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유익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793
한자 兪益明
영어음역 Yu Ikmyeong
이칭/별칭 무수,학포(學圃),해붕(海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1440년연표보기
활동 1441년연표보기
활동 1450년연표보기
활동 1453년연표보기
몰년 1455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금송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금송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김산(金山)
대표 관직 전라도처치사

[정의]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김산(金山). 자는 무수, 호는 학포(學圃)·해붕(海鵬). 유섭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유익명(兪益明)[~1455]은 지금의 김천시 감천면 금송리에서 태어났다. 무예가 뛰어나 무과를 거쳐 사량만호(蛇梁萬戶)가 되었고, 1427년(세종 9) 세자가 조현(朝見)할 때 사직으로 참여하였다. 1440년(세종 22) 병조참판 황보인(皇甫仁) 등이 장수가 되기에 알맞은 인물로 천거하였으며, 첨지중추원사가 되었다. 다음 해 함경도도진무로 있으면서 우예(虞芮)를 분수(分守)하면서 포치(布置)를 허술하게 하였고, 또 도적을 쫓지도 아니하였다는 죄명으로 의정부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으나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이때 북진 개척과 수비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1450년(문종 즉위년)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회령절제사(會寧節制使)가 되었으며, 동지중추원사로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 이때 통사를 먼저 보내 달달 야선의 군사가 삼로(三路)로 나누어, 그중 1로가 조선을 향해 떠났다는 보고를 하여 평안도와 함길도의 방어에 대비하게 하였다.

1453년(단종 1) 행첨지중추원사(行僉知中樞院事), 경상우도병마절제사가 되었다. 이때 사량만호의 경험과 도절제사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왜인이 쳐들어올 것에 대비하여 가도(柯島)에 병선을 집결시켜 대비하게 하였다. 세조는 왕위에 올라 유익명의 대책을 채택하였다. 1455년(단종 3) 전라도처치사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유익명은 충실한 무신일 뿐만 아니라 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의 문집에 신숙주(申叔舟)가 서문을 썼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묘소]

묘소는 김천시 감천면 금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세조가 즉위한 뒤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이 되었고, 유익명이 세상을 떠난 뒤 원종공신에 봉해졌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