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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서 하마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방학동의 하마비」는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하마들[下馬野]’과 ‘하마평(下馬坪)’ 등은 사람은 누구나 말에서 내려야 한다[大小人員皆下馬]는 하마비(下馬碑)에 관련하여 붙여진 지명 유래담이다. 1999년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간행한 『도봉 구지』에 수록되어 있다. 도봉산 방학동에는 ‘하마들’이라는 지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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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유희경이 도봉산에 있는 영국동을 소재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영국동(寧國洞)」은 조선 중기의 문신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1545~1636]이 도봉산에 위치하고 있는 영국동 골짜기에서 느낀 감흥을 표현한 한시이다. 유희경은 여러모로 도봉산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1573년에는 양주 목사(楊州牧使)로 부임한 남언경(南彦經)을 도와 조광조(趙光祖)[148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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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유희경이 도봉산 영국동의 거처를 두고 지은 시에 차운하여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차영국동유거운(次寧國洞幽居韻)」은 도봉산과 인연이 깊은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1545~1636]이 도봉산에서의 자신의 일상을 담담하게 읊고 있는 한시이다. 「차영국동유거운」은 유희경의 시문집 『촌은집(村隱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유희경의 자는 응길(應吉), 호는 촌은, 본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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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를 관할하던 지방 행정 구역. 경기도(京畿道)는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으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이 속해 있었던 곳이다. 구체적으로는 경기도 양주목(楊州牧) 해등촌면(海等村面) 일대가 도봉구에 해당하였다. 본래 경기(京畿)는 왕도(王都)와 그를 둘러싼 지역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京)’은 천자의 거주지가 있는 곳이며, ‘기(畿)’는 그를 둘러싼 지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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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조선 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 글씨. 귀록계산(歸鹿溪山)과 와운폭(臥雲瀑) 바위 글씨는 건립 경위와 시기, 서자(書者) 및 각자(刻者)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조선 영조[재위 1724~1776] 대의 인물인 귀록(歸鹿) 조현명(趙顯命)[1690~1752]이 방학동에 별서(別墅)를 마련하였다는 사실과 『귀록집(歸鹿集)』 권3에 실린 ‘와운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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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1914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노원면(蘆原面)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의 34개 속면(屬面) 가운데 하나이며, 현재 서울특별시 노원구의 전신(前身)에 해당한다. 1914년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있던 해등촌면(海等村面)과 병합하여 노해면(蘆海面)을 설치하였고, 이후 몇 차례의 행정 구역 변천에서도 계속 이어지다가 1988년에 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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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조선 시대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려와 조선 시대 주요 도로에 일정한 거리마다 설치되어 교통 통신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불렀다. 노원역은 청파역과 함께 한성부 성저십리(城底十里) 지역에 위치하였으며, 함경도 지방을 연결하는 첫 번째 역으로 청파역과 함께 병조에서 관리하였다. 노원역은 다른 지역의 역들과 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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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누원리(樓院里)가 있던 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은 조선 시대 한양(漢陽)과 함경도 방면을 연결하는 간선 교통로에 위치하였던 까닭에 한양의 관문 구실을 하던 곳이다. 이에 조선 초 전국적으로 여행객들을 위한 숙식 제공 시설인 원(院)을 설치할 때 도봉동 지역에는 덕해원(德海院)이 설치되었고, 이후 그 이름을 누원(樓院),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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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있던 장시.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위치하고 있던 누원(樓院)의 인근에 생겨난 장시(場市)를 말한다. 조선 후기 이 지역에 교통의 요지라는 장점을 살려 서울 인근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장시가 생겨났고 상업이 번창하였다. 누원점은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340번지에 있었다. 누원점(樓院店)이 있었던 지역 인근에 누원이 있었다. 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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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조선 시대 왕족 및 사대부의 묘. 조선 시대 무덤은 신분 또는 위계에 따라 크게 능(陵), 원(園), 묘(墓) 세 가지로 구분한다. 능은 왕[추존왕 포함]과 왕비의 무덤을 말한다. 원은 왕세자, 왕세자비, 세손, 그리고 왕의 사친(私親)[종실로서 왕위에 오른 왕의 생가 어버이] 등의 무덤을 말한다. 묘는 나머지 왕족, 즉 왕의 정궁의 아들, 딸인 대군과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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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숙박 시설. 원(院)은 조선 시대 수령, 공용 여행 중인 관원, 기타 일반민의 여행 등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요 도로상에 설치된 일종의 숙박 시설이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경내에는 다락원[樓院]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터가 남아 있다. 조선 시대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역으로 향하는 주요 도로가 있었다. 또한 각 도로는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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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필 등을 중심으로 집장된 덕수 이씨의 묘역. 덕수이씨 묘역(德水李氏墓域)은 크게 제1묘역과 제2묘역으로 나뉜다. 제1묘역에는 증 동중추( 贈同中樞) 이원우(李元祐)와 아들인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이필(李泌)[1538~1592], 이필의 손자인 이합(李柙)[1624~1680]의 두 번째 부인인 증 정경부인(貞敬夫人) 전주 최씨(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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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숙박 시설. 덕해원(德海院)은 도성에서 함경도 및 경기 북부로 이어지는 대로상에 위치하던 원우(院宇)이다. 조선 전기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누원(樓院)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덕해원이 설치된 정확한 시기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조선 개국 초에 원의 설치를 건의하는 도평의사사의 상소를 통해 조선 초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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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에 있는 조선 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 글씨. 도봉동문(道峰洞門) 바위 글씨는 제작 시기와 건립 경위, 서자(書者), 각자(刻者)를 밝힐 수 있는 기록이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 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한다. ‘도봉동문’은 ‘도봉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의미이다. 글씨의 위치가 도봉 계곡의 초입에 있다는 점에서 도봉 계곡을 사랑하던 시인 묵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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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서원 유생의 인적 사항을 기록한 명부인 청금록에서 윤증(尹拯)의 이름을 지운 사건. 청금록(靑衿錄)은 국가가 설치한 유교 교육 기관인 성균관과 사학(四學), 향교, 사설(私設) 기관인 서원 등에서 활동하는 유생들을 관리하기 위한 명부이다. 도봉서원 유생들의 인적 사항을 기록한 청금록은 도봉서원에 비치되어 있었다. 청금록에는 유학(幼學)·생원·진사의 인적 사항뿐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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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의 도봉서원을 중심으로 도봉 계곡에 산재되어 있는 바위 글씨군. 도봉 계곡에 산재하는 마애 각석군은 분포 위치상 도봉서원을 중심으로 대략 3개 군으로 나뉜다. 1군은 도봉 계곡 초입, 2군은 도봉서원 앞, 3군은 도봉서원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1군과 2군 중에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16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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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되어 있던 조선 시대 양주목의 하위 행정 체제. 조선 시대에는 각 도(道) 아래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어 지방을 다스렸다. 이 부·목·군·현은 각각의 읍치(邑治)를 중심으로 몇 개의 면(面)으로 구분하고, 다시 면 아래에는 리(里)를 두었다. 면리제(面里制)는 여말 선초 사회 변화기에 군현 하부의 촌락에 대한 국가의 직접 지배를 위해 실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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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었던 조선 시대 면·리 단위 실무 행정 담당자. 면임(面任)은 조선 시대 지방 행정에서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는 각 면 단위에 차정된 자 또는 그 직으로서 권농관(勸農官)[풍헌(風憲)·권농감고(勸農監考)·방외감(方外監)], 감고 등을 말한다. 이임(里任)은 최말단 행정 단위인 리의 각종 행정을 담당하였던 자, 또는 그 직을 말하는데 이정(里正)·이장(里長)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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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조선 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 글씨. 명월동문(明月洞門) 바위 글씨는 조선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제작 시기와 각석을 주도한 제작자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다. 다만 ‘명월동문’은 ‘명월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으로 계곡의 경치에 취한 조선 시대의 묵객이 이 지점부터 아름다운 경치가 시작됨을 표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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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무수울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104번지에 있던 마을로 지금도 그린벨트에 위치하여 도시화 바람에 손상되지 않고 옛 풍광을 보전하고 있다. 이곳은 예전에 서낭당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서낭당이라고도 하였는데, 지금은 서낭당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세종의 아홉째 아들 영해군(寧海君)의 묘가 무수골에 있는데, 세종이 생전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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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 도봉 서원 앞 계곡에 있는, 조선 시대 권상하와 송시열의 글씨를 새긴 바위 글씨. 무우대 제월광풍갱별전(舞雩臺 霽月光風更別傳) 바위 글씨에서 ‘무우대 한수옹(舞雩臺寒水翁)’은 권상하(權尙夏)[1641~1721], ‘제월광풍갱별전 요장현송답잔원 화양노부서(霽月光風更別傳 聊蔣絃誦答潺湲 華陽老夫書)’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글씨를 각각 새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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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 도봉 서원 앞 계곡에 있는, 조선 시대에 새긴 바위 글씨. 문사동(問師洞)은 도봉 서원 앞 계곡의 이름이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문(問)’은 예를 갖추어 맞아들인다는 뜻으로, ‘문사동’은 스승을 모시어 맞아들이는 곳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수려한 계곡에서 도봉 서원의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자연을 즐기며 학문을 논하던 장소이었음을 알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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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조선 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 글씨. 방학동 천주교 묘지 바위 글씨군은 천주교 묘지 터에 위치한 ‘계수석(谿水石)’, ‘와폭(臥瀑)’, ‘연월암삼폭(延月巖三瀑)’의 각자(刻字)를 아울러 일컫는다. 방학동 천주교 묘지 바위 글씨군은 제작자와 제작 시기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조선 시대의 새겨진 것으로 추정한다.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 공주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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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여말 선초 목진공을 필두로 6기의 묘가 모여 있는 사천목씨의 묘역. 사천목씨(泗川睦氏)는 처음 당나라에서 우리나라에 파견되어 온 학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나 목충(睦沖) 이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때 중랑장을 지낸 목효기(睦孝基)를 시조로 한다. 고려 시대에는 목충, 목인길, 목자안 등이 왜구 평정에 공을 세웠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선조 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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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원통사 산신각 아래에 있는 조선 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 글씨. 상공암(相公岩) 바위 글씨는 정확한 제작자와 건립 시기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다. 다만 이와 관련하여 “원통사 약사전 아래 거북 바위에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기도를 마치던 날 천상(天上)의 상공(相公)이 되어 옥황상제를 배알하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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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상누원리(上樓院里)는 우리말로 ‘웃다락원’인데, 조선 시대에 공무로 출장하는 사람들이 묵던 원(院)[누원]의 위쪽에 다락[樓]이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 상누원리는 본래 누원리로 18세기 자료인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는 누원리가 확인되고 있으나, 20세기의 지명 상황을 보여 주는 자료들에는 누원리 대신 상누원리(上樓院里)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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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과 노원구 월계동 일대 초안산에 있는 조선 시대 분묘군. 서울 초안산 분묘군은 조선 시대 사대부, 무관, 중인, 서인, 내시, 상궁 등 다양한 신분층의 묘와 석물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초안산 중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속하는 지역은 약 5만 8000㎡이고, 나머지는 모두 노원구에 속한다. 태안 이씨(泰安李氏)와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묘역은 도봉구 지역, 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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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서원. 도봉서원(道峯書院)은 현재 서울 지역에 남아있는 유일한 조선 시대의 서원이다. 1573년(선조 6)에 양주 목사(楊州牧使)로 부임한 남언경(南彦經)이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건립했고, 이듬해에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후 도봉서원은 300여 년 간 서울·경기 지역 선비들의 주요한 교유처가 되었으나, 고종 대에 서원 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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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양주목(楊州牧)은 조선 시대 경기도에 속한 행정 구역으로,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가 관할 구역에 해당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양주목 해등촌면(海等村面) 일대가 현재의 도봉구 지역이다. 조선은 각 도(道) 아래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어 지방을 다스렸는데, 이를 통해 군현 아래의 촌락에 이르기까지 중앙 정부의 지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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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를 관할하던 양주목사로서 선정을 베푼 지방관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양주목사 선정비(楊州牧使善政碑)는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노원구·중랑구·강북구 및 경기도 양주시·동두천시 등을 포괄하던 조선 시대 양주(楊州) 지역에서, 양주목사(楊州牧使)로서 선정(善政)을 베푼 관리들의 공덕(功德)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비를 가리킨다. 조선 시대에는 지방관(地方官)으로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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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조선 전기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와 남편 안맹담의 묘표.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1415~1462]과 정의공주(貞懿公主)[1415~1477]의 묘표는 안맹담 묘 쌍분 앞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 동쪽이 정의공주 묘표, 서쪽이 안맹담 묘표이다. 둘 다 대리석 재질이고 화려한 형태의 화관 방부형(花冠方趺形)이다. 정의공주는 세종과 소헌 왕후(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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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가 속한 양주목에 설치되어 있던 조선 시대 교통 및 통신 시설. 역(驛)은 원(院)과 함께 전근대 시기 도로에 설치된 주요 시설 가운데 하나이다. 삼국과 통일 신라 시대부터 역이 설치되었고,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몇 차례의 정비를 거치면서 역제(驛制)가 더욱 발달하여 전국 규모의 역로(驛路)가 조성되고 운영되었다. 양주목에는 노원역과 녹양역이 설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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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에 있는, 조선 시대에 새긴 바위 글씨. ‘염락정파 수사진원(洛正派洙泗眞源)’은 도봉 서원 앞 도봉산 계곡에 새겨진 바위 글씨이다. ‘염락(濂洛)’은 염계(濂溪)와 낙양(洛陽)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곳은 주돈이(周敦頤)와 그의 제자 정호(程顥), 정이(程頤) 형제가 각기 강학하던 곳이다. 또한 ‘수사(洙泗)’는 공자가 강학하였던 곳을 일컫는 말이다. 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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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 도봉 서원의 자리에 있었던 사찰. 현재 도봉 서원이 있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은 이전에 양주(楊洲)에 속하였던 도봉산 영국동(寧國洞)이었다. 이곳에는 원래 영국사(寧國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이 허물어진 터에 도봉 서원을 지었다고 전한다. 도봉 서원이 지어지기 이전에 존재하였던 영국사가 언제 건립되었으며, 언제 무슨 이유로 허물어졌는가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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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교통 및 숙박 시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속해 있었고, 해등촌면이 도봉구의 전신에 해당한다. 해등촌면에는 조선 시대 도로망에서 역(驛)과 함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 원(院)으로 누원이 있었다. 원은 주로 역과 역 사이에 설치되어 있었다. 주로 공무상 여행 중인 관원과 지방 수령이 여정에서 숙박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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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시대 왕족. 이신(李伸)은 묘소가 전주 이씨 임영 대군파(臨瀛大君派)의 오산군(烏山君) 직계의 묘역에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 오산군의 후손일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 계보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는 없다. 오산군 이주(李澍)는 세종의 4남인 임영 대군의 장남으로 1437년에 궁중에서 태어났다. 나이 8세에 정의대부(正義大夫)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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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조선 시대 세종의 아들 영해군 이당 등 직계 후손이 묻힌 전주이씨의 영해군파 묘역. 전주이씨 영해군파 묘역(全州李氏寧海君派墓域)은 크게 동쪽 능선과 서쪽 능선의 두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서쪽 능선에는 가장 상단에 영해군의 장남인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1465~1507]의 묘와 신도비가 있고, 그 아래로는 부원정(富原正) 이이(李㶊)와 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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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오산군 이주를 중심으로 한 전주이씨 임영 대군파의 묘역. 전주이씨 임영대군파 묘역(全州李氏臨瀛大君派墓域)은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의 장남인 오산군(烏山君) 이주(李澍)[1437~1489]를 중심으로 한 전주이씨의 묘역이다. 오산군 이주를 비롯하여 성빈(誠嬪) 원주 원씨(原州元氏)[?~1449], 오산군의 장남 창평수(昌平守) 이근(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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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성종의 다섯째 아들 전주이씨 회산군 이염을 중심으로 한 전주이씨 종친의 묘역. 회산군(檜山君) 이염(李恬)[1481~1512]은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군(燕山君)[1476~1506, 재위 1494~1506]의 동생이다. 연산군은 폐비 윤씨의 소생이고, 회산군은 숙의 홍씨(淑儀洪氏)의 둘째 아들이다. 1500년(연산군 6) 귀인 정씨의 소생인 형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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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인 조선시대 양주목 해등촌면은 그리 큰 행정 구역이 아니었으나, 지리적 특성으로 정치·경제·사상적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서울특별시 성북구와 강북구 등 도봉구 인근 지역은 일부 한성부(漢城府)에 속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도봉구 지역은 한성부의 관할 구역인 성저(城底) 약 3.93㎞[10리]와 이웃한 양주목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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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자연을 도(道)가 구현된 공간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혼탁한 속세를 벗어나 자연 안에 머물기를 추구했다. 더욱이 자신이 처한 사회의 현실이 자신이 생각한 도학적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때는 과감하게 벼슬을 그만두고 정치 현실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자연 안에 은거하는 삶을 택하기도 하였다. 자연 안에 은거하면서 자연이 담고 있는 도학적 진리를 되새기며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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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은 1971년에 종로구 운니동 캠퍼스에서 개관하여, 1982년에 현재의 쌍문동 캠퍼스로 이전하였으며, 지금까지 4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와 근대 생활사 관련 유물과 여성 관련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전시하여 조선시대 생활 문화상을 집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조선시대 생활사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 2,4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은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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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조선 전기 죽산안씨의 묘역. 죽산(竹山)은 경기도 용인군과 안성군 일부에 속하였던 옛 지명이다. 죽산안씨는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와 찰리사(察理使) 안숙로(叔老)의 손자 안맹담(安孟聃)이 세종의 딸 정의공주(貞懿公主)와 혼인하여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졌다가 연창군(延昌君)에 이어 연창위(延昌尉)로 개봉(改封)되었고, 세조 등극에 공(功)을 세워 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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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조선 전기 청천 부원군 유양을 중심으로 하는 진주유씨 집장 묘역. 진주유씨 묘역(晉州柳氏墓域)은 서쪽 묘역과 동쪽 묘역으로 크게 나뉜다. 서쪽 묘역은 가장 상단의 진양군(晉陽君) 유영(柳濚)의 묘로부터 유영의 아들인 진명군(晉溟君) 유사기(柳師琦), 유영의 조카인 사헌부 감찰 유사상(柳師尙)의 묘가 차례대로 있다. 동쪽 묘역은 가장 상단에 정경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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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2동과 창 3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창골은 조선 시대 마을에 창고가 있었던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창골이 있던 창 2동과 창 3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마산리·유만리·창동리를 합하여 창동리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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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5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마을 이름인 ‘창동리’를 돌에 새겨 만든 이정표.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266번지의 창동초등학교 동쪽에 있는 석조 이정표 안내문, 새로 만든 창동리 석조 이정표와 함께 나란히 서 있다.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어 직사각형 형태로 만들었으며, 크기는 가로 38㎝, 두께 19㎝, 높이 73㎝이다. 거친 화강암 표현에 ‘창동리(倉洞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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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천주교 혜화동교회 방학동 묘원에 있는 조선 시대 화강암에 새긴 바둑판과 석조 유물. 도봉산 일대에는 여러 지역에 암각(巖刻) 유물이 남아 전한다. 도봉 계곡 일대와 시루봉 주변이 대표적이다. 천주교 혜화동교회 방학동 묘원이 시루봉 아래에 위치해 있으므로, 이 암각 바둑판과 석조(石槽) 유물 역시 시루봉 주변 암각물들과 연계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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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억새나 짚 따위로 지붕을 인 조그마한 집인 초당(草堂)이 위치하여 초당말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초당말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고,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마산리·유만리·창동리를 합하여 방학리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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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과 노원구 월계동에 걸쳐 있는 나지막한 야산인 초안산에는 319,503㎡의 적지 않은 면적에 조선 시대 환관 묘역을 비롯하여 양반, 중인(中人), 궁녀(宮女), 서민 등 다양한 계층의 묘 1,000여 기가 남아 있으며, 무덤을 지키는 여러 석물이 흩어져 있다. 초안산에 조선 시대 묘가 밀집해 있는 이유가 뭘까? 도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서울특별시 도봉구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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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의 초안산 분묘군에 묘소가 있는 조선 시대의 문신. 최윤언(崔潤彦)에 대해서는 묘소가 서울 초안산 분묘군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묘비가 세워져 있다는 것 외에 알려진 바가 없다. 묘비의 후면에 대한 판독 및 해석이 이루어진다면 보다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묘비에 의하면, 용양위 호군(龍讓衛護軍)을 역임하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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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의 서울 초안산 분묘군에 있는 조선 시대의 문신 최윤언과 부인의 묘비. 최윤언(崔潤彦)의 가계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 다만 최윤언 부부 묘비에 의하면 최윤언이 용양위 호군(龍讓衛護軍)을 역임하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으며,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진주 강씨(晉州姜氏)로서 합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묘비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된다면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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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서울 초안산 분묘군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이해를 중심으로 한 태안이씨의 집장 묘역. 태안이씨 묘역(泰安李氏墓域)은 2002년 3월 9일 사적 제440호로 지정된 서울 초안산 분묘군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태안이씨 묘역에는 가장 선조인 증 공조참의(贈工曹參議) 이홍달(李弘達)을 중심으로 그 아들인 증 형조참판(贈刑曹參判) 이상훈(李尙薰), 이상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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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조선 시대 풍양조씨 문중의 묘역. 풍양조씨(豊壤趙氏)의 관향은 경기도 양주(陽州)로, 풍양은 현재의 경기도 양주를 부르는 옛 이름이다. 풍양조씨는 안동 김씨(安東金氏)와 함께 조선 후기 세도 정치기(勢道政治期)에 정권을 담당한 대표적인 가문이다. 풍양 조씨는 4개의 파(派)로 이루어져 있고, 그 가운데 회양공파(淮陽公派)에서 많은 고관(高官)이 나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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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들.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서울 연산군 묘 앞에 있던 들로, 하마비(下馬碑)가 있었다. 하마비는 조선 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 놓은 석비(石碑)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왕이나 장군·고관·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세워 놓기도 하였는데, 이들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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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의 서울 초안산 분묘군에 부인과 함께 묻힌 조선 시대의 문신. 한종건(韓宗健)의 부인이 숙인(淑人)으로 추증된 충원 유씨(忠原劉氏)라는 것 외에 가계 및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문헌 자료는 현재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묘비의 후면에 간단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으나, 본격적인 조사 및 판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묘비를 통해 한종건이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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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조선 시대 함열남궁씨 직계의 묘가 집장된 묘역. 함열남궁씨 묘역(咸悅南宮氏墓域)은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 남궁숙(南宮淑)[1491~1553], 형조참판(刑曹參判) 남궁침(南宮枕)[1513~1567] 등을 중심으로 직계 후손의 묘가 모여 있다. 함열남궁씨 묘역은 크게 제1묘역과 제2묘역으로 나뉘어 있다. 함열 남궁씨 제1묘역에는 청풍 군수(淸風郡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