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189
한자 扶桑里
영어음역 Busa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부상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6.39㎢
가구수 229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405명(남자 226명, 여자 179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예부터 마을에 뽕나무가 많아 잠업이 성하였는데, 가야금을 만든 우륵(于勒)이 이 마을에서 생산된 명주실로만 가야금 줄을 매었다고 하여 ‘뽕나무 상(桑)’자를 써서 부상이라 하였다. 1970년 고령에서 발견된 『산천유집(山泉遺集)』에 우륵이 작곡했다는 12곡의 가야금부(伽倻琴賦), 즉 가야금 노래에 부상의 명주실로 우륵의 가야금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개령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부상·지산곡·지곡·지경이 통합되어 김천군 남면 부상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남면 부상동으로 개칭하였고, 1971년 부상1동·부상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부상리가 되었으며, 1995년 김천시 남면 부상리가 되었다.

[현황]

부상리남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12㎞ 떨어져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6.39㎢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229세대에 405명(남자 226명, 여자 17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부상1리·부상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 마을로 부상·지경 등이 있다. 김해 김씨김녕 김씨 집성촌이다. 예부터 잠업으로 유명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포도·복숭아·자두를 주로 재배한다. 문화 유적으로는 부상리 고인돌군, 부상역 터, 백운암이 있다. 1974년 발견된 삼국 시대 도자기 두 점이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국도 4호선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로 1905년 개통된 경부선철도가 원래 지났던 곳이기도 하다. 공사 당시 부상고개 구간이 시공이 어렵다고 지적되자 비교적 평지인 아포·구미 방면으로 우회하여 철도를 개설함으로써 1928년 부상 철로 시대는 막을 내렸다. 지금도 그 흔적이 부상고개를 관통하는 길이 300m의 금오산터널로 남아 있다. 김천 방면 터널 앞에 제방이 축조되어 절반 이상이 물에 잠겨 있기는 하지만 100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부상리는 예부터 성주에서 개령 양천역을 거쳐 상주 방면으로 연결되는 관로(官路)에 있어 고려 시대에 부상역이 설치되었던 역촌(驛村)으로 이름이 높았다. 관련 사료에 따르면 당시 역에는 사창 2칸, 말 6필, 역리 26명이 상주했고 역에 딸린 토지, 즉 둔전(屯田)이 54결이었다. 역의 위치는 폐교된 부상초등학교 일대로 추정하고 있으며 말구리·당말리 등 말과 관련된 지명이 일부 남아 있어 부상역이 존재했음을 알게 해 준다. 마을 주민에 따르면 과거 부상초등학교 운동장에 ‘어사 박문수(御使朴文秀)’라고 적힌 비석을 비롯하여 수십 개의 비석과 우물이 있었는데 우물은 메워지고 비석은 서울에 있는 모 대학에서 모두 가져갔다고 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