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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821
한자 許琛
영어음역 Heo Chim
이칭/별칭 헌지(獻之),이헌(頤軒),문정(文貞)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호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444년연표보기
활동 1475년연표보기
활동 1476년연표보기
활동 1482년연표보기
활동 1489년연표보기
활동 1499년연표보기
활동 1504년연표보기
몰년 1505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 지도보기
외가|처가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양천(陽川)
대표 관직 좌의정

[정의]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헌지(獻之), 호는 이헌(頤軒). 증조할아버지는 허기(許愭)이고, 할아버지는 양양도호부사 허비(許扉)이며, 아버지는 양천부원군 허손(許蓀)이며, 어머니는 금릉 하로의 부녹사 최안선(崔安善)의 딸이다. 부인은 유시(柳蒔)의 딸이다. 아들은 허굉(許硡)이다. 형으로 우의정을 지낸 허종(許琮)이 있다.

[활동 사항]

허침(許琛)[1444~1505]은 일찍이 신동으로 널리 알려졌다. 1462년(세조 8) 진사시에 합격하고, 1475년(성종 6)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1476년(성종 7)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후 성균관전적·사헌부지평·예문관지제교 등을 역임하였다. 1482년(성종 13) 현직 문무 관료를 대상으로 치른 진현시(進賢試)에 3등으로 뽑혀 세자시강원필선·예문관응교 등을 지냈다. 이후 전라관찰사·경상관찰사·사헌부대사헌·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1504년(연산군 10) 좌의정에 올랐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생모 윤비(尹妃)의 폐출에 참여하였던 다수 대신들이 사사(賜死)되거나 유배되었지만, 신병을 핑계로 불참하여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학문과 저술]

1489년(성종 20)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수정·보완 작업에 참여하였고, 시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1499년(연산군 5) 동지중추부사로 동지춘추관사가 되어 영춘추관사 신승선(愼承善) 등과 함께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하였다. 허침은 당대 석학이던 조위(曺偉)·유호인(兪好仁) 등과 교우하면서 세인의 존경을 받았고, 세자의 필선이 되어서는 교육하되 엄하고 화함을 사리에 맞게 하여, 뒷날 연산군도 그의 성품을 알고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다. 연산군의 폭정을 바로잡지는 못하였지만 많은 조신들을 구명하였다.

[상훈과 추모]

성종 대의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이용자 의견
허** 왜 김천출신인가? 이분이?근거는?? 2018.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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