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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A010203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송기동

[감문산 계림사를 찾아]

김천에서 선산 방면으로 지방도 59호선을 따라가다 개령면 동부리로 접어들어 개령초등학교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들면, 개령향교 뒤편 감문산 자락에 규모는 작지만 직지사와 함께 김천 제일의 역사를 자랑하는 천년 고찰 계림사(鷄林寺)가 나타난다.

김천 지역에서는 옛날부터 계림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전설이 전하는데, 동부1리 주민 강상철(1927년생) 씨의 증언과 『김천시사』·『마을유래지』 등의 관련 자료를 참고로 계림사 창건에 얽힌 호두산(虎頭山)의 전설을, 계림사를 창건한 아도화상(阿道和尙)동부리 역마고개 주막 주모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418년 역마고개 주막]

눌지왕의 딸 성국 공주의 병을 고쳐 준 인연으로 불교를 금하고 있던 신라 땅 선산에 처음으로 절을 짓게 된 고구려의 승(僧) 아도화상은, 이듬해인 418년 자신이 손수 명당으로 지목한 김천 황악산에 절을 짓기 위해 김천과 선산을 수없이 왕래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날이 저물어 선산과 김천의 중간에 자리한 개령 동부리 역마고개 아래 한 주막에 다다랐을 때였다. 주모가,

“큰일이다, 큰일이여. 또 죽었디야. 벌써 몇 번째여.”

하고 새파랗게 질려 몸서리를 치자 아도화상이 다급히 물었다.

“여보시오, 주모. 대체 그게 무슨 소리요?”

행색이 남루한 스님의 물음에 주모는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려다가 문득 예사롭지 않은 스님의 눈매에 자못 주눅이 들어, 지난 수년간 이 마을에서 벌어진 범상치 않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호두산의 비밀]

주모의 하소연은 대략 이러했다. 개령들 한복판, 감천 변에 우뚝 솟은 감문산은 개령 땅의 진산으로, 그동안 동부리 주민들이 수호하는 성황님이 산다 하여 성황산이라 부르며 신성시해 온 신산(神山)이다.

감문산은 정상인 취적봉과 그보다 낮은 호두산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호두산은 그 형세가 호랑이가 누워 있다가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형상이라 하여 사람들이 ‘호랑이 호(虎)’ 자에 ‘머리 두(頭)’ 자를 써서 호두산(虎頭山)이라 했다.

그런데 호두산으로부터 감천 너머 맞은편 마을인 아포 한골 주민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나가는 일이 매년 반복되었고, 오늘 또 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아도화상은 “끄응!” 하며 긴 신음을 토해 냈다.

[호랑이 심장에 절을 짓다]

밤을 꼬박 새운 아도화상은 다음날 취적봉과 호두산 골골을 돌아보다가, 문득 직지사에서 절을 짓고 있던 승려 목수 몇 명을 불러 감문산 자락에 절을 짓게 했다.

이윽고 이름을 계림사(鷄林寺)라 하고는, 느닷없이 절에 닭을 기르는가 하면, 맞은편 한골의 이름을 함골[陷谷]로 고치게 하고 마을 뒷산을 구현산(狗縣山)이라 부르게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한골에서는 더 이상 죽는 사람이 없게 되었고, 모두들 아도화상의 신통력을 신기해했다.

그리하여 주모는 떠나려는 아도화상을 막아서고, 떡 한 뭉치를 허리춤에 채워 주며 쉬어 가기를 간청하였다. 아도화상은 주모의 간청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동부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역마고개 마루의 흩어져 있는 옛 감문국 궁궐 초석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지한 제가 도력이 높은 스님을 몰라뵀습니다. 그런데 스님, 좋은 터를 놔두고 하필이면 구석진 그 자리에 절을 짓고 난데없이 절에 닭을 키운 것은 무슨 연유인가요?”

주모의 물음에 미소만 지을 뿐 말없이 감문산을 바라보던 아도화상이 그간의 사정을 풀어놓았다.

“풍수지리로 볼 때 감문산은 호랑이가 누워 있는 와호형(臥虎形)인데, 호두산이 호랑이의 머리에 해당하여 밤낮으로 맞은편 한골마을을 노려보고 있으니 마을에 살상 기운이 뻗쳐 사람들이 기운을 못 차리고 죽는 것은 당연지사요.

막을 방도는 오직 한 가지, 호랑이의 심장에 해당하는 자리에 절을 지어 불력으로 호랑이의 기운을 누르는 길밖에 없었소. 또 밤을 상징하는 호랑이를 제압하기 위해 상극인 낮을 상징하는 닭을 키움과 동시에 절 이름도 닭이 무리를 지어 산다는 의미로 닭 계(鷄) 자에 수풀 림(林)자를 써서 계림사(鷄林寺)라 했으니 호랑이가 꼼짝도 못한 것이오.”

침을 꿀꺽 삼키며 아도화상의 이야기를 듣던 주모가 연달아 묻는다.

“그런데 한골과 뒷산 이름은 왜 바꾸셨대요?”

“호랑이의 기운이 워낙 강한지라 만에 하나를 대비한 것이오. 한골 뒷산을 호랑이가 좋아하는 개를 매달아 놓았다는 의미로 개 구(狗) 자에 매달 현(縣) 자를 써서 구현산(狗縣山)으로 바꾸고 마을 이름을 함정을 뜻하는 빠질 함(陷) 자의 함골(陷谷)로 고쳐 놓았으니, 호랑이가 개를 잡아먹기 위해 달려들다가는 필시 함정에 빠지고 말 것이오. 이를 아는 호랑이가 범접할 리가 없지요. 앞으로는 절대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일이 없을 것이니 안심하시오.”

주모는 벌어진 입을 채 다물지 못하고 연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밥 짓는 연기가 고즈넉하게 동부리를 휘감자, 자리를 털고 일어선 아도화상은 합장을 한 후 종종걸음으로 직지사가 있는 김천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역마고개에서 한 주모의 푸념을 귀담아 들은 아도화상의 지혜와 도력이 무고한 사람들의 살상을 막고 동부리 감문산에 천년 고찰 계림사의 창건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주모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아도화상을 향해 연신 합장을 할 따름이었다.

[정보제공]

  • •  강상철(남, 1927년생, 개령면 동부리 주민, 개령향교 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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