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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046
한자 文學
영어음역 Munhak
영어의미역 Literatur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집필자 박승희

[정의]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개설]

문학이란 상상의 힘을 빌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을 일컫는다. 김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학은 크게 고전 문학과 현대 문학의 범주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고전 문학의 경우 고려 시대 개령현임춘(林椿)을 필두로, 조선 초기에 활동한 반곡(盤谷) 장지도(張志道)를 비롯하여 성균관대사성을 지낸 최사로(崔士老)[1406~1469] , 『신편동국통감』을 수찬한 이숙함(李淑瑊 )[1429~?] 등이 대표적이며, 「만분가(萬憤歌)」를 지은 매계(梅溪) 조위(曺偉)[1454~1503] 등을 대표 문인들로 들 수 있다.

현대 문학의 경우 일제 강점기로부터 출발한다. 1930년에 발간된 『무명탄』을 비롯해서 1939년에는 김천 출신의 김태은(金泰殷)의 주도 하에 발간된 『흑조(黑潮)』 등의 동인지 활동으로부터 이 시기 문학은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본격적으로 김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문학 활동이 펼쳐진 것은 광복 후 1947년에 발족된 오동시문학구락부(梧桐詩文學俱樂部)에서부터라 할 수 있다. 김상갑, 임성길, 김도오, 배병창, 정완영(鄭椀永) 등을 동인으로 한 이 단체는 동인지 『오동』을 2집까지 발간한 바 있다. 또한 6·25전쟁 후 김천 문학은 김천 문화의 집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그 기관지 『소문화(小文化)』가 구심점이 되고 몇몇 동인들이 개별적 문학 활동을 펼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변천]

1. 고전 문학

김천 문학은 기록상으로 고려 시대에 개령 지방에서 가장 먼저 싹튼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개령의 역사가 김천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김천 문학은 개령현의 한골[아포읍 대신리]에 우거했던 서하(西河) 임춘[고려 의종~명종 사이, 1147~1197]에 의해 전개된다. 임춘이 개인적으로는 불우하여 타향인 개령에 와 머물렀으나 당대 강좌칠현(江左七賢)의 한 사람이었던 임춘이 만년을 거의 이곳에서 보냈다는 사실은 김천 문학사에서는 큰 복이 굴러든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가전체 소설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국순전(麴醇傳)」이나 「공방전(孔方傳)」 등도 이곳에서 쓰였으리라는 심증은 굳으나 현재 이를 입증할 자료가 미비하다. 한 마디로 임춘의 개령 우거는 김천 문학의 수준을 전국 수준으로 격상시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며, 그 영향력은 지대했다고 하겠다.

또한 고려 말에는 송월당(送月堂) 이사경(李思敬)이 고려가 망할 것을 알고 다섯 아들과 더불어 아포읍 보신리로 낙향하여 수 칸의 모옥을 짓고 벽에는 공민왕[재위 1351~1374]의 초상을 걸고 조석으로 문안드렸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송월당기」를 지었는데 역시 『동문선(東文選)』에 등재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보면 개령현 중에서도 아포는 진작부터 문풍이 대단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송월당의 유작을 대할 수 없음이 아쉽다.

조선 시대에 활동한 김천의 문학인으로는 먼저 향토의 대학자요 시인인 장지도가 있다. 장지도지품천현(知品川縣)[지례] 출신으로 고려 유신이면서 1400년대 이전[이태조 재위 1392~1398]을 조선조에서 벼슬을 살았으나 결국 뜻에는 맞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지례현 반곡에 내려와 여생을 자연과 벗하며 마쳤다.

그 외에 선조 때의 사람으로 중국으로부터 『전등신화(剪燈神話)』를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와서 구해(句解)[자구 해석]하여 널리 보급한 임기(林芑)가 있다. 또한 김산 하로 출신으로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을 지냈으며 시재(詩才)에 뛰어났던 최사로, 구성면 상좌원리 태생으로 서거정과 함께 『신편동국통감(新編東國通鑑)』을 수찬한 이숙함(李淑瑊)[1492~ ?], 야은(冶隱)의 학통을 이어받았고 『점필재집(佔畢齋集)』 을 남긴 김종직(金宗直)[1431~1492] 외 우거, 봉산면 봉계 출신으로 「만분가(萬憤歌)」를 지어 우리나라 최초의 유배 가사를 남긴 조위 등이 있다.

그리고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를 편찬하여 후에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의 대본을 마련한 조신(曺伸)[1454~1529], 검소한 행실과 문장으로 세상의 추중(推重)을 받던 성종·중종 때의 학자 전만령(全萬齡)[1467~1518], 하곡(荷谷) 허봉(許葑)·남봉(南峰) 김첨(金瞻) 등과 시주(詩酒)를 주고받던 문장가 권응시(權應時)[1541~1587], 어릴 때부터 시재를 발휘하여 15세에 「동국읍호부(東國邑號賦)」를 짓기도 했던 김덕승(金德升)[1595~1658], 신사임당의 손녀이자 「매학정(梅鶴亭)」이라는 시를 남긴 덕수 이씨(德水李氏), 구성면 상좌원리 출생으로 재예가 뛰어났던 이수태(李遂泰) 등의 학자이자 문학가들이 있다.

이밖에 김천 출신으로 문학에 오르내린 사람이 많은데, 그 가운데 「해상수작록(海上酬酌錄)」을 남긴 이태하(李泰夏), 문장으로 이름난 조세봉(曺世鳳), 문장가인 이해조, 김덕승의 아들 김만징(金萬徵), 즉흥시로 유명한 김경욱(金慶郁), 문장과 서예로 이름난 김익수(金益洙), 밤에 든 도적을 설유하고 쌀 3말을 주어 보냈다는 문인 이안신(李安臣) 등이 있다.

2. 현대 문학

1) 일제 강점기 김천 문학

1920년대에 이르러 카프(KAPF) 조직을 계기로 프로 문학이 활발해질 무렵 김천 지방에서도 그 영향 하에서 근대 문학이 시작되었다. 김태은을 중심한 문인들이 동아리를 만들고 동인지 『흑맥(黑麥)』을 프린트로 발간하여 시와 수필 등을 발표하였다. 1930년 1월에는 김태은이 서울로 올라가 카프 계열의 임연(林然)과 주동하여 동인지 『무명탄(無名彈)』을 발간했다. 『무명탄』에는 시[임연 외] 19편, 소설 1편, 희곡 1편, 수상 1편, 수필 6편, 기행문 2편, 평론 3편, 기타 잡문[김태은은 황악산인(黃岳山人)이란 필명을 씀] 2편 등 다양한 내용이 실렸다.

1932년에는 김천 출신 민동선(閔東宣)이 일찍이 서울에서 수학하고 안심사(安心寺)에서 불교 수도를 하면서 「한글 경판(經版)을 뵈옵고」라는 시조를 발표한 이래 『월간 불교(月刊佛敎)』에 계속 시조 작품을 발표했다. 1939년 1월에는 김태은이 서울에서 최필봉(崔筆鳳)·이영식(李泳植) 등과 시집 『웅계(雄鷄)』를 2집까지 발간했는데, 『웅계』에 투고한 사람은 춘원 이광수·모윤숙·김엽·최필봉·김태은 등 22명이었으며 이들의 시 22편이 실렸다.

2) 광복 후 문학

광복 후 김천의 문학 활동은 1947년부터 오동시문학구락부란 동인회를 조직하고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1950년에 일어난 6·25전쟁으로 중단되고, 1953년에 김천 문화의 집이 개설되면서 문학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 예술의 유일한 집합체로서 초창기에는 시 낭송회·음악 감상회 등을 통하여 점차 문화 활동이 활발해졌고 문학 활동도 왕성해졌다.

1945년 창립된 ‘문화의 집’의 초창기 운영위원은 강중구(姜重求)를 비롯하여 11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문학인은 정재호(鄭載椃)·강중구·이홍석(李洪錫) 등 3, 4명이었다. 그 뒤에 홍성문(洪性文)·이정기(李廷基)·김태은·김기환·윤사섭(尹史燮)·정수봉 등이 가담했고, 1955년부터 동인지(『소문화』는 뒤에 김천문화원 기관지 『김천문화』가 됨)를 발간하면서 활발한 문학 활동이 전개되었다.

1959년에는 별도로 흑맥문학회가 창설되어 문학 활동에 있어서 가장 화려한 시대를 맞았고, 1960년은 한꺼번에 4개 신문 신춘문예 당선을 김천에서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1960년부터 약 15여 년의 화려한 시대를 지나고는 김천문우회·김천시문학회 등 부문별로 동아리가 조직되고, 문단에 등단한 문학인들은 동아리 활동보다 개인적인 창작 활동에 치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작품 발표나 창작 활동에 있어서 1960년대의 전성기를 거치면서 정완영 같은 대표적인 시인이 배출되었다.

김천의 문학은 일제 강점기에 민동선이 시조 문학을 시작하더니 광복 후에도 시조 분야가 두드러져 김천 문학 하면 시조를 연상케 할 만큼 되었다. 1988년에는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가 창설되었고, 1990년대에는 김천 출신 문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두드러진 활동상을 보이고 있다.

김천 지역과 관련된 소재가 등장하는 소설에는 「춘향전」, 「장끼전」, 「임진왜란」, 「황녀」, 「객주」 등이 있다.

[현황]

1930년대 지방 중소 도시로서는 드물게 『무명탄』이라는 동인지를 발간했으며, 1939년 김천 출신의 실업가 김연만이 경영난으로 폐간된 『문장(文章)』을 인수하여 속간한 것을 보아도 김천 지역 인사들의 문학열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문학열은 1950년대에도 계속되어 김천 문화의 집에서 출간된 『소문화』, 지역 문인들의 동인인 오동시문학구락부, 벽(壁)과 눈, 흑맥문학회 등이 활발한 활동을 증명해 준다. 이후의 김천 지역의 문학 활동은 몇몇 동인과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에 의해 꾸준히 지속되었다. 1976년 발족된 김천시문학회, 1980년 결성된 김천문학회가 대표적 문학 집단이며, 이들이 주축이 된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가 1988년 결성되었다. 지금도 김천의 지역 문학은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를 중심으로 김천 지역 문학의 전통을 이으면서 꾸준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 소설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소설가로는 권태을(權泰乙), 윤사섭, 심형준(沈亨準), 김정규(金定奎), 김연수, 김중혁 등이 있으며, 김천 지역과 관련된 소재가 등장하는 소설에는 「춘향전」, 「장끼전」, 「임진왜란」, 「황녀」, 「객주」 등이 있다.

권태을은 1970년에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신농씨(神農氏)」가 당선되었다. 윤사섭은 1988년 4월 7일에 결성된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의 회원인데 동화 작가이다. 동화집 『전봇대가 본 별』[1961], 『아가신』[1965], 『바람은 불어도』[1975], 『달님과 코스모스』[1965], 『아기바람 엄마바람』[1969], 『날아간 물오리』[1975], 『산의 이야기』[1982], 『목각인형』[1988], 『따구새』[1990], 『바람이 본 세상 사람들』[1992], 『참새 세 마리』[1992]와 장편 소년 소설 『소년원의 푸른 하늘』[1992] 등 많은 책을 냈다.

심형준은 『월간문학』에 신인상 「소리치는 흔적」으로 등단하고, 단편 소설집 『소리치는 흔적』, 중편 소설 『고여있는 시간』, 장편 소설 『뒷모습은 숨길 수 없다』 등을 출간했다. 김정규는 『우리문학』에 「외·복무규율」로 등단하여 장편 소설 『무너지는 땅』, 『장교수첩』 등을 출간했다.

2000년대 들어서 김천 출신 소설가인 김연수와 김중혁의 활동도 두드러진다.

2. 시

김천 출신으로 1980년대 이후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시인으로 이동순, 이승하, 문태준 등을 들 수 있다. 시인 이동순은 1950년생으로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마왕의 잠」이 당선된데 이어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 평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동안 시집 『개밥풀』, 『물의노래』, 『지금 그리운 사람은』, 『철조망 조국』,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 『꿈에 오신 그대』, 『봅의 설법』, 『가시연꽃』, 『기차는 달린다』, 『아름다운 순간』, 『마음의 사막』, 『미스 사이공』, 『발견의 기쁨』과 평론집 『민족시의 정신사』, 『시정신을 찾아서』, 『한국인의 세대별 문학의식』,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과 현장』, 『달고 맛있는 비평』, 산문집 『시가 있는 미국기행』, 『실크로드에서의 600시간』, 『우리 시의 얼굴 찾기』 등을 발간하였다.

시인 이승하는 1960년생으로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화가 뭉크와 함께」가 당선된데 이어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비망록」이 당선되어 화려한 등단을 하였다. 시인 문태준은 1970년생으로 1994년 『문예중앙』 신인 문학상에 시 「처서」 외 9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시집 『수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과 수필집 『느림보마음』을 발간하였다.

3. 수필

1970년대까지 김천에서는 이렇다 할 수필가나 수필 작품이 출현하지 못하다가 김천예술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던 이우상이 본격적인 수필가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수필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하였다. 2010년 현재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 부지부장을 맡고 있는 이우상은 1993년 『시세계』 수필 부문의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김천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역임한 이태옥은 현직에 있을 때인 1994년 『삶터문학』 신인상에 당선된 후 수필집 『세월너머 흐르는 강』을 발간했고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 사무국장을 역임한 이성환은 1995년 『한국수필』 신인상, 박경미는 2004년 『문학세계』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2005년에는 4명의 수필가가 배출되었다. 현재 지동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강기석이 『수필세계』 신인상에 당선된 데 이어 노경애가 『현대수필』 신인상, 장정인이 『에세이 문예』 신인상에 당선되고 정장림 역시 같은 해 『문학세계』 신인상 당선으로 문단에 나와 수필집 『야생화의 꿈』을 발간하였다. 2008년 윤남석이 『동양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되었다.

4. 시조

시조 시인으로는 백수 정완영을 비롯하여 배병창·장정문·김상훈·김남환·이동현·조오현·정순량·이정환·황명륜·노중석·장병우·박기하·이익주 등을 들 수 있다.

백수 정완영은 약관 전부터 시조를 창작하여 30세를 전후한 1948년에는 「조국」을 비롯한 3백여 수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1960년에는 『국제신보』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고, 1962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조국」이 당선되었다. 1967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해바라기처럼」이 당선되어 시조의 영역을 확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조의 문학적 위상을 제고시켜 나갔다. 1969년 시조집 『채춘보(埰春譜)』를 발간한 이래 2010년 제14 시조집 『구름산방』을 발간하였으며, 『시조창작법』[1981], 『고시조감상』[1892] 등과 동시집, 시조선집, 사화집 등이 있다.

수운 배병창은 1960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기(旗)」가 당선되었다. 이후 시조집 『소나기와 종』[1960], 『항아리』[1965], 『이슬과 송학』[1975] 등을 발간하였다. 천곡 장정문도 1968년에는 『신아일보』 신촌문예와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었으며, 백수·수운의 뒤를 이어 김천시문학회[1976] 회장으로서 시조 문학 활성화에 이바지 하였다. 『두메꽃』[1976]·『사향춘(思鄕春)』[2007] 등의 시조집이 있다.

김상훈은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1967]된 이래 『부산일보』 사장직을 수행하면서 시조 창작과 연구를 왕성하게 전개해 왔다. 『파종원』, 『우륵의 꿈』, 『산거』, 『내 구름되거든 자네 바람되게』 등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김남환은 『월간문학』 신인 작품상을 수상[1972]한 이래 『시간이 기대어 흐르는 강물을 듣네』[1984], 『황진이와 달』[1986], 『이차돈의 강』[1997] 등의 시조집을 발간하다.

승려 시인으로 출발하였던 이동현[법호 경안]은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1972]되고, 『시조문학』의 천료를 거쳐 시조집 『꽃잎의 변주곡』[1998]을 발간하였다. 같은 시기에 조오현도 『시조문학』 천료[1968]로 시조를 창작하는 한편 이동현과 같이 전국승려시인회를 결성하여 기관지로 『승려시집』을 발간하였다.

정순량은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조 당선과 『시조문학』 천료를 거쳐 김천시문학회 부회장[1976]을 역임하며, 김천 시조 문학 활성화에 기여하다가 대학 교수로 진출하여 학문을 겸하고 있다. 이정환은 교직으로 인하여 김천에 와서 시조 문학을 하였는데 1978년에는 『시조문학』의 천료를 받고, 1981년에는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었다. 『덧니』[공저]와 『서서 천년을 흐를지라도』를 발간하였다.

2009년에 발족한 김천시조인협회의 회원으로서 황명륜은 문학 전반의 활성화에 기여하였고, 서화가로서도 입신하였다. 『공지에 서서』, 『백지 위에 꽃눈을 놓고』 등의 시조집이 있다. 노중석은 서도가로서 입신한 시조 시인으로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가작 입선[1978]을 거쳐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 부회장[1988]을 역임하였다. 시조집으로 『비사벌 시초』[1993]와 시조선집 『하늘 다람쥐』[2006] 등이 있다.

장병우는 고등학교 교사로 시조를 강의하고 창작하였다. 시조집으로 『사랑할만 것만 사랑하리』[1998]가 있다. 박기하는 『월간문학』 시조부분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문협 김천지부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2010년 현재 김천시조인협회 회장을 맡은 이익주는 『낙강』 시조백일장 입상[1985]과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1988] 되었으며, 문협 김천지부 부지부장[2, 3대]을 역임하여 김천 시조 문학의 활성화를 모색해 왔다.

[의의와 평가]

김천 문학은 지역 문학에 애정을 가진 문인들에 의해 꾸준히 그 활동이 지속되어 왔으며 김천시문학회, 김천문학회,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는 이러한 활동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발간물을 통해 본 김천 문학의 특성은 시조의 절대적 우세와 소수 자유 시인들의 활동으로 정리할 수 있다. 시조가 지니는 일반적 특성, 자연과 인생에 대한 관조, 회고적 정서는 김천 지역 시조 시인들의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시조 창작이 점점 위축되는 전국적 추세에 따라 김천 지역에서도 자유시를 쓰는 시인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소수의 동화 작가, 소설가들의 활동도 김천 지역의 문학 활동을 구성하는 중요한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 문학의 의미를 지역 속에서 발산해 내는 문학 활동은 김천 지역의 문학인들에게 남겨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정된 지면에의 작품 발표에 그치지 않는 소규모 동인 활동과 그를 통해 지역 문학의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노력, 그것을 지역의 문화 활동 전체로 결집해 내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9.26 이사경 낙향지역 지명 오류 아포읍 보신리로 수정함
2011.07.18 2011년 한자 최종 검토 작업 고려 말에는 송월당(松月當) 이사경(李思敬)이 고려가 망할 것을 알고 ->고려 말에는 송월당(松月堂) 이사경(李思敬)이 고려가 망할 것을 알고
2011.07.18 2011년 한자 최종 검토 작업 2) 남봉(南蜂) 김첨(金瞻) 등과 시주(詩酒)를 주고받던 ->남봉(南峰) 김첨(金瞻) 등과 시주(詩酒)를 주고받던
2011.07.18 2011년 한자 최종 검토 작업 3) 고려 말에는 송월당(松月堂) 이사경(李思敬)이 고려가 망할 것을 알고 ->고려 말에는 송월당(送月堂) 이사경(李思敬)이 고려가 망할 것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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