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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심승택이 지은 도봉서원에 사액을 하면서 제사를 지낼 때 쓴 제문. 도봉서원(道峯書院)은 1573년(선조 6년)에 조광조(趙光祖)를 기리기 위해서 조광조가 자주 찾았던 도봉산 자락의 영국사(寧國寺) 터에 설립한 서원으로, 설립과 동시에 사액(賜額)되었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경우 도봉 서원에 머물며 강학을 한 인연으로 1696년(숙종 22)에 병향되었는데,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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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도봉 지역을 관할하던 경기도 양주시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전제 왕권 강화를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하였다. 각종 관직명과 지명 등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한화 정책(漢化政策)도 그 일환으로 추진되어, 757년(경덕왕 16) 9주(州)·5소경(小京)·117군(郡)·293현(縣)에 이르는 지방 행정 단위의 명칭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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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1914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노원면(蘆原面)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의 34개 속면(屬面) 가운데 하나이며, 현재 서울특별시 노원구의 전신(前身)에 해당한다. 1914년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있던 해등촌면(海等村面)과 병합하여 노해면(蘆海面)을 설치하였고, 이후 몇 차례의 행정 구역 변천에서도 계속 이어지다가 1988년에 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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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조선 시대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려와 조선 시대 주요 도로에 일정한 거리마다 설치되어 교통 통신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불렀다. 노원역은 청파역과 함께 한성부 성저십리(城底十里) 지역에 위치하였으며, 함경도 지방을 연결하는 첫 번째 역으로 청파역과 함께 병조에서 관리하였다. 노원역은 다른 지역의 역들과 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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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 지역을 관할하던 양주의 옛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5 지리지2 한주(漢州) 내소군(來蘇郡)조에는 “내소군은 본래 고구려 매성현(買省縣)으로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견주(見州)이다. 영현(領縣)은 2개로, 중성현(重城縣)은 본래 고구려 칠중현(七重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적성현(積城縣)이다. 파평현(波平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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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되어 있던 조선 시대 양주목의 하위 행정 체제. 조선 시대에는 각 도(道) 아래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어 지방을 다스렸다. 이 부·목·군·현은 각각의 읍치(邑治)를 중심으로 몇 개의 면(面)으로 구분하고, 다시 면 아래에는 리(里)를 두었다. 면리제(面里制)는 여말 선초 사회 변화기에 군현 하부의 촌락에 대한 국가의 직접 지배를 위해 실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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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양주목(楊州牧)은 조선 시대 경기도에 속한 행정 구역으로,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가 관할 구역에 해당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양주목 해등촌면(海等村面) 일대가 현재의 도봉구 지역이다. 조선은 각 도(道) 아래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어 지방을 다스렸는데, 이를 통해 군현 아래의 촌락에 이르기까지 중앙 정부의 지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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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부터 1914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해등촌면(海等村面)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楊州牧)의 34개 속면(屬面) 가운데 하나였다. 지방 행정 체계로서 면(面)은 이미 고려 말부터 등장하지만, 제도적 차원에서 정비되어 성문 법전을 통해 규정되는 때는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이다. 조선은 각 도(道) 아래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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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에 관련한 향토 정보를 망라한 지리지. 조선 전기 이래로 각 지역의 향토 정보를 수록한 지리지의 편찬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현재의 도봉구 지역을 기재하고 있는 향토지 역시 다수 편찬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같은 조선 전기 관청에서 편찬한 지리지부터 『대동지지(大東地志)』와 같은 조선 후기 개인이 편찬한 지리지, 『도봉 구지』와 같은 현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