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동에 있는 1960년 2·28 학생의거를 기리며 세운 기념비. 2·28 학생의거 기념탑(二·二八學生義擧記念塔)은 1960년에 일어난 2·28 학생의거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2·28 학생의거는 1960년 2월 28일 경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경대사대부고], 경북여자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대구공업고등학교,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 와룡공원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인 가선대부 김악소의 불망비. 가선대부 김악소 불망비(嘉善大夫 金岳素 不忘碑)는 조선 후기에 기금을 출연하여 마을 앞 금호강의 제방을 축조하게 한 가선대부 김악소[1700~1781]의 공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김악소의 자(字)는 화옥(華玉)이고 가선대부에 증직되었다. 김악소가 기꺼이 자신의 재산을 기금으로 내었고 마...
-
대구광역시 달서구 갈산동에 있는 유허비. 갈미 유허비는 1996년에 세워진 유허비이다. 유허비는 사라진 마을과 선인들의 자취를 기리고자 세운 비를 말하는데, 마을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곳은 유래비로 이름이 붙여졌고, 갈미처럼 마을이 완전히 사라진 곳은 유적비 또는 유허비로 이름이 붙여졌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동 두류공원에 있는 대구사범학교 학생의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대구사범학생 독립운동 기념탑(大邱師範學生獨立運動記念塔)는 대구사범학교 학생의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1998년 3월 1일 세운 기념비이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갈산동에 있는 마을 유적비. 망정부락 유적비는 1992년 6월 세워진 마을 유래비로서, 마을 지명의 유래, 마을의 역사, 주민 성씨, 삶의 이력, 마을의 인물과 업적, 비를 세운 이유 등이 새겨져 있다. 현재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장동에 속하였던 자연부락인 망정은 원래 대구부 화원현(花園縣) 감물천면(甘勿川面)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거치면서 망정동...
-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기념비. 민족정기 탑(民族正氣塔)은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하여 1995년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세운 기념비이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배실마을 유래비는 1999년 9월에 세워진 유래비이다. 유래비는 사라진 마을과 선인들의 자취를 기리고자 세운 비를 말하는데, 마을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곳은 유래비로 이름이 붙여졌고, 마을이 완전히 사라진 곳은 유적비 또는 유허비로 이름이 붙여졌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동에 있는 시인 백기만을 기리며 세운 시비. 백기만 시비(白基萬詩碑)는 1991년 시인 백기만을 기리며 세운 시비이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동 두류공원 인물동산에 있다. 두류공원 인물동산은 대구를 빛낸 인물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애국지사, 문화 예술, 학술 언론 등 각계 인사 중에서 대구를 빛낸 인물을 선정하여 비를 건립한 문화 공간이다. 백기만 시비...
-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사령봉 유래비는 1997년 5월 18월 세워진 마을 유래비로서, 마을 지명의 유래가 새겨져 있다. 유래비는 사라진 마을과 선인들의 자취를 기리고자 세운 비를 말한다. 마을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곳은 유래비로 이름이 붙여졌고, 마을이 완전히 사라진 곳은 유적비 또는 유허비로 이름이 붙여졌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월암동에 입향한 선조들을 기리는 비석. 삼현유허비(三賢遺墟碑)는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하여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 지역으로 와서 정착한 최성희(崔聖禧), 조득도(趙得道), 이언상(李彦祥)을 기리고자 1939년에 건립한 유허비이다. 비문은 민병승(閔丙承)이 지었다. 삼현유허비에 나오는 세 입향조 중 경주최씨(慶州崔氏) 최성희는 침랑...
-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선원마을 유래비는 1995년 3월 12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 목련공원 내에 세워져 있는 마을 유래비이다. 이곡동의 자연부락인 선원마을은 달서구 신당동의 동쪽에 있던 마을이며 지금의 달서구립성서도서관 일대에 해당한다. 김해허씨(金海許氏) 허재가 마을을 개척한 후 집성촌을 이루었고, 선원마을 출신인 상무헌(尙武軒) 허득량(許得良)의...
-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신당동 유래비는 1994년 11월 세워진 마을 유래비로서, 마을 지명의 유래, 마을의 역사, 주민 성씨, 삶의 이력, 마을의 인물과 업적, 비를 세운 이유 등이 새겨져 있다. 현재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속하는 신당동은 김녕김씨가 처음 세거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고 예부터 와룡산의 정기를 받는 곳이라 하여 명당으로 알려져 왔다. 1988년...
-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우배선의 유적비. 월곡 우배선 창의유적비(月谷禹拜善倡義遺蹟碑)[의병장 월곡 우배선선생 창의유적비(義兵將月谷禹拜善先生倡義遺蹟碑)]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월곡 우배선[1569~1621]을 기리고자 1992년에 건립한 유적비이다. 우배선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월촌마을에서 1569년에 태어난 인물이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에 있는 마을 유적비. 월암부락 유적비는 1994년 11월 세워진 마을 유적비이다. 월암동 마을의 역사, 주민 성씨, 지명, 비를 세운 이유 등이 새겨져 있다. 유적비는 사라진 마을과 선인들의 자취를 기리고자 세운 비를 말하는데, 마을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곳은 유래비로 이름이 붙여졌고, 월암부락처럼 마을이 완전히 사라진 곳은 유적비 또는 유허비로...
-
대구광역시에 있는 일제강점기 시인 이상화 시비. 대구 지역 출신인 이상화(李相和)[1901~1943]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민족주의 시인으로서 식민 지배에 처한 민족적 울분와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바탕에 두고 시를 썼다. 1919년 3·1운동 시위 행사를 준비하였고, 1921년 박종화(朴鍾和)와 만나 『백조』 동인이 되었으며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창립 회원으로 참여...
-
대구광역시 출신 시인 이설주의 시비. 이설주 시비는 대구광역시 출신 시인인 이설주(李雪舟)[1908~2001]의 시 「내고향은 저승」, 「금호강」을 새긴 시비이다. 대구광역시 세 곳에 세워져 있다....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출신 시인 이장희의 시비. 이장희 시비는 대구 출신 시인 고월 이장희[1900~1929]의 시비이다. 이장희는 현진건·이상화와 함께 대구가 낳은 3대 문인으로 꼽히는데, 대구 지역에서 손꼽히는 친일파 부호였던 아버지에 대한 수치심으로 평생 아버지와 불화하였고, 가난 속에서 유미주의적이고 감각적인 시 세계에 파고들다가 스물아홉 살에 요절하였다. 시비에 새긴 작품...
-
대구광역시 출신 시인 전상렬의 시비. 전상렬 시비는 대구광역시 출신 시인인 목인 전상렬[1923~2000]의 대표작 「고목과 강물」을 새긴 시비이다. 전상렬은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창작 활동을 벌이면서 대구 시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주로 향토색 짙은 서정적 시세계를 펼친 향토 시인이다. 시비는 조각가 이상일이 제작하였고, 비명과 비문은 전상렬의 둘째아들인 서예가 전진원이...
-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학생 항일 투쟁 단체 태극단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太極團學生獨立運動記念塔)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벌인 태극단을 기념하기 위하여 1973년 2월 1일 세운 기념비이다. 원래 구대구상업학교본관에 있던 것을 1985년 달서구 상인동으로 이전하였다. 2003년 10월 19일 다시 태극단학생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이전하였...
-
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파산동 유래비는 2011년 11월 10일 세워진 유래비이다. 파산동의 옛 이름은 ‘머무동’ 또는 ‘머무강창’이다. 머무동은 금호강으로 올라오던 소금 배가 머무는 동네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파산동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지은 동명인데, 파산동과 파호동 사이의 돌무덤에 많은 뱀이 살았다고 한다. 파산동은 원래 대구부 서하면(西河面) 소...
-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파호동 유래비는 2009년 2월 9일 세워진 마을 유래비이다. 파호동은 파산(巴山)의 ‘파(巴)’ 자와 인근을 흐르는 금호강(琴湖江)의 ‘호(湖)’ 자를 따서 ‘파호동’이 되었다. 대구부 서하면(西河面) 소속이던 파호동은 1910년 대구부 성서면(城西面) 파호동에서 1914년 달성군 성서면으로 개편되었다. 1958년 대구시로 들어왔다가...
-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파리독립청원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 비(韓國儒林獨立運動巴里長書碑)는 일제강점기 파리독립청원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하여 1997년 10월 10일 건립하였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월곡역사공원에 있다....
-
대구 출신 소설가 현진건의 문학비. 현진건 문학비는 대구 출신 소설가 현진건[1900~1943]의 문학비이다. 현진건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로서 우리나라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로 손꼽힌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운수 좋은 날」, 「B 사감과 러브레터」, 「빈처」 등이 있다. 현진건 문학비에는 소설 「고향」의 일부분이 새겨져 있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호림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호림동 유래비는 2004년에 대구광역시 달서구 호림동에 세워진 유래비이다. 호림동은 마을 가운데에 숲이 홀로 우거져 있어 ‘홀림[-林]’으로 불리다가 마을이 풍수지리적으로 여우가 먹이를 찾는 형이니 ‘여우 호(狐)’, ‘수풀 림(林)’을 써서 ‘호림동’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호림동은 원래 대구부 서하면(西河面) 소속이었다.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