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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740
한자 江村
영어음역 Gangchon
영어의미역 The Village by the River
이칭/별칭 「영강촌잡흥정허암」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권태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1454년연표보기
저술|창작|발표 1494년연표보기
저자 몰년 1503년연표보기
배경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성격 한시
작가 조위

[정의]

조선 전기 조위가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개설]

「강촌(江村)」매계(梅溪) 조위(曺偉)[1454~1503]가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에 있는 매계당(梅溪堂)에 거처하면서 지은 한시 두 편이다. 본래 시의 제목은 「영강촌잡흥정허암(詠江村雜興呈虛庵)」이다. 강촌 시는 천강(川江)을 낀 마을에 산 시인이면 누구나 읊을 수 있는 시제(詩題)로, 두보의 「강촌(江村)」 시가 명시로 애송되어 그 영향을 입어 많이 지어졌다. 조위가 고향인 김산군(金山郡)[현 김천] 봉계에서 강촌 생활을 누린 것은 40세인 1493년(성종 24)경으로 추정된다. 이 해 8월에 모친이 연로함을 이유로 정조사의 사명을 유예 받고 귀향하여 모친의 수연을 베푼 뒤 9월에는 작은 개울[현 봉계 매계재사·율수재사가 있는 공간] 위에 매계당을 짓고 화원을 조성하여 만년의 휴식소를 마련하였을 때 허백당(虛白堂) 홍귀달이 당기를 지었다. 매계당은 그 동남쪽으로 봉계들을 펼쳐 놓고 직지천(直指川)을 내려다보는 승경에 자리하였다.

이 시기에 강촌 시는 구상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마침 아끼던 후배 허암(虛庵) 정희량(鄭希良)[1469~ ?]이 성종이 서거한 1494년 12월 생원으로서 상소하다가 20대에 유배 길에 오르자 매계가 감회를 읊어 허암에게 보냈다. 「강촌」은 자신의 강촌 생활 감흥을 제재(題材)로 하여 후진의 처세에 경각심을 일깨우려 한 격조 높은 정시(呈詩)이다. 두보가 「강촌」 시를 통하여 대자연에 동화되어 순리대로 살아가는 유유자적한 강촌 생활의 감흥을 읊은 데 비하여, 매계의 주제 의식은 경세적(警世的)인 데 집중되었다.

조위창녕 조씨 현령 조계문의 아들이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처남이며 문하생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참판에 이른 문신이며, 성종의 사랑을 받던 대시인이다. 매계의 생애는 양극화를 이룬다. 성종의 극진한 총애를 입었던 영광기와 연산조에 사화를 입었던 좌절기이다. 영광기에는 출세뿐 아니라 학문과 문학적 재능을 최대로 발휘하였다. 동양의 문호 두보의 시를 번역하여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1481]를 남겨 불후의 명 번역서로 남았다. 좌절기에는 무오사화(1498)에 사지로 유배되어 호소할 길 없는 억울함을 한글 가사 「만분가(萬憤歌)」로 드러내어 한국 최초의 유배 가사를 남기었다.

[구성]

「영강촌잡흥정허암」은 칠언절구의 두 수이다. 첫 수는 시어가 두 가지로 전하는 것이 많다. 기구(起句)의 어(魚)와 조(鯈), 승구(承句)의 화명(和鳴)과 관관(關關)·조(助)와 화(和), 결구(結句)의 인응(人應)과 아금(我今) 등이다. 본고에서는 앞 시어를 취한다. 정시의 성격상 각 시는 기승구(起承句)가 결과로서 강촌의 생활상이고 전결구(轉結句)가 결과의 배경으로서 원인이 되어, 저절로 주는 이의 경세적 의미는 전결구에 함축되었다.

[내용]

고기는 지느러미를 치며 푸른 물결 깊은 데서 놀고/ 숲속 새는 화답하며 울어 나의 시 읊음을 돕네/ 만물이 자득할 때 기미조차 자득하나니/ 사람이 응당 사물을 살펴 하늘 마음을 보아야 하리[游魚鼓髥綠波深 林鳥和鳴助我吟 物自得時機自得 人應觀物見天心].

바닷가에 조수 밀려 와 낚시줄 거두고/ 조롱박 술잔 들밥에 물고깃국 끓이네/ 정처없이 떠돌던 필마 늦게야 돌아 왔으나/ 누가 알랴 궁정의 시종신이었음을[海岸潮回捲釣綸 山樽野飯煮霜鱗 伶俜匹馬歸來晩 誰識金華侍從臣].

두 시가 모두 기승구만 보면, 자연에 동화되어 순리대로 살아가는 유유자적한 강촌의 정취를 노래하여 두보의 「강촌」 시와 흥취가 같아 보인다. 그러나 작자의 주제 의식은 다르다. 두보가 자신의 감흥을 그대로 드러냄을 창작의 목적으로 삼았다면, 매계는 남을 경각시킴을 창작의 목적으로 삼았다.

첫째 수에서, 그는 자연에 동화된 삶이 만물이 존재할 때부터 근원적 변화의 기미[機]까지를 동시에 타고난 것임을 깨달았을 때에만 얻어지는 삶임을 노래하였다. 한마디로 만사·만물의 존재 자체는 그 존재의 획득과 동시에 변화의 기미도 함께 얻어지는 것이어서, 변화의 기미를 모르면 현실적인 존재 자체도 바로 볼 수 없다고 경계한 것이다.

둘째 수에서, 작자의 자연동화·구애 없는 순수 생활이 모두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미[조짐]를 볼 줄 알아야 함을 강조한다. 곧 그칠 때 그칠 줄 알아야만 얻어지는 삶임을 은근히 자긍하면서 후진을 경각시키려 하였다.

[특징]

매계「강촌」 시는 창작 목적이 두 가지이다. 그 일차적 목적은 강촌 생활에 자족한 자신의 삶의 노래이었지만, 그 궁극적 목적은 작자 스스로의 삶이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님을 후진들에게 경각시킴에 있었다. 이런 점에서 두보의 「강촌」 시가 기승전결이란 한시의 전형적 구성을 취함에 비하여, 매계의 시는 표면적 구성은 기승전결을 취하였으나 이면적으로는 기승구가 결과이고 전결구가 원인임을 알 수 있다. 곧 강촌 생활의 누림[結果]이 그 누림을 있게 한 원인(原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임을 노래하였다. 그리고 그것으로써 후진의 처세를 경각시키려 하였기에 시적인 효과는 이중적이었다라고 할 수 있다.

주목할 사실로 첫째 수 기승구는 『시경(詩經)』「대아」·「한록」의 자연관을 수용하였다. 곧 “솔개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물에서 뛴다[鳶飛魚躍].”라는 구절은 천지에 도(道)가 가득하여 만물이 각기 제 자리를 얻는다[自得]는 자연관을 응용하였다. 둘째 수 기구(起句)가 원인이 되었으니, 곧 『대학(大學)』의 ‘지지(知止)’ 사상을 수용하였다. 즉 “대학의 도는 밝은 덕[明德]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至善]에 그침[止]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至於至善].”의 철학 사상을 수용한 것이다.

두 시가 모두 삶의 철학 사상을 유가(儒家)의 이념으로 해석하여 시화(詩化)하였으나, 설리적(說理的)이고 교훈적인 시가 결하기 쉬운 예술미까지 겸하여 매계 시의 특징을 이루었다고 하겠다.

[의의와 평가]

매계는 두보의 시를 누구보다도 깊이 안 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자신을 위하여 창작하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 주어, 두보의 강촌 시의 주제 의식과는 전혀 다른 매계 나름의 강촌 시를 제작하였다. 이것은 매계 시의 존재 가치라 하겠다.

특기할 사항은, 지금까지 작품 평가가 아닌 선입견으로써 사장파(詞章派)니 도학파(道學派)니 하는 무비판적인 평가로 인하여 흡사 사장파의 문학은 도가 없고, 도학파의 문학은 실(實)이 없는 반면 도는 있다고 평가하던 도학적인 문학[작품] 평가는 매계 시를 통하여 전혀 문학 논의가 아님을 증거할 수 있다. 점필재 김종직을 사장파로 몰아 한두 선비를 제하면 그 문하생을 사장파로 평가하던 조선조의 문학 비평 잣대는 이제 폐기되어야 한다. 매계「강촌」 시는 도학(道學)과 미학(美學)을 겸비한 데에 그 존재 의의가 있다. 또 시가 독자에게 비춰지는 면은 본래부터 다양한 것임을 보여준 실증물이라 하겠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8.02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본래 시의 제목은 「영강촌잡흥정허암(咏江村雜興呈虛庵)」이다. ->본래 시의 제목은 「영강촌잡흥정허암(詠江村雜興呈虛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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