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838
한자 金漢英
영어음역 Gim Hanyeong
이칭/별칭 준백(俊伯),눌암(訥菴)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637년연표보기
몰년 1712년연표보기
추모 1978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금송리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김해(金海)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준백(俊伯), 호는 눌암(訥菴). 이조판서 김불비(金不比)의 8세손이다.

[활동 사항]

김한영(金漢英)[1637~1712]은 지금의 김천시 양천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즐겨하였고 언행이 엄하고 무거워 어른들이 아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으며, 효자로 이름이 났다. 아버지의 병이 위급할 때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아버지에게 피를 드려 생명을 연장시켰다. 또한 아버지가 종기가 나서 고통스러워하자,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어 완치시켰다.

그리고 어머니가 병이 깊었을 때,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해 가며 약을 드려 낫게 해 드렸다. 겨울에 어머니가 가지를 먹고 싶다고 말하자, 가지를 구할 길 없어 울면서 며칠간 하늘에 기도를 드린 끝에 양지바른 곳에서 천행으로 가지 꽃을 구해 약을 해 드려 병을 낫게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애통해하면서 아침저녁으로 묘소를 찾아 가서 곡하며 애도하였다. 이때 호랑이가 따라다니며 김한영을 호위해 주었다고 한다. 부모의 제사에 올릴 고기를 사지 못해 애타할 때는 꿩이 절로 집으로 날아들어 제사상에 고기를 쓸 수 있었다.

또한 병자호란 당시에는 절의를 지킨 인물이다. 병자호란 이후 향리에 숨어 살면서 청나라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절의를 지켜 서쪽을 향해 죽을 때까지 앉지 않았다. 또한 벽에 창해고도(滄海高蹈)[중국 제나라의 의사(義士)로 진나라가 황제 칭호를 쓰려던 것을 거부한 고사에서 생긴 절의를 나타내는 말] 넉 자를 크게 써 붙이고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한 것을 통탄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행적으로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은 김한영을 일컬어 ‘숭정처사(崇禎處士)’라 글을 써 기렸으며, 명재(明齋) 윤증(尹拯)도 시를 써서 중국의 유명한 절의파 소부와 허유에 비유하여 기렸다.

[상훈과 추모]

1978년 유림에서 김천시 감천면 금송리에 신도비를 건립하였으나 현재는 후손들이 관리차원에서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새말) 문중재사인 충효당(忠孝堂) 옆으로 이전하였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8.03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명재 윤승도 시를 써서 ->명재(明齋) 윤증(尹拯)도 시를 써서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