨(密陽朴氏), 할아버지는 생원(生員)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상변(趙相抃), 증조할아버지는 증(贈) 호조참판(戶曹參判) 조경인(趙景仁), 부인은 의인(宜人) 연안김씨(延安金氏)이다....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사중(士重), 호는 송은(松隱). 아버지는 조시필(趙時㻶), 어머니는 통사랑(通仕郎) 전유성(全有性)의 딸 용궁전씨(龍宮全氏)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권감(權椷)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며, 할아버지는 무공랑(務功郞) 조함철(趙咸哲)이다. 조도의 부인은 이태길(李泰吉)의 딸 월성이씨(月城李氏)와 이규령(李奎齡)의 딸...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망(景望), 호는 지악(芝嶽).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지(趙址), 어머니는 습독(習讀)을 지낸 권회(權恢)의 딸 증(贈) 정부인(貞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이며, 5형제 중 막내이다. 조동도를 비롯해 형인 조수도(趙守道), 조형도(趙亨道), 조순도(趙純道), 조준도(趙遵道)가 모두 현달하였다. 할아버...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조순도(趙純道)[1573~1653]는 임진왜란 때 군량 수송 및 병사 수습에 힘을 기울였다. 여러 차례 천거되고 부정(副正)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일(景一), 호는 남포(南浦).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지(趙址), 어머니는 습독(習讀)을 지낸 권회(權恢)의 딸 증(贈) 정부...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행(景行), 호는 방호(方壺).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지(趙址), 어머니는 습독(習讀)을 지낸 권회(權恢)의 딸 증(贈) 정부인(貞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이며, 5형제 중 넷째이다. 형 조수도(趙守道)·조형도(趙亨道)·조순도(趙純道), 동생 조동도(趙東道)가 모두 현달하였다. 조준도는 재종숙으로 부...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명칙(明則), 호는 양모(兩慕). 신당(新堂) 조수도(趙守道)[1565~1593]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조태국(趙泰國), 어머니는 문소김씨(聞韶金氏)와 영해신씨(寧海申氏), 부인은 박상취(朴尙聚)의 딸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조진욱(趙振煜)[1752~1823]은 네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홀어머니 슬하에...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내언(來彦), 호는 매오(梅塢).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조갑(趙岬), 어머니는 이정(李禎)의 딸 영천이씨(永川李氏), 할아버지는 조시필(趙時㻶), 증조할아버지는 통덕랑 조함철(趙咸哲)이며, 부인은 신방형(申邦衡)의 딸 평산신씨(平山辛氏)와 박사순(朴師荀)의 딸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조태익(趙泰益)[1690~...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정부(挺夫), 호는 호촌(湖村). 아버지는 영장(營將)을 지낸 조형도(趙亨道), 어머니는 참의(參議)를 지낸 오운(吳澐)의 딸 정부인(貞夫人) 고창오씨(高敞吳氏),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지(趙址), 증조할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조정언(趙庭彦), 부인은 주부(主簿)를 지낸 이상문(李尙文)의 딸...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회부(晦夫), 호는 덕재(德齋). 아버지는 영장(營將)을 지낸 조형도(趙亨道), 어머니는 참의(參議)를 지낸 오운(吳澐)의 딸 정부인(貞夫人) 고창오씨(高敞吳氏),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지(趙址), 증조할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조정언(趙庭彦), 부인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신협(...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무신. 조형도(趙亨道)[1567~1637]는 정구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고 향시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으로 참여하여 공을 세웠으며 무과에 급제하였다. 인조반정 때는 궁궐을 호위하여 공을 세우고 보성군수가 되었다.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임금을 공주까지 호위하였으며,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화의를 주장하는 의견이 일어나자 분개하였다. 본관은...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 주산지 입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송덕비. 주산지비는 1771년(영조 47)에 주산지 입구에 건립된 조선시대 송덕비(頌德碑)이다. 주산지 송덕비라고도 한다. 주산지는 1720년(조선 경종 원년) 8월에 착공되어 이듬해인 1721년 10월에 완공되었다. 수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데, 주위의 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주산...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신성리에 있는 지악정(芝嶽亭)은 조동도(趙東道)[1578~1668]가 1624년(인조 2)에 건립한 정자이다. 조동도의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지악(芝嶽)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형제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 위치한 지악정은 속골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및 근대의 비석군. 진안리 비석군은 청송군 진보면사무소 담장 안쪽에 위치한 비석군이다. 비석은 모두 10기(基)로 1866~1925년 사이에 순차적으로 건립되었다. 옛 진보현(眞寶縣)·진보군(眞寶郡) 지역에서 군수(郡守)·현감(縣監)·찰방(察訪) 등을 지낸 지방관 가운데 선정(善政)을 베푼 자들의 공적을 기리기...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창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창양리에 있는 경모정(敬慕亭)은 조시구(趙時玖)[1634~1709]의 네 아들이 선조를 기리기 위하여 1736년(영조 12)에 건립하였다. 조시구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구옥(久玉), 호는 창야(蒼野)로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경모정은 청송군 현동면 창양리 중장마을...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재사. 기곡재사(岐谷齋舍)는 진보이씨(眞寶李氏)의 시조인 이석(李碩)의 묘를 수호하는 재사이다. 퇴계 이황의 6대조인 이석은 고려 충렬왕 때 진보현리(眞寶縣吏)로 있다가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시조공묘갈명(始祖公墓碣銘)」에 의하면, 이석의 맏아들 이자수(李子脩)가 1362년(공민왕 11)에 일어난 홍건적의 난을...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 대전사 명부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상. 대전사 명부전 지장삼존불은 본존불인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시고 좌우협시로 좌측에 도명존자(道明尊者), 우측에 무독귀왕(無毒鬼王)을 봉안하였다. 권속(眷屬)으로는 염라대왕(閻羅大王)을 비롯한 시왕상(十王像) 10구(軀), 판관(判官) 2구, 역사(力士) 2구, 장군(將軍) 1구 등 15구...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 대전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에 위치한 대전사(大典寺)의 불전이다. 현재 전해지는 보광전(普光殿) 건물은 1672년 중수된 것으로, 보물 제1570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송 대전사 보광전은 대전사 경내 한가운데에 있다. 뒤쪽으로는 기암을 등지고 좌측으로는 봉향각·수선당·관음전이 있고, 우측으...
-
경상북도 청송군 중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재사. 병보재사(丙甫齋舍)는 1830년에 건립된 조선 후기의 문신 김성탁(金聖鐸)과 그의 부인인 숙인(淑人) 무안박씨(務安朴氏)의 묘를 수호하는 재사이다. 김성탁은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킨 공으로 안핵사(按覈使)의 추천을 받아 참봉에 임명되었다. 1735년(영조 11)에 문과에 급제...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덕리의 보광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청송읍 덕리에 위치한 보광사(普光寺)의 불전이다. 1615년(광해군 7)에 건립되었으며, 보물 제1840호로 지정되었다. 1980년경 보수공사 중에 발견된 상량문에 따라, 극락전의 건립 시기는 ‘만력 43년’, 즉 1615년(광해군 7)이 된다. 보광사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덕리 보광사 극락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상. 보광사 삼존불(普光寺三尊佛)은 목조 불상으로, 삼존불의 형태로 봉안되어 있다. 불상의 제작 시기는 조선 후기로 추정된다. 보광사 삼존불은 불단 중앙에 본존불(本尊佛)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木造阿彌陀如來坐像)을 봉안하고 좌우에 협시불(脇侍佛)로 관음보살좌상(觀音菩薩坐像)과 대세지보살좌...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거 건축. 청운리에 있는 청송 성천댁(靑松星川宅)은 1780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택이다. 청송읍에서 국도31호선을 타고 남쪽 부남면으로 가다 보면, 청운삼거리를 지나 청운리가 나타난다. 청송 성천댁은 청운마을의 서쪽으로 올라간 경사지에 배산임수(背山臨水)하여 자리잡고 있다. 청송 성천댁은...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에 건립된 청송 송만정(松巒亭)은 조선 후기 학자인 권준(權晙)[1559~?]을 기리기 위하여 1863년(철종 14) 건립된 정자이다. 권준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인(景寅), 호는 송만(松巒)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하였으며,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을 지냈다....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 건립된 조선 후기의 사대부가 주택. 청송(靑松) 평산신씨(平山申氏) 판사공파(判事公派) 종택(宗宅)과 분가(分家)고택(古宅)은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평산신씨 판사공파 일족이 조선 후기에 건립한 주거 건축이다.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 서벽 고택(棲碧古宅), 사남 고택(沙南古宅)으로 구성되어 있는...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재실. 화지재(花池齋)는 영양남씨(英陽南氏) 입향조인 운강 남계조[1541~1621]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1629년에 건립된 재사이다. 「화지재중수기(花池齋重修記)」에 따르면, 남계조는 선조 연간 임진왜란 당시 형인 남윤조(南胤曹)가 의진에 참여하자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으로 이거하여 만년을 보냈다고 한다....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재실. 덕양재(德陽齋)는 달성서씨(達城徐氏) 학유공파(學諭公派) 9세손이자 청송의 입향조인 서윤(徐尹)과 손자 서창(徐昌), 고손인 서봉(徐琫)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이다. 「덕양사별묘상량문(德陽祠別廟上樑文)」에 따르면, 서윤의 형제들은 모두 회재 이언적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영천에서 청송으로 입향했음을...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 청송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청송민속박물관에는 19세기 말의 교지 17건과 18~19세기의 호구단자와 준호구 14건 등 모두 31건의 고문서가 보관되어 있다. 이들 고문서는 모두 청송 안덕, 현남에 거주하는 동래정씨, 진보의 진성이씨, 현동의 함안조씨(咸安趙氏), 밀양박씨 가문에서 기증한 것들이다. 청송민속박...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개일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개일리에 있는 청송 오체정(靑松五棣亭)은 남세주(南世柱)의 아들인 남자훈(南自熏), 남응훈(南應熏), 남유훈(南有熏), 남필훈(南必熏), 남시훈(南是熏) 오형제 후손들이 일족간 결속력을 도모하고, 각 선조의 효행과 우애를 기리기 위하여 1734년(영조 10)에 건립하였다. 남세주는 영양남씨(英陽南氏) 청...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거 건축. 덕천리에 위치한 청송 초전댁(靑松草田宅)은 1806년(순조 6) 심덕활(沈德活)[1771~1850]이 건립한 가옥이다. 심덕활의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여발(汝潑)이다. 수직(守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다. 파천면사무소에서 국도31호선을 타고 남쪽...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에 있는 조선시대 지방 국립 교육기관. 청송향교(靑松鄕校)는 조선시대 청송 지역 유생들이 머물며 수학한 교육의 공간이자,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제향의 공간이었다. 청송 지역 내 향교에서 교육과 제사 주재 집단은 지역 내 재지세력(在地勢力)이었다. 그들은 청송향교를 중심으로 향론을 형성하며, 향촌 자치...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각. 청운리에 있는 청운리 쌍효각(雙孝閣)은 조선 후기 청운리 출신의 선비 황취근(黃就根)과 그의 부인 진주강씨(晋州姜氏)의 효행을 기리고자 1804년(순조 4)에 건립되었다. 황취근의 본관은 평해(平海), 백원(白源), 호는 성암(省庵)으로 진주강씨와 함께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부의 지극한...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감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추원정(追遠亭)은 함안조씨 문중에서 조중린(趙重藺)[1627~1696]의 위패를 봉안하는 별묘였으나 후대에는 재실로 사용되었다. 조중린의 본관은 함안(咸安)으로 아버지는 조함일(趙咸一), 할아버지는 조준도(趙俊道)이다. 형제들 간에 우애가 깊었고, 특히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추...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곡리 영모재에서 소장하고 있는 파평윤씨 소정공파 고문서. 청송읍 금곡리는 파평윤씨 소정공파 세거지이다. 이곳에 있는 영모재(永慕齋)는 1773년 윤활(尹活)의 묘제를 위해 후손인 윤복윤(尹復允)과 윤희겸(尹喜謙) 등이 지은 재사로서 1877년에 중수하였다. 이후 파평윤씨의 각종 모임도 이곳에서 진행하면서 문중의 구심처가 되었다. 『산소...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거 건축. 중평리에 있는 평산신씨 어천파 종택은 200여 년 전 건립된 전통 가옥이다. 청송군청이 있는 군소재지에서 국도31호선을 따라 파천면사무소 방향으로 약 3.2㎞ 가서 좌측의 용전천을 가로지르는 중평교를 건너면 중평솔밭에서 약 1㎞ 가면 중평마을이 자리잡고 있는데, 가옥은 마을의 끝단 고샅...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 건립된 전통 가옥.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은 1705년(숙종 31) 무렵 신한태(申漢泰)[1663~1719]가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한태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장이(卓而)로 평산신씨 판사공파의 종손이다. 파천면사무소에서 남쪽으로 국도31호선을 타고 1㎞가량 이동하면, 우측으로 중평교가 나타난다. 중평교...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거 건축. 명당리에 있는 함안조씨 방호공파 종택은 1659년(효종 10) 조준도(趙遵道)[1576~1665]가 건립한 고택이다. 함안조씨 방호공파 파조(派祖)인 조준도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행(景行), 호는 방호(方壺)로 정묘호란 때 창의사(倡義使)로 활동하였으며, 관직은 부호군(副護軍)에 올랐다....
-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대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재실. 화수재(花樹齋)는 대전리 한앞마을의 입향조인 경주정씨(慶州鄭氏) 정구(鄭球)를 기리기 위해 1745년(영조 21)에 건립한 재실이다. 정구는 조선 개국 일등공신 양경공(良景公)의 7세손인 고령현감 휘길(佶)의 현손이다. 정구는 통정대부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청송군 부남면사무소가 있는 삼거리에서...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복원(復元). 고조할아버지는 황득선(黃得善), 증조할아버지는 황후만(黃後萬), 할아버지는 황덕필(黃德弼), 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황원기(黃元奇), 어머니는 장홍원(張弘遠)의 딸 울진장씨(蔚珍張氏)이며, 부인은 조대익(趙大益)의 딸 함안조씨(咸安趙氏)이다. 황극일의 후손들이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의 청운리와 송생리에 세...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황윤중(黃允中)[1782~1855]은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유학자이다. 퇴계학파를 계승하였으며 저서로 『운학집(雲鶴集)』을 남겼다.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성집(聖執), 호는 운학(雲鶴). 황윤중은 황극일(黃克一)의 6세손이며, 할아버지는 황하문(黃河文), 아버지는 황재찬(黃在瓚), 어머니는 안동권씨(義城金氏) 권응린(權應麟)의 딸 안...
-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이다. 권렴(權濂)과 김종덕(金鍾德)에게 학문을 배웠다.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학중(學中), 호는 만취동(晩翠洞). 증조할아버지는 황운필(黃雲弼), 할아버지는 황미정(黃美晶), 아버지는 황석문(黃錫文), 어머니는 조세발(趙世發)의 딸 함안조씨(咸安趙氏)이다. 황학(黃㶅)[1758~1804]은 청송도호부 역촌(...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후평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봉수터. 후평리 신법산 봉수지(後坪里神法山烽燧址)는 봉수제가 운용되던 조선시대에 경상도에서 올라오는 제2거[경상도 동래~서울 간]에 해당하는 내지 봉수의 하나였다. 원래 진보면 고현리에 있는 남각산 봉수대[고현리 남각산 봉수지]가 1740년(영조 16)에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봉수 체계는 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