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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가교길 신암산의 신암사 능성 구씨(綾城 具氏) 집안의 사찰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전설. 고려 말엽 충숙왕 때의 중신 구예(具藝)의 부인인 아주 신씨(申氏)는 구예가 죽자 암자를 짓고 시묘를 하였다. 시묘가 끝난 후 신씨는 남편의 극락왕생과 명복을 빌기 위하여 중을 두고 구룡사를 지었는데 1920년경에 종중에서 구룡사를 신암사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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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기지시 줄다리기의 유래에 대한 전설. 선비가 과거에 늘 낙방할 뿐만 아니라, 윤년(閏年)마다 지역에 재해를 들게 하는 지네를 처치하고 죽은 지네의 가족이 복수할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지네 모양의 줄을 만들어 다리게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다. 「기지시리 국수봉 전설」은 1993년 당진 문화원에서 그동안 수집 발표되었던 전설들을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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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 방죽에서 임진왜란을 예견한 이율곡이 김복선과 나라를 걱정하며 주고받았다고 전해 오는 이야기. 「김복선과 이율곡」은 임진왜란을 예견한 이율곡이 국난 극복을 위해 의논할 사람을 찾아 당진까지 내려와 합덕에서 김복선을 만나 나눈 이야기다. 종의 신분이지만 앞날을 내다볼 줄 알고 지혜가 있어 위기를 극복할 줄 아는 김복선의 영웅성이 잘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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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전해 오는 꿈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 「꿈 때문에 임금 사위된 사람」은 꿈에 등장한 쥐들의 행동을 보고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어려움을 해결하여 복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꿈 때문에 임금 사위된 사람」은 1980년 6월 18일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조금리에서 이영렬[남]로부터 채록하였으며, 이는 『한국 구비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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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해미골에 관해 전해 오는 이야기. 「나팔수와 호랑이 전설」은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해미골과 관련된 설화로 술을 좋아하던 나팔수가 호랑이 똥에 화상을 입었다는 내용이다. 「나팔수와 호랑이 전설」은 1979년 8월 25일 김찬기로부터 채록한 내용이 『당진군지』(당진군, 1997)에 수록되었고, 1980년 6월 18일 김형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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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리에 있는 노적봉과 그 바위 아래 동굴에 얽힌 이야기. 「노적봉과 동굴 전설」에 나오는 노적봉은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리에 있는 작은 바위 봉우리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쳐들어오자 노적봉에 가마니를 쌓아 노적가리처럼 보이게 위장하여 적들이 달아났다는 설이 있다. 그 바위 아래에 10미터 정도 되는 작은 동굴이 하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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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대난지도리의 ‘도둑애미’에 전해 오는 이야기. 「대난지도리 도둑애미 전설」은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대난지도리 바닷가에 있는 ‘도둑애미’라는 곳에 전해 오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도둑애미는 바다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동굴 형태여서 아래가 쑥 들어가 있다. 따라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바위뿐이라 굴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아래에서 올려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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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전해 오는 도깨비 터에 대한 설화. 「도깨비 이야기」는 도깨비 터를 자신의 땅인 것처럼 여기게 된 사람에게 덮친 불운을 통해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는 설화이다. 「도깨비 이야기」는 1979년 8월 25일 충청남도 당진군 당진읍 읍내리에서 홍선기[남]로부터 채록하였으며, 이는 『당진군지』(당진군, 1997)에 수록되었다. 옛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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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에 전해 오는 바위에 관한 전설. 「배바위 전설」은 중국에서 난리를 피해 배를 타고 오던 목공 가씨가 풍랑을 만나 해안가에 떠밀려 왔다가 마음씨 고운 어부 부부를 만나 구원을 받는 이야기다. 보은(報恩)으로 만들어 준 배 덕분에 부자가 되고 배 모양으로 남은 사연 등 다채로운 얘깃거리가 담긴 전설이다. 「배바위 전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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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천의리 범난 골에 대해 전해 오는 이야기. 「범난 골 전설」은 당진시 정미면 천의리 냉전 골에 살던 효자 황팔두가 둔갑술 책을 얻어 호랑이가 되면서 갖게 된 지명 유래 전설이다. 황팔두는 어머니의 병을 고치려고 치성을 드리다가 얻은 둔갑술 책을 읽고 호랑이로 변신한다. 개의 생 쓸개 삼천 개를 먹어야 낫는 병에 걸린 어머니를 위해 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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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일원에서 베틀로 베를 짜면서 부르는 노동요. 「베틀요」는 「베틀가」라고도 하는데 아녀자들이 베를 짜면서 부르는 노동요다. 베를 짜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주로 혼자서 하는 작업이므로 지루함과 고단함을 달래려고 노래를 불렀다. 「베틀요」는 지방에 따라 각양각색인데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르다. 모든 노동요가 그렇듯이 구전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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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전해 오는 설화. 「본남편 섬긴 백정 딸」은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전해 오는 설화로 백정의 딸이었던 본부인을 내치지만 결국 본부인의 도움으로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본남편 섬긴 백정 딸」은 1980년 김명숙으로부터 채록하였으며, 이는 『한국 구비 문학 대계』4-1(한국 정신문화 연구원, 1980)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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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 오도에 전해 오는 이야기.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 오도 섬에 대해 전해 오는 전설로 시주를 거부한 부자가 결국 화를 입게 된다는 내용이다. 「산이 터져 버린 이야기」는 1979년 8월 25일 충청남도 당진군 당진읍 읍내리에서 김찬기[남]로부터 채록하였으며, 이는 『한국 구비문학 대계』4-1(한국 정신문화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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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전해 오는 삼대독자 이야기. 수명 연장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이다. 「삼대독자 이야기」는 1979년 11월 11일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초대리에서 진경성[남]으로부터 채록하였으며, 이는 『당진군지』(당진군, 1997)에 수록되었다. 옛날에 삼대독자가 살았다. 하루는 어머니와 둘이 있는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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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전해 오는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표현한 부녀요. 옛날의 시집살이는 힘들고 서럽고 외로운 생활이었다. 낯설고 사람 선 섬 같은 시집에 내 편은 아무도 없고, 어렵고 무섭고 두려운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야말로 새댁이 섬이 되는 생활이다. 이 사람 눈치 저 사람 낯빛을 살펴 가며 살얼음 밟는 듯 아슬아슬한 날들의 연속이다. 오죽하면 시집살이는 귀머거리 삼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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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가곡리 성구미 앞바다에 있는 바위에 전해 오는 이야기. 「쌍바위 전설」은 마흔 넘게 자식이 없던 부부가 어렵게 얻은 남매 쌍둥이 중 딸을 갖다 버렸는데 나중에 이들이 선남선녀가 되어 만나 같은 핏줄인 줄 모르고 연정을 품게 되었다가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남매 쌍둥이를 같이 키우면 집안에 큰 변이 생긴다는 속신과 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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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의 아미산과 몽산에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아미산 용과 몽산 지네」 전설은 몽산의 봉우리 모양이 다른 산들과 달리 뭉툭해진 것이 사람들에게 악행을 저지르다 죽은 지네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권선징악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아미산 용과 몽산 지네」 전설은 1993년 당진 문화원에서 그동안 수집 발표되었던 전설들을 모아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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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한진리의 큰 덕미산에 기거하던 안도사와 그의 제자 이일근에 얽힌 이야기. 「안도사와 이일근 전설」은 신기한 능력을 지닌 스승 안도사와 제자 이일근에 대한 이야기다. 스승의 충고를 따르지 않은 제자 이일근에게 결국 불행이 찾아오고 그는 스승이 예언한 대로 굶어 죽게 된다. 「안도사와 이일근 전설」 1996년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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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 온동 마을의 용샘과 온동 저수지에 전해 오는 이야기. 「여우와 하인 곰쇠 전설」에는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의 용샘과 온동 저수지가 만들어진 유래가 담겨 있다. 여자로 변신한 여우에게 홀린 곰쇠가 여우와 입을 맞추다가 구슬을 삼켜 땅의 이치를 알게 된다. 이로 인해 곰쇠는 비록 신분이 낮고 얼굴에 장애가 있지만 땅 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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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 오섬에 전해 오는 전설. 「오섬 거먹돌 전설」이 전해 오는 오섬은 당진시에서 약 6킬로미터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현재는 육지이지만 1910년대까지만 해도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외로운 섬이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들어 일본인들의 간척 사업으로 경작지 내지는 염전으로 사용되어 왔다. 「오섬 거먹돌 전설」은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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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내도리에 있는 바위와 관련된 전설.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내도리 안섬 앞바다에 있는 바위와 관련된 이야기로 늦게 얻은 아들이 좋아하는 삼치를 잡으려고 무리한 어로 작업을 하다가 희생당한 어부의 전설이다. 「용바위 전설」은 1993년 당진 문화원에서 그동안 수집 발표되었던 전설들을 모아 발간한 『당나루의 맥락(전설편)』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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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원씨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설화. 「원씨 시조에 얽힌 유래담」은 원두표가 정승을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재미있게 그린 소화(笑話)이다. 원두표에 대한 이야기는 경기도, 경상북도, 충청남도에 전해지는데 그 내용은 서로 다르다. 「원씨 시조에 얽힌 유래담」은 신현덕으로부터 채록한 내용이 『한국 구비 문학 대계』4-1(한국 정신문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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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전해 오는 이와 빈대와 벼룩에 대한 이야기. 「이와 빈대와 벼룩의 싸움」은 이, 빈대, 벼룩이 지금과 같은 형상이 된 연유와 이들의 싸움 이야기인데 이는 전국에 걸쳐 다양한 변이가 이루어진 소화(笑話)이다. 「이와 빈대와 벼룩의 싸움」은 『한국 구비 문학 대계』4-1(한국 정신문화 연구원, 1980) 등에 실려 있다. 빈대가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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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전해 오는 아산만에 관한 이야기. 토정 이지함이 천기를 살피다 육지가 무너져 바다가 되는 큰 변괴가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도중에 토정의 위험을 알려 주는 이인(異人)을 만나 목숨을 구하고 육지가 바다로 되는 현장을 목격한다는 이야기이다. 「이토정과 아산만 전설」은 1995년 향토 사학자 윤성의가 충청남도 당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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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자개리에 전해 오는 이형래와 면천 남산봉의 소나무에 얽힌 이야기. 「이형래와 남산봉 소나무 전설」은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자개리 이명호의 조상 이형래와 그가 타고 다녔다는 호랑이를 매어 놓았던 남산봉의 소나무에 얽힌 이야기이다. 면천면 남쪽에 자리 잡은 남산봉에 수령이 천 년 정도 되는 소나무가 있었는데 이는 군에서 지정한 보호수로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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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산성리의 자모산이라는 두 개의 산봉우리에 전해 오는 이야기. 「자모산 전설」은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산성리에 있는 자모산에 얽힌 지명 유래 전설이다.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와 그 아들이 죽어 산봉우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픈 가족사를 보여 줌과 동시에 마을 사람들에게는 영험함의 상징으로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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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죽동리에 있는 쌍분에 대해 전해 오는 전설. 「좋은 묏자리 잡아 준 꿩 전설」은 쌍분에 얽힌 이야기로 풍수지리 사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동물 지혜담의 성격도 띤다. 「좋은 묏자리 잡아 준 꿩 전설」은 1979년 10월 31일 충청남도 당진군 당진읍 읍내리에서 김장기[남]로부터 채록하였으며, 이는 『당진군지』(당진군,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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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일대에 쥐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쥐 이야기」는 비를 피해 게 구멍으로 숨었다가 게에게 물린 쥐가 지혜를 발휘하여 풀려난다는 동물 관련 민담이다. 「쥐 이야기」는 1980년 4월 4일 충청남도 당진군 석문면 통정리 2구 샘골에서 최복순으로부터 채록하였으며, 이는 『한국 구비 문학 대계』4-1(한국 정신문화 연구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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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전해 오는 지관 박상의에 관한 이야기. 「지관 박상의 전설」은 묫자리를 잘 보는 지관 박상의에 얽힌 이야기이다. 발복할 묫자리를 본 지관 박상의가 실제로 그곳에 묘를 쓴 사람을 추적하여 어떤 복을 받게 되는지 관찰한 내용이 담겨 있다. 「지관 박상의 전설」은 1979년 10월 31일 충청남도 당진군 당진읍 원당리 2구에서 이송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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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슬항리에 있었던 칠성바위에 관한 전설. 「칠성바위 전설」은 나이 마흔이 넘도록 아들을 얻지 못하던 원님이 칠성바위에 기도를 하고 아들 칠 형제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잇따라 집안에 경사가 겹치자 전국에서 아들 얻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마을에서는 이 칠성바위를 끔찍이 여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칠성바위 전설」은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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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본리에 전해 오는 박문수의 귀신 퇴치 이야기. 「퇴미산 귀신과 박문수 전설」은 어사 박문수가 퇴미산에서 귀신을 쫓아낸 사연이 담긴 전설이다.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본리의 퇴미산에는 말을 타고 산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을 붙잡는 귀신이 있었다. 어사 박문수가 이 길을 지날 때도 귀신이 말의 발굽을 못 움직이게 붙잡았다. 결국 박문수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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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전주 이씨 양녕대군파 집안에서 부리던 하인 돌쇠에 대한 이야기. 「풍수에 능한 곰쇠 전설」은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전주 이씨 양녕대군파 집안에서 부리던 하인 돌쇠가 풍수 지리에 밝았던 사연과 관련한 전설이다. 「풍수에 능한 곰쇠 전설」은 1980년 6월 20일 충청남도 당진군 당진읍 원당리에서 이재득[남]으로부터 채록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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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한진리에서 한진 앞바다가 생겨난 연유에 대해 전해 오는 이야기. 「한진 앞바다 터진 이야기」는 아산만 한진 앞 동네 육지가 터져서 바다가 된 사연이 담긴 전설이다. 토정 이지함이 한진 바다가 터질 때 미리 주민들을 대피시켰는데, 대피 중에 만난 새우젓 장수를 통해 토정 선생보다 능력이 더 뛰어난 이인(異人)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또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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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에 대해 전해 오는 이야기. 「호랑이도 감동한 효부」는 시아버지를 대신하여 자신의 아이를 호랑이에게 내주고 시아버지를 업고 왔는데 이에 감동한 호랑이와 산신령이 아이를 다시 살려 주었다는 효행담이다. 옛날에 어떤 부부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살림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부는 두 노인을 지성껏 공양하였다. 그러다 어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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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 호랑이 관련 설화는 전국적으로 나타나는데 호랑이에게 물려갔던 사람이 다시 죽게 되었다는 설화. 1980년 6월 18일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조금리의 이영렬[남]이 제보하였고 『당진군지』(당진군, 1997)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을 뻔 했는데 안 죽고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떤 사람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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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채운동에서 차씨의 번성에 대해 전해 오는 이야기. 「호랑이와 차씨 번성 전설」은 호랑이를 구원한 차씨 집안의 번성과 관련해 당진시 채운동에서 전해지는 전설이다. 위기에 처한 호랑이를 구원한 차씨의 은혜를 갚기 위해 호랑이는 길(吉)한 묫자리를 점지해 준다. 호랑이의 보은 덕분에 명당을 얻은 차씨 집안은 자손이 번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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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사무소에서 주관하여 발행한 고대면의 면지. 『고대면지』는 고대면사무소와 고대면지 편찬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2001년에 고대면 최초로 만든 지지(地誌)이다. 1983년에 발간된 『당진군지』를 기초로 하여 항목을 작성하였다. 『당진군지』는 총 8편으로 지리편, 역사편, 행정편, 산업 경제편, 문화편, 성씨 인물편, 문화재와 사적지편, 민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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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군청에서 주관하여 발행한 당진군 지지[증보판]. 『당진군지』는 당진군청과 당진군지 편찬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1994년에 시작하여 1997년에 간행한 두 번째 관찬 지지(地誌)이다. 1983년에 최초로 발간된 단행본인 『당진군지(唐津郡誌)』를 기초로 하여 항목을 작성하였다. 『당진군지』는 지리편, 역사편, 행정편, 산업 경제편, 문화편, 성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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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당진읍사무소에서 주관하여 발행한 당진읍 지지. 『당진읍지』는 당진읍사무소와 당진읍지 편찬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2011년에 발행한 당진읍 최초의 지지(地誌)이다. 1983년에 발간된 『당진군지』를 기초로 하여 항목을 작성하였다. 『당진군지』는 총 8편으로 지리 편, 역사 편, 행정 편, 산업 경제 편, 문화 편, 성씨 인물 편, 문화재와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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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사무소에서 주관하여 편찬 위원회가 발행한 대호지면 지지. 『대호지면지』는 대호지면사무소와 대호지면지 편찬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2002년에 대호지면 최초로 만든 지지(地誌)이다. 1983년에 발간된 『당진군지』를 기초로 하여 항목을 작성하였다. 『당진군지』는 총 8편으로 지리편, 역사편, 행정편, 산업 경제편, 문화편, 성씨 인물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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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사무소에서 주관하여 발행한 석문면 지지(地誌). 『석문면지』는 석문면사무소와 석문면지 편찬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2015년 석문면 유사 이래 두 번째로 만든 지지(地誌)이다. 당진 지역에서 발간된 읍면지 가운데 10번째로 약간 늦게 발간되었다. 1983년에 발간된 『당진군지』를 기초로 하여 항목을 작성하였다. 『당진군지』는 총 8편으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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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사무소에서 주관하여 발행한 송산면 지지(地誌). 『송산면지』는 송산면사무소와 송산면지 편찬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2013년에 송산면 최초로 만든 지지(地誌)이다. 1983년에 발간된 『당진군지』를 기초로 하여 항목을 작성하였다. 『당진군지』는 총 8편으로 지리 편, 역사 편, 행정 편, 산업 경제 편, 문화 편, 성씨 인물 편, 문화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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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면사무소에서 주관하여 발행한 송악면 지지. 『송악면지』는 송악면사무소와 송악면지 편찬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2009년에 송악면 최초로 만든 지지(地誌)이다. 1983년에 발간된 『당진군지』를 기초로 하여 항목을 작성하였다. 『당진군지』는 총 8편으로 지리 편, 역사 편, 행정 편, 산업 경제 편, 문화 편, 성씨 인물편, 문화재와 사적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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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사무소에서 주관하여 발행한 순성면 지지(地誌). 『순성면지』는 순성면사무소와 순성면지 편찬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2016년에 편찬한 순성면 최초의 지지(地誌)이다. 당진 지역 12개 읍면지 가운데 11번째로 발간되었다. 1983년에 발간된 『당진군지』를 기초로 하여 항목을 작성하였다. 『당진군지』는 총 8편으로 지리 편, 역사 편,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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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 사당이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오산 차천로의 문집.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1556~1615]는 선조 대부터 광해군 대까지 활동했던 문신이자 시인이다. 뛰어난 시재(試才)를 지녀 조선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문명을 날렸으나 재능과 포부를 다 펴지 못하고 불우한 삶을 살았다. 오산 차천로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크게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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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도문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 학자인 이행의 개인 문집. 『용재집(容齋集)』은 이행(李荇)의 문집으로 두 번 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초간본은 알 수 없고 중간본은 1634년 청주목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10권 3책으로 된 책이다. 이행은 조선 후기의 문인, 학자로 관향은 덕수 이씨(德水李氏), 호는 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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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사무소에서 주관하여 발행한 우강면 지지. 『우강면지』는 우강면사무소와 우강면지 편찬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2003년에 우강면 최초로 만든 지지(地誌)이며 2008년에 증보판이 발간되었다. 1983년에 발간된 『당진군지』를 기초로 하여 항목을 작성하였다. 『당진군지』는 총 8편으로 지리편, 역사편, 행정편, 산업 경제편, 문화편, 성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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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사무소에서 주관하여 발행한 정미면 지지. 『정미면지』는 정미면사무소와 정미면지 편찬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2012년에 정미면 최초로 만든 지지(地誌)이다. 1983년에 발간된 『당진군지』를 기초로 하여 항목을 작성하였다. 『당진군지』는 총 8편으로 지리 편, 역사 편, 행정 편, 산업 경제 편, 문화 편, 성씨 인물 편, 문화재와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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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인 조선 후기 문신 안민학의 개인 문집. 『풍애집(楓崖集)』은 풍애(楓崖) 안민학(安敏學)의 개인 문집으로 1권에는 시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절구(絶句), 율시(律詩)에 다 능해서 오언 율시(五言律詩), 칠언 절구(七言絶句)를 많이 썼고, 고시(古詩)도 상당 편수가 수록되어 있다. 2권에는 기(記), 서(書), 제문(祭文), 잡저(雜著) 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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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사무소에서 주관하여 합덕읍지 편찬 위원회가 발행한 합덕읍 지지. 『합덕읍지』는 합덕읍사무소와 합덕읍지 편찬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1997년에 합덕읍 최초로 만든 지지(地誌)이다. 1983년에 발간된 『당진군지』를 기초로 하여 항목을 작성하였다. 『당진군지』는 총 8편으로 지리편, 역사편, 행정편, 산업 경제편, 문화편, 성씨 인물편,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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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소재했던 면천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1919년 3월 10일에 일으킨 독립만세운동. 1919년 고종의 인산에 참례한 원용은(元容殷)은 귀향한 후, 면천 공립 보통학교[현 면천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3월 10일, 4개 학년 90여 명을 인솔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가행진을 하며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주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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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당진시 송산면 가곡리(佳谷里)는 1980년 가곡 1리와 가곡 2리로 행정리가 나누어졌다. 가곡 1리는 동쪽으로 동곡리, 북쪽으로 가곡 2리, 남쪽으로 서정리와 인접한 마을이다. 가곡 2리는 동쪽으로 동곡리, 남쪽으로 가곡1리, 북쪽으로 아산만을 끼고 경기도 평택시와 인접한 마을이다. 현대 제철 산업 단지 건설로 마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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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한 법정리. 가교리(佳橋里)는 기지시리의 남쪽에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중앙에는 1958년에 준공한 송악 저수지[가교 저수지]가 있다. 유명한 신암산에 구예의 무덤과 보물 제987호인 신암사 금동 여래 좌상이 있다. 이 밖에 구서와 구예의 신도비가 있다. 현재는 가교 2리를 중심으로 중소 공장들이 입지하고 있다.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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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가학리는 송악읍 소재지에서 북동쪽 한진 방향으로 1㎞ 지점에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대부분이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남쪽에는 오룡산이 있으며, 기지시리에서 발원한 가학천이 동북으로 흘러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 서원천에 유입한다. 지방도 619호선이 기지시에서 한진 방향으로 마을을 통과하여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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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갈산리(葛山里)는 순성면의 북서쪽 끝에 있는 마을이다. 구릉성 지대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당진 시내와 합덕 간을 연결하는 지방도 615호선이 마을을 지나가며, 유명한 시인 윤곤강의 묘소가 있다. 갈산리는 산이 갈모처럼 생겼으므로 갈뫼, 갈미 또는 갈산(葛山)이라 하였다. 갈산리는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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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강문리는 삽교천 서쪽변의 소들강문 평야 지대에 위치한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낮고 평평한 평야에 기반식 경지 정리가 잘된 마을로 가옥은 높고 마른 땅에 들어서 있다. 1970년대까지 인천으로 증기선이 다니던 부리포 포구가 있다. 강문리는 조선 시대 아산만의 최대 해상 활동의 근거지인 범근내(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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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로서의 개신교. 기독교(基督敎)[개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교훈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로서, 천지만물을 창조한 유일신을 섬기고,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다. 당진 지역에는 1895년 면천 감리교회 창립과 1905년 삼화 감리교회 창립을 시작으로 지역 내에 기독교 대한 감리회 교단 소속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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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거산리(巨山里)는 신평면 최대의 인구 밀집 지역으로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면소재지에서 떨어져 있음에도 상업 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국도 32호선, 34호선이 마을을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지만 현재는 공장과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마을 북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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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내에서 재화, 용역 또는 서비스의 생산, 분배, 소비 등을 하는 일련의 활동 과정. 당진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충청남도에서 최고의 오지에 해당되는 전통적인 농어촌 마을이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서해 대교, 서해안 고속 도로 등의 개통으로 수도권과 1시간대 생활권으로 편입된 이후 경제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2009년 5월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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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갈산리에 있는 윤병표의 아내 경주김씨의 열행비. 경주김씨(慶州金氏)[1880~1907]는 칠원 윤씨(漆原尹氏)[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윤병표(尹炳杓)[1879~1907]의 아내다. 남편이 1907년 2월 29일, 28세의 젊은 나이에 질병으로 사망하자 예법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경주김씨는 남편이 사망한 지 불과 13일 만인 3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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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고대리(古垈里)는 당진시 송악읍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12.5㎞ 지점에 있다.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아산만과 접하고 있는 북쪽에는 안섬 포구가 있다. 고대리의 안섬 포구는 일제 강점기에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석천리 남포 나루를 통해 한양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서쪽에는 송산 방조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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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서쪽에 있는 법정면. 고대면(高大面)은 서쪽의 고산봉(高山峰)을 중심으로 대부분 완만한 구릉으로 이어지는 서고 동저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동부의 저지에는 논과 밭이 발달되어 있으며, 북부의 당진시 석문면과 인접한 지역에도 간척에 의해 조성된 염전이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개답되어 농경지로 변했다. 한때 당진포를 비롯하여 삼포 등 많은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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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대촌리에 있는 기독교 대한 감리회 교단 소속 개신교회. 고대 중앙 감리 교회는 당진시 고대면 지역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고대중앙감리교회는 1957년 1월 27일 슬항 감리교회 대촌 기도처로 창립하였다. 대촌 기도처의 명칭은 처음 설립된 당진군 고대면 대촌리의 지명을 따라 지었다. 첫 성전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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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남도 당진 지역 역사와 문화. 고려시대 성종은 전국을 12목으로 나누어 관리하였는데, 이 때 당진 지역은 홍주목 관할이었다. 통일신라 때부터 사용했던 혜성군[현 면천면]과 당진현, 신평현의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고려는 1018년(현종 9)에 행정 구역을 5도 양계로 개편했고, 당진 지역은 양광도(楊廣道)에 소속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정세의 변동과 인물의 등장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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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고산리에 있던 조선 시대 봉수.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서부와 대호지면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는 고산[164m]은 해발 고도는 높지 않지만 인근 산천을 경계하기 좋은 위치에 있는 산이다. 고산의 정상에는 봉수 터가 있는데 크기가 23×21m 정도이다. 이 봉수 터가 바로 조선 시대 국가의 통신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고산 봉수(高山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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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공포리는 마을 대부분이 간척 평야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미작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농가는 평야의 한가운데에 괴촌(塊村) 형태로 모여 있다. 소들강문 평야에 속하는 공포 평야가 넓게 전개되고있다. 마을 한가운데로 지방도 622호선이 합덕~남원포를 지나 신평 쪽으로 통한다. 350년 전 공씨(孔氏)가 갯뚝을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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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원료를 인력이나 기계력으로 가공하여 유용한 물자를 만드는 산업.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당진은 농업 중심의 산업에서 공업[제조업] 중심의 지역으로 급격히 변모하였다. 그 원인은 서해안 고속 도로와 당진 대전 간 고속 도로가 개통되고 당진 평택항의 항만 시설이 개발되면서 수도권과 1시간대의 접근성이 확보되고 육로와 해상의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물류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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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광명리(光明里)는 송악읍 소재지에서 동남쪽 2.5㎞ 지점에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서쪽에 이랑들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중앙에는 자운사가 있다. 남동쪽에는 오봉 저수지가 있다. 마을 북쪽으로 당진~천안 간 국도 32호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마을 중앙으로 1996년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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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광천리는 지방도 615호선이 마을을 가로질러 지나가며, 마을 앞으로 남원천이 흐른다. 동부 산록지에 과수원이 국지적으로 분포하며 양돈 농가가 많다. 1990년대 이후 소규모 공장들이 많이 입주했다. 광천리는 승선천 변에 좁은 내가 있으므로 소광천리(小光川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시 ‘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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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지형 지물의 위로 건널 수 있게 만든 인공 구조물. 당진시의 교량은 2016년 현재 81개로, 총연장 길이는 3,851.3m이다. 시의 국도를 연결하는 11개 교량으로 총연장은 978.0m이다. 국지도 교량은 1개 교량에 총연장 28.0m이다. 지방도 교량은 5개 교량이 있고, 총연장 423.3m이다. 시도[동] 교량은 4개 교량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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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 교육의 발전 과정과 현황. 근대 이전의 당진 교육에 대한 내용은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거의 살필 수가 없다. 다만 관학으로서 향교가 두 곳, 서원이 한 곳[동악 서원]이 있었으며 그 외 서당이 여러 곳에 있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호우 지방[충남 지방]에는 공주와 홍성을 중심으로 향교가 34개 있었는데 그중 당진에는 당진과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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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가학리에 있는 교하노씨의 효열문. 교하노씨의 본명은 노지임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 남다른 효녀였다. 안씨 집안으로 시집간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병으로 사망하자 노지임은 절망하여 끼니를 거르면서도 태연하게 집안일을 보살펴 이웃에서 감동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주변에서 노씨의 재색을 아깝게 여겨 재가할 것을 권하고 다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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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법정동. 구룡동은 당진 중심지에서 약 8㎞ 떨어져 있다. 서산시 운산 쪽으로 가는 구룡 고개 근처에 있는 마을이다. 대부분의 지대가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산간 부락이다. 마을 동쪽에는 저산성 구릉지가 있으며 마을 북쪽에는 동서로 검암천이 흐르고 있다. 당진 시내와 당진시 정미면, 면천면 그리고 서산시 운산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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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구문로(具文老)[?~?]는 조선 시대 세조 때 무과에 급제하고 평안도 조전 절제사(助戰節制使)가 되었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여진 토벌에 힘을 다해 ‘흑면 장군(黑面將軍)’이라 불렸다. 구문로의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8세 구서(具緖)의 삼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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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구문로의 신도비. 구문로(具文老)[?~?]는 어려서부터 기개와 도량이 뛰어났고, 용맹과 지략을 갖추었다. 세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1461년(세조 7)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와 평안도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에 겸직으로 임명되었다. 1467년(세조 13)에 일어난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진압하여 좌익원종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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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구서의 신도비. 구서(具緖)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다.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에 세거지를 형성한 고려 충숙왕 때의 문신 면성 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예(具藝)의 고손자이다. 신도비의 내용에 따르면, 구서는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조숙하였고, 어머니가 사망하자 슬픔과 예절로써 장례를 치르고 제수를 손수 만들어 마을에서는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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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에 있는 구서·구이원의 효자 정려. 구서(具序)[1784~1855]의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여장(汝長)이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사망하자 슬픔과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러 주민들이 모두 칭찬하였다. 아버지가 70세가 넘어 위독해지자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고, 돌아가시자 3년간 애통해하며 시묘하였다. 구이원(具利原)[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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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옥금리에 있는 시내나 강을 사람이나 차량이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 구양교(九陽橋)는 국도 32호선 도로에 삽교천 방조제가 완공되기 전에는 당진에서 육상 교통으로 천안, 인천, 서울을 왕래하는 유일한 교통로였다. 구양도(九陽島)는 합덕읍 옥금리 남동쪽 구양도 다리를 중심으로 삽교천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삽교천의 평탄한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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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묘소가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구예(具藝)[?~?]는 고려 충숙왕 때의 문신으로 면성 부원군(沔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구예가 사망하자 부인이 구예의 묘소를 송악읍 가교리에 조성하고 신암사(申庵寺)를 세워 위패를 봉안하였다. 구예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구연(綾珚)의 일곱째 아들이다. 부인은 도염서 령(都染署令) 신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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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구인문(具人文)[1409~1462]은 조선 세종 때의 문신으로,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당진 정미면 봉생리에 귀향하여 은둔하였다. 성삼문의 거사가 실패하자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전하며,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두문불출하였다. 구인문의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장숙(章叔), 호는 수옹(睡翁)이다. 아버지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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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활쏘는 장소. 국궁은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가장 대중화된 무예이며, 군자는 반드시 익혀야 하는 필수 과목이었을 만큼 중요한 항목이었다. 현대에는 궁시(弓矢)도 현대화하여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일반인들이 애용하는 운동이다. 예(禮)를 중요시하며, 사법(射法)이 준엄하여 정서 함양과 인격 수양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운동이다. 당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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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서 매년 4월에 치러지는 마을 제사. 국수봉 당제는 현재는 기지시 줄다리기 행사 전야제 성격으로 지내지만 원래는 줄다리기와는 별도의 동제였다. 기지시 줄다리기가 국가 중요 무형 문화제로 지정되면서 기능 보유자로 지정받은 이우영(李禹永)이 기지시 줄다리기의 전야제처럼 지내는 것으로 시기를 조정했다고 한다. 지금은 기지시 줄다리기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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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단종의 생모인 현덕 왕후가 출생하였다고 전하는 마을. 현덕 왕후(顯德王后)는 조선 제5대 문종의 왕비이며 단종의 생모다.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 궁말은 현덕 왕후가 태어났다고 전하는 마을이다. ‘궁말’이라는 명칭은 ‘궁인(宮人)이 살았던 마을’이라는 의미인데, 주민들은 그 궁인을 비운의 제왕이었던 단종의 생모 현덕 왕후 권씨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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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후기 효자. 권제인의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율재(栗齋)이다. 권제인은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우산리에서 태어났다. 권제인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기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으며, 평소 부모의 말을 한 번도 거역한 일이 없었다고 전한다. 어머니가 이질(痢疾)에 걸려 신음할 때 권제인은 한약을 시간에 맞추어 복용하도록 온갖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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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금곡리는 송악읍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4.5㎞ 지점에 있다. 저산성 평지가 대부분의 지대를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남동쪽에 전대 저수지가 있으며, 한음 이덕형의 사당이 있다. 금곡리는 예전에 쇠[金]가 많이 나서 쇠울[金谷], 즉 ‘금곡리(金谷里)’라 하였다. 원래 면천군 초천면(草川面)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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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종교적이나 도덕적으로 꺼리거나 금지되는 언어 표현. 일상생활에서 해서는 안 되는 말을 금기어라고 한다. 금기어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금기어의 유형은 일상생활의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금기어는 사람에게 많은 충고와 견제의 효과를 제공한다. 금기어는 과학성은 떨어지나 교훈성과 도전성을 담고 있어 사회의 문화적 영역을 풍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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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금속류나 석물 등의 각종 유물에 새긴 글씨 또는 그림. 금석문(金石文)은 글자 그대로 쇠붙이나 석물에 새겨진 그림이나 글씨를 가리킨다. 금석문은 각 연대에 따라 글씨의 변천을 연구하는 데 유용할 뿐 아니라 그 내용은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데, 광개토 대왕릉비·진흥왕 순수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의 탑비는 불교사 연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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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검고 아름다운 바위[혹은 비단 바위]가 있으므로 금바위라고 하였고, 그 이름이 변하여 ‘금암리(錦巖里)’라고 하였다. 당진시 송산면 금암리는 면천군 송산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송산면 칠절리, 항거리, 은곡리, 상초리 일부와 당진군 동면 항거리와 원당리 일부를 병합하여 그대로 금암리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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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자금의 융통과 관련된 업종. 금융이란 돈의 융통 또는 영리를 위하여 사용하는 화폐의 수요 공급 관계이다. 즉, 일정 기간을 정하고 앞으로 있을 원금의 상환과 이자 변제에 대해 상대방을 신용하여 자금을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금융 시장은 기업, 가계, 정부, 금융 기관 등 경제 주체가 금융 상품을 거래하여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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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천리는 신평면의 중심 마을로 파출소, 우체국, 면사무소, 농협 등 공공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예전에는 5일장이 서는 등 인근 마을 사람들의 상업 활동지였다. 대부분의 지대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며, 마을 가운데는 쇠내천이 흐르고 있다. 국도 34호선과 지방도 622호선이 지나고 있다. 신평 초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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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가뭄에 지내는 비가 오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우리나라의 농업은 적기에 물이 공급되어야 하는 벼농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선 중기부터 보급된 이앙법으로 인해 물의 필요성은 더욱 간절해졌다. 특히 우리나라의 기후상 3~4월과 6월 말 가뭄이 빈번하여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가뭄은 국가적으로도, 지역적으로도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재해 중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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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기지시리는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송악읍의 중심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북쪽에는 아랫들과 윗들이 펼쳐져 있으며, 남쪽으로 하천이 흘러가고 있다. 틀못시가 고개를 이루어 남북간 분수계 역할을 하고 있다. 매 윤년 3월 초에 국가 무형 문화재 제75호인 기지시 줄다리기가 400여 년의 전통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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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마을 주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복을 받게 하거나 동네에 평안을 가져다 주는 말. 일찍이 우리 조상들은 어떠한 사실이 일어나기 이전의 현상이나, 또는 그 원인과 결과를 결부시켜 어떠한 인과 관계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현상이 있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징조나 전조(前兆)에 의하여 결과를 상상하고 결단을 내려 예비적인 행동을 하는 동시에 실천에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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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후기 효자. 김기연(金耆淵)[1827~1882]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고, 학문이 깊었으나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과거에 응시하지 못해 우송 처사(又松處士)라 불렸다. 김기연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년(景年), 호는 우송(又松)이다. 김기연은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금암리에서 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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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도일(金道一)[1886~1919]은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정미면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김도일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김규모,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다. 김도일은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 327번지에서 태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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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흥이 시조이고 김경일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김령김씨(金寜金氏)는 경주 김씨의 일문으로, 시조는 김시흥(金時興)이다. 당진 입향조는 16세손 김경일(金慶一)[1586~1669]이다. 김경일은 조선 후기의 인물로 입향 경위는 알려진 바 없다. 김경일의 후손들은 350여 년 동안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리를 중심으로 세거지를 형성하며 거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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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열녀. 김여란(金如蘭)[?~1627]은 정묘호란 때 안주성에서 남편 남이흥(南以興)[1576~1627]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임신 중이었음에도 자결한 열녀이다. 김여란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평안도 별마절도사를 지낸 충장공(忠壯公) 남이흥의 부실(副室)[첩]이다. 김여란은 평안도 귀성(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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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출신의 정치가 김용재(金用在)[1912~1957]는 당진시 채운동 출신으로 제헌 의원을 지낸 정치가이다. 예산 농업 학교 시절 예농 독서회 항일 운동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하였다. 광복 후 치른 제헌 의원 선거에서 이승만이 이끌던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진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1957년 4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장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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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유배 생활을 한 문신·학자. 김윤식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박지원의 손자인 개화파 박규수의 문인이다. 영선사로 청나라에 들어가 위안스카이를 만난 이후 어윤중과 함께 친청 온건 개화파를 대표하였다. 명성 황후와 대립하여 당진 면천에서 6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면천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면양 행견 일기』를 저술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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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갈산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김재기의 효자 정려. 김재기 효자문은 순성면 갈산리에 있는 효자 정려이다. 효자문 현판에는 효자 김재기 정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추증된 벼슬이 종사랑 중학교 교관임을 알 수 있다. 김재기 효자문은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갈산리에 있다. 당진 시내에서 순성 방향으로 가다가 갈산 주유소를 지나 갈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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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합덕면장. 김철호(金喆鎬)[1879~1960]는 일제 강점기에 합덕면장을 지냈다. 합덕 평야의 근간이 되는 합덕 연호(蓮湖)[합덕 방죽]을 중수하고 관리하였으며, 농업용수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김철호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김철호는 1912년 8월, 다섯 명의 동지와 함께 경비를 모아 합덕읍 합덕리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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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나산리는 남원천 동쪽 산록의 완만한 구릉성 지대에 이루어진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동쪽은 합덕읍 도곡리 소재 둔군봉[132.2m] 기슭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남원천과 접하고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어르미산, 즉 어라산(於羅山)[98m]의 이름을 따서 ‘나산리(羅山里)’라 하였다. 즉 어라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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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신리에 있는 나주임씨의 효열비. 나주임씨(羅州林氏)[?~?]는 임현수(林賢洙)의 딸이다.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용래(朴容來)에게 시집가 시부모를 극진히 섬겼다. 남편이 병이 들어 위독하자 나주임씨는 남편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하여 손가락을 찢어 선혈을 먹게 하였다. 나주 임씨는 남편이 죽은 후에 함께 죽으려 하였지만 늙은 시부모와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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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에 있는 감리교회. 난지도감리교회는 당진에서 기독교 역사가 처음 시작된 지역의 교회다. 난지도감리교회는 난지도리 주민에게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고자 설립하였다. 당진 지역에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1903년의 일이다. 미국인 선교사 로버트 알더 샤프(Robert Arthur Sharp) 선교사가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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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에서 선박이 안전하게 접안 및 정박할 수 있는 설비를 한 항구. 석문면 난지도리에 위치한 항구로 만수심이 8m에 달하여 50톤급의 선박이 접안할 수 있어 인천과 대산으로 왕래하는 여객선이 정박하였으며 교로리 도비도, 삼길포 등으로 왕래하는 여객선이 운행하였다. 현재 도비도와 소난지도, 대난지도 정기 왕복 여객선이 1일 4회씩 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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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시대와 신분에 따라 의복의 변천 과정을 볼 수 있는 복식 문화. 충청남도 당진시의 복식 문화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특성에 따라 혹은 신분에 따라 발전과 변천을 거쳐 왔다. 복식 문화의 변천 과정을 개화기와 광복 이후, 1980년대 이후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후한서(後漢書)』의 동이전 마한 조(東夷傳馬韓條)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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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자개리에 있었던 해방 직후에 설립된 초등 교육 기관. 남산고등공민학교는 1945년 면천면 자개리에 거주하는 조수형에 의해 설립되었다. 조수형은 일제 강점기 교육 사업에 전념하였는데, 처음 20~30명 정도의 규모로 면천면 자개리 2구 서정리 호두나무 안집 사랑방에서 강습소를 개설하여 문맹 퇴치에 노력하였다. 교사로는 이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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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었던 학령을 초과한 사람을 위한 교육 기관. 남산농예기술학교는 남산 고등 공민학교를 설립했던 조수형에 의해 설립되었다. 당시 문맹률이 높아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교육하고, 농촌 기술 개발을 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강습소로 출발하여 광복이 되자 중학교 과정으로 개설하여 교육하였다. 설립지는 충청남도 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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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산리는 신평면 소재지에서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전형적인 농촌 부락으로 마을 북쪽으로는 망객산과 산능으로 연계되는 완만한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쪽으로는 넓은 미작 농지가 펼쳐져 있다. 마을 남쪽은 남원천과 접하고 있다. 남산리는 신평면의 진산인 망객산[64m] 남쪽 지역이므로 ‘남산리(南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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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경리(內鯨里)는 우강면의 동남단 끝 삽교천 변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평야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마을 북동쪽은 삽교천과 접해 있다. 마을 남쪽으로 지방도 70호선이 지나며 선우 대교를 건너 아산시 선장과 통한다. 가옥들은 주로 높고 마른 땅에 괴촌(塊村)[집들이 불규칙하게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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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삽교천을 비롯한 서쪽 내포 지역에 발달한 문화. ‘내포(內浦)’라는 용어는 『고려사』, 『조선 왕조 실록』, 일제 강점기 관변 자료에 폭넓게 나타난다. 사전적 의미로 '안개'로 많이 해석되고 있는데, 그보다는 삽교천이 해면 간척되기 이전에 에스트리[나팔상 삼각강]로 육지 안쪽으로 만처럼 크게 들어와 위치하여 붙여진 명칭으로 추측된다. ‘내포’는 강원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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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의 삽교천 이서 내포 지역에 발달한 문화의 중심 도시. 당진 지역은 아산만과 삽교천을 중심으로 내포 지방의 문화 통로 역할을 하던 중심 지역으로서, 자연환경에 순응하면서 오랫동안 타지와의 이질적인 여러 문화가 융복합하여 독특한 내포 문화를 형성하였다. 당진은 예부터 충효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느 곳을 가나 생생한 충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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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서 대보름날 전날에 초가지붕의 노래기를 쫓는 풍속. 예전에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대부분의 집은 초가지붕이었다. 그래서 장마철이나 지붕을 갈 때가 되면 노래기를 비롯해서 지네 등 여러 곤충들이 지붕에 살면서 실내로까지 들어오곤 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 선조들은 정월 대보름 전날에 솔가지를 지붕에 얹으면서 노래기를 쫓는 풍속을 행했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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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농사에 쓰이던 도구.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농업과 관련한 기후 조건은 벼농사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연중 1,300㎜ 내외의 강수량, 180일 정도의 무상 기간, 2,400시간을 웃도는 일조량 등은 벼농사뿐만 아니라 과수, 원예 작물, 서류, 잡곡 등의 밭농사에도 적당한 기후이다. 따라서 농기구 역시 재배 작물과 관련된 것들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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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의 산업 중 토지 및 수경을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길러 생산물을 얻는 산업. 당진시에는 이배산, 다불산이 있고, 가장 높은 산으로 아미산[350.9m]이 당진시의 중앙에 있다. 그 외의 지역은 높고 험준하게 솟은 산들이 없는 평야와 바다이다. 1965년에 당진의 농작물 재배는 쌀이 54.9%, 보리 30.6%, 기타 잡곡 14.5%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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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시행된 농지 분배 정책. 농지개혁은 1949년 농지개혁법에 의해 농지를 농민에게 적절히 분배하여 자영농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이를 위해 미군정은 1948년 3월 중앙 토지 행정처를 설립하였고, 8월 15일 제1공화국의 성립과 함께 신정부는 농지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49년 6월 21일 법률 제31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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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서 정월 대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습. 달맞이란 충청남도 당진에서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횃불을 들고 동산에 올라가 달맞이를 하는 풍속이다. 농경 사회에서 달에 관한 행사는 풍요로과 공동체를 뭉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정월 대보름의 달맞이 행사 역시 당진 지역이 가지고 있는 농경과 어업의 특성상 매우 비중 있는 행사였다. 달맞이뿐 아니라 쥐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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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의 자연 마을로 당산 마을, 오슴 마을, 장자 마을 등이 있다. 당산 마을은 당산 밑에 있다 해서 당미 또는 당뫼라고 불리다가 후에 ‘당산’이라고 했다. 당산은 당미 마을 뒤에 있는 산으로 성황당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가뭄이 있을 때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또 예전에 지사가 동네를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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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철강 제조 기업. 1989년 한보 철강 정태수 회장은 당진에 임해 철강 공업 단지 건설을 계획하였다. 1993년 임해 철강 공업 단지 건설을 위한 매립 공사를 마치고 1995년 제1 단계 제철소 공사의 준공까지 마쳤다. 그러나 1996년 11월 외부 차입금이 약 5조 원에 이르러 1997년 1월 23일 한보 철강 부도를 선언하였다. 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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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언. 초창기의 방언 연구에서는 충청도 지역어를 경기 방언권으로 예속시켰으나 지금은 충청도 지역을 차령산맥을 경계로 하여 세 개의 방언권으로 선정한다. 제1방언권은 아산·천안 지역이며, 제2방언권은 서산·당진·홍성·예산 지역이다. 제3방언권은 서천·보령·부여·청양·공주·연기·논산·대덕·금산 지역이다. 당진 지역은 제2방언권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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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에 있던 당진현의 공세미 보관 창고. 당진 북창(唐津北倉)은 조선 시대 당진현에서 관리하던 현물 세곡을 보관하던 조창이다. 『당진읍지』를 보면 당진현에는 읍창, 북창, 해창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당진 북창은 조선 초기에 당진현의 북쪽에 설치되었던 조창으로 보관했던 공세미는 조운선을 통해 경창으로 옮겨 갔다. 당진 북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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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소난지도에 조성된 근대 개항기 항일 의병총. 한말 의병 항쟁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고, 1907년 광무 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면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당진시 석문면 소난지도는 조선 시대 조운로의 중간 기착지(寄着地)로 식량을 탈취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의병들은 소난지도를 근거지로 삼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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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읍내동에서 수요자와 공급자가 항시 또는 정기적으로 모여 상품을 매매하는 시장. 조선 시대 당진은 당진읍에 읍내장이 있었고, 2, 7일과 4, 9일에 장이 열렸으며 대표적인 산물로는 물고기, 소금, 약쑥 등이 거래되었다. 읍내장이 열흘 중에 4일 열린 것을 보면 상당히 큰 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진은 지리적으로 충청도의 북단에 위치해 있고 농경지가 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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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에 있는 고려 시대 불상. 보물 제100호인 당진 안국사지 석조 여래 삼존 입상은 당진의 불교 문화재 중 가장 대표적인 문화재이다. 안국사지에 있는 석조 여래 삼존 입상 중에서 본존불은 5m에 이르는 커다란 입상 석불이다. 삼존불의 얼굴 모양은 고려 후기 전형적인 불상의 모습으로 주변 지역의 수당리 석불 입상이나 용현리 석불 입상과 매우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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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안국사지에 있는 오층 석탑. 안국사지 석탑은 고려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직은 정확한 건립 연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최근 안국사지를 정밀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안국사지 삼존 석불 입상이 11세기 무렵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어 석탑 역시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국사는 원래 정미면 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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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진관리 영랑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전. 영랑사 대웅전(影浪寺大雄殿)은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진관리에 있는 영랑사(影浪寺)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전각이다.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영랑사 대웅전이 있는 영랑사는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진관로 142-52[진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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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능안길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의무의 묘와 신도비. 이의무 묘 및 신도비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능안길 143-26[도문리 산78-1] 덕수 이씨 묘역 안에 있다. 이의무(李宜茂)[1449~1507]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형지(馨之), 호는 연헌(連軒)이다. 지돈령 부사(知敦寧府事) 이명신(李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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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읍내동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당진 장로교회는 당진시 지역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당진 장로교회는 1954년 11월 12일에 서울 영락 교회 김성준 장로를 통해 창립되었다. 초대 담임 교역자로 윤익준 전도사가 부임하였다. 1971년 영락 교회 남선교회를 통해 2차 교회 재건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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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전개된 화서학파의 민족 운동. 화서학파(華西學派)는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의 문인을 지칭한다.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당진 지역 민족 운동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배경으로 화서학파와 연결된 성리학적 전통을 들 수 있다. ‘위정척사(衛正斥邪)’로 대표되는 한말의 성리학은 외세 침략에 적극적으로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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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읍내동에 있는 기독교 한국 침례회 소속 교회. 당진 침례교회는 복음적이고 정통적인 설교와 신앙 교육으로 신자들을 세우는 일에 주력했으며, 지역 기독교 연합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왔다. 당진 침례교회는 충청남도 당진시 지역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80년 12월 28일에 충청남도 당진시 당진읍 채운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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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있는 백제에서 후백제 시기의 저수지와 방죽. 합덕제(合德堤)를 기록한 『여지승람(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의하면 합덕제는 조선의 대표적이고도 유명한 3대 방죽으로 알려져 있다. 합덕제는 합덕 방죽, 합덕 제언, 합덕지, 연호, 연지, 연제, 하호 등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저수지에 연꽃이 만발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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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읍내동에 있는 향토 문화 연구소. 당진 향토 문화 연구소는 당진의 향토 문화를 조사, 발굴, 기록, 홍보하고 문화유산을 보존, 계승, 발전시키 당진 시민의 애향심 고취와 한국학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1983년 5월 20일 최무웅, 홍석표, 김추윤 등이 당진 학다방에서 당진 향토 문화 연구소를 설립할 것을 발기하여 설립되었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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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읍내동에 있는 감리교회. 당진에 있는 감리교회 중에서 성도 수가 가장 많은 교회이다. 당진감리교회는 당진 지역의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민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당진감리교회는 1929년 2월 17일에 임대순이 당진 남산에 기도처를 설립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임대순은 1885년 1월 20일, 충청남도 당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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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옛 당진읍성에 있었던 조선 시대 관사(館舍). 당진객사는 옛 당진읍성 안에 있던 객사이다. 공적 업무를 위해 출장 온 관리들의 숙박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 객관(客館)이라고도 한다. 『고려사』에는 고려 말 1279년(충렬왕 5) 8월부터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당진객사는 조선 초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진객사와 관련된 기록은 『세종실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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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수청동에 있는 버스 터미널. 시외버스는 운행 형태에 따라 고속형, 직행형, 일반형 시외버스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고속형은 일반적으로 고속버스[express bus]라고 한다. 시외버스 터미널은 주로 직행형 및 일반형 시외버스가 집단적으로 정류하는 터미널을 일컫는다. 시외버스 터미널은 지방 자치 단체가 여객 자동차 운송 사업에 사용하는 승합 자동차를 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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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금천리에 있는 국궁인 협의회. 국궁은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가장 대중화된 무예이며, 군자는 반드시 익혀야 하는 필수 과목이었을 만큼 중요한 항목이었다. 현대에는 궁시(弓矢)도 현대화되어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일반인들이 애용하는 운동이다. 국궁은 무엇보다도 예(禮)를 중요시 하며, 사법(射法)이 준엄하여 정서 함양과 인격수양에도 많은 도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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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조선 전기의 읍성. 당진면천읍성은 조선 시대 면천군 관아와 행정 소재지를 외침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소재지의 외곽을 둘러 돌로 쌓았던 조선 초기의 전형적인 평지 읍성이다. 면천읍성은 정확한 축성 시기가 문헌 기록에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39년(세종 21) 윤 2월에 축성을 시작하여 같은 해 11월에 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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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읍내동에 있는 지역 문화 예술 진흥 기관. 당진문화원은 지역 문화 진흥을 위하여 설립된 특수 법인이다. 「지방 문화원 진흥법」에 의거하여 지역 향토사의 연구 및 보존, 보전, 계승과 지역 문화의 발전을 위한 교육 및 축제 등 지역민의 문화 향유권을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당진문화원의 역사는 1955년 9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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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에 있는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소속 교회. 당진상록수감리교회는 한국 전쟁 기간 중이던 1951년 9월 23일에 부곡 감리교회로 창립되었다. 당진상록수감리교회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지역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당진상록수감리교회는 한국 전쟁 기간 중이던 1951년 9월 23일에 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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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원당동에 있는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소속 교회. 당진성결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 하고 있으며, 교인 간에 서로 사랑하며 지역 주민들에게도 칭찬받는 교회가 되도록 힘쓰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당진성결교회는 충청남도 당진시 지역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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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백제 산성. 성상리 산성(城上里山城)은 면천면 성상리에 있는 산을 깍아 만든 이른바 삭토법으로 축성된 토성으로, 전형적인 백제 토성이다. 당진 성상리 산성에 대한 기록이 전하는 바가 없지만 몽산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백제 시기 면천의 옛 이름인 혜군의 치성으로 쓰이다 낮은 산과 토성이라는 한계를 고려하여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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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의 최북서부에 위치한 21세기 문화 복지 도시. 당진시는 명품 자족 도시 건설을 위한 시민 헌장을 2012년에 제정하여 실천하고 있다. 아름다운 산과 바다, 기름진 땅, 하늘이 내리고 조상이 물려주신 우리 당진은 오랜 역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모든 문물이 들어오고 나간 큰 나루로 이름이 높았고 내포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해안 시대의 주역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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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천도교 당진 지역 교구. 천도교의 모체는 동학이다. 옛부터 유(儒)·불(彿)·선(仙)교 등 기성 종교가 전래되어 고유 신앙인 천신 숭배 사상을 가지고 이를 시대의 지도 이념으로 삼아 사회를 지배하여 왔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세도 정치와 탐관오리의 행패가 극심하여 삼정은 문란해지고 사회는 부패하여, 민생은 도탄에 빠져 들어 각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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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진관리에 있는 대한 체육회·충남 체육회 산하 당진시 지부. 당진시 체육회는 1996년 2월에 당진군 체육회로 출발하였으며, 1991년 5월 설립된 생활 체육회와 2013년 12월 설립된 장애인 체육회와는 별도로 운영되다가, 2015년 2월 당진시 체육회로 통합되었다가, 2016년 12월 장애인 체육회는 분리되었다. 체육 활동을 통하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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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수청동에 있는 당진시 관할 지방 자치 행정 기관. 당진시청은 충청남도 당진시를 관할하는 행정 기관으로서 지역 주민의 '함께 만드는 행복', '함께 누리는 푸른 당진'을 위해 행정 및 민원 업무를 수행하는 지방 자치 단체 관청이다. 당진시청은 당진시의 행정 및 민원 업무를 수행하여 지역 사회의 복리 증진, 지역 개발, 산업 진흥,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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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안국사지에 있는 배바위 매향 암각비. 당진 안국사지 매향 암각(唐津安國寺地埋香岩刻)은 고려 시대 향도(香徒)가 주도하여 매향(埋香)[내세(來世)의 복을 빌기 위하여 향(香)을 강이나 바다에 잠가 둠]하고 그 시기와 위치를 정미면 수당리의 배바위에 기록해 둔 매향비이다. 당진 안국사지 매향 암각은 비석이 아니라, 쉽게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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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안섬에서 풍어와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지내던 제의. 당진 안섬 당제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 안섬에서 400여 년 전부터 풍어와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지내던 제의이다. 당제는 대제와 소제로 나뉘는데, 대제는 2년마다 한다. 대체로 조라술을 담고, 장승을 세우며, 제물을 준비한다. 당에 선주들과 무당이 오르고, 기원과 축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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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초기의 읍성. 조선 시대 당진현 관아와 행정 소재지를 외침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행정 소재지의 외곽을 빙 둘러 돌로 쌓았던 조선 초기의 읍성으로 평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성곽 조에 의하면 1440년(세종 22)에 쌓았으며, 둘레가 1,954척, 높이 8척이고 안에 우물이 두 곳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 때에는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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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당진 지역에서 일어났던 동학 농민 전쟁의 전개 과정. 내포 지역의 동학은 1880년대 초에 전파되고 188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확산되었으나 1894년 5월 홍주 목사 이승우(李勝宇)가 부임하면서는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이승우는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동학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였고 관군을 동원하여 체포와 처형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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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 해안에 있던 조창. 당진포 해창(唐津浦海倉)은 옛 당진현 관할의 조창으로 당진 서창이라고도 불렸다.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 온동 마을 북서쪽에 있는 해창 마을은 조선 시대 조세 공납을 하던 해창이 있었기에 유래된 지명이다. 당진포는 백제 말부터 당나라를 왕래하는 사신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던 나루터가 있어서 ‘당진포’라고 불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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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속하는 법정리. 당진포리는 고대면의 대호 방조제 최상류 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서쪽에 대호지만을 면하고 있는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마을에 해창 미곡 처리장이 있을 정도로 간사지를 간척하여 만든 답작 지대가 서쪽의 해창 주변, 동쪽의 탁주막 주변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백제 때 당나라로 왕래하던 나루터인 당진포(唐津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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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에 있던 조선 시대 해안 방어를 위한 성. 당진포(唐津浦)는 백제 말부터 당나라를 왕래하는 사신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나루터가 있어서 ‘당진포’라고 불렸다. 당진포 나루는 외국과의 교류는 물론 세곡미를 거두어 저장하던 조창인 당진포 해창이 있어서 조정에서는 엄중한 보호와 방어가 필요했던 곳이다. 당진포진성(唐津浦鎭城)은 충청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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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조선 시대의 중등 교육 기관. 당진 향교는 조선 전기에 설립되어 당진 지역에서 중등 교육을 담당하던 대표적인 교육 기관이다. 향교는 서당에서 기초 교육을 수학한 양반의 자제들이 입학하여 수학하는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향교에서는 선현의 제사를 받들고 후진을 양성하며 학문을 연마하였으며, 조선 후기 등장한 서원과 함께 지방 교육의 중추를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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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의 안섬, 한진, 성구미 지역에서 마을 민속으로 지냈던 풍어제 제의 의식. 충청남도 당진 지역은 활발한 어로 활동과 함께 해안 지역의 많은 마을에서 풍어제가 이어져 왔다. 1960년대 들어 어로 환경의 변화와 공단과 산업 단지가 해안가에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마을에서 풍어제가 사라졌고, 오늘날에는 안섬과 한진만 풍어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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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있었던 학령을 초과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교육 기관. 1946년 공민학교 설치 요령에 따라 정상 교육을 이수하지 못한 청소년들이게 보통 교육을 실시하였다. 1949년 교육법이 제정 실시되었고 이때 공민학교가 제도화되었다. 공민학교의 수업 연한은 3년이었고 초등학교에 준하는 교과 과정을 연간 170일 이상 교육하여 문맹을 퇴치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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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에 속하는 유인도. 예전에는 석문면에 소속된 섬으로 대난지도, 소난지도 구분 없이 보통 난지도(難知島)로 불렸다. 지명 한자도 어려울 난(難) 자로, 원래 난초 난(蘭) 자가 아니다. 옹진군 대부면 풍도와 석문면 난지도 사이의 물살이 세서 조운선이 다니기 어렵기에 이름을 ‘난지도(難知島)’라고 지었다. 지명 ‘난지도(難知島)’에서 ‘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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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법정동. 대덕동은 당진 시가지와 인접하고 있는 지역이며 구획 정리가 끝나 현재 시가지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당진 교육 지원청 등이 이전하여 지역이 활성화되고 있다. 대덕동은 남쪽으로 당진~면천 간 도로를 타고 눈치 고개[노운치 고개]를 넘어서 면천~고덕~덕산 쪽으로 통하며, 지방도 615호선을 사이에 두고 당진 시내와 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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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사기소동에 있는 시내나 강을 사람이나 차량이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 당진시 사기소동에 있는 지방도 647호선의 대운산교는 정미면 대운산리라는 마을 이름에서 교량 명칭이 유래했다. 조선 시대에 덕수 이씨 육송공 판서 이선부가 정미면 대운산리의 구운미(九雲美)가 ‘운중 반월형(雲中半月形)’이란 좋은 풍수라 하여 정착하려 했다. 그러나 기존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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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전리는 합덕읍의 남단 예산군 고덕면 경계에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서부 지역은 야산 지대이고 동부 지역은 대전천이 흘러가는 백미제 저수지 주변에 답작 지대가 분포한다. 조선 시대 초기에 합덕현의 텃밭이므로 텃밭, 즉 대전(垈田)이었는데, 후에 대전리(大典里)라 하였다. 대전리는 원래 홍주군 합남면(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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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촌리는 당진~석문 간 615번 지방도가 마을을 관통하여 지나고 있으며, 산능선 골짜기 사이사이에 농경지가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북쪽의 장항천 중심으로 원장항과 대촌리 갯가말 사이에 답작 지대가 넓게 분포한다. 가장 큰 마을이므로 큰 마을, 큰말, 즉 대촌리(大村里)라 하였다. 대촌리는 원래 당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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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대촌리에 있는 옛 무덤.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대촌리 석문 방향 도로에서 100여m 거리에 있는 옛 무덤으로, 이곳 주민들은 '막무데미 밭' 또는 '막무덤'이라 부르고 있다. 충청남도 도지 기록은 막무덤을 개인의 무덤이 아닌 전쟁으로 인한 무명 용사의 집단 묘로 추측했다.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항복한 이후인 663년 백제 부흥군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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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대촌리에 있는 밀양손씨 세거지. 밀양손씨(密陽孫氏)는 통일신라 흥덕왕[826~835] 때의 효자인 손순(孫順)을 시조로 하는 성씨다. 손순은 신라 개국 당시 사로 6촌장의 한 사람인 무산대수 촌장(茂山大樹村長) 구례마(俱禮馬)의 31세손이다. 구례마는 32년(유리왕 9) 6촌장에게 성을 내릴 때 손성(孫姓)을 하사받았다. 이로써 손씨(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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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포리는 마을을 가로질러 지방도 70호선이 창리 쪽에서 선우 대교를 건너서 아산시 선장과 통한다. 삽교천 변에 있는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며, 평야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마을은 평야 가운데 높고 마른 땅에 몇 채씩 괴촌(塊村)[집들이 불규칙하게 모여서 덩이 모양으로 집단을 이루고 있는 촌락]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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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합덕리에 있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교단 소속 개신교회. 1954년 12월 20일 합덕 감리교회 기도처로 창립하여 ‘연호 감리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후에 대합덕 감리교회로 변경하였다. 대합덕감리교회는 당진시 합덕읍 대합덕리 지역에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대합덕감리교회는 1953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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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법정리 대합덕리(大合德里)는 삽교천 이서 지역에 연접해 있는 마을이다. 저산성 구릉지가 거의 없고 해성 퇴적 간석지를 간척하여 만든 벼농사 중심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평야 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남쪽으로는 삽교천과 맞닿아 있다. 대합덕리는 옛 합덕면 소재지이므로 ‘대합덕리’라고 하였다. 고려 제25대 충렬왕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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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와 고대면 당진포리를 연결하여 시내나 강을 사람이나 차량이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 ‘대호지(大湖芝)’라는 지명은 사성리 대호 마을에서 유래했다. 대호지 마을 이름은 지형이 바닷가로 길게 뻗어서 옆의 가로림만이 호수처럼 생기고 곶[串]을 이루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현재는 지명 그대로 대호 방조제가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와 서산시 삼길포리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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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있었던 중학교. 교훈은 성실, 근면, 봉사이다. 대호지재건중학교는 1967년 임창묵이 2주간의 종합 지도자 교육을 이수하고 1968년에 충청남도 당진군 재향 군인회 대호지면 분회 사무실을 임대하여 개설하였다. 학생은 남자 16명과 여자 28명이 모집되었다. 임창묵이 재건 국민 운동 당진군 사무국장으로 임명되면서 1969년 3월 1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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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도곡리는 합덕읍(合德邑) 서쪽 끝 면천면 문봉리 경계에 위치한 마을로 둔군봉 골짜기 밑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농지가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지방도 70호선이 마을 앞을 관통한다. 둔군봉(屯軍峰) 뒤의 골짜기에 위치하므로 뒷골, 즉 도곡리(道谷里)라 했다. 도곡리는 원래 홍주목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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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사람이나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든 길. 도로는 사람, 차 따위가 잘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비교적 넓은 길을 말한다. 도로법 시행령 제2조에서 도로는 차도, 보도, 자전거 도로, 측도, 터널, 교량, 육교 등 정하는 시설로 구성된 것으로서 고속 국도[지선 포함], 일반 국도[지선 포함], 특별시도, 광역시도, 지방도[국가 지원 지방도 포함],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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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합덕읍 중심지에서 옛 국도 32호선이 지나는 길목의 합덕리와 옥금리의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다. 합덕 평야에 위치하여 야산이 전혀 없고 대평야 지대 한가운데 자리 잡은 미작 중심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이 넓은 들 가운데 섬[島]처럼 되었으므로 섬말, 도리(島里)라 하였다. 도리는 원래 덕산군(德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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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문리(道門里)는 덕수 이씨(德水李氏)가 대대로 살았던 지역이다. 덕수 이씨가 과거 시험에 많이 급제하여 도문(到門) 잔치[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집에 돌아와서 베풀던 잔치]가 계속되어서 도문골 또는 도문리라 하였다. 도문리는 면천군 감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감천면 일기리와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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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에서 선박이 안전하게 입출항 및 정박 할 수 있는 설비를 한 항구. 도비도는 충청남도 당진시의 최북단 석문면 난지도리에 속하는 바위섬으로 옛날에는 가비도(加飛島)라고 불렀다. 1984년 대호 방조제 준공으로 현재 연륙화되었다. 대난지도를 오가는 연락선이 출항하는 포구 역할을 하고 있는데, 섬의 절벽이 깎아지른 듯하다. 지금은 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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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성리는 신평면의 진산 망객산 동쪽 너머, 삽교호 서쪽 신평면 한가운데에 위치한 마을이다. 대부분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도성리는 운정리에 위치한 신평현성(新平縣城)의 뒤쪽에 해당되기에 뒤재, 즉 도성(道城), 도치(道峙)라 하였다. 원래 성(城)은 순수한 우리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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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시가지에 도로나 시설 따위가 제 기능을 하도록 정리하는 일. 당진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농어촌 마을에 불과했지만, 2000년 이후 서해안 고속 도로 건설 등으로 수도권과 1시간 생활권으로 편입된 후 급성장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당진시는 2012년 1월 1일 시 승격에 따라 기존의 3읍 9면의 행정 구역에서 2읍 9면 3동으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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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도원리(桃源里)는 송악읍 소재지로부터 동쪽 10㎞ 지점에 있으며, 평야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동남쪽 제일 농장을 중심으로 송악읍의 중심 미작 지대를 이루고 있다. 황새앞들, 향원들, 원벌들, 가락이앞들 등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옛부터 복숭아꽃이 많이 있던 곳이라 ‘도원리(桃源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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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전개되었던 항일 운동. 당진의 독립운동은 대한 제국의 국권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으로 상실되어 가던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 내내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던 당진 사람들의 항일 투쟁을 지칭한다. 당진 사람들은 을사늑약을 계기로 우리의 외교권이 피탈됨을 국권 상실로 인식하고 본격적인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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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당진시 송산면은 당진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 아산만과 접하고 있는데, 동곡리는 송산면에서도 동쪽에 위치해 마을이 동향하여 있다고 해서 ‘동곡리(東谷里)’가 되었다. 동곡리는 원래 면천군 창택면의 지역에 있었다. 동목골 또는 동곡이라 하여 상동곡리, 하동곡리로 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창택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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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의 종류와 특색. 충청남도 당진시에는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렇게 특정한 지역에 분포하는 동물의 모든 종류를 열거하여 동물상(動物相)이라고 한다. 당진시의 동물상은 식물상과 함께 생물상을 구성한다. 동물상은 통상적으로 종(種)의 리스트 및 그 지역의 동물적인 특색을 가리킨다. 보통 동물상은 환경 조건, 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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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의 복지겸과 면천, 그리고 두견주에 얽힌 이야기. 복지겸(卜智謙)과 면천(沔川)과의 관계, 그리고 두견주(杜鵑酒)의 변천 과정, 복지겸의 묘소가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順城面) 양유리(陽柳里)에 조성되는 사연 등을 조명한다. 당진에서 복지겸(卜智謙)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복지겸을 잘 안다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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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의 두발 양식은 시대에 따른 당진 지역 주민들의 머리 모양의 변천. 두발 양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보인다. 신분 제도가 생기면서 머리 모양은 신분을 나타내는 형태로 변화하고 발전해 왔다. 충청남도 당진시 역시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따라 다양한 변천을 거쳐 왔다. 1. 고대의 두발 양식 충청남도 당진시의 두발 양식을 알 수 있는 것은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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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당진시 송산면 매곡리(梅谷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매전리과 은곡리에서 이름을 각각 한 자씩 따서 '매곡리(梅谷里)'라고 하였다. 예전부터 마을에 매화 낙지형(梅花落地形)의 명당이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이 ‘매곡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매곡리는 원래 면천군 송산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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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었던 근대 사립 학교. 교육을 통해서 문맹 퇴치와 애국심 함양,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였다. 매괴학교는 충청남도 면천군 비방면 소합덕 사립 매괴 소학교로 1907년에 개교하였고, 1908년 6월 14일에 충청남도 당진시 최초의 정식 사립 학교로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 구합덕 성당에 설립되었다. 오전 10시에 100여 명의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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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매산리는 신평면 소재지에서 북동쪽 끝 아산만가에 위치한 마을이다. 원래 바다 쪽으로 나온 곶이었으나 제일 농장 방조제가 완성되어 답작지가 대부분의 지대를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남동쪽에 석화산이 있으며 아산만과 접해 있다. 초대천 주변에 간척 평야인 미작 지대가 있다. 행담도는 유태계 독일 상인 오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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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특별한 어구를 사용하지 않고 연안 해변에서 하는 어업. 충청남도 당진 지역은 해안과 인접하여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에서 여러 종류의 어패류를 채취할 수 있었다. 맨손, 호미 ,삽, 조새, 갈고리 등 간단히 손에 쥘 수 있는 도구를 활용하여 조개류, 고둥류, 게류, 연체동물류, 해조류 등을 채취하였다. 2009년에는 맨손 어업이 당진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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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동에 있는 당진의 대표적 근대 사립 학교. 사립 면양학교는 1908년 4월 5일에 면천군수 박지양(朴芝陽)과 지방 유지인 이두영(李斗榮), 유석록(柳錫錄), 김동욱(金東旭)에 의해 설립되었다. 교사로는 이교순(李敎淳), 안인식(安寅植) 2인을 초빙하여 가르치게 하였다. 면양학교 교사는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초가삼간 1동을 구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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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있었던 공세미를 보관하던 조창 터. 면천 북창은 해안에 면한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에 있었던 조창이다. 면천에는 여러 조창과 사창이 설치되었는데, 그 조창 가운데 하나가 면천 북창이다.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 면천 창고 조에 보면, 면천 북창은 창택산 서쪽 해변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면천읍지』에는 북창은 36간으로 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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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서 봉기한 구한말 항일 의병. 대한 제국 시기 충청남도 면천군에서 일제 침략에 항쟁하는 의병이 크게 일어났다. 이들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계기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이 피탈된 데 항의하여 거병하였다. 또한 1907년 대한 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더욱 치열하게 항쟁하였다. 대표적인 면천 의병장으로는 최구현(崔九鉉)·이만식(李晩植)·도중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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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관사. 면천객사(沔川客舍)는 목판에 쓴 중수 기록문에 의하면 건립 연대가 1433년(세종 15)이며, 그 후 다섯 차례나 중수하였고 1662년(현종 3)에 다시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면천객사는 현판을 ‘조종관(朝宗館)’이라 양각하여 새겼는데, ‘조종(朝宗)’이란 제후가 임금을 배알하여 조회를 한다는 뜻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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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는 정자. 군자정은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다. 천연기념물 제551호로 지정된 면천 은행나무 동쪽 옆이다. 1803년 당시 면천군수였던 유한재가 면천 객사(免賤客死) 옆에 군자지(君子池)를 준설하여 연꽃을 심고, 연못 안에 조그만 섬을 만들고 섬 안에 정자를 지었다는 기록이 19세기경에 편찬된 『면천읍지』에 전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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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술희를 중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면천박씨(沔川朴氏)는 박혁거세의 후손인 박술희(朴述希)[?~945]를 중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박술희는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태사 삼중대광(太師三重大匡)에 추증되고 면천군(沔川君)에 봉해졌다. 이 때문에 후손들은 박술희를 중시조로 삼고 본관을 면천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면천 박씨는 면천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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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에 관향을 둔 세거 성씨. 면천복씨(沔川卜氏)는 당진시 면천에 본관을 둔 세거 성씨로, 시조는 복지겸(卜智謙)[?~?]이다. 복지겸은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홍유(洪儒)·신숭겸(申崇謙)·배현경(裵玄慶)과 더불어 왕건(王建)을 왕으로 추대한 인물이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는 복지겸이 말년에 딸과 함께 낙향하여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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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조선 시대의 중등 교육 기관. 면천향교(沔川鄕校)는 고려 후기[또는 조선 전기]에 설립되어 면천의 중등 교육을 담당하던 대표적인 유교 교육 기관이다. 일반적으로 향교는 선현의 제사를 받들고 후진을 양성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곳으로, 조선 후기 등장한 서원과 함께 지방 중등 교육의 중추 기관이었다. 면천향교는 충청남도 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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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당진읍에 있었던 학령을 초과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교육 기관. 낙토 건설(楽土建設)이라는 원대한 이상을 교훈으로 하였다. 낙토 건설단의 신조는 '1. 우리 단원은 먼저 자기 인격을 수련하고 민족도의 재건에 양심을 바치자 2. 처세는 정직하고 성실하라 3. 생활은 소박하고 근검하라 4. 정의와 사랑으로 단결하라 5. 창의와 개선으로 건설하라'이다. 설립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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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성(明星)과 산북(山北)에서 한 자씩 따서 명산리(明山里)라 하였다. 명산리는 원래 면천군 감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감천면 산북리와 명성리, 도문리 각 일부와 승선면의 서원리, 금학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명산리라 해서 당진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2012년 1월 1일에 당진군이 당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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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몽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삼국 시대 산성. 몽산성(夢山城)이 있는 몽산[299m]은 충청남도 당진시의 중남부 면천면 성상리·송학리와 순성면 성북리·백석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몽산성'이라 불리기도 하며, 조선 시대에는 면천군의 진산(鎭山)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면천 조에는 "몽산(夢山)이 군 북쪽 4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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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무수리 동쪽에 있는 봉화산 산맥에 옥녀 탄금혈이라 하여 인혈이 있고 그 인혈이 무수형[근심이 없는 형상]이라 하여 ‘무수리(無愁里)’라 하였다.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는 원래 면천군 감천면 지역으로 신당을 모셨음으로 '무시올'을 음차해서 무수동이라 하였다. 이후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감천면 내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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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승이 시조이고 박지가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무안박씨(務安朴氏)는 상서공파(尙書公派)이다. 입향조인 박지(朴智)[?~?]는 조선이 개국하자 고려에 충절을 지키기로 다짐하고 우두동에 입향하여 세이암에 앉아 낚시로 소일하면서 농업과 학문에 종사하였다. 후손들은 크게 번성하여 당진의 유력한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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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산성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문인환의 효자 정려. 문인환(文仁煥)[1846~1886]은 문익점의 후손으로, 1846년 2월 12일 문영휘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인환은 태어난 지 몇 해 안 되어 큰집인 정미면 산성리에 사는 문영철의 양자로 들어갔다. 여덟 살이 된 어느 날 갑자기 양아버지 문영철이 큰병이 들자 문인환은 지극한 병간호로 낫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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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학자. 문종구(文鍾龜)[1853~1897]는 한학자로 매우 청빈하게 살면서도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였다. 문종구의 본관은 남평(南平)이며, 호는 수은(睡隱)이다. 아버지는 문인배(文仁培), 어머니는 현풍 곽씨(玄風郭氏)이다. 문종구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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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문충식의 효자 정려. 문충식(文忠植)은 남평 문씨 후손으로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에서 태어났다. 직업이 한의사였던 문충식은 어머니가 병이 들어 자리에 눕자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였다. 하지만 어머니 병환이 별다른 차도가 없이 악화되어 사경을 헤매자 손가락을 잘라 어머니 입에 피를 흘려 넣었으며, 수저에 피를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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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방에서 생성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나 문자로 표현한 예술. 충청남도 당진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선조들의 문학이 전해지고 있는 고장이다. 바다와 접하고 있는 당진은 인물, 동물, 자연물, 지명, 풍수, 행위 전설과 민담, 민요가 농경 문화뿐 아니라 해양 문화까지 아우르며 전해지고 있다. 당진시 기지시리의 '기지시 줄다리기'[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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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의 문화 및 예술 관련 단체와 활동. 문화란 한 사회의 개인이나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 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며 한 사회의 중요한 행동 양식이나 상징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비롯되는 생각과 행동, 의식주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생활의 형태들인 것이다. 이렇게 모든 문화는 어느 지역에서도 대부분 비슷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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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남겨진 유산 중 역사적·문화적으로 가치가 인정되는 다양한 사물. 문화재는 외형적으로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구전(口傳)·음악·인종학적인 유산·민속·법·습관·생활 양식 등 인류의 정신적 본질을 표현하고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는 문화재보다는 ‘문화유산’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된다. 우리 나라의「문화재 보호법」에서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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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있었던 학령을 초과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교육 기관. 교훈은 정의, 근면, 박애이다. 대호지면의 뜻있는 유지들이 모여서 고등 공민학교 설립을 추진하여 1955년 3월 28일에 미호고등공민학교 인가를 얻었다. 교실은 정미면 면사무소 옆에 있던 서산군 농회 잠견 판매장 건물을 임시로 사용하기로 하고 1955년 4월 18일에 개교하였다.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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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민담은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모두 신성하다고 여기지 않으며 참이라고 전제할 필요가 없는 옛이야기이다. 대부분의 민담은 등장인물 설정과 사건 구조에서 반복이나 대립이 선명하게 도형화된 구조를 가지는데, 민담 구조의 이런 단순성과 체계성은 전승에 도움이 된다. 민담의 주인공은 평범한 범인(凡人), 혹은 그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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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생활 풍속. 민속은 한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행해 온 민중의 생활에 관한 습관을 말한다. 따라서 민속의 가장 큰 특징은 지속성과 전승성이라 할 수 있다. 민속은 일상생활과 관련된 생활 민속, 세시 풍속, 의례, 민간 신앙, 구비 전승, 민속놀이 등 매우 많은 다양한 영역을 포함한다. 민속은 마을 공동체와 그 주체인 민중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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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전해 오는 당진 지역의 생활과 습관을 반영한 전통적인 놀이. 민속(民俗)놀이는 풍속과 생활 모습이 반영되어 민간에 전하여 오는 여러 가지 놀이를 말한다. 민속놀이는 전승 놀이, 향토 오락, 민속 오락, 민속 경기, 민속 유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민속놀이는 특정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벌어지는 계절성을 지니고, 지역적인 특징에 따라 놀이의 종류와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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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이 시조이고 손윤생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밀양손씨(密陽孫氏)는 통일 신라 흥덕왕[재위 826~835] 때의 효자인 손순(孫順)을 시조로 한다. 밀양손씨 세거지는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대촌리 2구 ‘개정한천(蓋井寒泉)’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세조 때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손윤생(孫潤生)[?~?]은 당진포 진성을 순시하다가 맑고 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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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효자. 박수태(朴受泰)[1870~1944]는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효자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었지만, 양부모를 정성껏 봉양하였다. 박수태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처음 이름은 박응래(朴應來), 자는 상운(祥雲), 호는 향은(鄕隱)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사간(司諫) 박항신(朴恒臣)이고, 어머니는 숙부인(淑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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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있는 조선 후기 박순명의 효자 정려. 박순명 효자문이 세워진 연대는 1600년대로 추정되는데, 박순명의 효행은 전설로 전하고 있다. 박순명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늙은 어머니를 내외가 극진히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박순명이 징병으로 전쟁터에 나가게 되자 어머니가 날마다 정한수를 떠놓고 나라의 태평함과 아들의 무훈장수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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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은둔한 고려 말 충신. 박지(朴智)[1354~?]는 고려 말의 문신으로 조선 왕조에 출사하기를 거부하고 당진시 우두동에 낙향해 독서와 낚시로 세월을 보낸 충신이다. 박지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세이암(洗耳岩)이 있다. 자손이 번성하여 당진의 대표적인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박지의 본관은 무안(務安), 호는 어옹(漁翁)이다. 사람들은 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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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의 면천 군수를 지낸 문신·학자.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아버지가 벼슬을 하지는 않았으나 당대 내로라하는 반남 박씨 노론 명문가 출생이었다. 박지원은 학문이 뛰어났으나 1765년 처음 본 과거에서 낙방한 이후로 과거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1768년 오늘날의 파고다 공원 자리인 백탑(白塔) 근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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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쾌인(朴快仁)[1898~1950]은 1919년 서울 경성 고등 보통학교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박쾌인은 일제 경찰에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9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한 이후 귀향하여 당진 향교 명륜당에서 후진 양성에 매진하였다. 박쾌인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박쾌인은 충청남도 당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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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원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효건의 효자 정려. 박효건(朴孝騫)은 조선 영조 때 인물이다. 일찍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자선대부에 이르렀다. 박효건은 효성이 지극하여 한양에 있으면서도 한 달에 한 번씩 고향을 찾아 부모에게 문안을 드렸다. 어느 날 아버지가 병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박효건이 지체 없이 고향으로 내려가 칼로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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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향리. 박희란(朴希蘭)[1647~?]은 동생 박희전(朴希荃)[1657~1746]과 더불어 부모를 정성껏 봉양한 효자로 적군과 싸워 공을 세웠으나 전사하였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박희란의 효자 정려가 있다. 박희란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형백(馨伯)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된 박우림(朴遇霖)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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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희란·박희전의 효자 정려. 박희란과 박희전 형제는 조선 후기 사람이다. 대대로 효행으로 이름난 가문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의 행동을 통하여 효행을 몸에 익혔다. 형제는 관직에 올라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도 효를 으뜸으로 여기면서 나랏일을 보아 칭찬이 자자하였다. 박희란은 정4품, 박희전은 정2품 벼슬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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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반촌리(盤村里)는 북동쪽의 오룡산을 주산으로 하여 남동쪽으로 길게 향배한 저산성 구릉 지대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완만한 구릉성 지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마을 남서쪽에는 송악 저수지가 있다. 반소리(盤所里)와 대촌(大村)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반촌리(盤村里)라 하였다. 반촌리는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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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한 법정리. 방계리(方溪里)는 서쪽에 1958년 준공된 송악 저수지가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가교리를 시작하여 남동쪽으로 본당리, 청금리, 상오리로 연결되는 청금선이 1992년 개통되어 마을버스가 통과하고 있으며 생활권이 기지시리로 통하고 있다. 방계리는 냇가에 밤나무가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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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용연동에 있는 효자문. 백남은(白南銀)[?~?]과 백남규(白南奎)[?~?]는 수원 백씨(水原白氏) 백낙헌의 6형제 중 셋째와 다섯째 아들로 당진 용연리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였는데 슬퍼하는 것이나 장례를 치르는 예절 등이 어른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저녁마다 홀로 계신 어머니의 이부자리를 살피고 새벽에는 문안을 드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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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석리는 평지와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동쪽의 저산성 구릉지 산록에서 과수 재배가 국지적으로 이루어지며 지방도 619호선이 마을 관통하여 송악~순성~면천 간을 통한다. 흰 돌이 많이 있으므로 흰돌, 흰들 또는 백석리(白石里)라 하였다. 그릇 만드는 원료인 옥석(玉石)을 보면 빛깔이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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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을 포함한 내포 지방에 있는 백제 부흥 운동 전적지. 백제 부흥 전쟁은 660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패망한 이후 곧바로 시작되었다. 백제 부흥 전쟁은 663년 풍왕이 백강구 전투에서 패해 고구려로 망명하고 지수신(遲受信)이 이끌던 백제 부흥군이 임존성에서 마지막으로 항전하다 패할 때까지 3년간 지속된 전쟁이다. 백제 부흥군이 나당 연합군에 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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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 보덕사 입구에 있는 중수비. 보덕사 중수비(報德寺重修碑)는 조선 후기 승려 혜행(惠行)이 보덕사를 중수하면서 세운 비석으로, 전면에는 중수와 관련한 기록이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 중수할 때 시주한 신도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보덕사 중수비는 승려 혜행이 1676년(숙종 2) 보덕사를 중수하면서 세웠는데, 건립 경위는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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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복운리는 송악읍 소재지로부터 동쪽 11㎞ 지점에 있으며, 동쪽의 대부분 지역이 간척 평야 지대인 농촌 마을이다. 북쪽 부곡 공단, 남쪽에는 대규모 이주 단지가 형성되어 동광 아파트, 미소 지움 아파트 등 신도시를 이루고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복포리(伏浦里)와 상운리(上雲里)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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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한 법정리. 본당리(本堂里)는 송악읍 소재지에서 남서쪽 4㎞ 지점에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중앙 오봉천 주변에는 오봉들, 양지들이 펼쳐져 있어 미작 지대를 이루며, 동쪽에는 오봉제 저수지가 있고, 남서쪽에 달걀봉이 솟아 있다. 손동면 본리(本里)와 민력당리(民力堂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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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과, 매실, 포도 등 과수를 면내에서 제일 많이 재배하는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로이며, 과수원이 분포한다. 마을 북쪽으로 남원천이 흐르고 충적지가 분포하며, 남쪽 광천리 쪽으로 지방도 615호선이 지난다. 본리는 가울, 가곡 혹은 가회면사무소가 있으므로 중심이 되는 마을이라 '본리(本里)'라 하였다. 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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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송악읍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5㎞ 정도 떨어진 신평면과의 경계에 있다. 구릉성 지형이 대부분의 지대를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남쪽에 오봉 저수지가 있으며, 동쪽에는 봉학재가 있다. 오봉천 주변에 넓은 미작 지대가 있다. 손동면(蓀洞面) 봉치리(鳳峙里)와 저교리(杵橋里)에서 각각 한 자씩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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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소리(鳳巢里)는 순성면 소재지로 면천~송악 간 지방도 619호선과 당진~합덕 간 지방도 615호선이 마을에서 십자 모양으로 교차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마을 동남쪽으로 남원천이 흐르며 순성면사무소를 비롯하여 농협, 초중고, 우체국 등 공공 기관이 입지한 순성면의 중심 지역이다. 중명 아파트, 세안 아파트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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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있던 불과 연기로써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의 통신 제도. 봉수(烽燧)는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을 말한다. 봉(烽)[불]과 수(燧)[연기]로 신호를 보내는 것은 우역제(郵驛制)와 더불어 신식 우편과 전기 통신이 창시되기 이전의 전근대 국가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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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한 법정리. 부곡리는 큰봉[65m]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산촌 마을이었다. 예전에는 마을이 야산지로 이루어진 산간 마을이었으며 일부 과수원이 있었다. 지금은 부곡 공단이 개발되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심훈의 고향 필경사가 유명하다. 1935년에 개설한 619번 지방도가 기지시리를 경유하여 당진으로 통한다. 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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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거실 또는 부거실이 마을에서 변하여 부곡리라 하였다. 당진시 송산면 부곡리는 본래 면천군 송산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녹동(鹿洞)과 장파리(長坡里), 매전리(梅田里), 각 일부를 병합하고 부곡리(芙谷里)라 하여 당진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2012년 1월 1일에 당진군이 당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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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수리는 마을 동쪽이 아산만과 접해 있으면서도 어업이 크게 발달되지 않고 맷돌포 포구만에서만 어업 활동이 소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형적인 평지와 구릉성 지대으로 이루어져 있는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부수리 지형이 연화 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이기에 여기서 유래하여 '부수(浮水)'가 '부수(富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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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장리(富長里)는 우강면의 북쪽 신평면계에 위치한 마을로 남원천(南元川)이 마을 북쪽에서 동류하여 삽교천에 유입된다. 벼농사 중심의 평야가 대부분의 지역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삽교천 강변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삽교호와 접해 있다. 남원포 다리 밑에 있는 남원 포구에서 인천 가는 정기 여객선을 신평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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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고 그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종교. 당진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백제 말기라고 추정되는데 그 이유로는 세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백제는 고구려의 372년(소수림왕 2)보다 12년 뒤인 384년(침류왕 1)에 불교가 전래되었다.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東晋)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서 광주(廣州)의 남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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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동아 일보사가 주도하고 학생들이 실시한 당진 지역의 계몽 운동. 동아 일보사는 '민중 속으로 가자.'라는 뜻의 러시아어인 ‘브나로드(v narod)’를 내걸고 1931년부터 1934년까지 전국적 규모의 문맹 퇴치 운동을 전개하였다. 운동의 주체인 학생들은 하기 방학을 활용하여 당진 지역으로 귀향하였고, 자택과 공회당을 활용하여 문맹인 주민들에게 한글과 숫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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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법정동. 사기소동(沙器所洞)은 당진 중심지에서 남서쪽으로 6㎞ 지점의 역천 변에 위치한 마을이다. 동쪽으로 이배산에 맞닿아 있다. 운산~서산 방향으로 통하던 옛 국도 32호선이 지나고 당진~영덕 고속 도로와 서해안 고속 도로가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다. 사기소동은 예전에 사기(沙器)를 굽던 사기소(沙器所)가 있어서 사구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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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산신에게 드리는 제례 의식. 산신제는 '산치성', '산제'라고도 하는데, 크고 작은 산에서 산을 관장하는 산신에게 제사를 드려 한해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는 제례 의식이다. 지역 마을 공동체에서의 마을 신앙으로서 마을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였으며, 제사 과정에서의 위계와 협조 과정을 통한 공동체의 결속 기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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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의 하천 하구나 리아스식 해안에 제방을 쌓아 농경지 및 담수호를 만들기 위해 설치한 구조물. 충청남도 당진시에는 1981년 완공된 삽교천 방조제와 1984년 완공된 대호 방조제, 그리고 1995년 완공된 석문 방조제가 있다. 초창기 방조제의 축조는 간척(干拓) 사업을 통해 농경지의 확보가 주된 목적이었다. 특히 1980년대까지만 해도 충청남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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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형성된 삼국시대의 역사와 문화. 삼국시대의 국왕은 점차 자신의 통치력을 강화하면서 주변 부족에 대한 지배력을 키워 나갔다. 또한 율령을 반포해 통치 체제를 정비했고, 집단의 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불교를 받아들여 중앙 집권적인 고대 국가를 형성하였다. 당진 지역은 지리적 위치상 백제에 포함되었다. 백제의 일반 행정 체제는 방(方)·군(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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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있었던 중등 교육 기관.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에게 중학교 과정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였다. 1948년 고등 공민학교 규정에 따라서 수업연한 1~3년으로 제도가 설치되었으나, 중학교 교육의 보편화로 점차 사라져갔다. 교훈은 박애. 협동, 근로이다. 삼민고등공민학교는 서야 중·고등학교 이사장이었던 유재하가 설립하여 1958년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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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에 있었던 학령을 초과한 사람을 위한 교육 기관. 창학 이념은 성서의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따른 '밀알 정신'이다. 1952년, 삼봉 교회가 새로 지은 건물로 이전하자 구(舊) 삼봉 교회[당진시 석문면 삼봉리 933번지]에 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동들을 위해서 야간 강습소를 설립하였다. 설립자는 신이균, 황윤수, 리이규 장로였고, 신이균이 소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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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월리의 지명은 지형이 세 곶으로 된 데서 '삼화', 망월재가 있어서 '월윤'이라 붙여진 마을명에서 한 자씩 따서 '삼월리(三月里)'라 하였다. 삼월리는 본래 면천군 감천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창택리, 삼화리, 월윤리를 병합하여 송산면 삼월리로 개설되었다. 2012년 1월 1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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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에 있는 감리교회. 삼화감리교회는 당진에서 교회의 형태를 가장 먼저 형성한 교회이다. 삼화감리교회는 석문면 지역을 복음화하여 주민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당진에서 교회의 형태를 가장 먼저 형성한 교회가 1905년 4월 5일에 설립된 삼화감리교회다. 삼화리 지역의 현재 농경지 대부분은 당시에는 바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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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에 있는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소속 교회. 삽교천감리교회는 1980년 10월 22일에 창립하였다. 삽교천감리교회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지역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삽교천감리교회는 1980년 10월 22일에 창립하였다.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에 소재한 삽교천감리교회의 명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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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산', 즉 게 모양의 산이 있어 게뫼[윗게뫼, 아랫게뫼]라 하여 상오산(上鰲山)이라 하다가 상거리(上巨里)로 바뀌었다. 예전엔 거북 마을이라고 불렀으나 면소재지가 되어 상거래를 하면서 마을 이름이 바뀌었다. 즉, 상행위가 되는 곳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송산면 선평리와 하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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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서 상중(喪中)에 행해지던 모든 의례. 상례란 임종에서 모든 장례 절차를 마친 후 묘제까지의 전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충청남도 당진에서는 운명하는 순간부터 염, 성복, 발인, 치장, 우제, 그리고 담제와 길제까지 정성을 다해 망자를 모셨다. 유교적 윤리관에 입각해서 부모와 조상을 받든다는 관념이 강했기에 몸은 비록 떠나더라도 정신은 가족 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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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었던 폐교된 재건 중학교. 교훈은 항상 푸르게, 넓게이다. 상록재건중학교는 1970년 강용주가 설립하고 1971년 3월에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중흥리 산 62번지 중흥 농협 창고에서 김철환, 권봉상, 강용주 등이 수업을 시작하였다. 5월에 증흥 교회로 이전했고, 6월에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중흥리 산 6번지 국유지 2칸 반을 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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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었던 사립 교육 기관. 원훈은 ‘참되자, 배우자, 일하자’였으며, 생활 신조는 ‘내고장을 사랑하자, 모든 것을 남에게 바치자, 뭉치자’로 세웠다. 상록학원은 충청남도 당진군 여러 개의 4-H 클럽이 연합회를 결성하여 운영되고 있었을 때 김형환, 허동욱, 고광윤, 고종석, 심재길, 박인우, 이병순, 이재춘, 안순경, 정계훈, 한인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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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서 상중(喪中)에 있는 상제나 복인(服人)이 입는 예복. 상복을 엄숙하게 갖추어 입는 것은 가족과 영원한 이별에 대한 의식이며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죽은 사람을 예로써 보내기 위한 산 사람들의 예의 표현이다. 민간에게 상제(喪祭)의 예가 보급된 것은 고려 말기 주희(朱熹)[1130~1200]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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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상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시장이 서는 날을 장날이라고 하였다, 이 날은 대개의 경우 가까운 장을 찾아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집에서 생산한 물건을 팔고 필요한 생필품을 사는 거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에 머무르지 않고 정보의 교환, 사교장으로서의 역할도 했다. 당진은 1970년대 이전에는 교통이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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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오리(上梧里)는 신평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순성면과 송악읍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북쪽에 솟아오른 옥녀봉[81m]을 진산으로 하여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산간 마을이다. 오봉산 북쪽에 있는 오봉 저수지와 접해 있다. 마을 동쪽으로 하천변 주변에 넓은 농경 지대가 전개되며 이 가운데를 오봉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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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주민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살기 위해서 행하는 필수적인 활동으로 의·식·주와 관련한 전반적인 활동 및 풍속. 충청남도 당진시의 '생활'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고 살기 위해서 행하는 필수적인 활동이다. 당진시의 생활은 대표적으로 의생활, 식생활, 주생활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 생활의 가장 근본적인 세 가지 요소인 의식주는 당진시 주민들의 생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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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천주교 전래 과정. 서학(西學)은 서양 학문과 서양 과학 기술을 지칭하면서 동시에 천주교를 의미한다. 원래 서학은 중국의 명·청대에 들어온 예수회 선교사들이 사용한 명칭이다. 이들은 천주교 신앙을 효과적으로 전도하기 위해 전반적인 서양 문물을 소개하는 서적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보급했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은 중국을 왕래하면서 서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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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석기와 토기를 사용하던 원시 시대. 구석기시대 인류는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를 주요 도구로 이용하였다. 처음에는 거친 돌을 사용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밀한 뗀석기인 주먹도끼를 제작하였다. 그 후 격지를 이용하여 밀개와 긁개 등의 도구를 만들었다. 이들은 주먹도끼를 활용하여 짐승을 사냥하였고, 긁개와 밀개를 이용하여 가죽에 붙은 살을 긁어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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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석우리는 합덕읍 남서쪽 고덕면계에 있는 전형적인 중산간 농촌 마을로, 마을 북쪽으로 둔군봉에 맞닿아 있다. 마을 동부에서는 과수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중남부로는 석우천이 흐르고 있다. 석우리는 마을 모퉁이에 돌이 있으므로 돌모루 또는 석우리(石隅里)라 하였다. 석우리는 원래 홍주군 합북면(合北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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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 향교에서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에 문묘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 석전(釋奠)이란 공자가 남긴 인의도덕의 이상을 근본으로 삼아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효제충신의 실천과 수제 치평의 도리를 새기고 성현을 사모하는 예로서 춘추에 길일을 택하여 엄숙히 존례를 치른다. 석전대제는 1986년 국가 무형 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다. 석(釋) 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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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석포리는 송악읍 소재지에서 동북쪽 6㎞ 지점에 있다. 지방도 619호선이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으며, 평산간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이루고 있는 농촌 마을이다. 송악산 남서록에서 발원한 객개천이 흘러서 마을 남서쪽으로 흐르면서 넓은 충적지를 형성하며 서원천에 유입된다. 경지 정리가 되어 넓은 미작 지대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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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전개된 선사 시대 문화. 선사 시대는 역사(歷史) 이전 시대를 의미하며, 인류가 시작된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초기 철기 시대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충청남도 당진 지역은 충남의 서북부에 위치하며,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개펄이 발달한 리아스식 해안을 갖추고 있다. 하천의 침식을 받은 곳이 물에 잠겨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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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사기소동에 있는 선산김씨의 효부 정려. 선산김씨(善山金氏)[?~?]는 김녕 김씨(金寧金氏) 문중의 김무립(金武立)에게 시집가 당진시 용연동에서 살았다.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늙고 병든 시아버지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다. 한겨울에 시아버지가 물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면 이를 잡아 대접하였고, 꿩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산을 헤매며 꿩을 잡아서 대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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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당진읍에 있었던 사립 농업 학교. 설성농업학교가 처음 위치했던 곳은 1962년 충청남도 당진군 당진읍사무소 창고로 일제 치하시 설성 심상 고등 소학교 자리였다. 그 창고는 시멘트 콘크리트만으로 된 창고로 유리창도 없어 벽을 뚫어 창문을 내고 바닥은 가마니를 깔았다. 칠판과 당진군의 투표함 40개를 빌려다 그것을 책상으로 활용하였다. 약 8개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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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산이나 평지에 세웠던 인위적 건축물. 성곽은 고대 외적의 침입을 막아 내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성벽을 말하는데, 보통 안쪽의 것을 성(城) 또는 내성(內城)이라 하고 바깥에 쌓은 성벽을 외성(外城) 또는 곽(郭)이라 한다. 성곽은 지형적인 조건과 지역적 특수성 때문에 여러 모양으로 발달하게 되었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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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가곡리의 자연 마을. 송악읍 가곡리 북동쪽 돌출부에 있는 포구이다. 옛날에는 실치, 준치, 해태의 집산지였으나 현재는 하구언 공사로 해류가 돌아나가지 못하고 어족이 고갈되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민가는 24호가 있고,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는데, 궁선과 시류망업을 주로 한다. 끝을 의미하는' 꾸미'와 마을 지형이 '섬 모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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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成均館)의 이념과 목적을 실천하는 유교 단체인 성균관유도회의 당진 지부. 현재 우리나라에는 유교의 총본산인 성균관유도회 총본부가 있고, 각 시도에 존재하는 향교를 중심으로 지부 모임인 지부 유도회가 있다. 당진에는 가장 활동이 왕성한 성균관유도회 당진지부가 있고 그 외에 면천 지부가 있다. 유교를 중심으로 도의 정신(道義精神)을 천명하고, 윤리를 확립하여 수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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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성균관(成均館)의 이념과 목적을 실천하는 유교 단체인 성균관유도회의 면천 지부. 우리나라에는 유교의 총본산인 성균관유도회 총본부가 있고, 각 시도에 존재하는 234개의 향교를 중심으로 지부 모임인 지부 유도회가 있는데, 당진에는 성균관유도회 면천지부가 있고 그 외에 당진 지부가 있다. 유도회 면천 지회 역시 유교를 중심으로 도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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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합덕읍 소재지 인접한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신설된 국도 32호선이 마을을 가로질러 지나가며 지방도 40호선과 마을 북서쪽 끝에서 교차한다. 마을이 합덕 평야 서쪽 끝나는 언저리에 있으며 동쪽으로 농지가 펼쳐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꼭대기에 토성 터가 있고, 석우리(石隅里)와의 경계에 있는 성재[城山] 동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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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백제 토성. 성동산성(城東山城)은 삼국 시대 백제 토성으로, 산 능선을 따라 퇴뫼식으로 토축하여 성벽을 쌓은 산성이다. 백제 시기에는 합덕 지방의 치성(雉城)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성동산성은 후백제 견훤이 축조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합덕을 차지하는 세력이 전체적인 패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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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북리(城北里)는 당진의 최고봉 아미산 동쪽 산록에 있는 중산간 마을로 당진~합덕 간 지방도 615호선이 지나간다. 마을 대부분이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1993년에 폐교된 유동 초등학교 자리에 아미 미술관이 개관해 있다. 서쪽으로는 아미산을 경계로 면천면과 접한다. 성북리는 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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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산리는 고대면 소재지에서 최북단 석문면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산 능선 골짜기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어 국지적으로 과수원이 분포한다. 마을 서쪽에는 농지가 펼쳐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성산리는 성산 1리 뒷산에 옛 토성터가 있으므로 ‘성산리(城山里)’라 하였다. 성산리는 원래는 당진군 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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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원리는 삽교천 서쪽 소들강문 평야 지대 한가운데에 위치한 마을이다. 대부분의 지대가 낮고 평평하며 경지 정리가 잘 이루어져 있는 평야인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지방도 70호선이 마을 남쪽으로 지나 선우 대교를 건너 아산 땅과 통한다. 성원리는 성씨(成氏)가 간사지에 둑을 쌓아 올려서, 즉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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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원당동에 있는 통일교의 단체. 통일교의 시초는 1954년 한국인 문선명에 의해 창시된 종교이다. 우주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완성시키려는 것이라 하며, 통일교 신앙의 핵심은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라 한다. 통일교인의 궁극적인 삶은 메시아적 삶이라고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한 부류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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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우강면의 서쪽 끝 합덕에서 당진가는 옛 국도 32호선 변에 위치한 마을이다. 완만한 구릉성 지대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과수원이 부분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세류리는 옛 면천군 범천면 세류리 지역으로 시룻골, 세류동(細柳洞), 즉 세류리(細柳里)라 하였다 한다. 세류리는 옛 면천군 범천면 세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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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를 근거지로 1906년에서 1908년 사이에 활동한 항일 의병. 의병 항쟁은 1895년 명성 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의 공포로 시작되었고,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면서 다시 재연되었다. 그리고 1907년 광무 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 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면서 의병 전쟁으로 격화되었다. 당진시 석문면에 있는 소난지도는 당진 지역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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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있는 평야. 소들강문은 소들과 강문이 합쳐져 지명이 된 경우이다. '소들'의 어원은 철종 때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서 '우평(牛坪)'이라는 말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내포 지방의 방언인 솟뜰이란 말의 어원과 일치한다. 솟뜰이란 입술의 인중과 같이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 바다에서 퇴적의 결과 생겨난 섬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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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소반리는 구릉지가 전혀 없이 낮고 평평한 소들강문 평야가 마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삽교천과 접해 있다. 가옥들은 평야 가운데 약간 높고 마른 땅에 불규칙하게 모여서 덩이 모양의 촌락 집단 형태를 취하고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소포리(小浦里)와 반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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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소소리는 합덕읍(合德邑)의 북서쪽 끝에 위치한 마을로 당진~합덕 간 지방도 615호선이 마을을 관통하며, 신국도 32호선이 개설되었다. 마을 서북쪽에 회태산이 있고 서남쪽으로 석우천의 지류가 흐른다. 소소리는 합덕 방죽인 연호(蓮湖)의 수원을 이룬 안쪽 골짜기가 되므로 소속골, 소소골, 즉 소소리(素素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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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풍자나 교훈을 담아 비유의 방법으로 서술하는 관용 어구. 일반적으로 속담은 낱말은 아니지만 특별한 문화적·사회적 관념을 나타내기 때문에 어휘에 준하는 것으로 다루어 사전에 등록된다. 어떤 표현 하나가 속담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선 속담은 개인의 비유의 발언에서 비롯한다. 그 비유는 처음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기발한 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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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국문학자이자 대학교수. 손낙범(孫洛範)[1911~1984]은 일제 강점기에 경성 제국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국문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국문학자이며 대학교수이다. 손낙범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기헌(箕軒)이다. 아버지는 손창현(孫昌鉉), 어머니는 신평 이씨(新平李氏)다. 손낙범은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진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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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봉운(宋逢云)[1891~1919]은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정미면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의 발포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송봉운의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아버지는 송일기, 어머니는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송봉운은 충청남도 당진군 대호지면 사성리 20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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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산리는 우강면의 서쪽 합덕읍 초입에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서쪽은 야트막한 당산이 있고 창리천, 송산천의 하천 연변에 농지가 펼쳐져 있다. 선장과 통하는 지방도 70호선이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솔뫼 성지와 면사무소가 있다. 송산리는 주변이 낮고 평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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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법정면. 송산면(松山面)은 충청남도 당진시 2개 읍·9개 면·3개 동 가운데 북부에 자리한 법정면이다. 송산면은 당진 시내에 물자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함으로써 과거에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2000년 서해안 고속 도로의 송악 IC가 완성되고, 현대 철강 단지가 개발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 송악읍에 가장 인접한 송산면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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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있었던 비인가 학교. 교훈은 근면, 명랑, 단결이다. 인웅환은 충청남도 당진군 석문면에서 재건 국민 운동 석문면 촉진회 간사직을 하면서, 1963년에 석문 재건소를 설립하였다. 1971년 53명의 학생을 모집하여,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삼월리 송산 버스 정유소 근처인 송산 교회 건물을 빌려 송산재건중학교를 설립하였다. 인웅환은 197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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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석리(松石里)의 명칭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송산(松山)[소탑산]과 백석(白石)에서 한 자씩 따서 '송석리(松石里)'라 하였다. 송석리는 본래 면천군 송산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백석리, 하초리, 양지리, 상초리, 단우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당진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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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중흥리 송악산 위에 있던 석성. 송악산(松嶽山)은 송악읍 중흥리 송악 초등학교 뒷산으로, 송악읍 중흥리·석포리·정곡리·월곡리에 걸쳐 있다. ‘송악산’의 명칭은 ‘숭학사’에서 왔다고 한다. 송악산 중턱에 숭학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원래 송악산의 이름도 숭학사가 있던 산이라 하여 ‘숭학산’이었는데, 이것이 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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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동북쪽에 있는 법정읍. 송악읍은 동쪽은 아산만을 건너 경기도 평택시, 서쪽은 송산면(松山面), 남쪽은 신평면(新平面), 북쪽은 아산만을 사이에 두고 경기도 평택시·화성시와 마주하고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송학산의 이름을 따서 송악면(松嶽面)이라 하였다. 송악산은 '소나무가 울창한 큰 산'이란 뜻이다. 악(嶽)이란 옛날 나라에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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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매곡리에서 활동한 조선 전기의 학자. 송익필(宋翼弼)[1534~1599]의 본관은 여산(廬山), 자는 운장(雲長), 호는 구봉(龜峯),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할아버지는 직장(直長)을 지낸 송인(宋璘), 아버지는 판관 송사련(宋祀連), 어머니는 연일 정씨(延日鄭氏)이다. 송익필은 재능이 비범하고 문장이 뛰어나 동생 송한필(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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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해주 오씨 문중 묘역에 돌로 만들어 세운 등. 장명등(長明燈)은 분묘 앞에 세운 네모진 모양의 석등이다. 무덤 앞이나 사찰의 경내에 세워진 장명등은 받침대와 몸체 부분·지붕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명등의 기능은 본질적으로 묘역이나 건물의 외부 공간을 밝히는 데 있으나, 분묘의 장명등은 조선 시대 피장자의신분을 표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분묘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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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의 산업 중 수산 동식물을 포획, 채취하거나 기르는 산업.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은 내륙의 농업과 더불어 연근해 수산업이 필연적으로 같이 발전해 왔다. 더욱이 한반도의 연근해는 높은 조수 간만의 차이, 적당한 수온과 평온한 조류, 질 좋은 갯벌 등이 많은 수산 자원을 생성하게 했으며, 이와 자연 조건에 힘입어 오랜 세월을 바다와 수산 자원에 의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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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주로 은유를 써서 대상을 정의하는 언어 표현. 수수께끼는 기억하기가 아주 간단하고 전달과 보급이 쉬울 뿐 아니라, 개인 창작의 것이 아니고 심리적 및 기능적 필요에서 생겨난 인간적 언술(言述)의 근원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수수께끼는 다른 구비 문학과는 달리 화자(話者)와 청자(聽者) 쌍방이 참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구성은 질문과 답변의 형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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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당진읍 수청리에 있었던 교육 기관. 문교부령으로 각종 학교가 있었는데 정규 학교는 아니지만 도교육 위원회에서 의결하여 정부에서 허가한 학교가 있던 때로 광복 후 1948년부터 1950년 초까지 2년여 동안 사랑방을 빌려 문맹 퇴치 운동을 하였다. 설립 장소는 수청 회관에 수청 공민학교라고 이름 붙이고 김상현이 중심이 되어 김동선, 차운회, 차인회, 김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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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법정면. 순성면의 서쪽은 면천 경계에 당진 최고봉인 아미산[350.9m]을 접하고 있는 구릉성 지형을 하고 있으며, 면의 중심과 동쪽으로는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특히 남원천 연변의 충적지에 답작 지대가 넓게 펼쳐진다. 남서쪽은 순원[면천] 저수지와 인접하고 있으며, 몽산에서 발원한 남원천이 북동쪽으로 가로지르며 흐르다가 삽교천에 유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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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군에 있던 조선 시대 공무를 담당했던 역참. 순성역(順城驛)은 순성면 양유리 역말에 있었는데 구화역이라고도 부른다. 『면천읍지』에 보면, "순성역에는 말 14필,역리 20명 노 15명, 비 1명이 있었으며, 금정역에 속해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행 등이 1531년(중종 26)에 지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면천군 역원 조에 보면. "순성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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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속하는 법정리. 슬항리(瑟項里)는 고대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가다가 할미당 고개에서 오른쪽으로 마을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나타난다. 역천의 하류 지역으로 석문호의 최상류에 있다. 석문 방조제의 간척 공사로 대단위 농경지가 조성되어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지형이 거문고 비슷한 비파[비아]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비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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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0월 24일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 승전곡에서 내포의 동학 농민군과 이들의 진압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 1894년 7월 일본군들의 경복궁 불법 점령 이후 내정 간섭이 심화되자, 이른바 동학 농민 전쟁의 2차 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내포의 동학 농민군들도 여미벌에서 총기포(總起包)를 준비하고 계획하고 있었다. 이때 이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아카마츠[赤松國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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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시곡동에 있는 시내나 강을 사람이나 차량이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 시곡동(枾谷洞)은 당진시의 동쪽 지역으로 감나무가 많이 있어서 감골 또는 한자 표기로 '시곡(枾谷)'이라는 마을 이름을 사용한다. 당진시 시곡동을 지나는 국도 32호선을 연결하는 교량에 ‘시곡’이란 마을 지명을 사용했다. 시곡교는 국비 전액으로 투자되었으며 사업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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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법정동. 시곡동(柿谷洞)은 당진 중심지에서 국도 32호선을 타고 동쪽으로 5㎞ 정도 떨어진 송악읍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대부분이 시곡천을 중심으로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의 매봉산을 비롯하여 요강산, 태봉산 등 100m 미만의 야산들이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국도 32호선과 서해안 고속 도로가 지나는 당진시의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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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시곡동에 있는 500년 된 소나무. 다박솔[다박송]은 500년 된 노거수(老巨樹)로 아름답고 웅장하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가지가 말라죽어, 이변(異變)을 사전에 계시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다박솔은 지표면에 올라오면서 곧바로 가지가 나뉘기 때문에 줄기에서 가지가 뻗어나가는 일반적인 소나무와는 그 모습이 다르다. 그래서 다박솔은 각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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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생육하고 있는 식물의 모든 종류. 우리나라의 식생대를 크게 북부와 중부, 남부로 구분할 경우 당진시의 식생대는 중부에 속한다. 중부는 장산곶과 원산만을 잇는 선과 충청남도의 태안반도와 영일만을 연결하는 선 사이를 말한다. 그러나 당진시는 기후적으로 차령산맥 북사면에서 멸악산맥 남사면 사이에 나타나는 중중 서안형 기후대에 속한다. 이에 따라 당진시는 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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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문신. 신경보(申慶普)[1688~1772]는 당진시 석문면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평산 신씨의 인물로 조선 후기 문신이다. 신경보는 진사에 급제한 후, 면천 군수를 중심으로 여러 곳의 지방관을 역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어 정조 때 청백리로 선정되었다. 신경보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천보(天甫), 호는 은포(隱浦)이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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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신경일의 효자 정려. 신경일(申慶一)[1675~1735]은 1675년 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서 아버지 신기와 어머니 한양 조씨 사이의 4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신경일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였다. 또한 형제간에 우애 깊고 어른에 대한 예의가 남달랐다. 신경일이 열 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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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당리는 신평면 소재지에서 동남쪽 우강면 경계 남원천 변에 위치한 마을이다.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남쪽으로는 남원천과 접해 있으며 마을 동쪽은 삽교호와 접해 있다. 예전에 신당(新堂)이 있었는데, 신당의 머리쪽에 위치하여 신당머리, 신당리(新堂里)라 하였다. 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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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합덕읍 남동쪽 최남단에 있으며, 삽교천 연변에 펼쳐진 대평야 지대에서 벼농사 중심의 전형적인 수전 농업을 하는 마을이다. 평야 지대에 위치하여 대부분 농경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 남동쪽으로 삽교천이 맞닿아 있다. 신리는 간석지를 인위적으로 개답하여 새로 생긴 마을이라 새말, 신리(新里)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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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일대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유적지. 당진 지역에서는 해안 및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대난지도 유적 외에 초락도, 교로리 등지에서도 패총 유적이 발견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우두리 2지역, 석우리·소소리·유곡리·기지시리 내기 유적 등에서 주거지와 야외 노지 등의 생활 유구들이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충청남도 당진시 지역은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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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신석리는 합덕읍 동남쪽 삽교천변 합덕 평야에 자리하고 있는 전형적인 미작 중심 농촌 마을이다. 마을 동남쪽으로 삽교천과 접해 있다. 야산이 전혀 없으며 가옥들만 평야 가운데 있는 괴촌(塊村)을 이룬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신평리(新坪里)와 흑석리(黑石里)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신석리(新石里)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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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송리는 우강면 부장리, 세류리, 원치리와의 경계에 있으며, 신평면에서 최남단에 위치한 마을이다. 대부분이 남원천 유역의 간척 평야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마을 북쪽으로 남원천이 흐르고 있다. 신포리(新浦里)와 송오지리(松五之里)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신송리(新松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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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기성 종교에 대항하면서 새로 일어난 종교. 일반적으로 신종교(新宗敎)라는 용어는 사회 전역에서 자리 잡고 있는 기성 종교들과 비교하여 성립 시기가 짧거나 새롭게 탄생한 종교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신종교는 기성 종교와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의 신도 수와 교단 조직 그리고 교리 체계 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성립 시기가 짧다는 이유와 기성 종교와 주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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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사용되는 신체와 관련된 특유한 단어나 언어적 현상. 방언의 변천은 지리적, 문화적, 정치적인 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지리적으로는 교통이 원활히 소통되는 곳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전파가 빨리 이루어진다. 문화적으로는 문화가 발달한 곳에서 발달하지 못한 곳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러 요인으로 인한 방언의 전파에도 불구하고 자기 방언의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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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촌리는 삽교천 서쪽변 소들강문 평야 지대에 있는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며, 낮은 평지가 마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가옥들은 낮은 평지 가운데 높고 마른 곳에 괴촌(塊村)[집들이 불규칙하게 모여서 덩이 모양으로 집단을 이루고 있는 촌락] 형태로 뜸을 만들어 들어서 있다. 삽교천 연변의 간사지를 간척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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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천도교 간부이자 독립운동가. 신태순(申泰舜)[1884~1929]은 충청남도 당진시 당진동 대덕리 토골 853번지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고향에서 한학을 배운 후 일찍이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1904년 김현구, 박용태 등과 함께 천도교 당진 교구를 창설하는 데 공헌하였고,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고향을 떠나 상경하였다. 이후 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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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조선 시대의 돌미륵. 신평 돌미륵은 주민들이 믿음의 대상으로 삼았던 민간 신앙의 유적이다. 지역 사회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미륵을 조성하고 신앙하는 일은 매향 의식과 더불어 전통 사회의 민간에서 흔히 행해지던 일이다. 신평 돌미륵은 전통 시대에 마을 수호와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특기할 사항은 신평 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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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있었던 학령을 초과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교육 기관. 1956년 4월 15일 충청남도 당진군 신평면 거산리에 살던 이창구에 의해 설립되었다. 교사(校舍)는 신평면 면사무소 내 신평면 의회실을 이용하였으며, 학생은 10명이었다. 당시 교직원은 교장에 최채진, 교사에 김연묵, 안완수, 이풍구 등 3명이였다. 이창구가 신평면장으로 재직시 도청 학무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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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법정면. 신평면은 동쪽으로 삽교호와 삽교천 방조제, 아산만과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행담도가 아산만 가운데에 서해안 고속도로와 연륙하여 있다. 서쪽의 초대천 주변에는 경지 정리가 잘 된 기반식 답작 지대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우강면과 순성면을 접하고 있으며 북서쪽으로 송악읍과 접해 있다. 삽교천 방조제가 당진 9경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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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에 있는 옛 신평현의 행정 치소.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은 홍주목(洪州牧)의 월경지(越境地)[소속 읍과 따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군현의 특수 구역]로 신평현(新平縣)으로 불렸다. 신평현성은 신평현의 치소로 쓰였다. 토사를 다지는 방식으로 둘레 약 520m, 높이 7m 규모이며 해안 방어용으로 구축한 것으로 추측된다. 형식은 삼국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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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덕동에 있는 신평호씨 효녀문. 신평호씨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하여 주변에 칭송이 자자하였다. 신평호씨는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에 돌아온 후에도 아버지 공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하지만 몸이 쇠약했던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신평호씨는 급한 김에 양 손가락을 찢어 아버지에게 피를 먹였고, 그 다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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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흥리는 신평면 소재지에서 우강면 쪽으로 지방도 622호선을 타고 망객 고개를 넘어서 내려가면 나타나는 첫 마을이다. 산 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마을 남쪽으로 남원천이 흐르면서 평야 지대가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신흥리(新興里)라 하였다. 신흥리는 원래 홍주군 현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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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신흥리는 합덕읍에서 동쪽 끝 삽교천 변에 위치한 마을로 야산이 전혀 없는 저평한 대평야 지대이다. 합덕 평야의 한가운데 위치한 전형적인 미작 중심 농촌 마을이다. 마을 동남쪽으로 삽교천과 맞닿아 있으며, 70번 지방도가 최근에 삽교천 상에 개통되어 아산시 선장과 통한다. 신흥리는 들판 가운데 간척을 통하여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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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는 일제 강점기에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에서 창작 활동을 한 작가이자 영화인, 저널리스트 심훈의 자택. 심훈(沈熏)은 일제 강점기에 문단 활동을 했던 작가이자 영화인, 그리고 저널리스트이다. 심훈의 「상록수」는 우리 나라 현대 문학에서 농촌 계몽을 소재로 하고 있는 소설의 백미(白眉)라 불린다. 그만큼 소설 「상록수」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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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음력 12월 마지막날에 제를 올리는 세시 풍속. 충청남도 당진에서는 12월 말일(末日)을 섣달그믐날이라고 하며, 그 밤을 제석(際夕) 또는 제야(際夜)라고 하여 지내는 풍속이 있다. 한 해를 보내며 밤늦게까지 여러 가지 것을 정리하고 신년을 맞는 마음의 준비를 새롭게 하는 날이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묵은 해를 보내며 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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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아찬리(阿贊里)는 마을 남쪽으로 남원천이 흐르고 미작 중심의 답작 지대가 천변에 넓게 분포한다. 마을 북쪽은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북쪽 신평면 상오리와 경계에 옥녀봉[81m]이 있으며, 그 인근에 연꽃으로 유명한 오봉 저수지가 있다. 아찬리는 원래 면천군 가화면 지역이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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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고려 시대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안국사가 있었던 절터. 안국사지(安國寺址)라고 특정되는 곳은 현재 두 곳이다. 한 곳은 안국산 중턱에 있는 폐사지이고, 다른 한 곳은 현재 삼존 석불 입상과 석탑이 남아 있는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해미현 조에 따르면, 안국산은 해미현 북쪽 38리 지점에 있는데 안국사는 안국산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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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터. 안국산 봉수지(安國山烽燧址)는 조선 시대 충청도 해미현의 봉수가 있던 곳이다. 안국산 봉수는 당진현의 고산 봉수(高山烽燧)로 이어지고, 면천군의 창택 봉수(倉澤烽燧)를 거쳐 경기도 양성으로 넘어갔다. 조선 시대 통신의 중요한 요충지가 현재 당진시 정미면의 안국산 봉수였다. 충청남도 당진시에서는 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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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이 시조이고 권여경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는 고려 시대 ‘염솔부곡’이 있었다고 전하는 지역이 있다. 그곳은 6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하성리(下城里)와 우산리(愚山里)에 안동권씨(安東權氏)가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입향조는 권여경(權餘慶)[1565~1639]이며,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을 찾다가 정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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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안민학의 신도비. 안민학(安敏學)[1452~1601]의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자는 이습(而習), 호는 풍애(楓厓)이다.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당대의 대유학자들인 이이, 정철, 이지함, 성혼, 고경명 등과 교유하였다. 사헌부 감찰, 대흥 현감을 시작으로 아산·현풍·태인 등의 현감을 지내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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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충신. 안치화(安致和)[1542~1592]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용인(龍仁) 전투에서 순절한 충신이다. 안치화의 후손들은 소절공파(昭節公派)이며, 강원도 원주시와 충청남도 논산시에 세거지를 이루고 있다. 안치화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정숙(正淑), 호는 성재(誠齋)이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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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유리는 지방도 619호선이 마을을 관통하여 순성~면천 간을 통한다. 옛 면천 관아에 인접하여 조선 시대 시흥도 역승에 딸린 순성구화역과 동제원이 있었으며 복지겸 사당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양제리(楊堤里)와 산유동(山柳洞)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양유리(楊柳里)라 하였다. 양유리는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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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잡히는 해수어와 담수어. 충청남도 당진시는 아산만을 통해 서해에 접한 연안 지역으로, 당진시의 바다 면적은 약 1,606㎢이고, 어민수는 3,951가구에 7,999명이다. 또한 삽교천, 남원천, 역천, 염솔천 등의 하천이 삽교호, 대호, 석문호로 유입되고 있어 다양한 종류의 해수어와 담수어가 서식하고 있다. 해수어는 바다와 접한 송악읍,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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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언론 기관과 언론 매체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이나 주장을 알려 여론을 형성하거나 인쇄물을 제작·복제하여 판매 또는 배포하는 일의 총칭.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거치고 1990년대 지방 자치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앙 집권적인 문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표면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 조짐에 따라 당진 지역에서도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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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역사. 충청남도 당진시는 한반도의 중서부, 충남의 서북단에 위치하며 내포(內浦)의 중심 지역이다. 삽교천을 중심으로 펼쳐진 비옥한 예당 평야를 바탕으로 질 좋은 쌀이 생산되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리아스식 해안은 주민들에게 풍부한 수산물을 제공하였다. 이 때문에 당진 지역 사람들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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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주요 역로에 세워졌던 조선 시대 국영 교통, 통신 및 관원들을 위한 숙박 시설. 역(驛)은 공문서의 전달, 관리 및 외국 사신의 왕래 숙박, 말을 공급하여 관물(官物)의 수송 등을 돕기 위한 기관이며, 교통로를 따라서 30리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각 역에는 역장, 역리, 역졸, 역정, 노비 등이 있어서 역무를 수행하고 또 여러 명목의 역둔토(驛屯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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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시부모와 남편을 극진히 섬긴 부인. 일반적으로 열녀(烈女)는 위난(危難)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貞操)를 지켰거나, 오랜 세월 동안 고난과 싸우며 수절(守節)한 부녀자를 일컫는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여성 특유의 정절 윤리가 강조되었다. 외세의 침투를 많이 겪은 탓에 외적의 성 착취에 대항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킨 사례가 다수 나타나는 것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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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사람의 용모·용태를 그린 회화. 영정은 인물화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초상화라는 용어가 최근 만들어진 용어라고 할 때, 영정은 삼국 시대로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초상화를 이르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우리 나라에서 초상화가 어느 시기에 처음 그려졌나는 기록상으로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백제의 아사 태자[阿佐太子]가 그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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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영천리는 송악읍 소재지에서 동쪽 3.5㎞ 지점에 있다. 대부분의 지대가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동쪽에는 철마산과 초대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에는 오룡산이 위치하고 있다. 영천리는 영금리(靈今里)와 사천리(沙川里)에서 한 자씩 따서 ‘영천리(靈川里)’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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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하리 영탑사에 있는 고려 시대 석조 불상. 영탑사 약사여래상은 자연석에 새겨진 마애불로 높이 1.8m의 상왕산(象王山) 영탑사 유리광전(琉璃光殿) 내에 모셔져 있다. 약사여래는 다른 말로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 혹은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한다. 동방의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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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영탑사 유리광전 뒤에 있는 칠층석탑.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하리의 영탑사는 유리광전 뒤에 있는 바위를 기단으로 오층 석탑을 세우고 절 이름을 ‘영탑사’라 했다고 전한다. 1930년에 고시중이 6~7층을 증축하여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영탑사 칠층석탑은 1798년(정조 22) 승려 지윤이 오층 석탑을 세웠는데, 1930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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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와 예산군 일대를 흐르는 삽교천, 무한천, 곡교천 주변에 형성된 평야. 예당평야는 삽교천, 곡교천, 무한천 연변의 충청남도의 아산시 인주면, 선장면, 예산군 신암면, 고덕면, 삽교읍, 당진시 합덕읍, 우강면, 신평면, 역천 부근의 당진동, 고대면, 정미면 일대를 폭 넓게 말한다. 홍성의 오서산에서 발원하여 흘러오는 본류인 삽교천(揷橋川)과 그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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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한 법정리. 오곡리(梧谷里)는 송악읍 소재지에서 동북방으로 9㎞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지방도 619호선이 마을을 통과하여 기지시~한진 간을 오간다. 완만한 구릉성 지대가 마을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미작 중심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오사리(梧寺里)와 수곡리(壽谷里)에서 한 자씩 따서 오곡리(梧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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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에 있는 시내나 강을 사람이나 차량이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 오도교(鰲島橋)는 당진시 고대면 슬항리 샘마을 삼거리에서 송산면 당산리 오도 삼거리 사이의 용장천을 횡단하는 교량이다. 오도(鰲島)는 당산리 남쪽 끝에 있는 섬 마을이며, 지형이 자라처럼 생겼다 하여 ‘오도’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1924년 오섬과 거미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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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옥금리는 32번 국도 삽교천 연변 예당평야 지대에 있는 전형적인 미작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마을 동쪽으로 삽교천이 흐르고 있으며 당진시의 동쪽 관문 마을이다. 옥금리는 조선 시대 귀양을 보내는 옥(獄)이 있어서 옥금재 또는 옥금리(玉琴里)라 하였다. 옥금리는 원래 홍주군 합남면(合南面)의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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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현리는 당진시 고대면 소재지에서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대호만의 좁고 긴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과거 정미면의 천의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을 당시에는 삼포까지 화물선과 큰 배들이 들어왔다. 삼포를 지나 더 안쪽으로 정미면 천의 똑대기터까지 배가 들어와 인천을 왕래하였다. 옥현리는 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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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호리는 지방도 619호선이 마을을 관통하여 송악~순성~면천 간을 지난다. 옥호천 주변의 답작 지대를 끼고서 주로 북쪽의 산록지에 주거지가 있는 전통적인 농촌 마을이다. 대부분이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서쪽으로는 오봉산을 접하고 있으며 마을 남쪽으로 남원천이 흐르고 있다. 옥호리는 옥호당(玉湖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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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기 왜구들의 빈번한 침입으로 충청남도 당진 지방이 입은 전란(戰亂)과 그 피해. 왜구는 고려 말인 1223년(고종 10)에 금주[현 경상남도 김해]를 처음 침입한 이후 1350년(충정왕 2)부터 1392년(공양왕 4)까지 169년 동안 총 519회나 침략하였다. 이런 왜구들의 침략에 고려 조정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고, 왜구들의 침입은 남부 연안 지대를 넘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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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 있는 용무치항과 왜목항을 연결하는 터널. 왜목터널은 시도 4호선 도로상에 있는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의 왜목항과 석문면 장고항리의 용무치항을 연결하는 터널이다. 석문면 교로리 지역 왜목 마을의 지명을 원용하여 ‘왜목터널’의 이름을 붙였다. 교로리(橋路里)[다릿길]는 석문면 최북단에 있으며, 아산만의 돌출 지역이다. 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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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서 선박이 안전하게 접안 및 정박을 할 수 있는 설비가 된 항구. 왜목 마을은 석문 해안 도로를 지나면 지방도 615호선과 만나는 곳에 있다. 대호만 간척지가 확 트여 보인다. ‘해가 뜨고 지는 왜목 마을’이란 아치가 세워져 있다. 왜목항은 서해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며 일출과 일몰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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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합덕 방죽에서 매년 정월 열나흗날 그 해의 풍흉을 점치는 민속놀이. 용경 보기는 음력 1월 14일에 합덕 방죽에 얼음이 얼었을 때 이를 통해 그해 풍흉을 예측해 보는 민속놀이이다. 이는 당진이 농경 중심 사회였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기도 하다. 사람이 죽어서 염라대왕에게 갔을 때, 염라대왕이 "너 생전에 합덕 방죽에 가 봤느냐?"라고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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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두리는 면소재지로 면사무소, 농협, 보건 지소 등 각종 공공 기관이 있으며 예전에는 시장이 개설되었던 곳이다. 615번 지방도가 마을의 서쪽을 지나고있다. 북쪽으로는 산능선을 이루며 고개가 있고 동쪽으로는 용두 평야가 넓게 전개되며 역천과 그 지류가 흐르는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풍수지리상 마을 형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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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리에서 선박이 안전하게 접안 및 정박 할 수 있는 설비를 한 항구. 석문면 장고항리 북쪽 아산만 해안가에 있는 작은 포구이다. 30여 년 전부터 실치[뱅어]를 잡기 위해서 생긴 작은 마을로 소형 고깃배들의 입출항이 많다. 해안가로 나온 곶인 노적봉을 사이에 두고 왼쪽인 서쪽에는 용무치 포구가 있고 오른쪽인 동쪽에서는 장고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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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법정동. 당진시 용연동(龍淵洞)은 당진 중심지에서 서산시 운산 방향으로 옛 32번 국도를 타고 약 4㎞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다. 하천이 마을의 동서를 가로지르고 있는 전형적인 쌀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마을 동쪽으로는 용연천 상류에 용연 저수지가 있으며, 서해안 고속 도로가 마을의 남단을 통과하고 있다. 용연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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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서 강이나 못, 우물 등지에서 용왕에게 올리는 제사. 용왕제는 충청남도 당진의 강이나 못, 우물 등지에서 생활과 농사에 필요한 물이 풍족하기를 기원하면서 수신인 용왕에게 바치던 제사이자, 해상 생활을 영위하는 가족의 무사와 안전을 위해 전승된 어촌 신앙이다.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 당진의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공동 우물을 사용했는데, 매년 우물을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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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에 있는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소속 교회. 우강감리교회는 1954년 4월 26일에 합덕 감리교회 교인이던 한문수 장로를 중심으로 15명의 교인이 우강 초등학교 교실을 빌려 첫 예배를 드리면서 태동하였다. 우강감리교회는 당진시 우강면 지역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우강감리교회는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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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법정면. 당진시 우강면(牛江面)의 대부분이 간척 사업에 의해서 만들어진 농경지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쌀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며 우강 평야의 중심지이다. 우강면의 동쪽은 삽교천 및 삽교호와 접하고 있으며, 북쪽은 당진시 신평면과 남쪽은 당진시 합덕읍과 경계를 접하고 있으며, 특히 합덕읍과는 이어져 있어서 상권이 합덕읍에 속한다. 송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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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법정동. 우두동(牛頭洞)은 당진시 중심으로부터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전원 농촌이었지만, 현재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마을 경관이 변하였다. 마을 동쪽에는 국도 32호선이 서쪽으로 지나며 아미산에서 발원한 당진천이 북쪽으로 흘러서 마을 왼쪽에서 북류하여 아산만 쪽으로 흘러가는 역천에 유입된다. 우두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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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에 있는 무안박씨 세거지. 무안박씨(務安朴氏)의 시조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이며 중시조는 시조의 34세손인 박진승(朴進昇)이다. 박진승은 고려 초기 국자감 제주(國子監祭酒)를 지냈고 나라에 공을 세워 무안군(務安君)이 되었으며 전라남도 무안을 식읍으로 하사받았다. 그 후 후손들이 무안을 관향으로 정하고 세거지로 삼았다. 박진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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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우산리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성씨. 안동권씨의 시조는 권행(權幸)이다. 권행은 고려 태조 왕건의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삼한 벽상 삼중대광(三韓壁上三重大匡)에 오르고 태사(太師)에 제수되었다. 안동에는 ‘태사묘(太師廟)’라 하여 3명의 태사를 배향하고 있다. 그들은 안동권씨의 시조인 권행, 안동 김씨의 시조인 김선평(金宣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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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운산리는 합덕읍의 중심 마을로 읍사무소를 비롯하여 파출소, 농협, 초중고교, 보건소 등 공공 기관과 상가가 밀집되어 있다. 버그내장[합덕장]이 개설되어 있으며 당진~예산으로 통하는 국도 32호선이 마을을 관통한다. 내포 지방 상권의 중심지였으나 현재는 많이 쇠퇴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서 합북면 상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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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정리(雲井里)는 신평면의 북쪽 아산만 가에 있는 마을로, 마을 대부분이 평지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작은 공세포구를 중심으로 어촌이 형성되었으나, 삽교천 관광지가 조성된 후 완전한 관광지로 변했다. 동쪽은 삽교호, 북쪽은 아산만과 접하고 있다. 국도 34호선이 삽교천 방조제를 거쳐 아산시와 통한다. 신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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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법정동. 원당동은 당진 중심 시가지에서 북동쪽으로 5㎞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시곡천 주변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부는 구릉으로 되어 있다. 마을 한가운데 시곡천이 북서류하면서 흐른다. 최근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당진시 농업 기술 센터가 이전하였다. 마을 남단에 국도 32호선이 동서로 뻗어 있고, 북서쪽에 지방도 633호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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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읍내동에 있는 종교. 원불교 교명에 대하여 제2대 종법사인 송규(宋奎)는 “원(圓)이란 형이상으로 말하면 언어와 명상(名相)이 끊어진 자리라 무엇으로 이를 형용할 수 없으나, 형이하로써 말하면 우주 만유가 이 원으로써 표현되어 있으니, 이는 곧 만법(萬法)의 근원인 동시에 또한 만법의 실재인지라, 이 천지 안에 있는 모든 교법이 비록 천만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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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관료이자 정치가. 원용석(元容奭)[1906~1989]은 당진시 순성면 성북리 출신의 관료, 정치인이다. 1921년 면천 공립 보통학교[4년제, 9회] 졸업 이후 보성 고등 보통학교[5년], 1929년에 경성 고등 공업 학교[현 서울 대학교 공과 대학]를 졸업하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식량 기획단 부이사장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에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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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치리는 우강의 서쪽 저산성 구릉지에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마을 동쪽으로는 소들강문 평야가 넓게 전개되고 그 건너에는 삽교천이 있다. 원치리는 마을 가운데에 재, 즉 고개가 있으므로 원재, 곧 원치리(元峙里)라 하였다. 원치리는 원래 면천군 범천면 원치리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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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나 멀리 떨어진 다른 군현(郡縣)의 지배를 받은 특수 구역. 월경지는 (갑) 군현의 행정 관할이 이루어지는 범위 내에 토지가 연결되지 않고 (을) 군현의 행정 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실제로는 (갑) 군현이 관할하는 특수한 구역을 지칭한다. 월경지는 다른 군현의 영역을 뛰어넘어 따로 위치한 것이다. 이것을 비지(飛地)·비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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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월곡리는 송악읍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10㎞ 떨어진 지점에 있는 벼농사 중심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남쪽의 구릉성 지대와 북쪽의 간사지성 평야지가 대부분의 지대를 차지하고 있다. 월곡리는 마을 모양이 반월(半月) 모양이라 다라실[月谷]로 불렸으며, '다라'는 달을, '실'은 실[谷: 마을]을 뜻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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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버드나뭇재[柳峴]와 버드나뭇재 서북쪽 둔턱에 있는 '두곡(斗谷)'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유곡리(柳谷里)라 하였다. 유곡리는 원래 면천군 창택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창택면 천골리, 유현리, 두곡리, 벌후리, 서정리, 원당리를 병합하여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유곡리는 약 400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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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 시대에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을 종교적 관점에서 부르는 명칭. 유교(儒敎)는 공자(孔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유학(儒學)이란 말과 함께 통용된다. 유교는 인(仁)을 근본으로 하며,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덕목으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경전으로 한다. 공자는 기원전 557년 노나라 곡부에서 탄생하였고 이름은 구(丘)이고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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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고려 말 충신. 윤황(尹璜)[?~?]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시기의 문신이다. 조선이 건국하자 출사하기를 거부하고 고려의 충신으로 남았다. 충청남도 당진으로 낙향하여 사망하자, 태종이 무학 대사를 보내 장지를 정해 주었다고 전한다. 현재 서산 송곡향사에서 윤황을 배향하고 있으며, 당진의 묘소 앞에는 신도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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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시곡리에 세워진 윤황의 신도비. 윤황(尹璜)은 고려 말의 충신으로 자호는 후송이며, 광성대부 문하평리 공조 전서[판서]를 역임하였다. 윤황은 도평의녹사 문하평리 윤수균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성계가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개국하자 당시의 최고 행정 관청인 문하부의 문하평리 벼슬에 있던 윤황은 조선의 신하가 되지 않기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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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사용되는 음식 관련 방언. 당진 지역 방언의 특질은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와 함께 중부 지역 방언의 성격이 짙으며, 음식 방언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음식과 관련된 방언의 예는 다음과 같다. 가양주(家釀酒): 가용주|간수: 갠수|간장: 지랑|겉절이: 얼절이|겸상: 점|곁두리: 젓밥, 새참|곶감: 건시|고욤: 고염, 게염|고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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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법정동. 읍내동(邑內洞)은 당진시의 중심 업무 지구[CBD:Central Business District]로 옛 당진군 당진읍 읍내리 지역이다. 대부분의 관광지가 밀집되어 있고 국도 32호선, 지방도 615호선 등이 통과하여 교통의 요지를 이루고 있다. 당진현청과 당진읍성(唐津邑城)이 있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읍내동은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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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영탑사 뒷산에 위치한 높이 4m의 자연 암벽. 의두암(依斗巖)은 당진시 면천면의 영탑사(靈塔寺) 뒷산 연화봉에 있는 자연 암벽이다. 생김새는 산 정상 못 미쳐 큰 바위가 우뚝 서 있는 형상이다. 의두암은 높이가 4m 정도에 3층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수직 벽면에 예서체로 ‘의두암’이라 새겨져 있다. 글씨를 새긴 사람은 구한말의 고위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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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사용되는 의복 및 옷 입는 행위와 관련된 방언. 충청남도 당진 지역 방언의 특징은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와 함께 중부 지역 방언의 성격이 짙으며, 의생활 관련 방언에서도 어느 정도 일치되는 경향을 보인다. 의복과 관련된 어휘의 형성과 발달은 당진 지역의 삶의 문화를 알려 주는 소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다음은 당진 지역에서 사용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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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달준(李達俊)[1881~1919]은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 출신으로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 천의 장터 4·4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이달준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아버지는 이명흠,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이다. 이달준은 지금의 충청남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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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사당과 영정을 둔 조선 후기의 무신. 이만유(李萬囿)[1684~1750]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영조 때 경상 좌수사(慶尙左水使)를 지냈고, 1728년(영조 4)에 청주에서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반란군을 평정하였다. 이만유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숙함(淑咸), 호는 사상당(四尙堂)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15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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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 한원사에 보관된 조선 후기의 무신 이만유가 남긴 유물. 이만유(李萬維)[1684~1750]는 조선 숙종·영조 때 인물로 1719년(숙종 45)에 무과에 급제해 도문무사 자헌 지중추부사, 양성, 낙안 등 현감, 경상도 좌수사, 의주 부윤, 형조판서를 역임했다. 고려 후기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15대 손으로 본관은 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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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한학자·서예가. 이병태(李炳台)[1910~1992]는 해미 향교와 당진 향교의 전교와 유도회 당진 지부장을 역임하였고, 당진 지역 주민들에게 유교 경전을 강독하고 서예를 가르치는 등 한학 보급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한학자이며 서예가였다. 이병태의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시남(詩南)이다. 아버지는 이순목(李舜穆), 어머니는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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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봉소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이상·이사철의 효자 정려. 이상(李祥)은 본관이 신평(新平), 호는 덕계이다. 여덟 살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가서 7년간이나 머물러 있는 동안에 부모를 그리워하는 효심에 감동한 왜인이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고 전한다. 이상은 고국에 돌아온 지 1년 만에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 후 벼슬길에 올라 이조 정랑,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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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옥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성규·이희천·이희창의 효자 정려. 이성규(李聖規)와 아들 이희천, 이희창의 효자문은 순성면 옥호리에 있다. 이성규는 어려서부터 늘 부모 곁에서 식사를 했는데 항상 먼저 맛보고 음식을 드렸으며, 때때로 이웃 마을에 가서 과일과 고기를 따뜻한 가슴에 품고 돌아와 부모님께 드렸다고 한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위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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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자선 사업가. 이성근(李性根)[1896~1973]은 신평면을 중심으로 당진 지역 교육과 사회 부문에서 활발한 기부 활동을 전개한 자선 사업가이다. 이성근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아버지는 이군석(李君石)[또는 이은범(李殷範)], 어머니는 정희모(鄭熙模)이다. 이성근은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한정리에서 태어나 어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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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이성언(李誠彦)[1380~?)]은 조선 세종 때 이조 판서 겸 홍문관 부제학을 지냈는데, 이가종(李可種)이라고도 한다. 신평 이씨 문정공파의 파조이며, 신평 이씨 종중은 문정사(文定祠)를 세워 이성언을 제향하고 있다. 이성언의 본관은 신평(新平),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예조 판서를 지낸 이상원(李上垣)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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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충신 정려가 있는 조선 시대 무신. 이시경(李蓍慶)[?~1597]은 정유재란 때 군공을 세웠으나 전사하였다. 1792년 정조 때 충신 정려를 내렸는데, 현재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에 있다. 이시경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약산(藥山)이다. 영의정을 지낸 이양원(李陽元)의 셋째 아들이다. 이시경은 진사과에 급제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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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안눌(李安訥)[1571~1637]은 학문이 뛰어났고, 청렴한 관직 생활로 명성이 높았던 청백리였다. 이안눌의 학문은 조선 후기 동악 시단(東岳詩壇)을 구축할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관직은 예조 판서에 이르렀다. 현재 당진시에 거주하는 덕수 이씨 후손들은 묘소와 신도비를 관리하며 이안눌의 공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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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안눌의 신도비. 이안눌(李安訥)[1571~1637)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이다. 좌의정 이행(李荇)의 증손자다. 아버지 진사공 이형(李炯)과 어머니 경주 이씨의 셋째 아들로 서울 서리(西里)에서 태어났다. 이안눌은 1599년(선조 32) 정시(庭試)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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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양원(李陽元)[1526~1592]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유도대장(留都大將)[임금이 서울을 떠나 거둥할 때, 도성 안을 지키던 대장]으로 한강을 수호하고 왜적을 무찔렀으나, 선조가 의주를 넘었다는 와전된 소식을 접하고 단식 끝에 순절하였다. 이양원의 본관은 전주(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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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행정가이자 서예가. 이재서(李載瑞)[1911~1984]는 충청남도 당진시 출신으로 성균관에서 한학을 배우고 해방 후에 부여 군수, 문교부 총무과장을 역임하였으며, 민주 공화당 충남 사무국장과 성균관 관장을 지냈다. 서예가로도 명성이 높다. 이재서의 본관은 덕수(德水), 호는 취암(醉巖)이다. 조선 전기 좌의정을 지낸 이행(李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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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정렬(李定烈)[1900~1962]은 1919년 3·1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된 바 있고, 자신의 사유지를 지속적으로 매각하면서 그 금액을 상해의 이시영, 김구 등에게 직접 전달하여 독립 자금으로 충당하도록 하였다. 또한 1932년부터 평안북도 귀성과 삭주에서 광산을 경영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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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기업가. 이종근(李鍾根)[1919~1993]은 종근당 제약을 창업하여 국내 대표적 의약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한국 제약업계 최초의 미국 FDA 공인 획득, 동양 최대의 발효 공장 건설 등 제약 산업 발전에 일생을 바쳤다. 또한 고촌 장학회와 학교 법인 고촌 학원을 설립하여 인재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육영 사업가였다. 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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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혁(李種赫)[1892~1935]은 대한 제국 무관 학교 재학생으로 있다가 일제의 억압으로 폐교되자 일본 육군 사관 학교에 편입해 1915년 졸업하였다. 그 후 일본군 중위로 복무 중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에 투신하였다. 이종혁은 만주 지역의 육군 주만 참의부 군사 위원장으로 활약하다가 결국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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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고려 말 조선 전기의 문신. 이첨(李詹)[1345~1405]은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본관을 둔 신평 이씨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첨은 고려 말 공민왕·우왕·창왕·공양왕 때 벼슬을 하였고,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정종·태종 등 세 임금을 위해 일했다. 이첨이 공민왕 때 올린 상소문은 구규(九規)[군주가 힘써야 할 9가지 사항]로 널리 알려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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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이첨의 신도비 이첨(李詹)[1345~1405]은 신평현 신북면 오사리[현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면 오곡리]에서 이희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중숙(中叔), 호는 쌍매당(雙梅堂), 시호는 문안(文案)이다. 이첨은 1365년(공민왕 14)에 진사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우왕 때 이인임과 지윤을 처벌할 것을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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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행(李荇)[1478~1534]은 연산군 때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중종 때 좌의정에 오른 문신이다. 16세기 전반기 요동치던 정국의 중심에 서서 많은 풍파를 겪었으며, 『성종실록』 편찬과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제작에도 깊이 참여하였다. 또한 당진시 송산면에 회화나무를 심고 정착하여 송산면 덕수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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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또는 그 집단. 당진 인구의 성장 추세를 살펴보면 1975년 약 167,786명이었던 인구가 계속 감소하여 2003년 117,409명으로 30년간 약 5만 명 정도 감소하였다. 2004년을 기점으로 해서 다시 인구가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다. 당진시와 같은 중소 농촌 도시에서 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은 지역에서 찾아보기에 특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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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관료·정치인·친일 반민족 행위자. 인태식(印泰植)[1902~1975]은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출신으로 경성 제일 고등 보통학교 졸업 후 1927년 야마구치(山口) 고등학교, 1930년 도후쿠(東北) 제국 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세무 관료로 활동하였고, 해방 후 재무 관료로 시작하여 당진을 대표하는 국회 의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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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의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역사.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 8월 29일 대한 제국의 국권을 강제로 빼앗아 식민지화하고, 민족 말살 정책 및 식민지 수탈 정책을 추진하였다. 충청남도 당진 지역은 충남의 서북단에 위치한 외진 고을이었다. 철도와 도로 확충이 미흡하여 육상 교통이 불편하였고 각종 정보 교류와 물자 보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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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의 산업 중 각종 임산물에서 나오는 경제적 이윤을 위해 삼림을 경영하는 업종. 당진시는 임업을 경제성이 있는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수종 갱신, 임업 기계화 및 기반 시설의 확충, 그리고 사유림 협업체의 육성 등을 통한 경제 규모의 성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농업 생산으로 한계점에 달한 농업 소득을 향상시키고 지역 간, 도농 간 소득 격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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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애국지사. 임예상(林禮相)[1861~1941]은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에 거주하면서, 부근에서 활동하던 의병장 최동식에게 군자금을 헌납한 애국지사이다. 임예상의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아버지는 임증수(林曾洙), 어머니는 한산 이씨(韓山李氏)다. 임예상은 1861년 충청남도 당진군 내맹면 고대리[현 당진시 석문면 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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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임호영의 효자 정려. 임호영(林鎬榮)의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화주(化主)이다.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의 뜻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간호에 온 정성을 다했고, 4년간이나 천지신명께 어머니의 쾌유를 빌었다. 임호영은 어머니의 임종이 다가오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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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원당동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송익필의 재실. 입한재는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1534~1599]의 위패를 모신 재실로, 충청남도 당진시 원당동의 묘역 입구에 세워져 있다. 입한재는 충청남도 당진시 원당동 144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송익필은 예학 및 문장의 대가였으나 후손이 변변치 못하여 제향도 모시지 못하였는데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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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위치, 기후, 지질, 토양, 지형, 하천 등의 지리적 조건. 당진시는 차령산맥 북서쪽 가야 산맥의 지맥인 아미산계 주변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삽교천이 단층선을 따라 오서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삽교호에 유입되며, 충청남도 예산군, 아산시와 시군 경계를 이룬다. 주변에는 하해성 퇴적 평야인 내포평야가 넓게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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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일할 때 주로 입는 복장. 충청남도 당진은 논과 바다가 혼재된 지역이다. 농사일과 바다 일을 함께 하는 주민의 대부분은 일정한 작업복을 갖기가 어려워서 가볍고 몸을 움직이기 편한 복장이 우선되었다. 그래서 여자들은 주로 몸빼 바지를 주로 입었고, 남자들은 낡은 평상복을 작업복으로 많이 입었다. 당진은 바다를 낀 넓은 평야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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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서 음력 정월 보름날에 장승에 지내는 제사. 장승제는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 등에 세운 장승에 잡귀와 질병, 재앙을 막고자 제사를 지내는 민간 신앙이다. 장승은 마을 입구 길 옆에 세워 밖에서 들어오는 잡귀나 재앙, 질병을 막는 수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장생(長生), 장승(長承, 將丞) 등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장승은 나무나 돌로 만드는데,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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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근현대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열렸던 시장. 『만기요람(萬機要覽)』 각전 조(各廛條)에 “행상이 모여서 교역하고는 물러가는 것을 장(場)이라고 이른다.”라고 하였는데, 이 장(場)이 바로 장시(場市)다. 장시는 15세기 말 전라도 지역에서 나타난 이래, 조선 후기에 들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즉, 1830년대 시장을 정리하고 있는 『임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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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수청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장여일의 효자 정려. 1801년(순조 원년) 순천 장씨 장여일(張汝一)[1635~?]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이다. 장여일은 평소 효행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한겨울에 오이가 먹고 싶다고 하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깊은 산 계곡을 헤메다 오이를 발견하여 어머니에게 드려 병이 낫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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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항리는 당진~석문 간 지방도 615호선이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며, 장항천 주변 원장항 남쪽에는 하천변에 넓은 벼농사 지대가 전개된다. 마을 남쪽을 장항천이 동류하면서 역천에 유입된다. 장항리는 마을 지형이 긴 목처럼 생겼다 하여 진목, 긴목, 즉 장항리(長項里)라고 하였다. 장항리는 원래 당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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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서 음력 6월 15일 유두에 농신에게 행하던 제례. 전답제는 당진 지역에서 유두에 밀가루 떡과 생선, 과일 등을 올린 상을 차려 논의 물꼬나 밭의 한가운데서 농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던 제례이다. 조선 시대 유두날은 전통 명절로서 다양한 명절 음식을 준비하였다. 멥쌀가루를 쪄서 경단처럼 만들어 꿀물에 담갔다가 얼음에 채워 먹기도 했는데, 이를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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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전대리(全垈里)는 당진시 송악읍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7㎞ 떨어진 곳에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미작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마을 북쪽으로 초대천이 흘러가고 널은 평야 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에 전대 저수지가 있다. 남동쪽에는 배당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본래 면천군 초천면(草川面) 전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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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있는 조선 후기 윤협의 아내 전주최씨의 열녀문. 전주최씨(全州崔氏)[?~1836]는 어머니가 위독할 때 손가락을 찢어 피를 먹임으로써 소생시킨 효녀였고, 합덕읍 도곡리 윤협(尹挾)에게 시집가서는 병약한 남편을 회복시키고자 허벅지 살을 베어 달여 먹였다. 하지만 1836년(헌종 2년) 남편이 결국 사망하자 자결하여 남편의 뒤를 따른 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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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음력 삼월 그믐날에 행하던 민속. 전춘(餞春)은 음력 삼월 그믐날 또는 마지막 날에 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경치가 좋은 산과 계곡을 찾아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놀이를 하며 하루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18세기 조선 정종(正宗) 때 신자하(申紫霞)는 "금년화서거년춘 화락년년석별신(今年花似去年春 花落年年惜別新)[올해 핀 꽃은 작년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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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서 삼을 이용하여 만든 직물. 전통 삼베는 옷감이 성글고 바람이 잘 통하는 특징이 있다. 당진은 기후, 토양, 강수량 등이 삼의 생육 조건에 적합한 곳이어서 예로부터 삼을 직접 재배하여 전통 삼베를 만들어 옷을 지어 입었다. 당진시에서는 2000년 991㎡의 땅에서 슬항리 농민들과 청삼 재배를 시작했다. 당진 삼베의 명성을 회복하고, 특산품도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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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점원리(鮎元里)는 삽교천 변에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점원리는 메기가 많은 곳에 언(堰)을 쌓아서 마을이 만들어졌기에 메기언, 메기원 혹은 점원리(鮎元里)라 하였다. 점원리는 원래 면천군 범천면(泛川面) 지역에 속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면천군 비방면(菲芳面) 서다리(西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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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한 법정리. 정곡리(井谷里)는 송악읍 소재지로부터 북방 6㎞ 지점에 있다. 평지가 대부분인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순수 농촌 마을이다. 마을 동쪽에 개머리들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서쪽으로 서원천이 북류하면서 아산만 쪽으로 흐르고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외정리(外井里)와 주곡리(舟谷里)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정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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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정미면과 대호지면을 당진시에 통합시킨 행정 구획 변경.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과 대호지면은 원래 서산시에 속했다. 하지만 두 면은 서산시보다 당진시에 가깝다는 이유로 당진군 편입운동이 1930년대부터 전개되었다. 줄기차게 진행된 이 움직임은 1957년 전격적으로 성사되었다. 그 결과 당진군의 군세(郡勢)가 확장되었고, 1958년 치른 제4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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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출신의 항일의병장. 정주원(鄭周源)[1870~1925]은 1907년 군대 해산 후 일제 침략에 항쟁한 항일 의병장이다. 충청도와 경기도를 통합하는 13진도 총대장에 올랐고, 수백 명에 달하는 의병을 지휘하였다. 정주원은 치열한 항쟁 중이던 1908년 대호지면 적서리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복역 후 송악면 가학리에서 살다가 1925년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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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주민 주권에 의해 권력을 획득, 유지 행사하여 지역 발전과 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도모하는 제반 활동. 정치(政治)는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대립이나 분쟁을 조정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주요 수단으로 발생한다. 현대적 의미에서 정치는 국민을 통해 획득한 국가 권력을 행사하여 구성원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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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던 풍속. 당진 지방은 예로부터 양반의 고장이라고 불려 왔기에 관혼상제 중에서 제례 의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풍이 있고, 아직도 전통적인 방법의 제례를 행하는 가정들이 지속되고 있다. 당진의 제례는 아직도 전통적인 제례를 행하는 가정들이 대다수이지만, 현대에 와서 기독교나 불교, 천주교 교도들이 많아지면서 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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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북서부 해안 지역에 있었던 소금 제조업에 대한 내용. 제염은 고대에서 20세기 초까지 사용된 전오염(煎熬鹽)과 1907년 이후 채용된 천일염(天日鹽)으로 크게 나뉜다. 자염은 화력을 이용하여 채염하는 것으로 전오염이라고 한다.자염은 연료가 많이 필요했다. 따라서 연료의 수급이 원활한 곳에서 생산했다. 대개 갯벌을 이용한 채합 과정과 전오 과정을 거쳐 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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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 있는 기독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삼봉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삼봉교회는 1956년 이화순 집사가 교로리[돈섬] 장국진 집으로 이사 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삼봉교회는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 교로리 지역의 복음화를 위하여 설립하였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삼봉교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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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시대의 군현은 1413년(태종 13)에 개편되었다. 이때 당진 지역에는 면천군(沔川郡)과 당진현(唐津縣)이 설치되었다. 이곳을 관할하는 도(道)도 양광도(楊廣道)에서 충청도(忠淸道)로 개칭되었다.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명칭이었다. 하지만 충주와 청주의 고을이 강등되면 공주와 홍주의 머리글자를 도명에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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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부엌의 아궁이와 부뚜막을 맡고 있다고 믿는 가신. 조왕신은 조왕님, 조왕 할매로 불리며 한국 전통에서 불의 신, 재물 신으로 인식된다. 조왕은 원칙적으로 불을 모시는 신앙이며,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불씨를 신성시하여 꺼지지 않게 관리하거나, 이사간 집에 성냥을 가지고 가는 풍습 등은 이러한 신앙에서 유래된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비슷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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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공세미를 보관하고 경창에 운송하기 위해 설치했던 저장 창고. 조창(漕倉)은 조운창(漕運倉)의 줄인 말로서, 지방의 각 고을에서 세금으로 징수한 곡식 등 세곡을 도읍지로 운송하기 위하여 해안이나 강변에 설치한 창고이다. 우리나라에 조창이 처음 설치된 것은 고려 시대였다. 10세기 말 지방 제도를 확립하면서 이를 토대로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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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사용되는 주거 문화와 관련된 특유한 단어나 언어적 현상. 주거 문화는 거주지의 지형과 지세에 따라 특징적인 모습을 보여 주며, 생활권을 형성해 그 지역의 문화를 보여 주고, 그 지역만의 방언[사투리]을 형성한다. 따라서 주거생활과 관련된 당진 방언 역시 충청남도 지역 방언과 비슷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사용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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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있었던 학령을 초과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교육 기관. 준광고등공민학교는 우강 초등학교 남쪽 약 5백 미터 지점의 마차길 옆에 있었던 학교로, 1956년 우강면 송산리에 사는 전해관에 의해 설립되었다.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개교 4년째 되는 1959년 여름에 폐교되었다. 신입생들의 연령은 13, 14세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가정 형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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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중방리(中方里)는 당진~합덕~예산 쪽으로 통하는 국도 32호선이 지나가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면서 과수 농업이 성한 곳이다. 북쪽에 홍주 북창이 있었던 곳으로 남원천이 흐르고 있으며, 남쪽은 우강면 송산리 경계에 위치한 당산과 접해 있다. 남원천 변의 들 한가운데인 중방들에 마을이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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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중흥리(中興里)는 송악읍 소재지로부터 북쪽으로 8㎞ 정도 떨어져 있다. 평지가 대부분의 지대를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며, 진산인 송악산[150.6m]이 마을 북서쪽에 솟아 있다. 송악읍에서 기지시리 다음으로 제2의 중심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중흥 치안 센터, 우체국, 보건 진료소 등 각종 공공 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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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서 음력 정초에 농악대들을 중심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하던 민속놀이. 지신밟기는 충청남도 당진에서 음력 정초에 행하던 일종의 마을굿이다. 마을 사람들이 농악대를 앞세우고 집집마다 돌며 땅을 다스리는 신령을 달래어 연중 무사를 빌면 집주인은 음식이나 곡식, 돈으로 이들을 대접한다. 마당밟이, 뜰밟이, 집돌이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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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지각을 이루는 여러 가지 암석이나 지층의 성질 또는 상태. 당진 지역의 지질 분포 상태를 보면 시 면적의 약 1/2를 차지하는 결정 편마암계는 한국 최고의 지층인 변성 퇴적암류의 지층군으로서 부천계(富川系)이며, 송산면을 제외한 해안 지대에 넓게 발달하고 있다. 원생계의 화강 편마암계는 당진 지역의 송산면과 송악읍 일부에 유일하게 발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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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암석의 구성과 성질, 지질 구조, 지각 변동, 화산 활동, 기후 등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쳐서 형성된 지표의 형상이나 형세. 충청남도의 최북서단에 위치하여 400m 미만의 낮은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는 당진 지역은 북쪽에 아산만과 접하며 침강성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었다. 현재는 이런 좁고 긴 만구(灣口)에 석문, 대호, 삽교천 방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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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속하는 법정리. 큰산[111.7m]에서 발원한 진관천이 마을 중앙에서 동서 방향으로 흐르다가 역천에 유입되고, 동쪽 역천 변에 간사지를 간척하여 만든 진관 평야가 넓게 전개되고 있는 농촌 부락이다. 옛날 당나라 사신들이 왕래할 때 유숙하던 관터가 남아있으며, 인근에 신라 564년(진흥왕 25) 아도 국사가 중창한 것으로 전해지는 영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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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세거지를 형성한 동성동본의 성씨 마을. 집성촌(集成村)은 성(姓)과 본(本)[본관, 관향]이 같은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이를 '동족(同族) 마을', '동족 촌락(同族村落)', '동성(同姓) 마을'이라고도 한다. 집성촌은 조상을 함께 하는 특수한 혈연관계 속의 주민들이 특정 지역에 집단으로 거주하는 형태이다. 공동체 조직이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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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사당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차천로(車天輅)[1556~1615]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문장에 뛰어나 명나라에 보내는 대부분의 외교 문서를 담당하며 명성을 떨쳤다. 차천로는 시와 가사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한시에 능했다고 전한다. 후손들은 오산공파(五山公派)라 하여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에 세거지를 이루고 영정을 봉안한 문원사(文苑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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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에 있는 차천로를 배향하는 사당.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1556~1615]의 후손들은 충청남도 당진지 대호지면 적서리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문원사(文苑祠)를 세우고, 조선 선조 때의 대문장가였던 차천로의 영정을 봉안하여 학문과 사상을 기리고 있다. 문원사는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 41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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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찬동장로교회는 1951년 1월 4일에 장세근 권사를 중심으로 26명의 신자가 당진군 석문면 삼화리 마을 회관에서 예배를 보면서 태동하였다. 찬동장로교회는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지역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찬동장로교회는 1951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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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창리는 전 우강면 사무소 소재지로 우강면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앞뒤쪽으로 평지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곳의 중앙. 고조지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지방도 622호선이 마을을 관통하여 남원포를 거쳐서 신평면으로, 지방도 70호선이 마을을 관통하여 삽교천의 선우 대교를 거쳐서 선장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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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일어난 '대호지 천의 장터 4·4 독립 만세 운동'을 기리기 위해 순국 선열의 위패를 모신 사당. 창의사(彰義祠)는 '당진 대호지·천의 장터 4·4 독립 만세 운동'에서 순국한 선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당진시에서는 이러한 순국 선열들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1989년부터 기념 사업회가 발족되면서 추모제·추모각·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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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터. 봉수제(烽燧制)는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통신 수단이었다. 특히 고려 말에 왜구를 방어할 목적으로 봉수제가 강화되었는데, 조선 시대에는 태종 때에 이르러 이미 봉수제가 실시되고 있음을 기록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1406년(태종 6) 12월에 조수일(曺守一) 등을 거제현(巨濟縣) 봉졸로 장배(杖配)하였다고 하고,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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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과 행정동에 있는 시내나 강을 사람이나 차량이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 채운교는 우두동에 속해 있지만 채운교의 가설은 고대, 석문 지역 주민들이 당진 시내 방면으로의 왕래하는 육로 교통 거리를 많이 단축시켜 주었다. ‘채운’이란 원래 그 지역에 큰 경사나 위인이 있으면 오색운(五色雲)의 징조가 나타난다는 중국의 풍수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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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법정동. 채운동(彩雲洞)은 당진 중심지에서 고대~석문 가는 방향의 시가지 끝에 있는 마을이다. 현재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이루고 있으며, 마을 동쪽으로 당진 시가지에 연속되어 있다. 역천을 끼고 발달된 마을로 조선 시대 채운포에 석교가 가설되어 내포 지역에서 해미읍성, 면천읍성과 함께 유명한 관광지였다. 1688년에 영랑사 승려들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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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채운교 건립 기념비. 채운포 석교비는 1688년(숙종 14년) 당진의 채운포에 세워진 비석이다. 충청남도 당진시의 중심지에서 서쪽에 있는 당진시 석문면과 고대면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역천(驛川)이라는 개울을 건너야 한다. 그 포구가 채운포이다. 석교비는 이곳에 돌로 만든 다리가 있었음을 확인해 주는 유물이다. 채운포 석교비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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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시 상도곡리, 삼곡리를 합하여 이곳의 천의포에서 이름을 따서 '천의리(天宜里)'라 하였다. 원래는 해미군 염솔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도곡리, 하도곡리, 상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그대로 '천의리'라 하였고, 충청남도 서산군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6일 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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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철을 원자재로 하는 산업군. 세계 철강산업은 20세기 중반까지 유렵과 미국 철강 기업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일본과 한국 기업들이 급부상하면서 철강산업의 구조가 재편되었다. 철강산업은 ‘산업의 쌀’이라 불리며, 세계 각국은 국가 보호 조치 아래 기간산업으로 육성시켜 왔다. 당진은 많은 철강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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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 있는 철강 기업과 산·학·연관 주체들의 과학 기술에 대한 지식 교환 및 생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스템화한 기술 산업 단지. 클러스터는 산학 연관 주체들 간에 네트워크형 시스템을 구축하여 과학 기술 지식의 교환 및 생성이 활발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이를 활용한 기술 사업화를 돕는 체계이다. 세계 경제는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에 따른 각종 환경 규제를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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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철기 문화. 청동기의 전래에 뒤이어 우리나라에 철기 문화가 전래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였다. 특히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업이 발달하여 경제 기반이 확대되었다. 철제 무기와 철제 연모를 씀에 따라 그때까지 사용해 오던 청동기는 의식용 도구로 변하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 청동기 문화도 더욱 발달하여 한반도 안에서 독자적 발전을 이룩하였다. 청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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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송악읍에서 남서쪽 끝단 신평면과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대부분의 지대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북서쪽에 오봉천에 흘러오는 하천을 일제 강점기에 막아서 만든 오봉 저수지가 있으며, 북쪽으로 하천이 흘러가고 있다. 당진 지역의 대표적인 과수원 지대로 배, 사과의 주 생산지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을 할 때 옛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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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형성된 청동기시대의 문화. 청동기 문화는 신석기 시대 말인 기원전 1000년경부터 한반도에서 서서히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 고인돌도 나타나 한반도의 토착 문화를 이루게 된다. 청동기 시대에는 생산 경제가 그전보다 발달하였고, 청동기 제작과 관련된 전문 장인이 출현하였으며, 사유 재산 제도와 계급도 나타났다. 이에 따라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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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체육과 관련한 정책이나 사업, 활동 내용 전반. 체육은 인간의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활동 모두를 의미한다. 신체 운동과 관련된 개인 운동을 계발하고 활용하는 범주의 생활 체육으로부터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전문적인 고급 운동까지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체육은 일상적이기도 하지만 계획된 인간의 신체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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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초대리(草垈里)는 신평면의 서쪽에 위치하여 말목 고개를 넘어서 통할 수 있으며, 송악읍 전대리와 읍면 경계를 하고 있는 마을이다. 지방도 622호선이 금천리에서 송악읍 중흥리 쪽으로 관통하는데, 초대리를 지나가고 있다. 마을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마을 북서쪽에는 초대 저수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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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최병주의 효자문. 최병주(崔秉周)[1872~1952]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 534번지에서 태어났다. 최만보라고도 한다. 최병주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장가든 동생이 일찍 사망하자 어머니는 죽은 아들의 집을 바라보며 울었다. 어느 날 동생 집을 볼 때마다 안타까우니 안 보이게 옮겨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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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사당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최유해(崔有海)[1588~1641]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광해군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승정원 부승지까지 올랐다.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거주하는 후손들이의 최유해의 영정을 봉안한 묵수 영당(黙守影堂)을 세워 공덕을 기리고 있다. 최유해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자는 대용(大容), 호는 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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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사당이 있는 고려 전기의 문신. 최충(崔冲)[984~1068]은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해동공자(海東孔子)’라 칭송받는 인물이다. 최충의 후손들은 충남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 ‘해동 영당(海東影堂)’을 세우고 최충의 영정(影幀)을 봉안해 은덕을 기리고 있다. 최충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호연(浩然), 호는 성재(惺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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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최충의 영정. 최충(崔沖)[984~1068]은 고려 문종 때의 문신이자 유학자이다. 최충의 영정은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 있는 해동 영당(海東影堂)에 봉안되어 있다. 최충은 1005년(목종 8)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뒤 문하시중 등 요직을 두루 거치고 70세에 사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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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 있는 효열 3정려. 최흥우·김해김씨·순흥안씨 효열 3정려는 해주 최씨 최흥우(崔興佑)의 효행(孝行)과 부인인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열행(孝行), 그리고 최흥우의 제수인 동생 최흥달(崔興達)의 부인 순흥안씨(順興安氏)의 열행(烈行)을 기리고 있다. 최흥우는 우애가 깊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가 병들었을 때에는 밤낮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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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가축을 기르고 그 생산물을 가공하는 산업 활동. 당진시는 홍성군과 함께 축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닭 사육은 전국 1위, 젖소는 천안에 이어 2위, 돼지는 31만 두(頭)로 홍성에 이어 2위, 한육우는 4위에 올라 축산 중심지가 되어 있다. 지난 2010년 말부터 2011년 4월까지 계속되었던 구제역으로 당진 지역에서는 102농가에서 13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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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채운동에 남아 있던 석탑 등의 불교 유물. 탑동 불교 유적은 당진시 채운동 466-3[발견 당시 당진군 채운리 탑동]의 절터에서 나온 석조물들이다. 아직 폐찰에 대한 기록은 발견된 바가 없으나 석물들로 살펴보면 고려 시대 또는 조선 시대의 사찰로 추정할 수 있다. 탑동 초등학교 서쪽 도로 건너편에 고대면 항곡리 쪽으로 오가던 옛길이 있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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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전파된 신종교인 증산교의 한 종파. 태을교(太乙敎)는 증산교의 일파이다. 증산교는 증산 강일순(姜一淳)[1871~1909]에 의해 창시되었다. 강일순은 29세 되는 해인 1900년 전라북도 전주 부근의 대원사에서 7일간의 혹독한 수련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고 여러 이적을 보이기 시작하여, 1902년 자신이 인류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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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900년 후백제가 들어서기 전까지 통일신라 시기의 충청남도 당진의 역사.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면서 전제 왕권을 크게 강화하는 한편, 중앙 집권 체제로 제도를 재정비하였다. 중앙의 정치 체제는 집사부를 중심으로 관료 기구의 기능을 강화하였다. 그리하여 집사부 시중의 지위를 높였고, 그 아래에는 위화부를 비롯한 13부를 두고 행정 업무를 분담하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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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겨울철에 얼음판이나 땅에서 팽이를 쳐서 돌리는 민속놀이. 주로 겨울철에 나무를 원뿔 모양으로 깎은 팽이를 채로 쳐서 돌리며 노는 민속놀이이다. 팽이는 지역에 따라 뺑이[경상남도], 핑딩[경상북도], 뺑돌이[전라남도], 도래기[제주] 등으로 불리며, 이밖에 패이, 팽돌이, 빼리, 뺑생이, 봉애, 포애, 세리라고도 한다. 720년(성덕왕 19)에 쓰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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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에 있는 평산신씨의 열녀문. 평산신씨(平山申氏)[?~?]는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기경(朴基敬)의 부인이다. 부부는 조선 후기 정조 때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에 살았다. 평산신씨는 어려서부터 천성이 온순하고 효심이 뛰어났으며, 시집간 후에도 남편을 하늘같이 섬겼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박기경이 갑자기 사망하였다. 일설에는 평산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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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지형의 기복이 별로 없으며 넓고 저평한 토지. 우리나라는 산악 국가로서 대규모의 큰 평야는 적지만 서해로 유입되는 대하천을 사이에 두고는 내포평야, 호남평야 등의 평야지가 전개된다. 평야를 지칭하는 용어로는 대개 ‘들’이나 ‘벌’을 많이 사용한다. 이런 평야지는 보통 하천 연변의 충적지 등이며 경사가 2~3으로 완만하고 관개용수를 구하기 쉽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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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당진시에서 선박이 안전하게 입출항 및 정박할 수 있는 설비를 한 항구. 평택·당진항은 1986년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되었다. 평택항은 수도권의 제2의 관문으로서 1986년 무역항으로 개항한 후 정부의 3대 국책항만 및 5대 국책 개발 사업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1989년부터 정부 재정 및 민자 유치 사업으로서 충청남도 당진 지구와 경기도 평택 지역에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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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음양오행설로 자연지리의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의 어원은 장풍득수(藏風得水)[바람은 피하고, 물은 얻는다]에서 나왔다. 사세(四勢)인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우현무(後玄武), 전주작(前朱雀) 중 어느 하나가 없는 곳을 택하여 살아 있는 자가 생활하는 양택 풍수인 터[주택지, 관청, 사찰, 마을, 도시, 수도 등]와 죽은 자의 안식처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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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서 풍어와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면서 지내는 마을 제의. 바다는 육지와 달리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풍어제를 통해 풍어를 기원하면서, 동시에 항해의 안전을 기원했다. 특히 서해안권에서의 풍어제는 인근 태안군의 황도 붕기 풍어제와 함께 안섬의 풍어제가 충청남도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풍어제는 바다가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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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조선 시대 향교 앞에 세워 놓은 석비. 하마비(下馬碑)는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라는 뜻으로 세운 비석이다. 서원이나 향교, 사찰뿐 아니라 왕이나 장군·고관·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세워놓기도 하였는데, 이들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인 듯하다. 기록에 따르면, 1413년(태종 13) 2월에 처음으로 예조에서 건의하여 왕의 허가를 받아 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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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한가위는 8월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가배일, 중추절, 중추가절, 추석이라고도 한다. 한 해 동안 지은 햇곡식과 햇과일로 정성껏 차례를 지내고, 햅쌀로 송편을 빚고, 강강술래, 가마싸움, 소먹이놀이 등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다. 당진에서는 한가위에 '거북놀이'라 하여 멧방석을 등허리에 뒤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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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일어난 6·25 전쟁 상황.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되었다. 북한군은 전쟁이 발발한 지 불과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였고, 남쪽으로 계속 밀고 내려왔다. 유엔은 즉각적으로 참전을 결정하였고, 16개국의 군대로 유엔군이 편성되어 한국전에 투입되었다. 국군도 전열을 정비하여 북한군의 남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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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부터1910년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발발하거나 활동한 항일 의병. 한말 항일 의병은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에 우리의 국권을 지키기 위해 무력 항쟁한 민족 운동을 말한다. 갑오년[1894] 일본군의 경복궁 무력 점령에서 비롯된 항일 의병은 을미년[1895] 명성 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의 실시를 계기로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의병은 양반 유생들이 주도하였고,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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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상오리에 있는 고엽의 아내 한산이씨의 열녀문.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본당리에 살던 한산이씨(韓山李氏)[1820~1841]는 인근 마을인 신평면 상오리에 사는 고엽과 혼인하였다. 하지만 혼인한 지 불과 2년 만에 고엽이 질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달여 먹임으로써 소생시켰다. 3년 후 고엽이 결국 사망하자 한산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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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에 있는 한양조씨의 열녀문. 『밀양 박씨 열행기』에 따르면, 한양조씨(漢陽趙氏)[?~?]는 박내정(朴來貞)의 부인이다. 부부는 19세기 순조 때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 기시미 마을에 살았다. 한양조씨가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남편이 병이 들어 사망하였다. 얼마 후 한양조씨도 병을 얻어 친정에서 치료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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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금곡리 한음 영당에 모신 조선 후기 문신 이덕형의 영정. 한음선생 영정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1561~1613]의 초상화로, 현재 ‘한음 영당’에 보존되어 있다. 한음선생 영정은 1590년경에 당시의 궁중 화가 이신흠(李信欽)이 처음 그렸다. 한음의 9대 종손 이의익(李宜翼)이 1860년대에 당시의 궁중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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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한정리는 신평면 소재지인 금천리와 북동쪽으로 접하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지만, 최근 교통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일부 중소공장들이 입지하고있다. 한정리는 차디찬 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다고 하여 찬 우물, 즉 ‘한정리(寒井里)’라 하였다. 한정리는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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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한진리는 송악읍 소재지에서 12㎞ 정도 떨어진 북쪽끝 아산만 가에 있는 포구 마을이다. 한때는 일본으로 어란을 수출하는 항구이기도 했으며, 평택 만호리와 인천을 오가는 배가 다녔다. 당나라 시대부터 큰 나루[大津]라 하여 당나라 상인들이 드나들었다. 조선 시대에는 면천, 당진, 태안, 홍주, 결성, 보령, 남포, 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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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운산리에 있는 시내버스와 시외버스가 모두 정차하는 공용 터미널. 합덕공용버스터미널은 도시 중심부에 위치하여 지역간 교통이 시가지를 관통함으로써 각종 교통 혼잡을 일으켰으며, 터미널의 시설 노후에 따라 터미널 이용객이 불편했다. 당진시는 이를 해소하는 한편, 합덕 원도심권 대중교통의 활성화와 향후 솔뫼 성지, 수리 박물관 등 유동 인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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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서 발발한 농민 항쟁. 합덕농민항쟁은 1894년 1월,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이정규(李廷珪)의 탐학에 대항하여 발발한 합덕제 주변 6개리 농민의 항쟁이다. 이들은 이정규의 악행을 정리한 『혈원록(血怨錄)』을 작성하여 관할 관청인 홍주 목사에게 제출하며 선처를 호소하였으나, 오히려 이정규는 이들을 살해하고자 하였다. 이에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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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합덕리는 옛 합덕의 중심지 마을로 구 국도 32호선이 마을을 관통하여 구양도를 지나 예산~천안 쪽으로 통한다. 합덕 평야에 위치한 전형적인 미작 중심의 농촌 마을로 마을 남쪽은 석우천과 맞닿아 있다. 합덕리는 합덕지(合德池) 옆이므로 합덕 방죽의 이름을 따서 ‘합덕리(合德里)’라고 하였다. 합덕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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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운산리에 있는 전통시장. 전통시장은 5일장으로 시장이 서는 날은 '장날'이라 하여 이날은 큰 볼일이 없어도 가까운 장을 찾아 마을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 생산한 물건을 팔고 사는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때의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매매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등 정담을 나누며 여러 가지 정보를 교환하며 막걸기도 한 잔씩 나누는 사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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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남동쪽에 있는 법정읍. 합덕읍(合德邑)은 남동쪽으로 평야 지대를 끼고 삽교천을 접하며, 대부분이 삽교천 연안의 해성 퇴적 충적토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로 넓은 들판을 가지고 있다. 삽교천 이서 지역에 펼쳐진 평야 지대가 내포평야의 중심축을 이루며, 한편 예당평야의 일부를 구성하기도 한다. 따라서 합덕읍 지역에는 일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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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소소리에 있는 공립 특성화 고등학교. 교육 목표는 글로벌 세대를 이끌어갈 철강 분야 마이스터[기술 영재] 육성이며, 교훈은 근면, 개척, 질서이다. 1951년 8월 31일에 합덕 농업 고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이후 당진이 철강 도시로 성장하면서 1994년 3월 1일에 합덕 농업 고등학교에서 합덕 농·공업 고등학교로 바뀌었다가 196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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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속하는 법정리. 항곡리 서쪽에는 산 능선을 이루는 산지의 골짜기 사이 마을 가운데 항곡 저수지가 있으며, 동쪽은 미작 지대가 역천변 채운들에 펼쳐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부락이다. 항곡리는 넓은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이라 한곡리라 하였는데, 이것이 변해서 항곡리(項谷里)라고 하였다. 또 부락 지형이 목처럼 생겨서 목골을 한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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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정치 단체. 해방과 분단, 우익과 좌익의 갈등으로 점철되는 한국 현대 정치가 당진 지역에도 적용되었다. 해방 직후 서울 중앙에서는 건국 준비 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이들은 전국 군 단위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여 불과 보름 만에 145개의 지부를 조직하였다. 9월초, 건국 준비 위원회는 조선 인민 공화국으로 개편되었고, 지방은 군 단위 인민 위원회로 개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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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에 있었던 나루터. 고대면 당진포리 온동 마을 북서쪽에 자연 마을인 해창(海倉) 마을이 있다. ‘해창’이란 지명은 해상 교통이 편리한 당진포 바닷가에 국가에서 세운 조세 보관 창고인 해창(海倉)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당진포리에서 뻗어 나온 구릉의 말단부인 망재산이 서해와 만나 멈춘 지점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 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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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에 있는 산을 뚫어 만든 도로. 해창터널은 서산시 해미면에서 당진시 석문면을 연결하는 총연장 50.3㎞인 지방도 647호선 중에 고대면 대호 대교[880m]와 해창 교차로 사이에 있다. 고대면 당진포리 온동 마을 북서쪽 시골에 여러 민가가 모여 이룬 해창(海倉) 마을이 있다. 서해와 만나는 하구에 발달한 포구 마을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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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이루어지는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분배와 관련한 지방 자치 단체의 제반 활동. 시 행정이란 '시(市)'라는 기초 지방 자치 단체를 단위로 하는 지방 행정을 말한다. 지방 행정이란 지방 자치 단체가 그 권한으로 행사하는 자치 행정과 국가로부터 위임 받아서 행하는 위임 행정으로 지역 사회의 복지 증진을 위한 일체의 행정 작용을 말한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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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법정동. 행정동(杏亭洞)은 당진 중심지에서 운산 쪽으로 1㎞ 지점 옥돌 고개 밑에 있다. 마을이 산록에 자리잡고 있어 동쪽은 구릉성 산지이며, 마을 서쪽 앞으로 역천이 남북으로 흐르고 있다. 서쪽 역천 주변에 답작지가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옛 국도 32호선이 마을을 관통하여 운산 쪽으로 지나며, 군도 17호선도 지난다. 예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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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존재하였던 특수한 행정 구역.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는 여러 곳에 향·소·부곡을 설치 운영하였다. 향·소·부곡민은 양민이면서도 군현의 주민과 구별되는 특수 행정 구역으로서 차별을 받았다. 이들은 일반 군현의 주민보다 많은 세금을 부담했고, 거주 이전도 소속 집단 내로 제한되는 등 타지로의 이주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었다. 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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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현재까지 당진 지역의 역사. 을사늑약을 계기로 의병 항쟁이 발발하였던 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내내 우리 민족은 치열한 독립 투쟁을 전개하였다. 전 세계 식민지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포악했던 일제 강점기도 결국 우리 민족의 독립 열기 앞에 무너져 내렸고, 1945년 해방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해방 후의 진로는 열강에 의해 결정되었고, 미국과 소련이라는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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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당진 출신 왕비이며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顯德王后)[1418~1441]는 문종의 세자 시절 세자빈(世子嬪)으로, 단종(端宗)의 생모이다. 단종을 출산한 직후 사망하였다. 능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현릉(顯陵)이다. 현덕왕후의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화산 부원군(花山府院君) 권전(權專)[1371~1441]과 해령 부부인(海寧府夫人) 최씨(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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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전통 혼례 때 신랑과 신부가 입는 옷.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서 엄격한 절차와 신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진의 전통적인 혼례 복식은 신랑과 신부가 초례청에 설 때 입는 복장이다. 전통 혼례복에는 결혼의 신성함을 나타내는 의미가 담겨 있다. 조선 시대 혼례복은 『사례편람(四禮便覽)』을 보면 숙종 때까지는 염의와 원삼(圓衫)을 착용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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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전기의 부마. 홍려(洪礪)[?~1533]는 조선 전기 중종(中宗)의 부마이다. 작서의 변[灼鼠之變]에 관련되었다는 김안로(金安老)의 무고(誣告)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홍려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아버지는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홍서주(洪敍疇)[1499~1546]이며, 할아버지는 좌찬성을 지낸 홍숙(洪淑)[14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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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상거리에 있는 조선 전기 부마도위 홍려의 사당. 홍려(洪礪)[?~1533]는 남양홍씨 토홍계로 시조 홍선행(洪先幸)의 13세손이다. 1525년 조선 시대 중종의 딸인 혜정 옹주와 혼인하여 종2품의 품계인 가의대부 당성위(唐城尉)에 봉해졌다. 홍려는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작서의 변[(灼鼠之變)]’에 연루되었다는 김안로(金安老)의 무고(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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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중방리에 있었던 옛 홍주의 조창 터. 당진시 순성면 중방리는 원래 면천군 가화면 지역으로 중방들에 마을이 생겼으므로 중방들 또는 중방평이라 하였다. 중방리에는 옛 신남면 창리 지역이 포함되었는데 현재의 북창 마을이다. 홍주 북창은 북창 마을에 있었던 옛 홍주의 조창으로, 북창 마을의 지명은 바로 이곳이 홍주 북창이 있었던 곳이라는 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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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부모를 효성으로 봉양한 자녀. 효자(孝子)는 부모를 극진하게 섬기는 자식을 지칭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효(孝)’를 가장 기본적인 행위 규범으로 강조하여 왔다. 자식은 어릴 때부터 어버이를 존경하는 태도를 갖도록 배우고 익히면서 자랐다. 유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정착되면서, 특히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한 조선 시대에 ‘효’ 사상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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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었던 옛 당진현의 공무를 담당하던 역. 홍세역(興世驛)은 당진현 관할의 역이었다. 흥세역은 순성역에 비해 규모가 작았는데, 이는 당진현이 면천군의 속현이었기 때문이다. 흥세역에는 기마(騎馬)가 4필, 짐 싣는 복마(卜馬)가 4필, 역리(驛吏)가 17명, 노(奴) 2명, 비(婢) 2명이었고, 금정역에 속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