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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185
한자 玉山里
영어음역 Oks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옥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7.4㎢
가구수 275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555명(남자 286명, 여자 269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조선 중엽까지 마을에 개령현에서 관할하는 감옥(監獄)이 있어 옥산(獄山)이라 하였다가, 조선 말기 옥(獄)이 없어지면서 뜻이 좋지 않다는 여론에 따라 ‘구슬 옥(玉)’자로 바꾸어 옥산(玉山)이라 하였다. 남면사무소에서 농남중학교를 지나면 석정과 초곡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지점[현재 수원 백씨 종중 산]에 길게 걸쳐 있는 야산이 바로 감옥이 있었던 산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두 갈래 길이 나면서 잘리고 밭으로 개간되어 옛 흔적을 찾을 길이 없으나 몇몇 주민들은 이 산을 옥산(獄山)으로 칭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개령군 적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옥산·지산(池山)·석정이 통합되어 김천군 남면 옥산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남면 옥산동으로 개칭하였고, 1971년 옥산1동·옥산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옥산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남면 옥산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동쪽에 노고봉[334m]이 솟아 있고, 서쪽은 송곡천과 율곡천이 합류하면서 넓은 신강들·번답들을 형성하였다. 지산 앞에는 지산못이 있다.

[현황]

옥산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7.4㎢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275세대에 555명(남자 286명, 여자 26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운남리, 서쪽으로 월곡리, 남쪽으로 입석리, 북쪽으로 용전리와 이웃하고 있다. 송곡천과 율곡천 주변으로 신강들을 비롯한 평야가 많아 예부터 곡창지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참외를 주로 재배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평택 임씨 문중 재실인 원모재(遠慕齋), 성산 이씨 문중 재실인 갈산재(葛山齋)가 있다.

옥산1리·옥산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평택 임씨 전적공파(典籍公派)와 김해 김씨 집성촌이다. 1500년대 판결사(判決事)를 지낸 평택 임씨 임흥주(林興籌)가 경기도 여주에서 이주해 와 마을을 개척한 이래, 지좌동 호동마을과 함께 김천 최대의 평택 임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옥산·지산 등이 있다. 지산은 마을 앞에 못이 있고 마을 뒤에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이 있어 붙인 이름으로 못과 산이란 뜻으로 모산이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옛날 갈항사 승려가 마을을 지나가다 자손 대대로 번창할 명당이라며 지금의 마을 자리를 잡아 주고 붙여 준 이름이라고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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