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144
한자 校洞
영어음역 Gyo-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31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동
면적 3.3㎢
가구수 1,280가구
인구(남, 여) 3,942명[남 1,944명, 여 1,998명]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김산향교가 있어 향교골 또는 교리(校里)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마을 지형이 갓 모양과 같아 관동이라고도 하고, 달리 생깃골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 김산군 군내면 교리와 향동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1914년 향동과 상리 일부가 병합되어 김천군 금릉면 교동으로 개편되었다. 1931년 김천읍 교동이 되었고, 1949년 김천시 교동이 되었다. 1983년 인근의 감락동·문단동과 통합되어 금산동으로 개편되었고, 1998년 행정동 통합으로 신설된 대신동 관할이 되었다.

[자연 환경]

남쪽에 평야가 펼쳐져 있고 북쪽에 구화산이 솟아 있다. 경부고속국도 남쪽으로 직지천이 흘러 부곡동으로 이어진다.

[현황]

교동은 2011년 1월 14일 현재 면적은 3.3㎢이며, 1,280가구에 총 3,942명[남 1,944명, 여 1,99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부춘산을 사이에 두고 신음동, 서쪽으로 개울을 사이에 두고 삼락동, 북쪽으로 구화산을 사이에 두고 대응동과 이웃한다. 마을 앞으로 경부고속국도가 동서로 지나고 마을 인근에 과수원이 많다. 교육 기관으로 김천예술고등학교·김천농공고등학교·한일여자중학교·한일여자고등학교가 있고, 문화 유적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7호인 김산향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인 봉황대가 있다.

명소로 조선 초기에 농업용수 관개지로 조성되었던 교동 연화지가 있다. 물이 맑고 경관이 좋아 풍류객들이 삼산 이수를 형상화하여 못 가운데에 세 개의 봉우리를 쌓고 정자인 봉황대를 지어 시를 읊고 술잔을 기울이면서 노닐던 곳이다. 근래에 관개 시설 기능을 잃어버렸다가 1993년 약 2만 9372㎡ 공간을 시민 휴식처로 조성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