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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242
한자 德田里
영어음역 Deokje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덕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순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4.02㎢
가구수 388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892명(남자 441명, 여자 451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정골[鄭谷]의 다른 이름인 덕산의 ‘덕(德)’자와 죽전(竹田)의 ‘전(田)’자를 따서 덕전동(德田洞)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김산군 대항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정골·대사(大寺)·죽전·세송(細松)·왕대(旺大)·신평(新坪)이 통합되어 김천군 대항면 덕전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대항면 덕전동이 되었다. 1971년 덕전1동·덕전2동·덕전3동·덕전4동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덕전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대항면 덕전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동쪽에 오룡산이 솟아 있고 북쪽에 덕산저수지와 덕대산이 있다.

[현황]

덕전리대항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6㎞ 떨어져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14.02㎢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388세대에 892명(남자 441명, 여자 45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다수동, 북쪽으로 대룡리와 이웃하고 있다. 덕전1리~덕전4리 네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김해 김씨·연일 정씨·경주 이씨·담양 전씨·정선 전씨가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 중앙으로 경부선철도가 지난다.

최근에 포도 농사가 보편화되면서 김천 최대의 포도 생산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덕대산 자락에서 재배되는 호두 수확량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박이룡 신도비가 있다. 신평에서는 해마다 단오절에 이웃 마을인 대룡리 용복과 줄다리기 놀이를 전승해 오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정골·덕산·죽전·대사·세송·왕대·신평 등이 있다. 정골은 덕산저수지 위에 자리 잡은 마을로 약 300년 전 연일 정씨 정홍일이 봉계에서 옮겨 와 정착하였다. 1942년 축조한 덕산저수지는 대항면장 하병현(河炳鉉)의 지휘 아래 일대 주민들이 동원되어 어렵게 완성한 저수지로 둑 끝에는 하병현 면장의 공덕을 기리는 송덕비가 있다.

대사는 남양 홍씨 일가가 개척한 마을로 옛날 마을에 큰 절이 있어 붙인 이름이다. 달리 한절골 또는 한지골이라고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마을의 절을 찾는 신도가 너무 많아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앞산의 혈을 끊으면 신도가 줄어들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한 승려가 앞산 산허리를 자르니 학 두 마리가 나와 한 마리는 직지사 쪽으로 날아가고 다른 한 마리는 해인사 방향으로 날아갔다. 이후 절이 차츰 쇠락해 결국 망해 버렸다고 한다. 대사에서 정골로 올라가는 지금의 도로가 산허리를 잘랐다는 지점이다. 마을 앞 정자나무 자리에 일주문이 있었고 현재 마을 공동 우물이 당시 절의 샘이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맑은 물이 솟아나고 있다.

죽전은 마을 뒷산에 대나무 밭이 있어 붙인 이름이다. 덕대산에서 발원한 냇물이 마을 앞을 흘러 개울마라고도 한다. 봉계에서 이거한 창녕 조씨 일가가 마을을 개척하였고, 1936년 수해 때 마을의 대부분이 유실되기도 하였다. 마을 앞 개울가에 1969년 수해 때 마을로 떠내려 온 돌할머니바위를 모셔 두고 매년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를 올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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