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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176
한자 鏡陽書院
영어음역 Gyeongyang Seowon
영어의미역 Kyungyang Private Confucian Academy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708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홍원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훼철|철거 1868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708 지도보기
성격 서원
양식 팔작기와집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2칸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중기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서원.

[개설]

송오(松烏) 여응구(呂應龜)와 그의 아들 감호(鑑湖) 여대로(呂大老) 부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서원 건물 오른쪽에 사당이 있는데 철폐 이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옛날과 같이 두 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여응구는 1572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론을 지냈으며 여대로는 1583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군수에 이르고 임진왜란 때 창의지사(倡義志士)였다.

[변천]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94년 『금릉군지』에는 숙종 대[1675~1720]에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868년 서원 철폐령이 내려지자 사당 건물은 철거하고 강당은 그대로 둔 채 현판을 ‘경양서원(鏡陽書院)’에서 ‘경양서당(鏡陽書堂)’으로 바꾸었다. 이는 서원 철폐령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형태]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 건물이다. 강당 건물의 기둥은 대추나무와 밤나무를 사용하고 있다.

[현황]

『송오문집(松烏文集)』·『감호문집(鑑湖文集)』 판목이 보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경양서원에 배향된 여응구주세붕(周世鵬)의 문인으로 유학에 대한 학덕이 높았으며, 그의 아들 여대로장현광·정경세 등과 교유하였는데, 이는 퇴계남명 간의 학문적 통로가 김천 지역을 거쳐 갔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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