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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906
한자 石基萬
영어음역 Seok Giman
이칭/별칭 석주(石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금송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송호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886년연표보기
활동 1911년연표보기
활동 1921년 10월연표보기
활동 1922년연표보기
몰년 1923년 9월 13일연표보기
추모 1995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금송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만주
활동지 만주|장백현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대한국민단 서무부장|광정단 총무

[정의]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석기만(石基萬)은 1886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금송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석주(石柱)이다. 일제에 강점된 다음해인 1911년 만주로 망명하여 무장 투쟁에 가담하였다. 1921년 10월 장백현(長白縣) 16도구(道溝)를 중심으로 군비단(軍備團)·태극단·대진단지부(大震團支部) 등이 연합하여 조직한 대한국민단에 가담하여 서무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석기만은 장백현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대한독립군비단·흥업단·태극단·광복단의 4개 단체가 연합하여 만든 광정단에 합류하였다. 1923년 광정단 총무가 된 석기만은 남부장(南部長) 김용대, 남부 총무 강건(姜健)과 함께 단원 및 학생 등 약 50~60여 명과 함께 장백현 동평덕리 예수교 예배당에 모여 관동 대지진에 대한 축하회를 열기도 하였다.

1923년 9월 석기만은 광정단 총무장 윤덕보와 함께 장백현 17도구 동평덕(東平德)에 머물면서 단원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던 중 9월 13일 새벽 5시경 중국 보갑병 13명이 습격해 오자 현장을 탈출했으나 보갑병들의 추격을 받던 중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25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호는 석주(石桂)이다. ->호는 석주(石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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