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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시장의 영광을 되찾아라, 짐천 쇠전에서 전국 최고 가축시장으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007
영어의미역 Regain the Glory of Samdo Market, from Gimcheon Cattle Market, to the Top National Livestock Market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우선

[개설]

김천시장은 ‘짐전장’ 또는 ‘큰장’으로 불리며 조선 후기부터 전국 5대 시장의 하나로 성장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자 일본 사람들이 김천시장으로 몰려와 상설 점포를 열고 시장의 상권을 장악하였다. 그리하여 시장의 규모는 확대되었으나 한국인 영세 상인들은 큰장의 북쪽으로 밀려나 그곳에 ‘아랫장터’를 형성하고 장사를 하였다. 광복 후 상설 시장이 시내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개설되면서 일제 강점기까지 존재했던 김천시장은 사라졌다. 대신 아랫장터가 김천시장의 일부로 남아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삼도시장’으로 불렸던 ‘짐천장’의 내력]

충청북도 황간 땅에서 추풍령을 오르는 길목으로 접어들 무렵, 조금이라도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국도와 철도, 고속도로가 나란히 달리는 진기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이른바 ‘국토의 대동맥’은 그렇게 고스란히 평행선을 이루다 높이 221m 백두대간 추풍령 넘어 경상북도 김천 땅으로 내닫는다. 김천 지역은 고려 시대 역참 제도 시행으로 전국의 도로망이 정비되면서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 온 곳이다. 전라북도 무주, 충청북도 영동, 경상북도 상주와 문경 등 이른바 삼도를 잇는 길이 김천으로 통했으니, 사람과 물산이 모여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삼도시장(三道市場)’으로도 불리던 것을 넘어 ‘짐천장’이 평양과 개성, 강경, 대구와 나란히 ‘조선 5대 시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내력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이 고을이 간직해 온 지리적 이점이 최대한 활용된 역사적 귀결이다. 이러한 전후 맥락을 안다면 추풍령 넘어 김천시로 들어가는 국도 4호선 대곡동 어름, 널찍한 6차선 도로에 느닷없이 나타나는 ‘영남제일문’이란 조형물은 타지 사람들에게조차 여행 중 뜬금없이 접하는 조형물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삼산이수’의 고을]

흔히 김천을 일컬어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을’이라고도 한다. 세 개의 산은 황악산·금오산·대덕산이고, 두 개의 물은 감천직지천을 말한다. 김천 지역의 지세를 살펴보면 감천이 가장 큰 하천인데, 이 물은 백두대간의 대덕산과 수도지맥의 수도산에서 각각 발원한 계류가 지례면에서 합류하여 북쪽으로 흘러내린다. 이후 감천황악산에서 발원한 직지천과 김천 시내에서 만나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농소면, 개령면, 감문면, 아포읍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감천은 조선 후기까지도 낙동강 본류에서 50리 가량 소금배가 거슬러 올라올 만큼 깊었으며, 용두동 일대 모래밭에 배가 닿으면 자연스럽게 해산물 장이 열리기도 했다. 소금은 물론이고 염장 과정을 거친 생선과 건어물 등은 전라도와 충청도, 경상도 내륙 깊숙한 고을까지 보부상의 등짐으로, 때로는 수레에 실려서 퍼져 나갔다.

[김천역 찰방이 마지막 관직이었던 이중환]

『택리지(擇里志)』를 쓴 조선 시대 최고의 인문 지리학자 이중환(李重煥)[1690~1756]이 1713년(숙종 39) 과거에 급제한 후 종6품 찰방 벼슬로 김천역에서 근무를 시작했던 것은 1717년(경종 2)으로, 지금으로부터 290여 년 전의 일이다. 보통 찰방은 종8품 벼슬에 해당되는 직책이지만 김천역은 그 중요성 때문에 종6품 관리가 맡았다.

그러나 1725년(영조 1) 병조좌랑에 오른 이중환은 역모 죄에 연루된 지관 목호룡(睦虎龍)에게 말을 빌려 준 혐의로 곤장 180대를 맞는 악형을 당하고 섬으로 귀양까지 갔다가 풀려났는데, 그 후 30년 가까이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을 찾아서 전국을 답사한 끝에 완성한 책이 바로 『택리지』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이중환에게 김천은 벼슬자리를 벗어나 자유로운 글쓰기 작업에 몰두할 수 있게 해 준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셈이다.

김천역은 조선 팔도 44개 역도, 538개 속역 가운데서 추풍역·문산역·부상역·양천역·작내역·장곡역 등 김천 지역 6개 역은 물론이고 성주·구미·고령을 거쳐 대구의 범어와 달성·하빈의 속역, 경상남도 함양·거창·합천 지역의 역까지 21개 역을 관할하는 김천도의 핵심 역이었다. 김천도 찰방역은 지금의 남산동 중앙초등학교에서 남산공원 일대에 있었는데, 공물의 수송과 집산이 활발하고 인마가 내왕하는 역 주변으로서 낙동강을 통해 나룻배로 실어 온 해산물을 부릴 수 있었던 용두동 감천 변에 시장이 발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김천쇠전의 전설, 우피 거상 김기진]

김천시장은 지금의 용호동에서 열렸다. 이곳은 1922년 감천제방이 축조되기 전까지 일대 대부분이 백사장이었던 곳이다. 황금동교회 앞 개울이 감천으로 흘러드는 지점에 철교가 있고, 모래톱이 제법 높게 쌓인 ‘용우머리’가 바로 김천시장의 중심지였다. 용우머리는 1930년대 이후엔 소를 팔고 사는 ‘쇠전[우시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주로 농한기인 11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에 가까운 선산이나 상주·성주에서뿐만 아니라 거창과 충청도 영동 사람들도 백두대간의 추풍령이나 괘방령을 넘어 소를 몰고 올 정도로 김천쇠전은 규모가 컸다.

지금은 횡성이나 창녕·논산·홍성의 우시장에 한참 밀리지만 1930년대만 해도 장날 하루 거래되는 소가 500~600마리나 될 정도였으며, 게다가 우피 거래량도 전국에서 가장 많아 우피 무역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당시 우피의 큰손으로 유명했던 김기진이란 사람은 일정한 규격으로 접어서 쌓아 놓은 우피를 색깔과 촉감으로 등급을 식별해 내는 달인으로 유명했다고 전한다. 전문가라 할지라도 하루는 족히 걸리는 물량을 한 시간이면 거뜬히 판별해 냈다니, 오늘날까지도 김천 쇠전의 전설적인 인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 무리는 아닐 성싶다

[김천 쇠전 탁배기 맛]

이러저러한 이야기와 배경을 깔고 있는 김천 쇠전 주변에는 한우 고깃집과 아울러 탁배기 한 잔 곁들이는 장터국밥도 인기가 높았다.

‘이전 맛 같지 않구마/ 소 팔러 우시장에 나온 아부지를 따라와/ 승하야 니도 한 잔 묵거라/뜨물 같은 탁배기 한두 잔 얻어 마시던/ 그 술맛은 어데로 가삐는지/ 씹다 더 달싹해졌는데 더 씹다/ 어무이 치료비 마련할라꼬/ 큰 맘 묵고 끌고 나온 한우 암소/ 하이고 나 원 참/ 200만 원도 안 준대여/ 또 소값 파동이래여?/ 소고기, 비육우 무데기로 수입한 탓이래여?/ 이번엔 우루과이라운드 때문이라네/ [중략] 소야, 니는 죽어 괴기 될 자격이 없고/ 내는 살아 소 키울 자격이 없다 칸다/ 소야, 내 손으로 널 잡아먹긴 싫었는데/ 내가 널 백지 델꼬 왔다/ 에라이 속이 씨려 속 달랠라꼬/ 마시는 술맛이 왜 이 모양이고/ 움메에 우는 소 눈을 쳐다보며/ 우시장 한 켠에 앉아서 마시는 탁배기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김천에서 자란 이승하[50세, 중앙대학교 교수·시인]의 「김천 우시장 탁배기 맛」은 소에 얽힌 그간의 사정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시이다. 소 값 파동이며, 비육우 수입, 우루과이라운드로 직격탄을 맞은 농촌의 현실과 소를 키우던 농민들의 가족사를 그대로 옮겨 놓은 삶의 현장이 바로 김천 쇠전이다. 게다가 이승하의 ‘탁배기 맛’에는 “괴기 될 자격이 없고”, “소 키울 자격이 없다”는 기가 막힌 표현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으니,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오는 김천 우시장 흥망성쇠와 더불어 오래 기억될 만한 시임에 틀림없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노력]

직지천 변에 있던 김천쇠전이 시 외곽인 양천동에 새로 1만 3223.14㎡[4000평] 규모의 터를 마련해 ‘김천가축시장’이란 이름으로 옮겨 온 것은 지난 1991년의 일이다. 여기서는 닷새마다 5일장[5·10일]이 열리는데, 새벽 4~5시쯤부터 무주나 영동, 상주, 문경, 구미, 성주에서 몰려든 소장수들의 흥정 소리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곤 한다. 대략 7시쯤이면 이런저런 눈치 보기와 밀고 당기는 흥정이 절정에 이르고, 9시 무렵이면 벌써 파장으로 접어든다. 하지만 하루 평균 출장 두수는 287마리[2009년 기준]에 그치고 있어서 창녕의 480두, 논산의 452두, 홍성 광천의 420두와 비교하면 훨씬 못 미치는 실정이다.

전국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김천가축시장의 규모는 홍성, 영주, 공주, 횡성, 서산, 고령에 이어서 간신히 10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김천시에서는 과거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김천쇠전의 전성기를 되찾기 위해 지난 2007년 전자 경매 시설을 갖춘 송아지 경매장을 새롭게 열었으며, 2010년에는 총 사업비 15억 원을 투입, 출장 두수 500마리 규모의 계류식 전자 경매 가축시장 건설과 더불어 ‘김천한우우수혈통보존사업’을 펼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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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18 2011년 한자 최종 검토 작업 한자항목명 三道市長의 榮光을 되찾아라, 짐泉 쇠전에서 全國 最高 家畜市長으로 ->한자항목명 三道市場의 榮光을 되찾아라, 짐泉 쇠전에서 全國 最高 家畜市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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