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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820
한자 許琮
영어음역 Heo Jong
이칭/별칭 종경(宗卿),종지(宗之),상우당(尙友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호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434년연표보기
활동 1469년연표보기
활동 1470년연표보기
활동 1471년연표보기
활동 1477년연표보기
활동 1481년연표보기
활동 1492년연표보기
몰년 1494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 지도보기
외가|처가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양천(陽川)
대표 관직 우의정

[정의]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종경(宗卿)·종지(宗之), 호는 상우당(尙友堂). 증조할아버지는 허기(許愭)이고, 할아버지는 양양도호부사 허비(許扉)이며, 아버지는 양천부원군 허손(許蓀)이며, 어머니는 금릉 하로의 부녹사 최안선(崔安善)의 딸이다. 부인은 한서봉(韓瑞鳳)의 딸이다. 아들은 허광(許礦)이다. 동생으로 좌의정을 지낸 허침(許琛)이 있다.

[활동 사항]

허종(許琮)[1434~1494]은 김천의 조마 상장암[현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23세에 생원시 합격하였고, 24세에 문과 제3인에 올랐다. 때마침 한발(旱魃)이 심하였는데 방이 붙던 날 단비가 오니 정승이 될 징조라 하였다고 한다. 세조, 예종, 성종의 3대를 보필한 신하로 우의정에 오르고 적개좌리공신 양천부원군이 되었다. 식견이 신묘한 데다 신장이 11척 2촌이나 되어 멀리서 바라보면 큰 산악과 같았다 한다.

세조가 등극한 뒤 허종은 천문직에 속하였는데, 1459년(세조 5) 월식의 천변이 일자 언로를 열 것, 이단을 물리칠 것, 경연을 자주 열 것 등을 주장하는 소를 올려 왕의 신임을 얻으면서 선전관청선전관을 겸하였다. 특히 불교를 배척하였는데, 세조가 모든 신하에게는 불경을 내려 외우게 하면서도 “아무개는 불경을 좋아하지 않으니 불경을 주지 말라.”는 말까지 하였다 한다. 허종은 문무를 갖추어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고, 이듬해 전라도의 장영기의 반란을 진압하여 양천부원군에 올랐다.

1469년(예종 1) 평안도관찰사·전라도병마절도사 등을 거쳐 사헌부대사헌에 오르고, 이듬해 병조판서가 되었다. 1471년(성종 2)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된 뒤 지중추부사·판중추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을 거쳐 1477년(성종 8) 예조판서가 되었다.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한 후 1492년(성종 23) 우의정에 올랐으며, 1494년(성종 25)에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문무를 겸비해 국방과 문예에 큰 공을 남겼다. 1481년(성종 12) 북변 방어를 위한 「평안도연변제읍적로요해산천험이도(平安道沿邊諸邑賊路要害山川險易圖)」를 제작해 올렸다. 의학에도 조예가 깊어 내의원제조(內醫院提調)를 겸임하였다. 중종 때의 명의인 김순몽(金順蒙)·하종해(河宗海) 등을 가르쳤고, 서거정(徐居正)·노사신(盧思愼) 등과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윤호(尹壕) 등과 『신찬구급간이방(新撰救急簡易方)』을 편찬하였다.

서거정·노사신·어세겸(魚世謙)·유순(柳洵)·유윤겸(柳允謙) 등과 『연주시격(聯珠詩格)』·『황산곡시집(黃山谷詩集)』을 언해하였다. 또한 문집으로는 『상우당집』이 있고, 편서에는 『의방유취(醫方類聚)』를 요약한 『의문정요(醫門精要)』가 있다. 천문·역법에도 조예가 깊었다.

[상훈과 추모]

성종조의 청백리로 녹선되었고,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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