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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239
한자 雲水里
영어음역 Unsu-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순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9.92㎢
가구수 211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465명(남자 241명, 여자 224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에 속하는 법정리.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김산군 대항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본리(本里)·백운(白雲)·돌모(乭毛)가 통합되어 김천군 대항면 운수리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대항면 운수동이 되었다. 1971년 운수1동·운수2동·운수3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운수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동쪽은 동구지산, 서쪽은 황악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현황]

운수리대항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1㎞ 떨어진 황악산 운수골 일대에서 바람재로 이어지는 지방도 변에 자리 잡고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9.92㎢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211세대에 465명(남자 241명, 여자 22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운수1리·운수2리·운수3리 세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약 200년 전인 1770년경 인근 직지사를 찾아 드나들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정착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김해 김씨·경주 최씨·창녕 조씨 집성촌이다. 통상 도로를 기준으로 왼쪽을 음지마, 오른쪽을 양지마로 일컫는다. 지방도 903호선이 지나고 포도와 표고버섯이 많이 생산된다.

문화 유적으로 직지사 경내에 보물 제319호인 김천 직지사 석조약사여래좌상, 보물 606호인 문경 도천사지 동·서 삼층석탑, 보물 제607호인 문경 도천사지 삼층석탑, 보물 670호인 「직지사 대웅전 삼존불탱화」, 보물 제1186호인 전 구미 강락사지 삼층석탑 등이 있다. 직지사는 418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고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의 본사이며 조선 2대 임금 정종의 태가 안치된 태실 수호 사찰이다.

자연 마을로는 북암, 터목, 돌모, 박수점(朴水店) 등이 있다. 북암은 직지사 매표소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무궁화공원을 지나 수백 미터 더 오르면 있다. 북암 앞 개구리봉은 장택상(張澤相) 전 국무총리의 선영으로 예부터 명당으로 알려진 곳이다. 개구리봉 옆에는 조선 2대 정종의 태(胎)를 봉안한 태봉(胎峰)이 있는데 이 태봉 또한 천하의 명당으로 꼽힌다. 풍수지리상 사두혈(蛇頭穴), 즉 뱀의 머리 형국이어서 태봉의 기세에 개구리봉의 발복(發福)이 위해를 받을 것을 염려한 인동 장씨 집안에서 묘수를 내어 북암저수지를 만들었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으려 할 때 개구리가 피신할 수 있도록 개구리봉 옆에 인공 저수지를 판 것이다.

터목[垈項]은 바람재로 이어지는 긴 골짜기의 길목에 해당하는 자리에 있어 붙인 이름이다. 일대의 중심이 되는 마을이어서 본리라고도 한다. 돌모는 터목에서 바람재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한참 올라가면 왼쪽 골짜기 아래에 있다. 약 200년 전 창녕 조씨 일가가 정착해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에 돌이 많아 돌마을이라 한 것이 변할여 굳어진 이름이다.

박수점은 옛날 가구를 만드는 장인들이 살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황악산 중턱에 마을이 자리하여 항상 구름에 덮여 있으므로 백운이라고도 한다. 1840년경 돌모에 정착해 살던 창녕 조씨 일가가 분가하여 개척한 마을이다. 마을 동남쪽에는 도둑골로 불리는 깊은 골짜기가 있다. 옛날 바람재를 넘나들던 행인들을 노리던 화적 떼들이 자주 출몰해 붙인 이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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