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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296
한자 希谷里
영어음역 Huigo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희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순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5㎢
가구수 57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99명(남자 48명, 여자 51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벽진 이씨 문중의 한 선비가 ‘사람이 현인이 되기를 바라고 현인은 성인이 되기를 바라고 성인은 하늘을 닮기를 바란다[人希賢 賢希聖 聖希天]’는 뜻을 세우고 인근 마을을 셋으로 나누어 숫골을 외희(外希), 앳골을 중희(中希), 안희실을 내희(內希)로 칭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지례군 하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교현(轎峴)·외희·중희·내희가 통합되어 김천군 부항면 희곡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부항면 신옥리로 개칭되었고, 1963년 교현과 내희가 희곡1리, 앳골과 숫골이 희곡2리로 나누어졌다. 1995년 김천시 부항면 희곡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마을 주변으로 묘골재, 행단령, 구남재, 성광산, 시루봉, 비봉산 등 크고 작은 고개와 험한 산이 많은 산간 오지이다.

[현황]

희곡리부항면 동북쪽 끝에 있는 마을로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5㎢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57세대에 99명(남자 48명, 여자 5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희이령을 사이에 두고 구성면 임평리, 남쪽으로 비봉산을 사이에 두고 유촌리, 서쪽으로 사등리와 이웃하고 있다. 희곡1리·희곡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조선 초기 청백리로 유명한 이약동(李約東)의 아버지로 해남현감을 지낸 이덕손(李德孫)이 안희실로 옮겨 온 이래 대대로 벽진 이씨 전서공파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농경지가 좁아 주로 산을 개간한 밭에 담배 등을 재배한다. 문화 유적으로는 벽진 이씨 문중 재실인 사일재(事一齎), 옛날 동제를 지냈던 무학당(舞鶴堂)이 있다. 사일재에는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100일 기도 끝에 산삼을 구해 완치시켰다는 행초(杏樵) 이우연(李愚淵)[1801~1873]의 효자비가 있다.

자연 마을로는 가마고개·안희실·숫골·앳골 등이 있다. 가마고개는 마을 뒤 안희실로 넘어가는 고개인 가마고개가 마을 이름으로 굳어진 경우이다. 달리 교현이라고도 한다. 마을 입구에 신랑을 상징하는 사모바위가 있고 마을 뒤 가마고개 아래 이종연 집에 신부를 상징하는 족두리바위가 있으며 지금은 사라졌지만 마을 중앙에 가마 모양을 한 가마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안희실은 가마고개 너머 마을로 내실(內室)이라고도 하고, 99개의 작은 골짜기가 있어 큰골이라고도 한다. 앳골[일명 와야골]은 마을 중앙에 기와를 굽는 가마가 있어 와야(瓦也)라 하던 것이 음이 변하여 굳어진 이름이다. 희곡리에서도 가운데 있는 마을이이어서 중희라고도 한다.

숫골은 앳골과 산 하나를 사이로 두고 이웃하고 있는 마을로 ‘목숨 수(壽)’자를 써서 수동(壽洞)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 출신인 이언국(李彦國)[1614~1703]이 90세까지 장수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이언국은 병자호란 때 의병을 모아 상경하다 남한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탄식하며 두문불출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19 2011년 한자 최종 검토 작업 ‘인희현현희성성희천(人希賢賢希聖聖希天)’, 즉 현인을 따르고 성인을 좇으며 하늘을 따른다는 ->‘사람은 현인이 되기를 바라고 현인은 성인이 되기를 바라고 성인은 하늘을 닮기를 바란다(人希賢 賢希聖 聖希天)’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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