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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856
한자 裵仁範妻慶州金氏
영어음역 Bae Inbeom Cheo Gyeongju Gimssi
영어의미역 Lady Gim from Gyeongju, Bae Inbeom's Wife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몰년 1617년연표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김천시
정려각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지도보기
성격 열녀
성별
본관 경주(慶州)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지역의 열녀.

[개설]

성산 배씨 집안은 ‘삼강세가(三綱世家)’라 일컬을 만큼 열부, 충신을 여럿 배출하였다. 배인범(裵仁範)경주김씨(慶州金氏)는 아들로 효숙공(孝肅公) 배흥립(裵興立)과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 배의범(裵義範)을 두었다. 셋째 손자 배시량(裵時亮)은 1630년(인조 8) 무과에 장원 급제한 후 양주목사, 도총부부총관, 경상·충청·전라 삼도의 병마절도사를 두루 역임하였다. 증손자 배명순(裵命純)[배흥립의 둘째 아들 배시망(裵時望)의 장남]은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한 후 병자호란 때 선전관으로서 인조를 호종하며 수많은 전투에 참전하다 전사해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숙(忠肅)이란 시호와 함께 부조지전(不祧之典)을 받았다.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황주목사 김익(金瀷)이다. 성산 배씨 집안의 배인범과 혼인하였다.

[활동사항]

배인범경주 김씨[?~1617]는 효순(孝順)하고 부덕(婦德)을 갖춰 어른께 공손하고 자녀에게 엄정하였다. “여자는 남편 따르기를 으뜸으로 삼고, 남자는 임금 따르기를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라는 말로 자녀를 훈계하였다. 남편이 서울에서 병사하자, “아녀자의 덕이 모자라 군자의 목숨을 잃게 하였다.”라면서 남편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죄인을 자처한 경주김씨는 애통해하며 정성을 다해 남편의 삼년상을 치른 어는 날 자녀를 모아 놓고 “내 이제 너희 아버지를 따라 가려 한다. 너희는 바르고 충의롭게 살도록 하라!”고 유언을 남기고 그날부터 모든 음식을 거부한 채 단식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이때가 1617년(광해군 9)이었다.

경주김씨의 이 같은 죽음은 충렬(忠烈)의 유산이 되었다. 아들 배흥립도 어머니 김씨가 병환이 깊어 머리를 빗지 못해 이가 생겨 가려움에 시달리자, 자신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옆에 누워 이가 옮겨 오도록 하였고, 유산으로 받은 전 재산을 자신은 녹봉만으로도 충분하다면서 아우 배의범에게 나누어 줄 만큼 형제애도 남달랐다.

[묘소]

묘소는 대방산 성산 배씨 선산에 있다. 대방산은 덕대산으로부터 형성된 큰 비석골과 작은 비석골 사이에 좁고 길게 뻗쳐 있다. 묘역은 덕대산을 주산(主山)으로 하여 큰 비석골을 청룡(靑龍), 작은 비석골을 백호(白虎)로 삼았고 맞은편 황새말 앞산을 안산(案山)으로 하였는데 효숙공 배흥립의 묘소에서 바라본 일대 산세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황새가 비상을 위해 다리를 곧게 펴고 날개를 힘차게 펼친 형국으로 풍수지리상 명당이라 이르는 곳이다. 아버지 배인범과 어머니 경주김씨의 합장묘가 제일 아래에 있고, 효숙공 배흥립[가장 윗부분], 성산 배씨 김산(金山) 입향조이며 효숙공의 고조할아버지인 진사 배윤순(裵允詢), 배의범이 아래로부터 있다.

[상훈과 추모]

1656년(효종 7) 조정에서 정려과 복호(復戶)를 내렸으며, 아들 배흥립 덕분에 정경부인에 증직되었다.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안새래마을배인범의 처 경주 김씨, 효숙공 배흥립, 충숙공 배명순 등 삼대를 칭송하는 배흥립 삼대 삼강 정려각(裵興立 三代三綱 旌閭閣)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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