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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991
한자 裵濂
영어음역 Bae Ryeom
이칭/별칭 제당(霽堂)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임삼조민경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911년연표보기
활동 1929년연표보기
활동 1936년연표보기
특기 사항 1943년연표보기
활동 1943년연표보기
활동 1943년연표보기
활동 1943년연표보기
활동 1946년연표보기
활동 1947년연표보기
활동 1949년연표보기
활동 1953년연표보기
활동 1954년연표보기
활동 1954년연표보기
특기 사항 1963년연표보기
특기 사항 1964년연표보기
활동 1964년연표보기
특기 사항 1967년연표보기
활동 1967년연표보기
몰년 1968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지도보기
성격 화가|교수
성별
본관 성산(星山)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한국화가.

[가계]

본관은 성산(星山)이며, 호는 제당(霽堂)이다. 아버지는 배선벽이다.

[활동 사항]

배렴(裵濂)[1911~1968]은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어 금릉청년학과에서 학업을 마치고, 1929년 18세에 서울로 올라가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하였다. 당시 청전 이상범의 화숙(畵塾)에서 주로 전통 화법을 공부하였다. 1930년 제9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첫 입선한 이래, 1960년대 말까지 지속적인 출품, 전시로 한국 산수화의 근현대적 활로를 개척했다.

192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 작고할 때까지 화가로서 개인전도 활발히 하면서 심사위원,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미술계에 공헌을 하였다. 1929년 서화협회가 주관하는 제9회 서화협회전람회에 「만추」를 시작으로 서화협회 주관의 마지막 전람회가 열린 1936년까지 매해 작품을 출품하였다. 1930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을 거듭하였다. 특히 1936년 「요원」, 1943년 「사전」이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에 올랐다. 1940년 29세의 나이로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42년부터 1943년까지 청전화숙 동문전에 참가하였다. 이 시기까지는 스승 이상범의 작풍과 화의를 본받은 수묵담채로 향토적 풍경을 주로 묘사하였다.

광복 직후에는 이응노·장우성·이유태 등과 함께 전통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려는 의욕을 갖고 단구미술원을 조직하였다. 단구미술원에서는 1946년 3월 첫 회원전을 개최하였으며, 당시 배렴도 작품 「생신」을 출품하였다. 이때부터 화가뿐 아니라 심사위원 등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을 하여 미술계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1947년 전국종합미술전에서 심사위원을 맡았고, 1949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창설되자 추천 및 초대 작가로 참가하였다.

그리고 1953년부터 1967년까지 15년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동양화부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또한 진해 이충무공 동상 사정위원을 지냈으며, 중년 이후 온화하고 유연한 필치로 산수화·화조화를 집중적으로 그리면서 전통적 화풍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1954년에 대한민국예술원회원이 되었으며, 그 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강사를 하다가, 1964년부터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를 역임하였다.

한국화계에서는 심전 (心田) 안중식·소림(小林) 조석진을 제1대, 청전 이상범·소정(小亭) 변관식·이당(以堂) 김은호를 제2대, 제당 배렴·월전(月田) 장우성·운보(雲甫) 김기창을 제3대 한국화가로 꼽는다. 조정육 미술평론가는 배렴을 ‘장승업-안중식-이상범 계열의 대표작가’로 보았다. 이경성 미술평론가는 배렴을 “재기보다는 꾸준한 노력과 자기 예술을 추진한 중거리형 천재”, “인간 배렴은 죽어도 예술가 배렴은 죽지 않았다”고 평한 바 있다.

국회의장 공관과 홍익대·고려대 박물관, 동아일보 본관 사옥에 배렴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말년에 살던 서울시 계동의 배렴 가옥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현재 시민에게 문화 예술 공간으로 개방되고 있다.

[저술 및 작품]

대표 작품으로는 「만추」[1929], 「요원」[1936], 「산성수양」[1942], 「사전」[1943], 「녹수청산」[1943], 「부귀장춘」[1943], 「계산가향」[1957], 「추강」[1957], 「하경산수」[1958], 「수상만추」[1967],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43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하였고, 1963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1964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67년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11.29 내용추가 [정의], [활동 사항], [주요 작품], [참고문헌] 내용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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