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 때 대구공회당 자리에 있던 극장. 군인극장은 6·25전쟁 때 제2군사령부 정훈부에서 대민 봉사를 위하여 대구공회당을 인수하여 영화관으로 사용하였다....
-
대구광역시에 있는 연극이나 음악, 무용 따위를 공연하거나 영화를 상영하기 위하여 무대와 객석 등을 설치한 건물이나 시설. 극장(theatre)은 그 어원이 관람석(theatron)인 데서 알 수 있듯이 하나의 공간 속에 배우와 관객을 연결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극장은 원래 연극을 상연하기 위하여 지은 곳인데 무용·음악·예능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하는 장소가 되었으며, 20세기에...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3가에 있던 대구 최초의 극장. 금좌(錦座)[니시키자]는 대구광역시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문화적 욕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금좌는 대구부 금정(錦町) 송전석조창고(松前石造倉庫), 지금의 중구 태평로3가 216번지에 있었다....
-
일제강점기에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에 있던 요세. 낭화관(浪花舘)[나니와칸]은 대구부 대화정(大和町) 1정목(町目) 79번지, 지금의 경상감영공원 서편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 79번지 대구중부교회 자리에 있었다. 1911년에 건립된 대구구락부가 1912년 무렵에 요세[寄席]로 전환하고, 이름을 ‘낭화관’으로 바꾸었다. 『대구신문』에서 발행한 「대구시가명세지도」[1912년경]에 대...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에 있던 극장. 대경관(大鏡舘)은 1929년 1월 1일에 만경관이 신축 개관하자, 이제필이 관명을 양도하고 ‘대경관’이라는 관명으로 조선인을 대상으로 영업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문화시설. 대구공회당(大邱公會堂)은 대구부민에게 문화예술을 제공할 문화의 전당으로 건립하였다. 대구부[현 대구광역시]에서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즉위식을 기념하는 사업의 하나로 대구역 앞[현 중구 태평로2가 1-1]에 건립한 것이었다....
-
일제 강점기에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에 있던 영화관. 대구구락부(大邱俱樂部)는 1911년 쓰지소노 지로[辻園次郞]가 지금의 경상감영공원 서편, 중구 대안동 79번지 대구중부교회 자리에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개관하였다....
-
대구광역시 중구 화전동에 있던 극장. 대구극장의 전신인 대구좌(大邱座)는 대구기업주식회사에서 1만 5000여 원을 들여 대구부 전정(田町) 4번지, 지금의 중구 화전동 4번지 관광버스 전용 주차장 자리에 1918년 6월 상순 무렵 연극 전용 극장으로 개관하였다....
-
대구광역시 중구 화전동에 있던 극장. 1940년 7월 6일에 시마다 가네시로[島田金四郞]가 신흥관(新興舘)[신코칸]을 인수하여 대구송죽영화극장으로 개관하였다....
-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에 있던 극장. 대구영화극장의 전신은 1923년 조선인을 대상으로 개관한 만경관(萬鏡舘)이다. 1944년 2월에 신관을 신축하고 관명을 ‘대구영화극장’으로 바꾸어 개관하였다. 일명 ‘대영(大映)’이라고 하였다....
-
일제강점기에 대구광역시 중구 화전동에 있던 극장. 대구좌(大邱座)는 1918년 대구기업주식회사에서 1만 5000여 원을 들여 대구부 전정(田町) 4번지, 지금의 중구 화전동 4번지 관광버스 전용 주차장 자리에 연극 전용 극장으로 개관하였다. 1917년 8월 하순부터 서울 용산의 사쿠라자[櫻座]를 옮겨 지어 1918년 6월 상순 무렵에 개관한 것이다. 대구극장이라고도 하였다....
-
일제강점기에 대구광역시 중구 화전동에 있던 극장. 1921년에 일본인을 주 관객으로 하는 활동영화 상설관 대송관(大松舘)[다이마쓰칸]이 설립되었다....
-
일제강점기에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에 있던 극장. 1924년 8월 당시 칠성관(七星舘)은 관명이 대영관(大榮舘)[다이에이칸]으로 바뀌어 있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1가에 있던 극장. 1920년 12월 21일에 조선관이 화재로 소실되자, 1922년 6월 조선인 유지 14명과 일본인 1명이 조선관 터에 이오극장(二五劇場)을 지으려고 하였다. 1922년 8월에 관명을 만경관(萬鏡舘)으로 바꾸었으며, 1923년 3월 7일에 개관하였다....
-
일제 강점기에 재담, 만담, 야담 등을 들려주던 대중적 연예장. 대구광역시에 처음 등장한 요세[寄席]는 1912년 무렵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에 개관한 낭화관(浪花舘)[나니와칸]으로, 활동사진 상설관이던 대구구락부를 요세로 전환한 것이다. 1928년 이마모토 시미즈[今本善造]가 개관한 영락좌(永樂座)[에이라쿠자]도 요세이다....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등장한 극장들과 극장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 우리나라의 전통연희는 옥외에서 이루어지므로 극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극장의 역사는 개항과 함께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1876년 부산이 개항되고 이어 원산[1879년], 인천[1883년] 등이 차례로 개항되면서 몰려든 일본인들에게는 가부키[歌舞伎], 노[能], 분라쿠[文樂], 교겐[狂言], 나...
-
일제강점기에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1가에 있던 극장. 조선관(朝鮮舘)은 1920년 8월 대구부 경정(京町)[교마치] 29번지,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1가 29번지[현 롯데시네마 프리미엄만경, 옛 만경관]에서 조선인 전용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시작하였다....
-
일제 강점기에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에 있던 극장. 칠성관(七星舘)은 1916년 10월에 오카모도[岡本]가 일본인을 대상으로 활동사진을 상영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2가에 있던 극장. 키네마구락부는 1938년 8월 21일 조선영화흥업주식회사에서 대구부[현 대구광역시] 동성정(東城町) 2의 88번지, 지금의 CGV대구한일 자리인 중구 동성로2가 88에 개관하였다....
-
일제 강점기에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에 있던 극장. 호락관(互樂舘)은 1933년 8월 12일 윤무용·김상덕·김파영이 대경관을 인수하여 수리하고, 발성영사기를 장치하여 개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