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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간첩활동을 해온 강신오를 비롯한 간첩 일당을 검거한 사건. 강신오는 1948년경 남로당에 입당하였으며, 1950년 7월경 인민군 군관(정치간부)으로 입대하여, 1956년 7월경 상위로 제대하였다. 1957년 2월경 중앙당에 소환되어 5개월간 간첩 밀봉교육을 받은 후 1957년 7월경 강릉, 묵호, 삼척 등지에서 거점 확보 및 인물포섭 지령을 받고 남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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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대관령 지역과 구정면 지역에서 벌어진 남로당 유격대원 섬멸 작전. 1949년 1월 18일에 남로당이 대관령 문암동에 강원도당 군사위원부를 설치하고 유격대 조직에 착수하고 있다는 것을 포착하고, 성산 지서 병력이 출동하여 분쇄하였다. 1949년 4월 초에는 강릉 경찰서에서 구정면 언별리의 단경동 망덕봉의 남로당 유격대대를 일망타진하였다. 대한민국 수립 후 남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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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강릉경찰서 병력과 북한군 패잔병들이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지역에서 벌인 전투.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결과 국군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였고, 북한군은 6개 사단 이상이 남한 내에 고립되어 전력이 분산되었다. 고립되어 잔류 중이던 북한군 패잔병들은 산악지대를 따라 북쪽으로 퇴각하거나 산악지역으로 숨어들어 남한 내의 각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교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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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공공질서와 안녕을 보장하고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행정 작용. 1945년 10월 21일 국립경찰 창설과 동시에 강릉경찰서가 용강동에서 개서하였다. 주문진에는 주문진경찰서가 1948년 6월 15일에 창설되어 별도로 운영되다가, 1956년 1월 1일 강릉경찰서와 주문진경찰서를 통폐합하였으며, 1963년 1월 1일에는 인구지서가 양양경찰서로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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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해안지역으로 침투하여 강릉 산악 지역으로 잠입한 무장간첩들을 토벌한 사건. 1967년 5월 21일부터 1967년 7월 23일까지 북한군 283부대 소속 무장공비 250여 명이 태백산지구 산악기지 구축을 목적으로 전국에 동시 다발로 침투하였다. 이중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해안지역으로 침투한 공비들이 강원도 정선을 거쳐 강릉 산악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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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강릉시 성산면 대궁산성 터에서 공비들과 치른 전투. 1952년 1월 24일 조선노동당 제4지구당을 향하여 남하한 공비 18명을 대궁산성 터에서 기습하여 2명을 생포하였다. 한국전쟁은 1951년 중반에 접어들면서 38도선에서 방어에 주력하는 장기전 태세로 넘어갔으며, 1951년 7월부터는 휴전회담도 시작되었다. 이에 노동당은 남한 지역에서 제2전선 역할을 수행하던 빨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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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일대에서 벌어진 북한군 유격대 섬멸전투. 남한 내에 있는 북한군 유격대 잔당들과 합류하기 위해 오대산 일대로 남하한 약 300명의 김상호 유격대를 토벌하기 위해 강릉경찰서 병력과 10연대의 2개 대대, 주문진의 3대대 일부병력들이 합동작전으로 1950년 3월 24일부터 4월 17일까지 25일간에 걸쳐 전투를 벌였다. 1949년 6월 말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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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경계지역 일대에서 벌어진 북한군 무장공비토벌전투. 동해안지구전투는 동해안지구 경찰합동작전으로도 불리어지는데, 북한 제526군의 각 부대 중앙당 정치연락대원 28명이 석병산과 만덕봉 골폭산 일대에 거점을 형성하고 약탈을 자행하면서 흉계를 기도 중인 것을 1952년 12월 8일부터 12월 16일까지 9일간 강릉경찰서·주문진경찰서·삼척경찰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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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월 27일 만덕봉에서 벌어진 공비토벌전투. 1952년 1월 24일 대궁산 전투에서 2명이 생포되고, 남쪽으로 도주한 잔당들을 강원전경 제8대대 1중대와 강릉경찰서 병력이 합동으로 만덕봉에서 공비 2명을 추가로 사살하였다. 한국전쟁은 1951년 중반에 접어들어 38선에서 방어에 주력하는 장기전 태세로 넘어갔으며, 7월부터는 휴전회담도 시작되었다. 이에 노동당은 남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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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1리 보현사 부근에서 일어난 전투. 1952년 7월 16일 조선노동당 강릉군당을 재건하기 위하여 강릉 지역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3명 중 1명이 주문진경찰서로 귀순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강릉경찰서 병력이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시작하여 1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였다. 1952년부터 북한의 노동당은 남한 내의 빨치산을 지원하고 조선노동당을 재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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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국군과 북한군 정찰대 병력이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2리 부연동에서 벌인 전투. 1951년 7월 10일부터 휴전까지는 한국전쟁의 교착기였다. 그러나 휴전회담이 개시될 때 쌍방은 협정 조인 시까지 군사 작전을 계속하기로 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협상장에서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전장에서는 수시로 전투가 벌어졌으며, 남한 곳곳에서 산발적인 전투들이 이어졌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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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시 북한군 패잔병들이 퇴각하면서 강릉 지역을 공격하여 벌인 전투. 1950년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남한 내에 고립되어 있던 북한군 패잔병들이 동해안 산악지대를 따라 북상 중에 1개 사단 병력이 강릉을 공격하여 많은 인명을 살상한 전투이다. 1950년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1950년 9월 28일에는 수도 서울을 탈환하였고, 북한군 6개 사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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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과 명주군 경계 지역에서 일어난 공비 귀순 작전. 1953년 휴전 후 빨치산 부대들은 장기적인 활동을 고려하여 사상무장을 강화하고 부대를 소규모로 편성하여 운영하였다. 1953년 9월에 들어 지구당은 소규모로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에 빨치산은 주로 지리산 지구, 덕유산 지구, 회문산 지구, 형제봉 지구, 모후산 지구, 전남 동부 지구, 영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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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3리 대곡동 지역에서 벌어진 북한군 유격대원 토벌전투. 북한 제526군은 1951년 1월 대남 무장공작원을 양성하기 위하여 창설한 부대이며, 한국전쟁으로 와해된 남로당과 그 산하조직의 재건을 위하여 남파되어, 남한 전 지역에서 유격대를 조직하고 비정규전 활동을 자행하였다. 제526군 예하에 2개의 연락소와 6개의 지대를 두어, 남한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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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3리에서 벌어진 북한군 무장공비토벌전투. 1951년 말부터 대대적인 남한 내 빨치산들에 대한 토벌로 남한 내에서 유격활동을 하는 세력들이 많이 약화되었다. 1952년부터 남한의 빨치산을 지원하기 위해 북한은 금강정치학원 출신들을 비롯한 무장부대들을 대거 내려 보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952년 중반 이후에는 남한 내 대부분의 무장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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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일대에서 벌어진 북한군 무장공비토벌전투. 제526군은 대남 무장공작원을 양성하기 위하여 1951년 1월에 조직된 부대로, 와해된 남로당과 그 산하조직을 재건하기 위하여 남파되었다. 남한 전 지역에서 유격대를 조직하고 비정규전 활동을 하였는데, 예하에 2개의 연락소와 6개의 지대를 두어 남한 각 지역에 1개 지대씩을 침투시켰으며 지역별로 유격활동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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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일대에서 벌어진 북한군 무장공비토벌전투. 한국전쟁 휴전회담이 1951년 7월 7일부터 시작되자 노동당은 남한 지역에서 제2전선 역할을 수행하던 빨치산 유격대 체제를 지구당 체제로 개편할 것을 지시했다. 강원도 지역의 제2지구로 설정되어 있던 빨치산들은 남한의 지속적인 토벌로 인해 그 세력들이 많이 약화된 상태였다. 이에 북한은 1952년부터 남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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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0월 26일 신대령 부근에서 벌어진 무장공비토벌전투. 남한 내 빨치산들에 대한 지속적인 토벌로 인해 유격활동을 하는 세력들이 많이 약화되자, 1952년부터 북한은 남한의 빨치산을 지원하기 위해 무장부대들을 대거 투입하였다. 그러나 기대만큼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대부분의 무장투쟁 세력은 주로 산악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강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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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강원도 강릉시 월천동에서 일어난 공비 생포 전투. 1952년 11월 24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의 큰골에 출현한 북한군 제526군 소속 941부대 제2지원대 공비 9명이 옥계지서 및 강릉경찰서 병력과 교전 후 도주하였는데, 그 중 1명이 월천동 독립 가옥에 은신 중인 것을 생포하였다. 북한군 제526군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1월 대남 무장공작원을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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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지역에서 벌어진 북한군 유격대원 토벌전투. 제526군은 1951년 1월 대남 무장공작원을 양성하기 위하여 창설한 부대이며, 한국전쟁 이전에 남한에서 지하운동을 하다가 월북하였거나 한국전쟁 당시 와해된 남한 좌익분자들로 구성되었다. 제526군은 한국전쟁으로 와해된 남로당과 그 산하조직의 재건을 위하여 남파되어, 남한 전 지역에서 유격대를 조직하고 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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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지역으로 잠수함을 이용해 침투한 북한군 무장공비 토벌사건. 북한의 무장공비를 승선시킨 잠수함이 1996년 9월 15일 19시에 강릉 앞바다에 도착하여 공작원을 상륙시켰다. 그 후 1996년 9월 16일 20시 30분, 전날 침투시킨 공작원을 복귀시키기 위하여 안인진리 해안에 정선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1996년 9월 17일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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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지역에 침투한 무장간첩 토벌 사건. 1969년 3월 주문진에 침투한 공비들이 공작을 마치고 주문진 앞 해상에서 도주하려는 것을 예비군과 군경이 사격하여 보트를 침몰시키고 공비 모두를 익사 또는 사살하였다. 1960년대 말경에는 북한 내 지도부가 무장 게릴라세력을 대량 남파한 시기이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1968년 1월에 31명의 무장 게릴라가 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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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지역에서 벌어진 북한군 무장공비토벌전투. 제526군은 1951년 1월 대남 무장공작원을 양성하기 위하여 창설한 부대이며, 부대원들은 한국전쟁 이전에 남한에서 지하운동을 하다가 월북하였거나 한국전쟁 당시 와해된 남한 좌익분자들로 구성되었다. 이 부대는 한국전쟁으로 와해된 남로당과 그 산하조직의 재건을 위하여 남파되어, 남한 전 지역에서 유격대를 조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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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남북한군이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 복룡산 일대에서 벌인 전투. 1953년 휴전 후에도 비록 약화되기는 했지만 빨치산들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빨치산 부대들은 장기적인 활동을 고려하여 사상 무장을 강화하고 부대를 소규모로 편성하여 운영하였다. 1953년 9월에 지구당은 소규모로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에 빨치산은 주로 지리산 지구, 덕유산 지구, 회문산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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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지역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려는 지방 자치 단체의 행정 작용. 치안은 경찰과는 그 역사적 내용에서 다른 용어이다. 전통시대에는 오늘날 경찰의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었으나 경찰이란 용어를 쓰지는 않았다. 따라서 치안은 근대 이후에야 등장하는 경찰보다 광범위한 개념으로, 전통시대의 포도청, 일제강점기의 경무청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1389년 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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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1월 24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의 큰골 지역에서 벌어진 공비토벌전투. 북한 제526군은 1951년 1월 대남 무장공작원을 양성하기 위하여 창설한 부대이다. 부대원들은 한국전쟁 이전에 남한에서 지하운동을 하다가 월북하였거나 한국전쟁 당시 와해된 남한 좌익분자들로 구성되었다. 북한 제526군은 한국전쟁으로 와해된 남로당과 그 산하조직의 재건을 위하여 남파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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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7일 강릉 국방경비대에서 일어난 무장폭동을 군경이 진압한 작전. 1948년 4월 7일 강릉 국방경비대 8연대 3대대의 이상사 외 5명이 좌익계열의 군인들을 선동하여 1948년 4월 7일 밤 11시를 기해 강릉 시내에서 폭동을 기도한 것을 축출하며 이들을 추격하여 진압하고 체포하였다. 1946년 1월 미군정 당국은 장래 주한미군점령군의 감축 및 철수에 대비한 토착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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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5월 22일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서 벌어진 간첩사살사건. 1960년대는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이 매우 활발히 이루어졌던 시기이다. 특히 196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대규모의 간첩을 남파시키게 된다. 남한 내에서 포섭활동을 벌이고 있는 간첩 소탕이다. 당시 성산면 보광리 98번지가 본적인 대남 정치공작원 최춘집[당시 36세]을 비롯한 동료간첩 1개조 3명이 15통 1반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