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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260
한자 松竹里
영어음역 Songju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순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3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5.01㎢
가구수 161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296명(남자 143명, 여자 153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송평(松坪)의 ‘송(松)’자와 죽방(竹方)의 ‘죽(竹)’자를 따서 송죽(松竹)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김산군 과곡외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대방·송평·죽방, 과곡내면의 내방·광천 일부가 통합되어 김천군 과곡면 송죽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김천군 구성면 송죽동이 되었고 1949년 금릉군 구성면 송죽동이 되었다. 1971년 궁장(弓莊)·덤밑[岩下]·고목·백일대(百日臺)·개정지(開井地)·날끝이 송죽1동, 주막·죽방·황새말이 송죽2동으로 분동되었고, 1988년 동(洞)을 이(里)로 바꾸어 송죽리가 되었다. 1991년 구성공단 조성 공사로 고목이 폐동되었고, 1995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송죽재가 송죽1리와 송죽2리를 가르고, 남쪽으로 굽이쳐 흐르던 감천의 아름다운 곡류는 1991년 구성공단을 조성하면서 직강 공사를 하여 예전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현황]

송죽리구성면 소재지에서 국도 3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3㎞ 떨어져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5.01㎢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61세대에 296명(남자 143명, 여자 15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광명리, 서쪽으로 흥평리·상거리·상좌원리, 남쪽으로 미평리·금평리, 북쪽으로 대방이재를 사이에 두고 하강리·양각리와 이웃하고 있다. 송죽1리·송죽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성산 여씨·김해 김씨 집성촌이다. 감천 주변으로 비옥한 토지가 많아 벼농사가 발달하였고 지금은 양파와 자두를 주로 재배한다. 문화 유적으로 성산 여씨 재실인 어모재(禦慕齋), 여대로 창의비, 송죽리 유적이 있다.

자연 마을로는 덤밑·고목·백일대·개정지·날끝·주막·죽방·황새말 등이 있다. 개정지는 1936년 수해로 감천 변 연화동이 큰 피해를 입자 주민들이 이주하여 우물을 팠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달리 개정기(開井基)라고도 한다. 개정지 위쪽 백일대는 마을에 백일홍이 많아 붙인 이름이다.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 수동(壽洞)이라고도 한다. 날끝은 송죽교 건너 덕대산 자락 날끝산 끝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칼 모양의 날끝산 끝부분에 있어 붙인 이름이다.

궁장은 송죽휴게소 맞은편에 있는 마을로, 전설에 따르면 옛날 한 장수가 마을에서 활을 쏘았는데 구성공단이 조성되기 전 마을 앞을 감돌아 흐르는 감천의 형세가 활에 해당하고 폐동된 고목 앞 여우골산이 길게 뻗어 나온 화살에 해당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구성공단을 조성할 때 여우골산이 잘려 나가긴 했지만 국도 3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휘어진 활처럼 굽은 주변 형세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덤밑은 박자골을 지나 돌고개[石峴] 아래 있는 마을로 마을 뒤에 바위가 많아 바위 아랫마을이란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죽방은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에 대나무가 많아 붙인 이름이고, 황새말은 마을 형세가 황새가 목을 길게 뺀 모습과 같아 붙인 이름이다. 상좌원리로 넘어가는 돌고개는 과거 김산군지례현의 오랜 경계로 구성면으로 통합되기 전 과곡면과 석현면의 경계를 이루는 중요한 고개이다. 임진왜란 때 이 지방 의병들이 고개를 지나던 왜병들을 돌로 공격했다는 유명한 석현 전투의 현장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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