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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546
한자 四一九革命
영어음역 Sailgu Hyeongmyeong
영어의미역 April 19th Revolution in 1960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정의]

1960년 4월 19일을 전후로 경상북도 김천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주의 혁명 운동.

[개설]

대구의 2·28민주 운동에 이어 마산의 3·15부정선거 반대 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갈 때, 김천에서도 4·19혁명 이전부터 김천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산발적이나마 학생들이 시위를 준비하기 시작했으나 경찰의 방해로 무산되기 일쑤였다. 4·19혁명직후 김천고등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시내 고등학교 학생 대표들이 은밀히 모임을 갖고 데모를 계획했으나 학교 당국과 경찰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4월 26일 오전 10시부터 김천고등학교 학생 1,000여 명은 김천고등학교 교정에서 부정 선거 규탄 궐기대회를 가진 뒤 교문 밖으로 뛰쳐나와 가두시위에 들어갔다. 이들은 국도 송설로와 역전을 거쳐 시청 쪽으로 행진하면서 구호를 외치면서 독재정권을 성토했다. 그동안 학생 데모를 막는데 열중했던 각 급 학교 교직원들도 먼발치에서 데모 대열을 뒤따랐으며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암동 삼각로타리를 지나 감천교까지 행진을 계속하였다.

이날 대통령 하야 소식이 전해지자 학생들은 다시 저녁 8시 무렵 역전 광장에 모이기 시작하였다. 약 500명이 대오를 짠 후 노래와 구호를 외치면서 시청, 경찰서를 통과하여 남산동성결교회를 거쳐 남산공원 앞을 지나 황금동 거창가도로 접어들었다. 학생이 중심이 된 데모대는 다시 경찰서까지 진출하여 경찰과 대치하였다. 이 과정에서 데모대는 경찰서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였고, 경찰은 이를 막았다.

그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가 있었다. 경찰의 발포로 김천고등학교 2학년 이연화 학생이 사망하고, 전기회사 전공을 비롯한 수십 명의 시민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발포 명령을 내린 당시 경찰서장은 대구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관련 경찰관들도 해직 또는 징계되었다. 김천에서도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맞서는 민주주의 운동이 지역의 학생을 중심으로 시민이 참여하는 형태로 발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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