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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220
한자 南山里
영어음역 Nams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남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20년연표보기
변천 193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5㎢
가구수 290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521명(남자 278명, 여자 243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상남과 하남 두 마을 경계인 남산에서 이름을 따서 남산동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김산군 천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20년 상남·하남·길계가 통합되어 김천군 아천면 남산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아천면과 구소요면을 통합하여 신설된 어모면 관할이 되었고 1949년 금릉군 어모면 남산동이 되었다. 1971년 남산1동·남산2동으로 분동되었고,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남산리가 되었으며, 1995년 김천시 어모면 남산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지산(池山) 앞에 등등지(登登池), 오파산 아래에 오파저수지가 있다. 등등지는 전설에 따르면 옛날 마을에 판서를 역임한 권세가가 살았는데 자제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집안이 번창하자 나라에서 역심을 품을까 의심하여 살던 집을 헐고 못을 파서 연못을 조성하였는데 아들이 모두 등과(登科)하였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등과한 집터에 못을 팠다 하여 등대지(登垈池)라고도 하고 한지, 대야지로도 불린다.

[현황]

남산리어모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1.5㎞ 떨어져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5㎢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290세대에 521명(남자 278명, 여자 24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서쪽으로 대광동, 북쪽으로 옥율리와 이웃하고 있다. 남산1리·남산2리·남산3리 세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성산 전씨·능성 구씨·김해 김씨 집성촌이다. 경부선철도국도 3호선이 마을 앞을 남북으로 지난다. 앞들, 딱박들, 집앞들, 못앞들 등 마을 주변에 평야가 많아 벼농사가 발달하였고 포도·배·복숭아도 많이 재배한다. 문화 유적으로 김해 김씨 문중 재실인 경원재(景源齋)가 있다. 2009년부터 남산1리 너번들과 지산 일대에 어모공단을 조성하면서 마을이 공단 대지로 편입되어 대부분의 주민이 마을을 떠났다.

자연 마을로는 상남·하남·지산·광야(廣野)·길계 등이 있다. 광야는 들이 넓어 붙인 이름으로 달리 넓은들 또는 너번들이라고도 한다. 1948년 진양 강씨 강응학(姜應學)과 일선 김씨 김수봉(金守封)이 지산에서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지산은 너번들에서 오른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서면 멀리 저수지가 눈에 들어오는 고개 아래 자리 잡고 있다. 마을에 등등지가 있어 ‘못 지(池)’자를 써서 지산이라 하였다. 달리 모산이라고도 하는데, 못 안에 마을이 있다 하여 못안이라 부르다가 발음이 변하여 굳어진 이름이다. 1636년 능성 구씨 집안의 구인리(具仁里)가 이주하여 살기 시작한 뒤 1840년 진양 강씨, 1864년 김해 김씨가 차례로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상남은 남산리에 속한 마을 가운데 위쪽에 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1612년 성산 전씨 전순석(全舜錫)이 감문면 속문에서 옮겨 와 정착한 이래 성산 전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하남은 남산리에 속한 마을 가운데 아래쪽에 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1610년 김해 김씨 김립(金岦)이 김해에서 옮겨 와 정착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고, 1890년경 정선 전씨 전복연(全福淵)과 경주 이씨 일가가 들어온 이래 대표적인 김해 김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길계는 하남 마을회관 앞으로 난 길을 따라 300m 남짓 들어가면 있다. 달리 길기·질기로도 불린다. 십 수 년 전까지만 해도 파평 윤씨를 중심으로 15세대가 살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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