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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801
한자 李世幹
영어음역 Yi Segan
이칭/별칭 대임(大任),남강(南岡),도원거사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664년연표보기
몰년 1733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 지도보기
성격 유학자|효자
성별
본관 성주(星州)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이자 효자.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대임(大任)·남강(南岡), 호는 도원거사.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겸 좌승지(軍資監正兼左承旨)에 추증된 이이함(李以馠)이고, 아버지는 예조참판에 추증된 이유항(李惟杭)이다. 어머니는 벽진(碧珍) 이부규(李父逵)의 딸이며, 부인은 안동 장씨(安東張氏)이다. 아들로 이봉거(李鳳擧), 이붕거(李鵬擧), 이학거(李鶴擧), 이난거(李鸞擧), 이황거(李凰擧)를 두었고 손자로 이주룡이 있다.

[활동 사항]

이세간(李世幹)[1664~1733]은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에서 태어났으며, 문학으로 이름이 났다. 부친의 병환이 깊었으나 효성이 지극하여 겨울임에도 살구꽃과 배꽃이 피어 약으로 사용하였고, 꿩이 저절로 날아들어 부모님께 봉양하였다. 부친이 돌아가시자 시묘를 위해 영모재(永慕齋)를 지어 살아 계시듯이 예를 다하였다.

엄동설한에 시묘할 때 호랑이가 나타나 보호해 주었고, 그가 성주의 덫에 걸린 호랑이를 구해 주기도 하였다. 이세간이 세상을 떠나자, 사후에는 호랑이가 울면서 굶어 죽었다는 전설을 남겼다. 늘 심성(心性)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 유학자의 표상을 보였으며, 학도(學徒)들과 함께 강론(講論)하여 정주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흥학 교육에 힘써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저술에는 『문도록』이 있으며, 문집으로 『남강처사공문집(南岡處士公文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1860년(철종 11) 영남의 사림들은 이세간의 효행을 천거하여 사헌부지평이 증직되었다. 부인 장씨는 남편의 뒤를 이어 자진하여 열녀의 표상이 되었다. 이세간의 손자 이주룡 또한 하늘이 낸 효자였으며, 유천(乳泉)이 있게 하였다. 이세간의 후손이 사는 백화동(白花洞)을 효자동(孝子洞)이라 부른 이유는 조손(祖孫)으로 이어진 효행 때문이었다. 후손들은 이세간이 시묘하던 자리에 상친사(尙親祠)라는 사당을 짓고 위패를 모셨다. 상친사의 벽에는 호랑이 그림을 그리고 의호비(義虎碑)를 세워 효자와 호랑이의 정리(情理)를 기렸다. 백화동 어귀에는 효자 남강 이세간 비(孝子南岡李世幹碑)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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