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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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陵西部里三層石塔 |
영어공식명칭 | Three storied Stone Pagoda of Seobu-ri, Gimcheon |
영어음역 | Gimcheon Seoburi Samcheung Seoktap |
이칭/별칭 | 금릉 서부동 삼층석탑,가마바위,금릉 서부동 폐탑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 501-3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이주림 |
문화재 지정 | 1985년 8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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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 1997년![]() |
건립 | 통일 신라 시대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 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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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탑 |
양식 | 석조 |
재질 | 석재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경상북도 김천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2호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석탑.
[개설]
김천 서부리 삼층석탑 주변에서 주변에는 일휘문(日暉文) 암막새 기와 등 통일 신라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 이르는 기와 및 자기편들이 발견되어 통일 신라 시대 사찰이 조선 중기까지는 존속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탑이 위치한 골짜기는 임진왜란 당시 왜병의 진로였다는 설이 있어 그 때 탑이 무너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기존에 금릉 서부동 폐탑으로 불렸고, 가마바위라고도 불린다.
[건립 경위]
김천 서부리 삼층석탑의 연혁 및 조성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옥개석 등 구조물의 건축 양식이나 형태로 미루어 보아 통일 신라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위치]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 501-3번지 서부마을에서 서쪽 200m 거리의 호두산 아래 소릿길 고개 너머 골짜기 포도밭에 6개의 탑편이 있다. 여기서 북쪽으로 약 30m 지점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향토지(鄕土誌)에 나오는 감문국(甘文國)의 장부인릉이 근처에 있었다고 하는데, 능은 탑석 바로 뒤에 위치해 있다.
[형태]
김천 서부리 삼층석탑은 원래 삼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기단부, 상륜부, 3층부는 없고 탑신(塔身)의 1·2층 부재만 남아 있던 것을 1997년에 복원하였다. 탑은 화강석으로 만들어졌으며 1층 옥개석은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갔고, 두께는 얇으며 옥개석 위에 2단의 괴임이 있다. 합각부에는 풍탁공이 뚫려 있고 낙수면의 반전은 약하다.
1·2층 옥개받침은 5단이고, 1층 옥신의 너비는 124㎝, 높이는 11㎝이며, 한쪽 변의 길이가 215㎝이다. 이 규모로 보아 웅장한 석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형태를 볼 때 전형적인 통일 신라 시대의 삼층석탑으로 추정된다.
[현황]
김천 서부리 삼층석탑의 1·2층 탑재만 남아 있던 것을 1997년에 복원하고 철책을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옥개석 등 구조물의 건축 양식이나 형태로 미루어 보아 전형적인 통일 신라 시대의 삼층석탑으로 추정되고 있어 통일 신라 시대 석탑으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