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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182
한자 鳳谷里
영어음역 Bonggok-ri
이칭/별칭 새터,봉현,봉곡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9.6㎢
가구수 239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559명(남자 284명, 여자 275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예부터 마을 뒷산에 왜가리 떼와 백로 떼가 살고 있어 새터·봉현(鳳峴)·봉곡(鳳谷)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개령군 농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봉현·노산(蘆山)·사실[일명 사곡]이 통합되어 김천군 농소면 봉곡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농소면 봉곡동으로 개칭하였고, 1971년 봉곡1동과 봉곡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봉곡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동남쪽에 백마산, 서쪽에 응봉산이 솟아 있다.

[현황]

봉곡리는 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3㎞ 떨어져 있다. 2010년 8월 30일 기준 면적은 11.48㎢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239세대에 559명(남자 284명, 여자 27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남쪽으로 성주군 초전면, 서쪽으로 감천면 무안리와 이웃하고 있다. 봉곡1리·봉곡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다. 임진왜란 때 김해 김씨 김충량(金忠良)이 남원에서 옮겨 와 정착하였고, 이후 화순 최씨 12세손 최세갑(崔世甲)이 조마면 신안리에서 이주하여 정착한 이래 대대로 김해 김씨·화순 최씨·동래 정씨가 집성촌을 이루었다.

문화 유적으로는 이종화(李鍾華) 처 김해 김씨 정려각, 고방사(高方寺) 등이 있다. 이종화의 처 김해 김씨는 남편이 병사하자 삼종지의(三從之義)의 도리를 지키겠다며 자결을 하여 1847년(헌종 13)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고, 1853년(철종 4) 정려문을 세웠다. 고방사는 418년(눌지왕 2) 아도화상백마산에 창건한 사찰로 당시 규모가 컸으나 임진왜란 때 많은 전각이 불에 타고 법당만 남았다.

자연 마을로 샙띠·우봉골·사실·노산 등이 있다. 샙띠는 예부터 마을 뒷산에 왜가리와 백로가 집단으로 날아와 산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새터 또는 봉현이라 했는데 음이 변해서 샙띠로 정착된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도 왜가리가 집단 서식하고 있다. 우봉골은 연명리 수오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로 마을이 들어선 골짜기인 우봉골에서 따 온 이름이다. 2008년과 2009년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사업 마을로 지정되어 마을의 면모를 일신하고 전국 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폐교가 된 봉곡초등학교를 활용해 자두 체험 마을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실은 샙띠와 마찬가지로 김해 김씨가 집성을 이루고 있는 마을로 뒷산인 백마산에 있는 고방사 아래 마을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마을에 새가 많아 새실 또는 조곡(鳥谷)이라고도 한다. 노산은 뒷산에 갈대가 많아 붙인 이름이다. 백마산을 넘어 경상북도 성주군으로 연결되는 험준한 고개인 별미령(別味嶺)은 예부터 성주군에서 서울로 갈 때 거쳐야 하는 고개로 백마산의 갈대밭을 헤치고 고개를 넘다가 숨을 돌리며 마시는 막걸리 맛이 일품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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