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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591
한자 文武里古墳群
영어음역 Munmu-ri Gobungun
영어의미역 Ancient Tombs of Munmu-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산78 일원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배성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5~7세기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산78 일원지도보기
성격 고분군
양식 구덩식 돌방무덤[竪穴式 石室墳]|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 石室墳]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

[위치]

문무리 고분군감천의 지천인 감문천 최상류의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상여마을과 하여마을 주위에 분포하고 있는데, 김천역에서 북으로 13㎞ 정도 떨어져 있다. 문무리 고분군은 두 마을을 둘러싼 대부분의 능선부와 사면 하위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문무리 고분군의 서쪽 산에는 고소산성(姑蘇山城), 동쪽 산에는 속문산성(俗門山城)이 축조되어 있으며 북쪽 산의 분수령 넘어서는 상주시역에 속한다. 따라서 김천 지역에서는 가장 북단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볼 수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문무리 고분군은 5~7세기대의 고분군으로 현재 발굴 조사된 고분은 없으나 지표 조사 결과 275기의 봉토분이 확인됨에 따라 현재 김천 지역의 고분군 중에서는 확인된 기수가 가장 많다. 인근 주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과거 마을 안에도 다수의 고분이 있었으나 마을 조성과 농지 개간 등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또한 민묘 조성과 사방 사업 및 도굴로 파괴된 것을 포함하면 원래 문무리 고분군의 봉토분은 350기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문무리 고분군 중에서는 봉분의 규모가 10~15m에 이르는 중형급이 많으나 봉토의 성토재가 거의 마사토로 이루어져 있어 자연 유실이 심하여 일부만 남은 것도 많다. 또한 대부분 도굴이 이루어져 봉토 및 석실의 훼손 상태가 극심한 편이다. 내부가 드러난 고분의 경우, 대다수가 반지상식 혹은 지상식의 판석조 굴식 돌방[橫穴式石室]이다. 또한 부분적으로 할석으로 축조한 것과 입구를 할석 또는 판석으로 막은 앞트기식[橫口式] 구조가 확인된다. 그리고 한 봉분 안에 2기 이상의 돌방 혹은 돌덧널이 있는 고분도 포함되어 있다.

[출토 유물]

문무리 고분군의 출토 유물은 고분군의 규모에 비해 알려진 것이 매우 적은데, 현재까지 지표 조사를 통해 앞트기식 돌방의 입구 바깥에서 수습된 찍은 무늬[印花紋] 항아리[壺]의 동체부 파편 2점과 굽다리접시[高杯]의 배신부 1점이 알려진 정도이다. 찍은 무늬 항아리 1점은 기포가 있어 소성 상태가 불량하지만 작은 모래 알갱이가 섞인 정선된 질[胎土]이며, 횡선 돌대와 맞톱니무늬[三角鋸齒紋]가 시문되었다. 또 다른 찍은 무늬 항아리 1점은 둥근 점 무늬[圓点紋]를 찍고 다수의 횡선을 돌린 것이다. 2점 모두 자연유(自然釉)가 부착된 뒤 산화, 박리되었으며 7세기 것으로 추정된다. 굽다리접시 배신부는 긴 아가리[口緣部]가 약간 내경하고 배신 하부가 직선상으로 이루어진 이 지역 생산품으로 5세기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문무리 고분군은 봉분은 물론 석실 혹은 석곽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훼손 상태가 심한 상태이다. 그것은 도굴이 극심하게 자행되었고 봉분 성토재가 유실되기 쉬운 마사토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쪽 산자락을 절개하여 상주시 공성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개설하고, 사면 하단부 일대에 농경지 확보를 위한 개간 과정에서 고분들이 대량으로 인멸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산의 능선과 사면에 입지한 고분에는 소나무 등 나무들이 빼곡히 자라고 있다. 고분 사이 곳곳에 민묘가 조성되고, 사면 하위 경작지의 논밭 둑에 간간히 봉분의 하부가 잔존하는 것들이 보인다. 고분 상부에 자라는 나무를 벌목한 후 잔디를 식재하는 등 고분 보호와 관련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의의와 평가]

문무리 고분군은 김천 지역 최대의 고분군이다. 고대 감문국의 고지(故地)가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동부리·양천리 일대로 비정되고 그곳의 고분군이 당시의 주고분군으로 비정되었다. 그러나 현재 문무리 고분군에 남아 있는 고분은 그곳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규모이고, 비록 훼손·인멸된 것들이 많으나 당시의 분포 정황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고분군의 양측 산 정상부에는 당시의 산성이 남아 있어 삼국 시대에 여러 지역에 보이는 고분군과 산성의 조합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무리 고분군은 오지에 입지하고 있지만 김천 지역의 고분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중요 고분군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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