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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022
한자 歷史
영어음역 Yeoksa
영어의미역 Histor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집필자 김일수

[정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김천시의 역사.

[개설]

김천 지역은 삼한 시대에 감문국(甘文國)주조마국(走漕馬國)이 있었고 삼국 시대에는 신라가 감문국주조마국을 병합하여 감문주(甘文州)를 설치하였던 곳이다. 신라 때는 김산군에 속하는 산간 촌락에 지나지 않았으나, 조선 초기에 역마제도가 생긴 이후 인근 주민들의 물물 교환 및 주변 지역과의 교역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김천은 1905년 경부선의 개통으로 농축산물의 집산지로 성장하였다. 현재 아포읍농소면·남면·개령면·감문면·어모면·봉산면·대항면·감천면·조마면·구성면·지례면·부항면·대덕면·증산면, 자산동·평화남산동·양금동·대신동·대곡동·지좌동 등 1읍 14면 6동의 통합시를 이루고 있다.

김천시의 사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소백산맥 동사면에 발달한 화강암 지역이 풍화되어 이루어진 분지 중앙에는 도심지가 자리 잡고 있다. 도심 주변을 서쪽의 고성산, 북쪽의 묘함산·문암봉, 남쪽의 백마산·효자봉 등의 변성암으로 구성된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도심지의 지형은 화강암질의 낮은 구릉지와 감천·직지천이 이루어 놓은 충적 평야인 금릉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황악산에서 발원한 직지천대덕산·우두령에서 발원한 감천이 주요 하천이다. 감천은 남서부에서 동북부로 시의 중앙을 관류하며, 직지천·아천·율곡천·부항천 등과 합류하여 구미시로 빠져나가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감천직지천이 이루어 놓은 금릉평야개령평야는 들이 넓고 기름져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했고, 이 지방 농업을 위주로 하는 1차 산업의 터전을 이루고 있다. 조선 말기까지는 낙동강 하구에서 소금배가 올라올 정도로 깊었던 감천 하류가 무절제한 야산 개발로 하상이 높아져 홍수의 주원인이 되어 왔는데, 근래에는 야산 조림 사업이 육성되고 있다.

[선사]

김천의 선사 문화는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고고학적 성과에 의하면 김천 지역에서 구석기 시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이나 유물은 조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성주, 칠곡 등 김천 인접 지역에 구석기 문화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아, 김천 지역에서도 구석기 시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김천 지역의 신석기 시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송죽리 유적이 있다. 그리고 청동기 시대의 유물·유적은 감문면 송북리, 구성면 삼가리 등지에서 고인돌과 갈아서 만든 돌로 된 화살촉 등이 발견되었다.

[고대]

삼한 시대에 있어 김천 지역에는 감문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감문국은 231년(신라 조분이사금 2)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어 감문군(甘文郡)이 되었고, 557년(진흥왕 18)에 감문주(甘文州)를 두어 상주의 치소가 되었다. 이 일대는 신라와 백제가 접경한 지역으로 두 나라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자주 벌어졌던 곳으로 신라가 백제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군사적 필요성에 따른 조치였다.

614년(진평왕 36) 상주(上州)의 주치가 일선주(一善州: 善州)로 옮겨진 뒤, 군현 체제가 성립되면서 금물현(今勿縣)[지금의 김천]·김산현(金山縣)[지금의 김천]·지품천현(知品川縣)[지금의 지례면]·무산현(茂山縣)[지금의 전라북도 무주군] 등을 거느리게 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지방 제도 개편 시 감문군개령군(開寧郡), 금물현어모현(禦侮縣), 지품천현지례현(知禮縣), 무산현은 무풍현으로 각각 개명되었다. 이 지역은 선산과 더불어 신라 불교 전래의 한 통로로써, 일찍이 눌지왕대에 아도화상(阿道和尙)직지사를 창건하였다.

[고려 시대]

후삼국 통일 이후 이 지역은 영속 관계에 변화가 일어나 개령군의 속현이던 무풍현이 진례현(進禮縣)의 속읍이 되었고, 김산(金山)·지례 두 현은 경산부(京山府: 星州)의 속읍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현종 때의 전국적인 지방 제도 개편 당시에 다시 전면 조정되어 1018년(현종 9) 개령군어모현이 상주목에 내속되었다. 이러한 영속 관계의 변화는 이 지역의 정치적·군사적 비중이 크게 약화되었음을 의미하지만, 교통 중심지로서의 기능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김산현김천역(金泉驛)이 설치되었다. 1172년(명종 2) 개령군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고, 1390년(공양왕 2) 지례현김산현에도 감무가 파견되면서 다시 행정 단위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조선 시대]

건국 이후 김산현 관내에 정종(定宗)의 태가 묻혔다 하여 김산군으로 승격되면서 어모현을 통합하였다. 1413년(태종 13) 개령군개령현으로 강등되어 현감이 파견되고, 지례현에도 현감이 파견되었다.

조선 초기 농업의 발달 과정에서 이 지역 역시 토지가 비옥해 농업 생산력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여러 개의 제언(堤堰)이 축조되는 등 물산이 풍부한 곳으로 지목되었다.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풍도 성행해 김산·개령·지례 등에 향교가 세워졌으며, 사림파 등장 이후 경렴서원(景濂書院)·경양서원(鏡陽書院) 등의 원사가 건립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여대로(呂大老가이 의병을 모집하자 개령·김산 등지의 사족(士族)들도 대거 호응해 왜적을 무찔렀다. 조선 후기의 세도정치가 전개되면서 봉건 체제의 모순이 노출되고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하자, 1862년(철종 13) 김규진(金奎鎭) 등의 주도하에 개령 민란이 일어나 민중의 반봉건 투쟁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근대]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혁에서 김산군·개령현·지례현은 모두 군으로 되었고, 1905년 증산면이 성주군에서 지례군으로, 다음 해에 성주군 신곡면(薪谷面)과 황간군(黃澗郡) 남면이 김산군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개령군·김산군·지례군김천군으로 통폐합되었고, 1931년 김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07년 이후 허위(許蔿)의 의병 부대는 김천·지례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했으며, 1919년 3·1운동 때 김천면에서는 3월 24일과 4월 5일에, 개령면에서는 3월 24일부터 4월 6일까지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또한 유림들의 파리 장서 사건에는 김천 출신 이석균(李鉐均)·이명균(李明均)·송준필(宋浚弼)·최학길(崔鶴吉) 등이 가담하였다. 그리고 1929년 김천 소년회·청년회는 만주 동포에 대한 탄압 문제를 거론하면서 배일·배중국 운동(排日排中國運動)을 추진하였다.

[현대]

1949년 김천시의 승격으로 시군이 분리되어 김천군금릉군으로 개편되었다. 1960년 부항면 면사무소 이전 파동 이후 금릉군 부항면에 유촌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73년 봉산면 복전동이 대항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에는 금릉군 농소면 덕곡동, 개령면 대광동, 어묘면 응명동, 감천면 양천동이 김천시로 편입되었으며, 감문면 봉남동·소재동이 선산군 선산읍으로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에 따라 김천시와 금릉군이 새로운 김천시가 되었으며, 3월 1일 아포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해방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를 중심으로 하여 건국 활동이 벌어졌다. 6·25전쟁 중에는 인천 상륙 작전까지 공산군의 점령 아래 있었다. 부항면 사무소 파동이 일어나던 4·19혁명 시기엔 반독재 운동이 전개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 정부는 낙동강 중하류 지역의 용수 공급과 홍수 조절을 위해 감천댐 건설을 계획하였고, 1996년 4월부터 1997년 4월까지 타당성 여부 조사를 하려다 현지 주민에 의해 발각되었다. 이에 1996년 8월 8일 지례면민이 건감천댐건설반대위원회를 결성하였고, 8월 19일에는 부항면, 8월 23일에는 구성면에서도 위원회가 차례로 결성되었다. 8월 24일에는 3개 면 연합 대책 위원회를 결성하고, 면마다 궐기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97년 4월 25일에는 8만 1847명이 연서한 진정서를 건설교통부에 내고 건설 반대 의사 표명을 하였다. 그러나 2005년 7월 건설교통부는 총 사업비 4191억 원 규모가 투입될 부항댐[감천댐] 건설 사업을 본격화하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김천시에는 경부고속철도 역사 유치, 2006년 전국 체육 대회 유치, 혁신 도시 유치 등의 성과를 이루었다. 도시 기반 시설 부분에서는 직지천 변 우회 도로를 6차선으로 확장하고, 국도 대체 환상 우회 도로를 개설하였고, 대전 통로 및 거창 통로를 확장, 김천대교, 대동교, 교동교, 삼도봉터널, 중부내륙고속도로 등을 개통 및 개설하였다. 또한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직지문화공원, 강변공원, 조각공원, 환경공원 및 소공원 250여 개소를 조성하였다. 문화·예술 및 교육 인프라 부분에서는 김천시 문화예술회관, 영남제일문, 김천시민 대종, 빗내농악전수관 등을 건립하였다. 복지 서비스 향상 부분에서는 노령 사회에 대비한 복지 시설 확충으로 김천시 노인종합복지관, 김천시 장애인종합복지관, 경상북도 청소년수련관 등을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18 2011년 한자 최종 검토 작업 파리 장서 사건에는 김천 출신 이석균(李溜均)·이경균(李璟均) 등이 가담하였다 ->파리 장서 사건에는 김천 출신 이석균(李鉐均)·이경균(李璟均) 등이 가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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