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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령 전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482
한자 牛頭嶺戰鬪
영어음역 Uduryeong Jeontu
영어의미역 Battle of Udury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호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1592년 7월 17일연표보기
발생|시작 장소 경상북도 김천시
종결 장소 경상북도 김천시
성격 전투
관련 인물/단체 김면|황응남|김준민|이형|곽준|문위

[정의]

임진왜란 당시 우두령[우치현]에서 일어난 김천의 대표적 전투.

[역사적 배경]

임진왜란 초기 전라도 점령의 임무를 맡은 왜군 제6진 고바야가와가 이끄는 왜군 1만 5000명이 의령에서 거병한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의 활약으로 의령·삼가·합천에서 차단되고, 고령에서 거병한 김면(金沔)에게 함양·거창에서 차단되어 호남에 들어가지 못한 채 지례·김산·선산·성주 등지에 분산 주둔하면서 거창과 무주를 거쳐 전라도로 진출을 도모하였다.

[경과]

7월 17일 지례·김산에 주둔하던 1,500명의 왜군이 거창으로 향한다는 정보에 따라 의병장 김면이 의병군의 지원을 얻어 2,000명으로 군진을 구성하여 우두령에서 왜군을 맞아 전투를 벌였다. 우두령은 거창과 김천의 경계이다. 김면은 좌부장에 황응남, 우부장에 김준민, 복병장에 이형, 종사관에 곽준·문위를 임명하고 의병 2천으로 우두령 고개 양편 언덕에 매복시켜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일시에 기습하는 작전을 폈다. 의병군이 매복한 줄도 모르고 우두령 산마루를 넘는 찰나 의병들이 한꺼번에 길 양쪽 산 위에서 공격하자 많은 왜적들이 참살당하였다.

[결과]

우두령 전투에서 황응남은 임진왜란 초에 제포만호로 있으면서 도망쳐 황산에 숨었던 불명예를 씻고자 이 전투에서 힘써 큰 공을 세웠다. 거창에서 의병을 모아 김면 휘하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한 변훈은 우두령 전투에서도 선봉에서 싸웠고, 김준민은 대궁(大弓)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복병장 이형은 전사했다.

[의의와 평가]

우두령 전투에서는 특히 산척[산에서 사냥이나 약초 채취로 생업하는 사람]들의 활약이 컸는데 이들은 익숙한 궁술로 많은 적을 무찔렀다. 우두령 전투는 산지를 이용해서 왜군의 침입을 막는 데 큰 전과를 올린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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