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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195
한자 黃溪里
영어음역 Hwanggye-ri
이칭/별칭 황경(黃京),횡경(橫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황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3㎢
가구수 220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505명(남자 264명, 여자 241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감천을 빗대어 흙탕물이 흐르는 시내란 뜻에서 황계(黃溪)라 하였다. 달리 비옥한 황토가 많은 큰 마을이므로 황경(黃京), 마을에서 볼 때 감천이 가로로 누워 흐른다 하여 횡경(橫京)이라고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개령군 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송(五松)·황경을 통합하여 황계동이라 하고, 서면과 부곡면을 통합한 김천군 개령면에 속하게 되었다. 1949년 금릉군 개령면 황계동으로 개칭하고,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황계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개령면 황계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화산과 치봉골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 밖에서는 마을이 드러나지 않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어서 자손이 번성하고 부유해진다는 명당으로 알려졌다. 감천이 마을을 감싸며 흐르고 주변에 노전들·은지들·번개들 등 광활한 평야가 펼쳐져 있다.

[현황]

황계리개령면 최남단에 자리 잡은 마을로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3㎢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220세대에 505명(남자 264명, 여자 24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서부리남면 초곡리, 서쪽으로 대광동, 남쪽으로 감천을 사이에 두고 농소면 신촌리, 북쪽으로 신룡리와 이웃하고 있다. 황계1리·황계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김녕 김씨·김해 김씨·단양 우씨 집성촌이다. 국도 59호선이 마을을 지나고, 감천 변에 형성된 비옥한 평야에서 예부터 벼농사와 채소 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의 대홍아파트에서 어모천이 합류하는 일대까지 감천 변에 드넓게 펼쳐진 번개들은 원래 갈대밭이었는데 1800년대 말 개간하여 경작지로 변모하였다. 토질이 비옥하여 예부터 품질 좋은 무와 배추가 생산되어 조선 말 궁중에 진상하기도 하였다. 1970년대 초까지 전국의 채소 중개인들이 몰려들어 마을 앞 주막거리가 흥청거렸다고 한다.

자연 마을로는 황경, 오송이 있다. 황경은 김녕 김씨 김문기(金文起)의 9세손 김응남(金應南)이 임진왜란을 피해 지례면에서 이주해 오고, 1805년 김해 김씨 16세손으로 형조참판을 지낸 김명한(金命漢)이 입향한 이래 대대로 김녕 김씨김해 김씨가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 입구와 번개들 사이 주막이 있던 자리는 옛날 감천 물이 드나드는 냇가 바닥이었다 하여 구내주막[舊川酒幕]으로 불리었는데 지금은 큰 도로가 놓였다.

오송은 모광지 옆 오송골산 아래 자리 잡고 있다. 오송골산에 큰 소나무 다섯 그루가 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임진왜란 때 지명에 ‘소나무 송(松)’자가 붙은 곳으로 피난하면 안전하다는 속설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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