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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강 처 진주강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855
한자 崔自江妻晋州姜氏
영어음역 Choe Jagang Cheo Jeonju Gangssi
영어의미역 Lady Gang from Jinju, Choe Jagang's Wife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
정려비 김천시 양천동 하로마을 지도보기
성격 열녀
성별
본관 진주(晉州)

[정의]

조선 전기 김천 지역의 열녀.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이조판서에 증직된 화순 최씨 최자강(崔自江)과 혼인하였다. 아들은 절의(節義)로 알려진 최선문(崔善門)이다.

[활동사항]

진주강씨의 남편 최자강이 중부령(中部令)으로 있던 37세에 전라도 광양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남편을 뜻을 좇는 것은 자식을 훌륭히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해서 안 된다.”, “남자에게 의리를 빼면 허수아비와 같다.”라고 말하면서 아들을 엄하고 바르게 훈도하였다. 남편이 13년간의 유배를 끝내고 고향인 김천시 양천동 하로마을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온 집안이 남편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였다. 하지만 병고에 시달리던 남편이 남원에 이르러 병사하였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남편에게로 달려간 강씨는 남편을 껴안고, “이제라도 남편을 따르지 않으면 어찌 남의 아내라 하랴!”고 말하면서 통곡을 하였다. 7일간 남편의 살은 썩어 문드러졌으며, 그녀도 그 기간 아무것도 먹지 않아 결국 뼈만 남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상훈과 추모]

진주강씨의 죽음은 아들 최선문에게 영향을 미쳐, 그 아들도 절의를 지켜 청사에 길이 남는 충신이 되었고, 다섯 손자 또한 모두 문과·무과에 급제하여 나라의 충신이 되었다. 조정에서 그녀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정려를 내렸다. 정려비는 현재 김천시 양천동 하로마을에 있다. 또한 사적이 『속삼강열녀전(續三綱烈女傳)』, 『여지승람(輿地勝覽)』에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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