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958
한자 朴喜範
영어음역 Bak Huibeom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호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922년연표보기
활동 1952년연표보기
활동 1957년연표보기
활동 1958년연표보기
수학 1968년연표보기
활동 1968년연표보기
활동 1968년연표보기
활동 1970년연표보기
활동 1970년연표보기
활동 1973년연표보기
활동 1977년연표보기
활동 1977년 2월연표보기
활동 1980년연표보기
몰년 1981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
성격 교육자|공무원
성별
본관 밀양(密陽)
대표 경력 서울대학교 교수|문교부차관|충남대학교 총장

[정의]

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교육자·공무원.

[활동 사항]

박희범(朴喜範)은 1922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968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2년부터 1957년까지 경북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으며, 이후 1968년까지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68년 문교부차관으로 재직하며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 실시, 국민교육헌장 및 가정의례준칙 제정, 아주대학교 설립 등에 공이 컸다. 1970년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을 지냈다. 1973년부터 1977년 2월까지 충남대학교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대학 캠퍼스를 대덕연구단지로 이전하는 계획을 추진했고, 공업기술개발연구소와 농업기술연구소 등의 개편과 신설, 학도호국단 발단, 보운장학재단 등을 설립하였다. 이후 1980년까지 계명대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박희범은 1960년대 경제 발전 이론을 한국 경제학계에 처음 도입하며 민족 경제론을 주장한 선구적 학자였다. 경제학자로서 박희범은 4·19혁명 이후 민족 자주화 의식이 확대되는 가운데 기존의 원조 경제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자립 경제론을 주장하였다. 5·16쿠데타 이후 박희범은 최고회의의장 자문위원으로 경제 개발 계획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박희범은 인도(印度)를 경제 개발의 모델로 삼으면서 자립 경제를 지향하는 자주적 공업화 전략인 이른바 ‘내포적 공업화 전략’을 제시하였다. 이는 민족 자본을 동원하여 기초적 생산재 공업을 우선 건설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1962년 7월 통화 개혁이 실패하면서 박희범 중심의 민족 자본에 의한 기간산업 건설과 수입 대체 산업화와 같은 발상은 힘을 잃게 되고, 외자 도입과 보세 가공 무역, 수출입국과 같은 대외 개방 노선이 대세를 이루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1970년에 펴낸 『한국경제성장론』이 있는데, 1970년대 경제학 연구 성과 가운데서 단연 주목 받는 책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