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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752
한자 時調
영어음역 Sijo
영어의미역 Short Lyric So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태을민경탁

[정의]

근현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 문인이 창작한 시조.

[개설]

시조는 고려 말엽에 발생하여 조선 시대를 거쳐 현재도 창작되고 애창되는 정형시로 국문학의 대표적인 장르의 하나이다. 김천의 시조 발생을 조선 초에서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조 문학 발생의 풍토 조성은 일찍부터 형성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서하(西河) 임춘(林椿)이 개령 한골에 우거하며 「국순전」과 「공방전」을 비롯하여 「장검행(杖劒行)」, 「모춘문앵(暮春聞鶯)」 등을 발표하였고, 조선 초기에 반곡(盤谷) 장지도(張志道)지례현에서 「반곡시(盤谷詩)」를 남겼다.

특히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이 19세에 부친 김숙자(金叔滋)의 임지인 개령현에서 수학하기 시작한 뒤 21세 때는 매계(梅溪) 조위(曺偉)[1454~1503]의 누님과 약혼하고 23세에 결혼할 때까지 김산군(金山郡)[현 김천시]은 점필재의 학문과 문학이 대성하는데 그 바탕이 되었다. 더구나 52세[1482] 때에는 김산 문산리[현 김천시 문당동]에 경렴당(景濂堂)을 짓고 독서하며 교육하니 한때 영남의 신진사류가 김산으로 모여들었다.

게다가 점필재의 처남이며 제자였던 매계는 김산 봉계(鳳溪) 출신으로 성종조에 문명이 높아 두보(杜甫) 시의 번역서로서 불후의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를 완성하였고, 또 유배 가사의 최초의 작품인 「만분가(萬憤歌)」를 남겼다. 조씨쌍벽(曺氏雙璧)으로 유명한 매계의 아우 적암(適庵) 조신(曺伸)[1454~1528]도 시를 창작하였다. 이 뒤로도 죽헌 김덕승이 17세에 「만고가(萬古歌)」를 지었으며, 농재 장신강[1779~1856]은 한글 가사 15편을 남기었고, 여류 시인 최송설당[1855~1939]도 한글 가사 49편을 창작하였다.

김천 지역에서의 시조 문학 발생 풍토는 일찍부터 조성되었으나 정작 그 탄생은 때와 사람을 기다려야만 하였다.

[변천]

김천 감문 은림리 출신의 민동선(閔東宣 본명 민병희香隱 1902∼1994)은 김천에서 최초로 현대시조시를 썼다. 경북 영양의 조애영(趙愛泳 본명 조요희 1911-2000)와 함께 경북에서 현대시조를 가장 먼저 썼다. 김천지역에서 본격적으로 현대시조 쓰기를 전개한 이는 백수(白水) 정완영수운(秀雲) 배병창이다. 두 사람은 1947년에 발족한 김천시문학구락부(金泉詩文學俱樂部)에 함께 가담, 1959년에 결성한 흑맥문학회(黑脈文學會)에 김상훈·정재호와 함께 회원 활동을 하며, 이 고장의 현대시조 문학 문호를 확장해 나아갔다. 1960년대에 들어 정완영·배병창이 나란히 시조로 등단함(1960년)을 기점으로 하여 김상훈(1967년 등단)·장정문(1968년 등단), 1970년대 들어 이경안·김남환이 등단(1972년)함으로써 김천의 시조문학 활동은 더욱 왕성해졌다. 정완영향목회(鄕木會)를 결성(1972년)하여 시조 문인 저변 확보를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김천이 시조문학 고장으로서의 이미지를 짙게 갖게 된 것은 이 무렵부터다. 그러나 정완영이 1974년 서울로 이주, 2년 뒤 장정문 마저 서울로 이주함에 따라 김천의 시조문단에 큰 공백이 생겼다. 이에 1976년 김천의 시인과 시조시인들이 합심해 김천시문학회를 결성, 시문학 활성화를 도모하였다(회장 장정문 회원 권숙월·박수일·신현필·이경안·이정환·정순량·황명륜 등). 김천시문학회는 동인지 『김천시문학』을 창간(1978. 7.), 제호를 제3집부터는 『황악』(1982), 제8집부터는 『김천문학』(1989)으로 변경해 발간하면서 현재 제39집으로 김천의 시문학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1988년 4월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가 결성되면서 산하에 시조분과위원회를 두었으나 곧 폐지한 바 있다. 2005년 정완영이 귀향하여 대항면 덕전리에 백수시실(白水詩室)을 마련하여 현대시조 문학 인구 저변 확대, 2008년 직지사 입구에 백수문학관(白水文學館)이 건립되고 이듬해 지역사회 시조시인들이 김천시조시인협회를 결성하여 현대시조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단체]

1. 김천시문학구락부

김천에 시조 문학의 뿌리를 내리게 한 시인은 백수(白水) 정완영이다. 그는 4~5세 때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났고, 한시문에 능했던 조부 담헌 정렴기로부터 “큰 선비가 작은 집에 살아야지 용마루에 별자리가 모여든다.”는 훈계를 받아 평생의 수양·처세·창작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현재 백수시실(白水詩室)의 당호가 삼오야서(三五野墅)인 것도 조부의 영향을 받아서이다.

백수는 약관 전에 시조를 창작하였으며, 1941년에는 「북풍」 등의 시조가 불온하다 하여 일경에게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외적인 시조 발표는 1947년에 발족한 김천시문학구락부(金泉詩文學俱樂部) 회원[김상갑·김도오·임성길·전택근·여석기·권오기·최목랑·배병창]이 되면서부터였으며, 동인지로서 『오동(梧桐)』(1947)을 발간하였다. 그 뒤로 백수는 1948년까지 「조국(祖國)」[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1974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등재]을 비롯한 시조 350여 수를 창작하여 시조 문학의 불모지였던 김천에 시조의 씨 밭을 일구었다.

2. 소문화

6·25전쟁의 참화를 겪고 난 1955년에는 김천 최초로 법인체 소문화(小文化)[현 김천문화원]가 창설되어 기관지로 『소문화』를 1978년[현 『김천문화』]까지 발간하였는데, 백수는 여전히 시조 창작에 전념하였다.

3. 흑맥문학회

1959년에 결성된 흑맥문학회(黑脈文學會)는 김천 문학, 특히 시조 문학의 전성기를 예고하는 문학 동인회였다. 이 회의 회원 중에는 백수를 비롯하여 배병창·장정문·김상훈·정재호 등의 시조 시인이 왕성한 작품 활동을 전개하였다.

4. 김천문우회

1965년 제1차 김천문우회(金泉文友會) 결성의 주역은 이미 시조 시인들로 바뀌었으니 정완영·배병창·장정문을 비롯하여 이동현·조오현·김남환·정순량 등이 그 회원이었다.

5. 향목회

1972년에는 정완영 주도 하에 시조 창작의 전문화와 시조 문학 저변 확대를 지향하여 향목회(鄕木會)가 결성되었다. 회원은 장정문·이동현[승려]·조오현[승려]·김남환 등이었고, 동호인으로는 향토의 유지·기관장이었던 이기태·손인배·허인무·이태준·김정휴·임종찬 등이었다. 김천이 시조 마을로 명예를 획득한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그러나 김천 시조 문단의 주추와 같던 백수가 1974년 서울로 이주함에 따라 김천 시조 문단에는 큰 공백이 생겼으나 한국의 시조 문단에는 백수의 자리가 새로 넓혀지기 시작하였다. 1974년에는 제2차로 김천문우회가 조직되었으며, 시조 시인으로서는 배병창·장정문·이동현 등이 있었다.

6. 김천시문학회

1976년에는 시조 시인 주축으로 김천시문학회를 결성하였는데 장정문[회장]·정순량·이동현·황명륜·이정환 등이 시조 문학 활성화를 꾀하며 야심차게 동인회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2년 뒤 장정문 마저 서울로 이주하여 김천의 시조 문학은 재도약의 기회를 기다려야만 하였다.

7.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

1988년에는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가 결성되어 그 산하에 잠시 시조분과위원회를 두었다가 곧 폐지하였으며, 시조 시인들은 나름대로의 창작 활동을 꾸준히 하였으나 시조 문단 활성화는 그 구심체가 형성되지 못하였다. 2005년 한국 시조의 현대화, 곧 시조의 현대 문학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정완영이 귀향하여 대항면 덕전리 1149-77번지 백수시실(白水詩室) 삼오야서(三五野墅)에 정좌하여 그 존재만으로도 김천의 시조 문학 미래는 또 한 번 부흥의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2008년에는 시조 시인으로서는 최초로 김천 직지사 경내에 백수문학관(白水文學館)이 건립되어 한국 시조 문학 지향의 표상이 되었다고 하겠다.

8. 김천시조시인협회

2009년에는 향토의 시조 시인들이 시조의 활성화를 위해서 김천시조시인협회를 결성하였는데, 이익주[회장]·노중석·황명륜·장병우·박기하 등이 회원이다.

[시조 시인]

시조의 불모지였던 김천에 문학의 씨를 뿌려 시조의 고을을 만들고, 시조의 현대 문학화에 선구적 역할을 했던 백수 정완영이 먼 여정 끝에 다시 귀향한 사실은 김천의 큰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김천 시조 문학 활성화에 기여해 온 작가들을 간략히 소개한다.

1. 정완영

백수 정완영은 약관 전부터 시조를 창작하여 30세를 전후한 1948년에는 「조국」을 비롯한 3백여 수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1960년에는 『국제신보』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고, 1962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조국」이 당선되었다. 1967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해바라기처럼」이 당선되어 시조의 영역을 확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조의 문학적 위상을 제고시켜 나갔다. 1969년 시조집 『채춘보(埰春譜)』를 발간한 이래 2010년 제14 시조집 『구름산방』을 발간하였으며, 『시조창작법』[1981], 『고시조감상』[1892] 등과 동시집, 시조선집, 사화집 등이 있다.

수상은 김천시문학상[1967], 가람시문학상[1979], 육당문학상[1989], 은관문화훈장[1995], 만해문학상[2000] 외에도 다수가 있으며, 시조 문학 현대화에 솔선하여서는 이호우와 같이 영남시조문학 창립[1966],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1992], 육당문학상 운영위원장[1994]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도 백수시실 삼오야서를 지키며 구도자적 자세로 시조를 창작하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후진들을 일일이 길 잡아 주고 있다. 더구나 백수문학관을 개방하여 시조 문학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으며, 문학관 자체로 시조백일장을 개최하던 것을 2010년에는 백수문학관이 주관하고 김천시가 주최하여 전국백수시조백일장을 개최하여 미래의 시조 시인을 발굴해 가고 있다.

2. 배병창·장정문

수운 배병창김천고등학교 교사로서 시조를 강의하고 창작하였으며, 1960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기(旗)」가 당선되었다. 이후 시조집 『소나기와 종』[1960], 『항아리』[1965], 『이슬과 송학』[1975] 등을 발간하였으며, 작고할 때까지 시조 문학 연구에도 전력하여 조용한 가운데 김천 시조 문학 초창기부터 그 활성화에 공한한 바 크다 하겠다.

천곡 장정문도 김천고등학교 교사로서 시조를 보급하고 스스로 창작하여 1968년에는 『신아일보』 신춘문예와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었으며, 백수·수운의 뒤를 이어 김천시문학회[1976] 회장으로서 시조 문학 활성화에 이바지 하였다. 『두메꽃』[1976]·『사향춘(思鄕春)』[2007] 등의 시조집이 있고, 현재 서울에서 활약 중이다.

3. 김상훈·김남환

김상훈은 다재다능한 시인이요 언론인으로서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1967]된 이래 『부산일보』 사장직을 수행하면서 시조 창작과 연구를 왕성하게 전개해 왔다. 『파종원』, 『우륵의 꿈』, 『산거』, 『내 구름되거든 자네 바람되게』 등의 시집을 발간하였고, 노산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김남환은 『월간문학』 신인 작품상을 수상[1972]한 이래 『시간이 기대어 흐르는 강물을 듣네』[1984], 『황진이와 달』[1986], 『이차돈의 강』[1997] 등의 시조집을 발간하였고, 송강문학상, 동포문학상, 이호우시조문학상, 한국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한국여류시조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4. 이동현·조오현

승려 시인으로 출발하였던 이동현[법호 경안]은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1972]되고, 『시조문학』의 천료를 거쳐 시조집 『꽃잎의 변주곡』[1998]을 발간하였다. 같은 시기에 조오현도 『시조문학』 천료[1968]로 시조를 창작하는 한편 이동현과 같이 전국승려시인회를 결성하여 기관지로 『승려시집』을 발간하였다.

5. 정순량·이정환

정순량은 한일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시조를 가르치고 강의하며 창작하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조 당선과 『시조문학』 천료를 거쳐 김천시문학회 부회장[1976]을 역임하며, 김천 시조 문학 활성화에 기여하다가 대학 교수로 진출하여 학문을 겸하고 있다.

이정환은 교직으로 인하여 김천에 와서 시조 문학을 하였는데 1978년에는 『시조문학』의 천료를 받고, 1981년에는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었다. 『덧니』[공저]와 『서서 천년을 흐를지라도』를 발간하였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에는 황명륜·노중석·장병우·이익주·박기하·이병철·김석인·유선철·김성현·박화남·백주하·윤애라·이태균·황삼연·김덕희·이석수·이상구 등의 시조시인과 비회원으로서 이교상 시조시인이 시조 창작활동 및 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천으로 하여금 시조의 고장이란 명예를 획득하게 한 시인은 백수 정완영이요, 시조 문학사에서 1920~1930년대의 가람 이병기노산 이은상, 1940~1950년대의 초정 김상옥과 이호우 등이 가꿔온 시조의 현대화에다 시조의 시적(詩的) 위상(位相)을 획득하게 한 시인도 백수 정완영이다. 시조 불모지였던 향토의 문학적 위상 제고는 말할 것도 없고, 시조의 전통성을 계승하면서 시조가 시의 영역에 버젓이 서게 한 문학적 업적은 한국 문학사에서 특기할 일이다. 구도자의 일념으로 지금도 시조 밭을 가꾸고 있는 정완영의 백수시실과 백수문학관을 시조의 창작·시험·연구의 구심점으로 삼는 데에 향토 시조인 뿐만 아니라 문학 애호가들이 지혜를 모아 간다면 김천은 분명히 한국 시조의 본산이 되리라 믿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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