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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216
한자 星村里
영어음역 Seongch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성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3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7㎢
가구수 108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219명(남자 107명, 여자 112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가장 중심이 되는 마을인 북성(北星)의 ‘성(星)’자를 따서 성촌(星村)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개령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북성·명천(明泉)·명창(命昌)이 통합되어 김천군 곡송면 성촌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곡송면과 위량면을 통합하여 신설된 감문면 관할이 되었고, 1949년 금릉군 감문면 성촌동으로 개칭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성촌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감문면 성촌리가 되었다.

[현황]

성촌리감문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6㎞ 떨어져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1.7㎢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08세대에 219명(남자 107명, 여자 11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태촌리, 서쪽으로 대양리, 남쪽으로 개령면 광천리, 북쪽으로 광덕리와 이웃하고 있다. 북성리·명천리·명창리 세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고려 시대에 개령 홍씨가 마을을 개척한 이래 김해 김씨·파평 윤씨·전주 이씨가 많이 살고 있다.

동쪽에 있는 곡송들을 비롯하여 비옥한 토지가 많아 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고 참외 재배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조선 정조 때 서당을 세워 후학을 양성한 신적희(申績熙)를 기리는 우계신선생휘적희영세불망비(愚溪申先生諱績熙永世不忘碑)가 있다. 마을 뒤에는 동제를 올리던 산제당 터가 남아 있다.

북성리는 보은 이씨가 마을을 개척한 이래 태촌리의 안마·완동과 함께 태성모에 속하는 마을로 태성모 세 마을 중 가장 바깥쪽에 있어 바깥태성이라고도 한다. 마을 뒤 서당골은 신적희가 세운 서당이 있어 붙인 이름이다. 이 서당에서 신씨, 김씨, 이씨 세 선비가 우물을 파고 공부를 했다고 하여 삼포골이라고도 하는데 아직도 우물의 흔적이 남아 있다.

명천리는 마을 동쪽에 오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솟는 찬샘이 있어 붙인 이름이다. 160여 년 전 안동 권씨가 새로 개척한 마을이어서 새터라고도 한다. 북성에서 배시내 방면으로 가다가 완동으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있다. 명창리는 예부터 주민들이 장수하는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탄동에 있는 광덕저수지에서 발원한 외현천이 설대들을 굽이쳐 흐르다가 큰비가 내리면 마을 앞에 많은 돌을 쌓으므로 돌무리라고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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