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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C020303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해인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재민

가을이 되면 해인리 해인동은 오미자의 붉은빛과 호두의 푸른빛이 서로 경쟁이나 하듯 푸른빛과 붉은빛의 조화 속에서 울긋불긋한 모습을 나타낸다. 그런데 해인동에 오미자를 처음 들여온 사람은 김석우(1933년생) 씨로, 1984년 아랫마을인 윗두대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2000년대 초 웰빙 바람이 불자, 해인동으로 귀농한 주민들이 오미자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2010년 현재 전체 가구 중 약 4~5가구 정도가 오미자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런데 오미자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김천 지역은 어떻게 오미자로 주목받게 된 것일까?

[해인리에서 시작된 오미자작목반 활동]

김천 지역 오미자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작목반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천 지역의 오미자작목반은 2006년 부항면 해인리 주민인 이윤호[1957년생] 씨와 김성열[1954년생] 씨, 김광열[1947년생] 씨를 중심으로 처음 조직되었다.

이윤호 씨가 당시의 사정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우, 그때 말도 마요. 2006년에 성열이 형님하고 한번 해 보자 캐서 내가 김천시에 하고 얼마나 뛰어댕긴지 몰라. 그래서 우리 마을 형님들 포함해가 부항면민 8명으로 시작했당께. 카고 저녁에 노상[매일] 시청 계장님들 모시고, 미팅하고 그랬지.”

해인리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된 오미자작목반은 처음 8명으로 시작해서 1년 사이에 40명을 훌쩍 넘게 되었다.

“내가 미팅할 때 있잖아요. 도청에 차장님까지 모셔 놓고 브리핑을 했어요. 그래서 차장님이 ‘좋다, 해보라’ 이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러면 일단 첫 해에도 수확이 안 나오고 다음 해도 수확이 안 나오니까 우리 농사짓는 사람들 어렵지 않게 시설 자금을 대주십시오’ 해서 내가 약속을 받아냈어요. 그래가 자부담 1억 5천, 정부 지원금 1억 5천, 3억을 내가 받아 내려오니까 그때부터 사람이 막 들어오는 거라. 그래가 1년 사이에 40여 명 되었다가 지금은 김천 시내에 110명이 넘어.”

이러한 해인리 몇몇 주민들의 굵은 땀방울과 노력으로 오미자의 불모지로 불렸던 김천에서 부항면 작목반은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작목반’에서 ‘연구회’로]

김천시에서 오미자작목반은 증산면부항면 두 곳에 있다. 오미자의 재배 특성상 높이가 300m 이상은 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백두대간 자락인 증산면부항면 두 면에서 조직되어 서로 돕고 연구도 하면서 오미자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이제 증산면부항면의 오미자작목반은 단합된 힘으로 더 큰 사업을 하기 위해 ‘김천오미자연구회’를 발족하고 그에 따른 활동에 나서고 있다.

김천오미자연구회 회장은 증산면 대야2리에 사는 이정화 씨로, 지금도 연구회를 잘 꾸려 가고 있다.

[정보제공]

  • •  김석우(남, 1933년생, 부항면 해인리 주민, 전 노인회장)
  • •  김광열(남, 1946년생, 부항면 해인리 주민)
  • •  김성열(남, 1954년생, 부항면 해인리 주민, 해인리 향우회 총무)
  • •  이윤호(남, 1957년생, 부항면 해인리 주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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