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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941
한자 -運動
영어음역 Saemaeul Undong
영어의미역 New Community Movement
이칭/별칭 잘살기 운동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1970년연표보기
주소 경상북도 김천시 감호동 17 새마을회관 지도보기

[정의]

1970~1980년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경상북도 김천시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전역에서 일어난 지역 사회 개발 운동.

[개설]

새마을운동은 지역 주민의 자발적이며 자조적인 협동 노력에 의해 주민들 스스로가 생활 태도와 정신 자세를 혁신하고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 환경을 개발, 발전, 개선해 나가는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이며 사회 혁신 운동이다.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을 가지고 어제보다 나은 내일의 새마을을 만들려는 새마을운동의 기본 이념은 국민 개개의 생활 향상과 자유로운 성장,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중흥을 이룩하려는 시대적 이념인 조국 근대화의 이념과 일치하였다.

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하고 농촌의 근대화와 지역의 균형 발전, 의식 개혁을 목표로 한다. 기본 방향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국민 각자가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지역 사회 공동체 내의 구성원으로서 공동 개발, 공동 발전을 위해 협동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둘째, 지역 사회 주민이 주체가 되는 민간 주도의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셋째, 지역 사회 개발 운동에서 나아가 국민정신을 일깨우는 의식 개혁 운동이자 생활 운동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제창한 이후 정부의 정책 변화와 사회 변화에 따라 그 기조가 변모되었다.

[전개 과정]

김천 지역의 초기 새마을운동은 농촌 환경 개선 사업부터 시작되었다. 1970년 전체 마을에 시멘트 335포대가 무상으로 지원되어 마을 진입로 정비, 공동 우물, 빨래터, 퇴비장, 소류지가 정비되었다. 사업 시행 과정에서 주민 간 협동과 자립에 대한 성과가 크게 나타났다. 1972년 마을 가꾸기와 지붕 개량, 마을 금고 육성, 농로 개선 사업을 통해 새마을운동의 생활화, 소득화, 지속화에 집중하였다. 1973년에는 새마을운동의 종합적인 체계화를 기본 방향으로 하천과 국토 대청결, 생산 시설 사업, 소득 개발 사업을 전개하였다. 1974년에는 새마을운동의 자율적 확대와 마을 단위 광역 협동 사업을 목표로 새마을 시민 교육과 지역 협동권 사업을 전개하였다.

1975년에는 경제 난국 극복과 도시 새마을운동 전개를 목표로 소득 기술 교육 강화와 협동권 사업을 확대하였다. 1976년에는 낙후 마을에 대한 집중 육성에 그 방향을 두고 부진 마을 집중 지원과 범국민 저축 운동을 전개하였다. 1977년에는 새마을 자립 기반의 완성을 목표로 농외 소득원 개발과 반상회 운영 강화, 직장 새마을운동을 강화하였다. 1978년에는 선진 농촌 구현을 위해 생산 소득 기반 확충과 공장, 직장 새마을운동 확산에 주력하였다. 1979년에는 미래지향적 농촌 건설을 위해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3대 질서 운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하였다.

1970년대 이래 정부 주도로 추진해 온 새마을운동을 순수한 민간 주도로 전환, 추진하기 위해 1980년 12월 1일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창립되었다. 1983년 시군에 지회가 설치될 때 김천시지회가 설립되었고 1989년 4월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김천시지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92년 12월 김천시 감호동 17번지에 새마을회관을 건립하고 1995년 1월 김천시와 금릉군의 통합에 따라 새마을운동 김천시지회로 통합되었다.

[사업 사례]

김천 지역 새마을운동의 모범 사례로 선정된 김천시 어모면 군자리의 새마을운동을 통해 1970년대와 1980년대 김천 지역 새마을운동의 실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천시 어모면 군자리에서 본격적으로 새마을운동이 전개된 것은 1975년으로 1970년대 초부터 산발적으로 벌어지던 새마을운동이 1975년에 들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1. 제1기[1975년~1978년]

첫해인 1975년에는 농로 개설 5건을 38만 9000원의 예산으로 실시하였는데 철근과 시멘트를 정부에서 지원하고 마을 주민들이 모래 등의 부자재와 인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첫 사업이 시작된 이후 1986년까지 이러한 사업 방식이 유지되었다. 또 나무 심기 사업으로 속성수와 유실수 300주를 식재하고 마을 대청소와 지붕 개량 사업, 마을 기금 조성, 농업용수로 정비 등 생활 환경과 농업 기반 시설에 대한 전반적인 정비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977년과 1978년에는 마을 안길 확장과 용수로 설치와, 소하천 정비, 공동 빨래터 설치, 하수구 복개 등의 사업이 전개되었다. 1975년부터 1978년까지의 제1기 사업은 마을 주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킴은 물론 주민들의 생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마을 안길 확장, 농수로 정비 등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전개한 점이 주목된다.

2. 제2기[1979년]

새마을운동의 정착 및 생활화로 표현할 수 있는 1979년의 군자마을 새마을운동은 농업 기반 정비 사업으로 대표되는 제1기와 달리 부엌, 화장실, 하수구, 담장 개량 등 생활 환경 개선 사업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어 새마을운동이 주민 생활 깊숙이 파급되어 위생적인 부분에까지 파급되고 있음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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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후진국형 생활 환경으로 대표되는 재래식 부엌, 화장실, 하수구 개량에 집중적인 사업이 이루어졌다. 화장실, 부엌, 담장 개량 등의 사업을 정부 지원 없이 전액 주민들의 부담으로 실시된 점이 주목된다. 이는 지난 수년간의 새마을운동을 통해 축적되고 성숙된 주민들의 자조, 자립 의식이 이 시기에 이르러 크게 고양된 결과로 보인다.

3. 제3기[1981년~1986년]

1970년대의 사업이 소액다건(少額多件), 생활 주변 개선 사업 위주였다면 제3기로 대표되는 1980년대의 군자마을 새마을운동은 새마을운동의 안정기, 성숙기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따라 생활 운동에서 한발 더 나아가 농기계 보급과 같은 변화된 농촌 환경에 부응하는 각종 농촌 기반 조성 사업이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이 시기에 경운기 등의 농기계가 대량 보급된 사실과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81년에 마을 단위로서는 당시 막대한 예산에 해당하는 500만 원의 예산으로 교량을 설치하고 매년 농로 확장 사업을 추진한 점은 1980년대의 새마을운동이 소액다건, 생활 운동 위주에서 점차 소건 집중 투입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1980년대 새마을운동의 기조 또한 교량 건설과 같은 대규모 사업비가 투입되는 사업을 제외한 매년 실시된 농로 보수 등의 사업에 일체 정부 지원이 없이 주민 부담으로 시행된 점으로 볼 때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자조, 자립 의식이 정착 단계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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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와 평가]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새마을운동은 단기간에 낙후되어 있던 농업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키고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하여 자신감과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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